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시 프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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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RULE (토론 | 기여)님의 2014년 4월 20일 (일) 02:09 판
메달 기록
캐시 프리먼
오스트레일리아 오스트레일리아
여자 육상
올림픽
2000 시드니 400m
1996년 애틀랜타 400m
세계선수권
1997년 아테네 400m
1999년 세비야 400m
1995년 예테보리 1600m 계주
영연방 경기
1990년 오클랜드 1600m 계주
1994년 빅토리아 200m
1994년 빅토리아 400m
2002년 맨체스터 1600m 계주
1994년 빅토리아 1600m 계주

캐시 프리먼(Cathy Freeman, OAM, 1973년 2월 16일 ~ )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전직 육상 선수이다. 400m 전문 선수로, 2000년 하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1997년1999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2연속 우승자였다.

생애

오스트레일리아 토착민출신으로 퀸즐랜드 주 매케이의 슬레이드 포인트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본명은 캐서린 애스트리드 살로메 피셔(Catherine Astrid Salome Fisher)이며, 5세 때 부모가 이혼하자 그녀의 어머니가 클로드 프리먼과 결혼하여 그 성을 가지게 되었다. 바하이 신앙으로 자라온 그녀는 자신의 신앙과 자신이 원주민이란 이유로 인종 차별의 경험에 의한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경력

어린 나이에 육상을 시작한 프리먼은 그의 의붓아버지 브루스 바버의 감독 아래 훈련을 받았다. 10대 초반에 100m, 200m와 멀리뛰기에 출전하면서 지방과 국가 타이틀을 얻었다.

1987년에는 후에 그녀의 정식 감독이 되어 그녀의 경력에 영향을 준 루마니아계 감독 마이크 다닐라에 의하여 프로적으로 코치를 받았다.

1988년 투움바에 있는 여자 고등학교 페어홈 칼리지(Fairholme College)에 입학하는 장학금을 받았다. 이듬해 경연대회에서 프리먼은 100m를 11.67초로 달렸고, 다닐라 감독은 시드니에서 영연방 경기 선발 대회에 입장시키는 생각을 하였다.

1990년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열리는 영연방 경기 대회에서 프리먼은 오스트레일리아 400m 계주의 일원으로 선택되어 첫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그리하여 그녀를 처음이자 마지막 어보리진 영연방 경기 금메달리스트와 16세의 가장 어린 나이의 메달리스트로 알져지게 하였다. 대회 후에 멜버른으로 이주하였으며 감독 피터 포츈에게 소개되어 자신의 나머지 육상 경력을 그에게 코치를 받았다. 불가리아 플로프디프에서 열린 세계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서 100m 준결승전에 도달하였고 400m 결승전에서 5위로 들어왔다. 서울에서 열린 대회에서도 나와 200m 은메달을 땄다.

1994년은 프리먼의 발전 시즌이었는 데, 캐나다 빅토리아에서 열린 영연방 경기 대회에서 200m와 400m 금메달을 차지하였다. 또한 오스트레일리아 400m와 1600m 계주 양 팀의 일원이기도 하였는 데 첫 계주에서 은메달을 땄으며, 다음 계주에서 1위로 왔으나 후에 실격당하였다. 1994년 시즌 동안에 400m에서 50.04초의 개인 전력을 세웠으며, 또한 11.24초(100m)와 22.25초(200m)의 사상 최고 전력을 세우기도 하였다.

1995년 예테보리에서 열린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메달 우승 물망에 올랐으나, 4위에 머물고 200m 준결승전 도달에 그치고 말았다.

1996년 시즌 동안에 많은 개인 전력과 오스트레일리아 기록들을 세우면서 더 많은 진보를 향상시켰다.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프랑스마리-조세 페레크와 맞붙었으나 오스트레일리아 기록 48.63초와 함께 은메달을 땄다. 1997년 아테네에서 열린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49.77초의 기록과 함께 400m 종목에서 우승하였다.

부상으로 인하여 1998년에 휴식을 취하였다가 이듬해 복귀하여 그해의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를 포함하여 단 하나의 400m 종목에서 패하지 않았다.

페레크의 육상 복귀에 불구하고 프리먼의 연정 연승은 2000년 시즌에 지속적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시드니 올림픽에서 400m 우승 가능성이 보였던 본국의 우승 후보로 보였으며, 결승전에서 49.13초의 기록을 세워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그녀는 어보리진으로서는 2번째 금메달리스트(첫 번째는 애틀랜타 올림픽 여자 하키 우승 팀의 노바 페리스-니본)이 되었으며, 경주가 끝나자 그녀는 오스트레일리아와 어보리진의 깃발을 들면서 승리의 랩을 돌았다. 또한 200m 결승전에도 나갔으나 6위로 마쳤다. 시드니 올림픽 금메달 우승의 명예로 그녀는 2002년 동계 올림픽 개막식에서 오륜기를 들면서 오세아니아를 대표하였다. 그녀와 함께 동행한 이들로는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아프리카), 존 글렌(미주), 후나키 카즈요시(아시아), 레흐 바웬사(유럽), 장 미셸 쿠스토(환경), 장 클로드 킬리(스포츠)와 스티븐 스필버그(문화)이다.

2002년 맨체스터에서 열린 영연방 경기 대회에서 1600m 계주 우승을 마지막으로 이듬해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 그녀의 고향에 그녀의 이름을 딴 지방 육상 클럽이 있다.

바깥 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