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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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총인구
2백만 명
언어
한국어, 중국어
종교
유교, 불교, 기독교, 무교
민족계통
근연민족 한민족 중국동포

조선족(중국어 간체자: 朝鲜族, 정체자: 朝鮮族, 병음: Cháoxiǎnzú, 영어: Korean Chinese, Chinese people of Korean descent)은 중화인민공화국에 거주하는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의 한민족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의 민족 분류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의 56개 민족 가운데 하나인 조선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법무부출입국 외국인 정책본부가 작성하는 통계 자료에서는 ‘한국계 중국인’(韓國系中國人)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남북을 통틀어 민족 이름으로서의 ‘한민족’(韓民族)이라는 표현은 잘 사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한민족’ 전체를 일컫는 용어로 ‘조선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의 조선족 인구는 한족을 제외한 소수 민족 가운데 13번째로 많으며 주로 중화인민공화국 둥베이(東北) 3성(省), 특히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다. 최근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조선족 인구가 분산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조선족들이 중화인민공화국의 급속한 경제 성장에 따라 취업 등을 이유로 베이징상하이, 칭다오 등과 같은 중화인민공화국 전역의 대도시로 이주하고 있기 때문이다.[1]

역사

한반도중국 대륙의 교류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어 기원전 24세기 경에 이미 만주 지방에는 한국인의 조상이 되는 민족들이 살고 있었다. 기원전 10세기 무렵에는 한민족의 조상인 예맥족고조선을 건국 하였고, 기원전 2세기 무렵에는 한민족의 하나인 부여(예맥)족이 부여를 건국했으며 기원전 37년에는 부여 출신 주몽고구려를 건국하였다. 고구려가 나당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자 고구려 유민 일부는 말갈족과 연합하여 발해를 건국하였다. 발해는 한반도 북부와 만주 지방, 연해주 지방 등지를 통치하였다. 발해가 멸망한 이후 고구려계 발해 유민의 일부는 고려로 귀의했지만 나머지는 만주를 지배했던 북방민족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된다.

17세기 초반부터 조선인이 현재의 랴오닝 성에 정착했다는 설이 있으며[2] 17세기 말부터 조선인의 일부가 중국 대륙 동북 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당시 청나라는 동북 지역을 조상들이 유래한 곳이라 하여 비워두었기 때문에 조선인들이 이주하기 쉬운 여건에 있었다. 이들은 화전 등으로 밭을 일구거나 인삼 등을 채집하였다. 1869년에는 한반도 북부에 대규모 기근이 발생하자 많은 조선인들이 건너오게 되었고 이로 인해 청나라조선 사이에 국경 분쟁이 자주 발생하기도 하였다. 조선에서는 두만강 건너편의 조선인 거주지를 간도라고 불렀으며 압록강 건너편의 조선인 거주지를 서간도라 불렀다. 조선인들이 청나라 영토로 유입하는 현상은 1885년 청나라 정부가 조선인의 만주 이민 금지령을 철폐하면서 크게 증가하게 된다.

1910년 대한 제국일본 제국강제 합병당하자 일제의 토지 수탈로 토지를 잃은 조선 농민, 일제의 탄압으로 조선 내에서 독립 운동을 일으키기 어려워진 사람들 등 다채로운 계층의 주민들이 만주로 이주하였다. 1931년 7월 2일에는 만주 길림 성 장춘 현 삼성포(중국어: 三姓堡 싼싱바오[*])에서 만보산 사건이 발생하였고 같은 해 7월 15일에는 김이삼 기자가 길림 우마황 동아여관에서 피살당했다. 1932년에는 일본오족협화(만주족, 일본인, 한족, 몽골족, 한국인)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세운 괴뢰국인 만주국을 세우자 일본의 이민 정책으로 만주국으로 이주하는 조선인이 또한 급증하였다. 이 시기에는 간도 지역 뿐 아니라 만주 전역에 다양한 직업의 조선인이 흩어졌으며 만주국 내에 거주하던 한국인 인구가 3백만이 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조선족은 근현대사에서 통상적인 한국 입장에서의 독립운동 활동과 또한 국공합작에서의 모택동 휘하 군대로 중화인민공화국의 중국 장악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지고 중국 공산당1952년민족구역자치실시요강을 발표한다. 이와 함께 조선족의 군사적 기여에 의한 공적으로 길림성 동부에 연변 조선민족 자치구가 생겨났고, 53년 종전과 함께 용도가 없어진 조선족은 1955년에는 연변 조선민족 자치구에서 자치주로 격하되었다. 이 때부터 조선족 출신 인사가 자치주 주장(州長)으로 취임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의 문화 대혁명 당시 마오쩌둥의 조카 마오위안신은 연변에 건너 오면서 민족 분쟁을 일으켰고 이로 인해 수많은 희생자를 만들었다. 특히 마오위안신은 홍색조반혁명위원회8·27 홍색반란단, 홍기전투연군, 노동자혁명위원회라는 홍위병 단체를 조직하여 민족주의 성향을 가진 조선족을 탄압하였다. 당시 인명피해자는 수천 명에 달했다고 한다.[3]

2010년 9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조선족을 창지투 지구 개방 선도구 개발 사업의 핵심 역할로 주목하기도 했다.[4]

연변 조선족 자치주 건립 60주년 기념에 맞춰 100권 분량의 《조선족사료전집》을 출판한다.[5]

분포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에 거주하는 조선족은 2백만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이는 한국계 미국인을 포함한 재미한국인의 수에 필적하며 한반도 이외의 최대의 한민족 집단이라 할 수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조선족 인구 분포는 동북 지방(만주)에 집중되어 있는데, 길림성에는 약 120만 명, 길림성 동부의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는 약 80만 명이 집중되어 있다. 그 외에 흑룡강성{하얼빈(哈爾濱) 포함}에는 약 45만 명, 요녕성{심양(瀋陽) 포함}에는 약 25만 명, 내몽골 자치구에는 약 2천 명의 조선족이 거주하고 있으며 베이징(北京)과 톈진(天津), 상하이(上海)와 칭다오(靑島), 광저우(廣州), 선전(深圳) 등의 대도시에도 거주한다. 각지의 조선족 거주지에는 행정적으로 조선족 자치현과 여러 조선족 마을(향, 진)이 설치되어 있다. 이들 동북 삼성의 중심 도시에는 조선족의 학교와 방송국, 신문사, 출판사 등이 있으며, 이들 기관은 중화인민공화국에 한국어를 보급하고 있다.

1992년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 양국의 국교 수립 이후 한국인과 결혼하거나 대한민국으로 이민을 가는 등, 대한민국으로 귀화하는 조선족동포들이 늘어나는 반면에 중화인민공화국의 조선족 인구는 줄어들고 있다. 1992년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 양국의 국교 수립 이후 조선족동포와 한국인의 접촉 횟수가 증가하고 있으며 조선족의 대한민국 진출과 한국인의 조선족 지역 진출도 증가하고 있다. 대한민국 행정안전부의 통계에 따르면 2011년 현재 약 50만 명의 조선족이 대한민국에 살고 있으며, 대한민국으로 귀화한 이는 2만 6천 650명이다. 조선족의 30%를 웃도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다녀왔다고 추정하기도 한다.[6]

문화

조선족의 언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사용하는 언어인 문화어를 기준으로 삼으며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의 국가정책에 따라 개편된 중국조선말을 교육받는다.중화인민공화국의 경제 발전과 도시화로 인해 중국사회와의 교류가 커지면서 중국어를 쓰는 사람이 늘고 있는편이다. 또한 조선족 출신이더라도 일찍부터 한족애들과 어울리거나 한족학교에 다니는등 조선족 커뮤니티에서 떨어져 생활하게 되면서 따라 조선어구사로서의 의사소통이 충분하지 못한 경우가 있다. 조선족의 출신지는 한반도 북부 지역인 평안도함경도가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중국동북3성 각곳에서 집성촌을 이루어 지역방언을 보존하고 있다.

  • 동북방언(함경도)지역:길림성 연변지구,흑룡강성 동북부,동남부, 두만강연안지구동북6진방언
  • 서북방언(평안도)지역:요녕성 다수지역(심양-안산-무순-본계),요녕성과 접한 길림성 남부지역
  • 동남방언(경상도)지역:요녕성 중부(심양),연변지구를 포함한 길림성 일부,흑룡강성 서북부,서남부
  • 서남방언(전라도)지역:요녕성 중부(심양-안산)교차적분포,연변 왕청현
  • 중부방언(경기도 충청도등)지역:길림성 유하현,연변 도문시,기타지역교차적분포

조선족은 중국이라는 국가체제하에서 '정체성' 교육을 받기 때문에 한국인과 종종 마찰을 빚고 있는 경우가 있다.[7]하지만 중국사회내에서 조선족은 조선민족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민족언어로 민족교육(초등학교-중학교-고등중학교)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조선족은 의복과 음식 문화도 한민족의 풍습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전통명절인 설날,정월 대보름,단오,추석을 쇠는 습관,큰 명절에는 제사하는 습관, 한복을 입는 습관, 김치, 된장을 담그는 습관, 불고기, 개고기 등을 여름 보양식으로 먹는 습관 등이 있다.

종교나 신앙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지만 조선 말기에 건너왔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조선의 유교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 각종 의례 등을 통해 이를 간직해 오고 있으며 불교토속신앙이 결합된 신앙도 믿고 있다. 최근에는 대한민국미국과의 접촉을 통해 로마 가톨릭교회기독교 신앙을 믿는 사람도 등장하고 있다.

명칭에 대한 혼란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조선족이라는 말뜻은 '한족(韓族)'의 북한어이다.한국에서 우리 민족을 한민족이라고 표현하지만 조선에서는 조선족이라고 한다.중국내 우리 민족들은 북과 같이 조선족이라고 한다.중국당국의 지시대로 중국내 동포들은 조선을 따라 모든것을 같게 하였다.민족명칭까지 조선을 따르게 되어 조선족이라고 부른다.이 문제에 대하여 말하려면 우선 사전의 해석으로부터 보아야 한다.

조선사전의 해석
인종상으로나 민족상으로 본 조선사람. 또는 조선사람으로 이루어진 인종이나 민족.
중국사전의 해석
중국 현대한어규범사전2010년5월 제2판 1. 조선반도의 주체 민족, 2. 중국내 소수민족의 하나.
한국사전의 해석
1. 중국에 사는 우리 겨레.
2. ‘한족(韓族)’의 북한어.

그리고 한족에 대한 해석을 보면 한족 = 한민족(韓族= 韓民族)이라 하였고 한민족이란 “한반도와 그에 딸린 섬에서 예로부터 살아온, 우리 나라의 중심이 되는 민족. 한국어를 쓰며 한반도와 남만주에 모여 살고 있다.”라고 하였다. 중국에서 우리 겨레에 대한‘조선족’이란 명칭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창건 되여 중국사람들에 대하여 민족을 획분할 때 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인(한국에서는 한인이라고 함)들을 ‘조선족’로 명칭 하였다. ‘조선족’이란 명칭은 현대한어규범사전이나 당대한어사전, 그리고 조선말대사전의 해석을 보면 중국 국적을 가진 우리 겨레들만 지칭한것이 아니라 지구촌의 모든 우리 겨레를 다 지칭한다는것을 알수 있다. 조선과 중국 사람들은 지구촌의 모든 우리 겨레들을 다‘조선족’이라고 부르며 중국 국적을 가진 우리 겨레들은 전체 조선족(한민족)이란 대 가족의 일원에 속한다. 한국어사전에는 중국에 사는 우리 겨레만 조선족이라 하였기에 한국인들이 중국에 사는 우리 겨레들을 지칭할 때에 ‘중국’이란 규정어가 없이 ‘조선족’이라 하여도 무방하겠지만 한국에서 ‘조선족’하면 곧 바로 중국 국적의 우리 겨레라는 뜻으로 표현하면서 한국과 동떨어진감을 주고 있다.

'조선족'은지구촌의 모든 우리 겨레를 다 지칭한다는것을 알수 있다. 예를 들면 중국인터넷 백과사전에서 박근혜대통령의 민족신분은 조선족으로 표기된다.한국에서 조선시대에는 우리 민족을 조선족이라고 하였다.현재 쓰고있는 조선족이란 말은 중국에서 들어온 외래어이다. 하지만, 재일 교포, 재미 교포에 대한 선망이 아직도 남아있는 한국 문화에서는 재중 교포를 존중하는 표현으로, '조선족'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한국 사회에서 그들을 비하하는 뜻이 있는데도 계속 '조선족'이라는 명칭이 사용되는 것은 문제점이 있다.

같이 보기

주석

  1. 854,000명, 2000년 조사.
  2. 박종국. “中서 400년 혈통 지켜온 '번시 朴씨'. 연합뉴스. 2010년 9월 22일에 확인함. 
  3. 황희경, 문화대혁명 시기 조선족에게는 무슨 일이, 연합뉴스
  4. 박종국. “中 "창지투 건설, 조선족이 핵심 역할". 연합뉴스. 2010년 9월 16일에 확인함. 
  5. 박종국. “中 100권분량 '조선족사료전집' 출판추진”. 연합뉴스. 2010년 12월 8일에 확인함. 
  6. 류연산, 조선어의 현주소와 미래지향에 대한 고찰
  7. "중국동포 차별로 고국관 변화"<中동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