혜숙옹주
혜숙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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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주 | |
이름 | |
휘 | 수란(秀蘭/壽蘭) |
신상정보 | |
출생일 | 1478년 |
출생지 | 조선 |
사망일 | 미상 |
국적 | 조선 |
왕조 | 조선 왕조 |
부친 | 성종 |
모친 | 숙의 남양 홍씨 |
배우자 | 고원위 신항(高原尉 申沆) |
자녀 | 양자 신수경(申秀涇) |
혜숙옹주(惠淑翁主, 1478년 ~ ?)는 조선의 왕족이다. 조선 제9대 임금 성종(成宗, 1457~1494, 재위 1469~1495)의 서장녀로, 숙의 홍씨(淑儀 洪氏, 1457~1510)의 소생이다.[1]
생애
1490년(성종 21) 4월 27일에 참판 신종호(申從濩)의 아들이자 신숙주의 증손인 고원위(高原尉) 신항(申沆)에게 출가하였다.[1] 결혼과 함께 70구의 노비와 전지 10결을 하사받았다.[2] 성종은 혜숙옹주를 신항에게 시집보내면서 시아버지 되는 신종호에게 옹주의 일을 따로 당부하였다.
우승지(右承旨) 신종호(申從濩)에게 전교(傳敎)하기를,“옹주(翁主)가 하가(下嫁)한 후에 시부모님을 뵙는 예(禮)가 있는데, 예전의 성현(聖賢)이 예를 만들 때 어찌 의도가 없었겠는가? 가도(家道)는 마땅히 근엄(謹嚴)하게 할 바이다. 옹주가 궁궐 안에서 생장(生長)하여 더러 귀(貴)한 것을 믿고 교만한 폐단이 있을 것이다. 반드시 어렸을 때부터 예를 알아야 하니, 습관이 몸에 배어 성품이 된 후에야 부도(婦道)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경(卿)은 존귀(尊貴)하게 대우하여 그 예를 폐하지 말도록 하라.”하였다. 장차 혜숙 옹주(惠淑翁主)를 고원위(高原尉) 신항(申沆)에게 하가(下嫁)시키려 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전교가 있었는데, 신항은 바로 신종호(申從濩)의 아들이다.
— 《조선왕조실록》성종 239권, 성종21년 4월 15일
1507년 신항과 사별하였고 남편과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으나 모두 어려서 사망하였기에[3] 신항의 동생인 신함의 아들 신수경을 양자로 삼았다.
가족 관계
친정 전주 이씨(全州 李氏)
- 조부 : 추존 덕종대왕(德宗大王, 1438~1457)
- 조모 : 소혜왕후 청주 한씨(昭惠王后 淸州 韓氏, 1437~1504)
- 외조부 : 홍일동(洪逸童, ?~1464)
- 외조모 : 문유질(文由質)의 딸 남평 문씨(南平 文氏)
시가 고령 신씨(高靈 申氏)
- 시아버지 : 예조참판 신종호(禮曹參判 申從濩)
- 부마 : 오위도총부부총관 고원위 신항(衛都摠府副摠管吳 高原尉 申沆, 1477~1507)
- 양자 : 신수경(申秀涇)
- 부마 : 오위도총부부총관 고원위 신항(衛都摠府副摠管吳 高原尉 申沆, 1477~1507)
주석
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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