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풍제
함풍제
咸豊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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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의 제9대 황제 | |
재위 | 1850년 ~ 1861년 |
전임 | 도광제 |
후임 | 동치제 |
이름 | |
휘 | 애신각라혁저(愛新覺羅奕詝) |
신상정보 | |
부친 | 도광제 |
모친 | 효전성황후 |
배우자 | 효덕현황후 효정현황후 효흠현황후 |
함풍제(咸豊帝, 1831년 7월 17일 ~ 1861년 8월 22일)은 중국 청 왕조의 제9대 황제(재위 1850년 ~ 1861년)이다. 휘는 혁저(奕詝)이며, 묘호는 문종(文宗)이다. 시호는 협천익운집중수모무덕진무성효연공단인관민장검현황제(協天翊運執中垂謨懋德振武聖孝淵恭端仁寬敏莊儉顯皇帝)이다. 몽골어로 투기멜 엘베그트 칸(Tugeemel Elbegt Khaan)이라고 하고 만주어로는 구브시 엘뎅게 한(Gubci Eldengge han)이라고도 한다.
치세
재위기간 중에 홍수전의 태평천국 운동이 일어나 중국 대륙이 휘청거렸다. 1854년 4월 영국, 프랑스, 미국 공사는 함께 광저우로 가서 양광총독(兩廣總督) 엽명침(葉名琛)에게 모든 내지(內地)와 연해도시의 개방, 상선과 군함의 양자강 자유왕래, 아편무역의 합법화, 내지(內地) 통관세의 폐지, 외국사절의 북경상주 등을 내용으로 하는, 난징 조약의 개정을 요구하였다.[1] :53~54 두 번째 개정교섭에서는 1856년 5월 미국 공사가 광저우에서 공사의 북경상주, 중국전역의 개방, 선교의 자유 등을 요구하였다.[1] :54
1856년 이후 영국과 프랑스와의 군사분쟁(애로 호 전쟁)이 격화되어 1860년 함풍제는 열하(熱河)로 피난을 갔다. 그 사이 영국, 프랑스 연합군의 공세가 북경까지 이르러 이궁(離宮) 원명원이 전소되었다. 이후 함풍제는 자금성으로 돌아와 1861년 세상을 떠났다.
가족 관계
- 조부: 인종 가경예황제(仁宗 嘉慶睿皇帝) 옹염(顒琰)
- 조모: 효숙예황후 희탑랍씨(孝淑睿皇后 喜塔臘氏)
- 부친: 선종 도광성황제(宣宗 道光成皇帝) 민녕(旻寧)
- 모친: 효전성황후 뉴호록씨(孝全成皇后 鈕祜祿氏)
후비
- 효덕현황후 살극달씨(孝德顯皇后 薩克達氏)
- 효정현황후 뉴호록씨(孝貞顯皇后 鈕祜祿氏) - 동태후(東太后), 자안태후(慈安太后)
- 효흠현황후 엽혁나랍씨(孝欽顯皇后 葉赫那拉氏, 예흐나라씨) - 의귀비(懿貴妃) 서태후(西太后), 자희태후(慈禧太后)
- 아들 : 목종 의황제 재순(穆宗毅皇帝 載淳)
- 장정황귀비 타타납씨(莊靜皇貴妃 他他拉氏)
- 딸 : 고륜영안공주(固倫榮安公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