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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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록
崔慶祿
출생1920년 9월 21일
일제강점기의 기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사망2002년 9월 3일(2002-09-03)(81세)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성별남성
국적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학력미국 조지 워싱턴 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석사
직업군인, 외교관, 정치가
배우자전자순
자녀슬하 2남 2녀
최경록
출생지 충청북도 음성군
사망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복무 대한민국 육군
복무기간 1942년 ~ 1961년
근무 육군본부
최종계급 대한민국 육군 중장
지휘 육군참모총장
주요 참전 한국 전쟁
기타 이력 일본 주재 대한민국 대사관 대사

최경록(崔慶祿, 1920년 9월 21일 ~ 2002년 9월 3일)은 대한민국군인, 외교관, 정치가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1961년 육군 중장으로 예편하였다.

충청북도 음성 출신으로 일본 도요하시 중학교와 일본 육군예비사관학교와 대한민국 군사영어학교미국 육군참모대학교와 대한민국 국방대학원미국 조지 워싱턴 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하였다. 1949년 송악산 5·4 전투 당시, 유명한 육탄10용사를 배출한 육군 제11연대의 연대장이었다. 한국 전쟁 초기에 육군 제11연대를 이끌고 고랑포 전투(1950년 6월 25~26일)에 참여하였다. 1951년 거창양민학살사건, 국민방위군 사건을 처리한 헌병사령관이었다. 1950년 민주국민당 의원이었던 서민호가 기생집에서 현역 육군 대위를 사살하자 이승만은 사형을 선고한 뒤 자비를 베풀어 사형을 면제시키는 것처럼 하려 하였으나 육군 준장 최경록을 비롯한 군관과 법관들의 거부로 무산되었다. 이승만은 이들에 대한 인사보복으로 대응하였다. 1960년 4·19 혁명 당시 계엄사령관 송요찬의 발포 명령에 대하여 최경록은 발포를 중단하도록 만류하였다. 4.19후 육군참모총장으로서 군의 숙정과 관련한 미국 측의 간섭을 일언지하에 거부해서 "파머 사건"을 겪었다. 1960년 5월, 허정(許政)은 최경록을 육군참모총장에 채용하려 하였으나, 장면 민주당 대표최고위원과 인연이 있던 최경록은 허정의 참모총장직 제의를 사양하였었다. 1960년 8월 23일 장면은 국군 인사를 단행, 육군참모총장에 최경록을 임명하였다. 그로부터 이듬해 1961년 육군참모총장 최경록은 육군 중장으로 예편하였다. [1]:96 최경록, 강문봉, 전규홍, 이철승, 양일동 및 전 주미 대사관 참사관 부인들은 1963년 3월 21일, 미국 대통령 관저 앞에서 "군대는 정치에 간섭하지 말라", "박정희 군사독재 타도", "한국인은 군부정치를 원치 않는다", "한국인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지지한다"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박정희 장군의 군정 연장 제안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2] 1967년 10월 7일 상오, 박정희 대통령은 최경록 멕시코 대사 등 8명의 신임대사에게 신임장을 각각 수여했다.[3] 1973년 교통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재직 시 발생한 이리역 폭발 사고(1977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하였다. 1980년 8월 12일 국무회의에서 주일 대사로 임명되자, 8월 13일 국회사무처에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하였다. 오랜 군, 관 생활을 통해 강직과 청렴이 그의 대명사처럼 되었다. 2002년 9월 3일 배우자 전자순(田慈洵) 여사와 2남 2녀를 남기고 향년 83세로 별세하였다. [4] [5] [6]

가족 관계

  • 아내 전자순(田慈洵)과 2남 2녀

학력

같이 보기

주석

  1.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 1960년편 1권》(인물과사상사, 2004)
  2. “백악관앞에서데모”. 경향신문. 
  3. “8大使에信任狀”. 경향신문. 
  4. “駐日大使 崔慶祿 씨”. 매일경제. 
  5. “駐日大使 崔慶祿 씨”. 동아일보. 
  6. “얼굴 崔慶祿 駐日大使”. 동아일보. 
전임
최영희
제13대 육군참모총장
1960년 8월 29일 ~ 1961년 2월 16일
후임
장도영
전임
배의환
제6대 주 영국 대사
1971년 10월 ~ 1974년 10월
후임
김용식
전임
김신
제22대 교통부 장관
1974년 9월 18일 ~ 1977년 11월 17일
후임
민병권
전임
김정렴
제7대 주 일본 대사
1980년 9월 ~ 1985년 10월
후임
이규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