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누트 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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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누트 함순
작가 정보
출생
바가, 구드브란스달렌
사망
그림스타드
국적노르웨이
언어노르웨이어, 덴마크어
직업작가, 시인, 소설가, 극작가, 평론가, 작가
사조신낭만주의
수상노벨 문학상 (1920)
예술과 과학을 위한 괴테 메달
주요 작품
굶주림, 땅의 혜택
영향
영향 받은 인물아르투어 쇼펜하우어, 비에른스티에르네 비에른손, 바이런 경,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 프리드리히 니체,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서명

묘비
묘소Nørholm

크누트 함순(노르웨이어: Knut Hamsun, 본명 크누드 페데르센(노르웨이어: Knud Pedersen) 1859년 8월 4일 ~ 1952년 2월 19일)은 노르웨이소설가이다. 노르웨이 구드브란스달렌(노르웨이어: Gudbrandsdalen)의 바가(노르웨이어: Vågå) 출생으로[1], 롬(노르웨이어: Lom), 외위스테세(노르웨이어: Øystese) 등을 전전하며 생활을 하다가 1882년, 1886년 두 번 미국으로 건너가 농장 노동자, 판매원 등으로 생활하며 마크 트웨인의 소설 등을 접했다. 미니애폴리스에서 생활하며 미국 무정부주의와도 교류하였다. 1888년 귀국하여 코펜하겐에 정착했으며, 1890년에 소설 《굶주림》을 발표했다. 1891년부터 순회 강연을 다니며 헨리크 입센, 비에른스티에르네 비에른손 등에 대한 비판을 개진했다. 1899년 핀란드, 러시아, 조지아와 튀르키예 일대를 여행하고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연극 《여왕 타마라》를 썼다. 신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 명성을 얻었다. 작품에 소설 《신비》, 《처녀지》와 희곡 《제국의 문턱에서》, 《투쟁 생활》 등이 있다. 192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함순은 영국 자본의 노르웨이 진출과 보어 전쟁을 목격하면서 영국에 대한 반감을 가졌으며, 미국 생활에서 느낀 환멸은 그를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자로 만들었다. 점차 우익으로 기운 함순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노르웨이가 나치 독일에게 점령된 이후에 여러 차례 노르웨이인들이 독일 점령군에 협력할 것을 호소했으며, 아돌프 히틀러나치즘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이로 인해 전후에 가택연금되었고, 반역죄로 기소되었다. 정신적 문제, 고령의 나이를 고려하여 형사 처벌은 면하였으나 325,000 크로네의 보상금을 지불하였다.[2]

1949년 마지막 작품인 《풀이 무성한 길에서》(노르웨이어: På gjengrodde stier)를 출간한 함순은 1952년 그림스타드에 있는 자택 뇌어홀름(노르웨이어: Nørholm)에서 사망했다.

각주[편집]

  1. 함순이 바가에서 출생했는지, 근방의 롬에서 출생했는지는 불분명하다. 함순이 태어날 당시 함순의 아버지는 바가의 농장을 소유하고 있었고, 롬의 농장을 임대하고 있었다. 함순의 출생지는 바가로 구전되지만, 본인은 바가와 롬을 번갈아 언급하였다. 함순의 전기 작가인 라스 라르센(Lars Frode Larsen)은 함순의 출생지를 바가로 추측했다.
  2. Rottem, Øystein (2020년 2월 25일). “Knut Hamsun”. 2023년 1월 2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