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바브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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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바브웨 공화국
Republic of Zimbabwe

국기

국장
표어Unity, Freedom, Work
표어 설명통합, 자유, 노동
국가짐바브웨의 대지에 축복을
수도하라레 남위 17° 51′ 50″ 동경 31° 01′ 47″ / 남위 17.863889° 동경 31.029722°  / -17.863889; 31.029722
짐바브웨(짐바브웨)
정치
정치체제공화제, 단일 국가, 일당우위제
대통령중심제
대통령
부통령
에머슨 음낭가과
콘스턴틴 치웽가
역사
독립 
 • 로디지아
 • 짐바브웨
1965년 11월 11일
1980년 4월 18일
지리
면적390,757 km2 (60 위)
내수면 비율1%
시간대CAT (UTC+2)
DST없음
인문
공용어영어
인구
2015년 어림13,061,239명 (68위)
인구 밀도33명/km2 (170위)
경제
GDP(PPP)2005년 어림값
 • 전체$305.81억 (94위)
 • 일인당$2,607 (129위)
GDP(명목)2005년 어림값
HDI0.397 (172위, 2012년 조사)
통화RTGS 달러. 해외 주요 화폐
종교
종교기독교 84.1%[1]
무종교 10.9%
토속신앙 4.5%
기타 종교 0.4%
기타
ISO 3166-1716, ZW, ZWE
도메인.zw
국제 전화+263

짐바브웨 공화국(Republic of Zimbabwe 리퍼블릭 오브 짐바브웨이[*])은 아프리카 남부 잠베지 강림포포 강 사이에 있는 내륙국이다. 1967년영국남아공으로부터 독립한 옛 로디지아1980년에 현재의 짐바브웨로 새롭게 독립하였다.

남쪽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 서쪽으로 보츠와나, 북쪽으로 잠비아, 동쪽으로 모잠비크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역사

그레이트 짐바브웨.

짐바브웨의 첫 주민들은 수렵·채집을 하던 호이산족이었다. 하지만 반투족의 대이동이 시작된후 호이산족은 반투족으로 대체되었다. 9세기와 13세기 사이에는 짐바브웨 남부에 쇼나족들이 나라 이름의 근원이 된 그레이트 짐바브웨 석조 건축물이 세워졌다. 19세기 초에는 마타벨레인들이 옮겨와 이 지역을 장악하였다.

1888년에는 세실 로즈가 창립한 영국 남아프리카 회사가 마타벨레 왕국으로부터 광업 이권을 받아내 로즈의 이름을 따 로디지아라고 불리기 시작했고 이 지역에 영국인들의 정착이 시작하였다. 이들의 수가 많아지자 분쟁이 일어나 결국 마타벨레 왕국과 영국인들간의 전쟁으로 이어져 영국인들이 승리하였다.

1923년에는 영국 연방 안의 자치식민지가 되고 1953년에는 북로디지아(현재의 잠비아)와 니아살란드(현재의 말라위)와 함께 로디지아 니아살란드 연방을 구성하지만 1963년 잠비아와 말라위가 독립하면서 로디지아라는 이름으로 영국의 직할식민지가 되었다.

그러다 1965년 이언 스미스로디지아 전선 당이 소수 백인이 장악한 국회에서 모든 의석을 차지하고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하였다. 영국은 이를 위법이라 선언하고 제재를 가하였고 이웃국가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아파르트헤이트 정권마저도 로디지아의 일방적인 독립을 승인하지 않았다.

1970년대에는 이언 스미스가 이끄는 소수 백인 지배에 대항하는 ZANU와 ZAPU 등의 반군의 게릴라 투쟁이 심해져 많은 사상자를 냈다. 1975년 모잠비크앙골라가 독립하면서 지역 정세가 바뀌자 미국,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도 로디지아 정부를 설득하여 결국 1979년 영국의 식민지로 복귀했다. 그리고 1년 후, 1980년 4월 18일 다수인 아프리카인이 지배하는 짐바브웨로 독립하였다.

ZANU를 주도한 로버트 무가베는 초대 총리에 거쳐 1988년 대통령으로 취임, 수차례 재선하면서 현재까지 장기집권하고 있다. 무가베는 1997년 총파업으로 궁지에 몰리자 백인 농장 몰수 정책을 실시하고 2005년 무람바츠비나 작전(Operation Murambatsvina 오퍼레이션 무람바츠비나[*])을 통해 빈민굴의 무허가 건축물을 철거하여 도시 빈민들의 주거 공간을 빼앗는 등 반대파들을 겨냥하는 것으로 비난받는 정책을 폈다.

2008년 짐바브웨는 콜레라 사망자가 500명에 달하기 시작하면서 비상사태를 선포했다.[2] [3] 짐바브웨에서 시작된 콜레라는 인근 국가들로 퍼지기 시작했다.[4]WHO는 짐바브웨 콜레라 사태의 근본원인은 훼손된 배관 시설의 박테리아이며, 물을 통해 전염되고 있다고 밝혔다.[5]

행정구역

짐바브웨의 주


2008년 짐바브웨 대통령 선거

경제

2008년 미화 1달러에 대한 짐바브웨 달러화의 가치는 무려 200억 달러이다. 이렇게 화폐가치가 워낙 빠른 속도로 떨어지다 보니 지폐에 올 해 말까지만 사용하도록 유통기간을 표시할 정도이며, 또한 짐바브웨 정부는 돈을 한꺼번에 찾지 못하도록 하루 인출 금액을 1000억 짐바브웨 달러(미화로 5달러를 조금 넘는 수준)로 제한하고 있다. 이렇게 화폐가치가 땅에 떨어지면서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아 연평균 물가 상승률이 220만%에 이르렀다.[6]

2009년 9월 24일(한국시각), KBS뉴스 보도에 따르면 짐바브웨 정부는 자국의 화폐(짐바브웨 달러)를 없애고 미국유럽 등지의 다른 나라 화폐를 통용시킴으로써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그러나 지폐만이 통용되고 있어 거스름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였으며, 농촌 지역에서는 화폐 사용 대신에 물물교환이 거래수단이 되어가고 있다. 게다가 주요 공산품 가격이 여전히 주변 국가들의 3~4배에 달하는 상황이어서 안정이 깨질 것처럼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짐바브웨 정부는 불편하긴 해도 짐바브웨 내의 경제가 제 궤도에 오를 때까지 자체 화폐 사용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7] 이에 따라 짐바브웨 정부는 당분간 자국의 화폐를 대신하여 US 달러로 화폐를 대체하기로 결정했다.[8]

이는 짐바브웨 달러화의 가치는 수직하강을 하고 있기 때문으로 2010년에는 계란 한개가 3500억 짐바브웨 달러로 1조 짐바브웨 달러로 계란 3개를 구매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최근엔 조금씩 극복해 나가고 있다.

지리

짐바브웨는 남아프리카에 자리잡은 내륙국이며 남쪽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 서쪽으로 보츠와나, 북서쪽으로 잠비아, 동쪽으로 모잠비크와 접한다. 또한 나미비아는 짐바브웨랑 서쪽에서 딱 한 부분 만난다. 북서쪽 국경은 잠베지 강으로 나뉜다. 짐바브웨의 가장 높은 곳은 냥가니 산(Mount Nyangani)이며 해발 2,592 m이다. 동쪽 부분에는 냥가니 국립 공원이 있다. 가장 낮은 곳은 룬데 강, 사베 강과 접한다. 빅토리아 호수는 가장 중요한 관광지이다. 강수가 불규칙적인 탓에 가뭄이 잦으며 폭풍과 같은 기상 피해도 잘 나타나지 않는다.

환경 문제

가장 중요한 환경 문제는 무분별한 삼림 채벌으로 인한 토양 침식과 화전민으로 인한 대기 오염, 수질 오염 등이 있다. 또한 짐바브웨 일대에서 가장 많은 개체수를 누렸던 검은 코뿔소가 사냥으로 인해 개체 수가 급감하면서 이 또한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외에도 광물 채취와 이에 대한 대책 부재로 폐기물이 처리되지 않고 방치되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후

국토의 대다수가 열대기후이지만 고도차이가 나서 기후가 달라지기도 한다. 11월에서 3월까지가 우기로서 비가 잦다. 짐바브웨 국토의 대다수가 고원 지대이고 이 고원에도 고도 차이가 나다보니 산 지대 인근에는 비가 많이 오는 경향이 나타나며 동쪽 지대에 그래도 비가 잦은 편이다. 짐바브웨는 전국이 사바나로 덮여 있고 이 나라의 별명은 '동물의 왕국'이다. 이렇게 짐바브웨가 동물의 왕국이다 보니, 많은 동물학자들이 이곳을 찾는다.

사람과 언어

2000년 2월의 헌법안의 4조 1항에 보면 "공용어영어, 쇼나어, 은데벨레어, 벤다어, 남뱌어, 샹간어, 칼랑가어, 수투어, 퉁가어이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동조 2항에 보면 "영어는 기록 언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위 헌법안은 2000년 2월 12일과 13일에 걸쳐 실시한 국민투표에서 54.68%가 반대하여 부결되었다. 현행 헌법은 일부 수정을 하여 2005년 09월 14일에부터 효력이 발생한 것인데 위 2000년 헌법안에 포함된 언어에 관한 4조는 폐기되었다. 다만,‘판사의 자격’에 대해서 규정하고 있는 82조와 87조에 “영어는 하나의 공식어다.”는 규정만 있을 뿐이다.

문화

종교

짐바브웨는 종교의 자유가 있으며, 기독교, 이슬람, 전통종교를 믿고 있다. 짐바브웨 기독교 교파로는 개신교(최대교단 짐바브웨 하느님의 성회), 짐바브웨 성공회(남아프리카 성공회에 속해 있다.), 로마 가톨릭교회, 아프리카 토착 기독교(아프리카 사도교회)가 있으며, 전 종교인의 61.7%가 기독교인이다.이슬람은 인도사람과 렘바족이 믿고 있으며, 전 종교인의 1.6%를 차지한다. 전통종교는 전 종교인의 32.6%가 믿는다.[9]

생활

짐바브웨의 국민 사정은 다른 아프리카 나라들에 비해 조금 앞선 상태이다. 짐바브웨는 아프리카에서 휴대폰 사용 비율이 약 5위 안에는 든다. 건물들도 현대식인 건물들이 조금 많은 상태이다.

대한관계

로디지아로 독립한 후 이 나라는 국제적으로 제재 대상이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이 나라를 승인하지 않았다. 1980년 짐바브웨가 건국되면서 대한민국은 곧바로 짐바브웨를 승인하였으나, 이 나라는 곧바로 마르크스-레닌주의 정책을 추진하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만 수교하고 대한민국과의 외교관계는 수립하지 않았다. 총리와 대통령이던 로버트 무가베1980년대에 여러 차례 북한을 방문하는 등 북한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으나, 계속하여 대한민국과의 수교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대한민국과는 경제·문화 교류를 하였으며, 1988년 서울 올림픽에도 참여하였다. 양국은 수교 이전부터 비교적 활발한 무역 거래를 하였으며, 1994년 정식으로 국교를 수립하였다. 이에 따라 짐바브웨는 남북한 동시수교국이 되었다. 대한민국은 1995년 주 짐바브웨 대사관을 개설하였으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1998년 주 짐바브웨 대사관을 폐쇄하였다. 그 후 대한민국과의 관계는 꾸준히 증가되어 2006년 한국 교민 127명, 체류자 70명이다.

스포츠

이 나라의 축구 선수들은 유럽 각국에서 활약 중이다. 이 밖에도 짐바브웨는 경마로 아프리카에서 유명한 나라이다.

참고 자료와 주석

  1. 개신교 69.2%
    기타 기독교인 14.9%
  2. 유세진. “짐바브웨, 콜레라 사망자 500명 달해…軍마저 약탈 가담”. 뉴시스. 2009년 9월 24일에 확인함. 
  3. 박지희. “짐바브웨 ‘콜레라 재앙’ …국가 비상사태 선포”. 경향닷컴. 2009년 2월 24일에 확인함. 
  4. 윤지로. “남아프리카 덮친 ‘콜레라 공포’ 짐바브웨 570명 사망”. 세계일보. 2009년 9월 24일에 확인함. 
  5. 인터넷 뉴스팀. “짐바브웨 콜레라 사망자 4천명 육박”. 아시아 투데이. 2009년 3월 1일에 확인함. 
  6. 임성수. “짐바브웨,빵 하나 값이 교사 월급 3분의 1”. 국민일보. 2009년 9월 24일에 확인함. 
  7. “초인플레이션 짐바브웨, 돈 없애고 안정”. KBS. 2009년 9월 24일에 확인함. 
  8. 헤럴드경제-뉴스
  9. 《세계기도정보》/패트릭 존스턴 저/죠이 선교회 옮김/죠이선교회

바깥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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