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식민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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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0.32.123 (토론)님의 2015년 9월 25일 (금) 11:28 판 (→‎지원)
포르투갈 식민지 전쟁
냉전의 일부

철군하는 포르투갈군
날짜1961년 2월 4일~1974년 4월 25일
장소
앙골라, 기니비사우, 모잠비크
아프리카 대륙의 포르투갈령 식민지들.
결과 기니비사우, 앙골라, 모잠비크 1974년과
1975년을 기점으로 포르투갈로부터 독립
교전국

포르투갈의 기 포르투갈
지원국
남아프리카 공화국 남아프리카 공화국
로디지아의 기 로디지아
말라위의 기 말라위

북대서양 조약 기구 NATO

MPLA
FNLA
UNITA
PAIGC
FRELIMO
지원국
소련의 기 소련
쿠바의 기 쿠바
중화인민공화국의 기 중화인민공화국
미국의 기 미국
자이르의 기 자이르
알제리의 기 알제리
탄자니아의 기 탄자니아
잠비아의 기 잠비아
세네갈의 기 세네갈
튀니지의 기 튀니지
기니의 기 기니
콩고 인민공화국의 기 콩고 인민공화국
리비아의 기 리비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기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의 기 불가리아
이집트의 기 이집트

라이베리아의 기 라이베리아
지휘관
포르투갈 안토니우 살라자르
포르투갈 마르셀루 카에타누
포르투갈 아메리쿠 토마스
포르투갈 프란시스쿠 고므스
포르투갈 안토니우 스피놀라
포르투갈 카울자 아리아가
아고스티뉴 네투
조제 에두아르두 두스산투스
홀덴 호베르투
조나스 사빔비
아밀카르 카브랄
루이스 카브랄
사모라 마셸
피해 규모
포르투갈군:
8,827명 전사
15,507명 부상
식민지 반란 저항군:
66,000명 전사

포르투갈 식민지 전쟁(포르투갈어: Guerra Colonial Portuguesa)은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 포르투갈 군과 앙골라와 기니비사우,모잠비크등 포르투갈령 아프리카 식민지 간에 벌어진 군사적 충돌을 의미한다. 포르투갈에서는 해외전쟁(포르투갈어: Guerra do Ultramar), 옛 식민지 국가에서는 해방전쟁(포르투갈어: Guerra de Libertação)이라고도 부른다.

배경

식민지 건설

서유럽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한 나라 포르투갈은 유럽에서 최초로 동서양 해양 교역로를 개척하면서 남아메리카의 브라질, 아프리카의 기니비사우와 앙골라, 모잠비크, 중국의 마카오, 인도고아, 다만, 디우등 세계 각지에 식민지들을 건설하였고 식민지 착취를 통한 지하자원과 농산물등으로 국가의 부를 축적하였다.그러나 1822년 최대 식민지였던 브라질이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하면서 이후 포르투갈의 국력은 쇠퇴하기 시작했고, 이외 남아있는 식민지들에 대한 식민지 지배를 더욱 강화했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식민지 착취 중심의 포르투갈의 국가 경제 기반은 급격히 악화되었다.

탈식민지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프랑스와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의 지배를 받고 있던 해외 식민지들이 주권국가들로 독립하는 탈식민지화 현상이 대두되었다.그러나 1960년대에서 70년대 사이 식민지들의 독립을 인정한 영국이나 프랑스등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포르투갈의 이스타두 노부(Estado Novo, 포르투갈 제2공화국) 정권은 점유하고 있는 해외 식민지들의 독립을 허용하지 않았고 식민지 착취와 수입을 통한 전근대적인 경제구조를 타파하지 못했다.

해방운동 고조

그러나 1960년대 들면서 영국과 프랑스등 서유럽 국가들의 식민지 지배를 받고 있던 수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하나 둘씩 독립하기 시작했고 같은 시기 앙골라와 기니비사우, 모잠비크등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고 있던 아프리카 식민지에서도 앙골라해방인민운동, 앙골라해방민족전선, 앙골라완전독립민족동맹, 기니비사우-카보베르데 아프리카 독립당, 모잠비크 해방전선 등 여러 반식민주의 정치 조직들이 속속 대두되면서 독립 운동 움직임이 고조되었다. 그러나 당시 포르투갈 이스타두 노부 정권은 이러한 식민지 내 반식민주의 정치 조직들의 독립 운동을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무력으로 탄압하였고 이들 식민지 독립 운동을 주도하는 정치 조직들도 동시에 탄압했다.

저항의 시작

그러나 1961년과 1963년, 1964년에 반식민주의 조직들이 주도하는 크고 작은 무장 반란과 폭동들이 앙골라와 기니비사우,모잠비크등 식민지 곳곳에서 벌어졌고 이러한 식민지의 반란이 끓임없이 이어지자 포르투갈의 살라자르 총리는 식민지에서 일어나는 반란들을 진압하고자 수많은 군 병력을 식민지에 파견하면서 결국 포르투갈의 아프리카 식민지들은 사실상 전쟁 상태에 빠졌다.

전세

초기

초기 전세는 포르투갈군에게 매우 유리하게 전개되었다.영국이나 프랑스, 독일 등 아프리카에서 식민지들을 경영해온 다른 서유럽 국가들과 달리 포르투갈은 아프리카에서 식민지를 오랫동안 경영해오는 등 식민지 지역에 철저한 기반들을 구축해놓은 상태였는데다 막대한 양의 국가예산을 전쟁 비용으로 쏳아부으며, 식민지에서 일어나는 반란들을 강력하게 진압했다.그러나 식민지 반란 저항군들도 게릴라 전 등으로 완강하게 저항하면서 초기 식민지 반란 진압에서 시작했던 전쟁의 양상은 사실상 장기전으로 흘러가기 시작했고 전쟁 과정에서 포르투갈군과 식민지 반군 모두 수많은 사상자들이 속출했다.

지원

게다가 아파르트헤이트라는 극단적인 흑인 인종차별 정책으로 국민 다수의 아프리카 흑인들을 억누르고 소수의 백인들이 통치하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아프리카 지역에서 백인 통치를 고착화하려는 계산 아래 포르투갈을 지원하고 소련중국, 쿠바,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알제리, 탄자니아, 잠비아, 기니, 세네갈, 콩고, 리비아, 자이르, 튀니지등 공산권 국가들과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들이 앙골라, 모잠비크, 기니비사우등 포르투갈령 아프리카 식민지 반군들을 지원하면서 이 전쟁은 사실상 국제 대리전의 양상을 보였다.미국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식민지 지배를 포기 안하려는 포르투갈에 적대적인 입장을 취했으나 앙골라의 앙골라해방민족전선만 지원했다.

카네이션 혁명

결국 이 전쟁은 1974년 포르투갈의 이스타두 노부 정권이 카네이션 혁명에 의해 붕괴됨으로써 종결된다. 이후 들어선 포르투갈 임시 정부는 포르투갈의 아프리카 식민지들에 대해 독립을 허용하고, 식민지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포르투갈군의 철군을 단행했다. 그와 동시에 앙골라, 모잠비크, 기니비사우등 옛 포르투갈 식민지가 독립을 선언함으로써 포르투갈의 해외식민지는 1999년 중국으로 반환되는 마카오만이 유일하게 남게되었다.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