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대프랑스 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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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군의 승리로 끝난 발미 전투

제1차 대프랑스 동맹(First Coalition, 1793년 - 1797년)은 프랑스 혁명에 위협을 느낀 유럽 각국이 프랑스에 대항하기 위해 결성한 대프랑스 동맹이다.

개요

1793년 1월 21일 루이 16세의 처형은 유럽의 각 왕국에 위기감을 안겨 줬다. 프랑스 혁명 정권이 왕정을 부정하게 된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혁명 사상이 자국에 파급될까 두려워한 여러 왕국은 동맹을 맺어 프랑스 혁명 정부를 타도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제1차 대프랑스 동맹에 참가한 국가는 다음과 같다.

동맹군은 지중해에서 프랑스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공화국라인 강에서 공격했고, 영국은 해상 봉쇄를 시작하여 프랑스 해군의 거점인 툴롱 항을 포위했다. 프랑스는 1793년 3월 18일네르빈덴 전투〉의 패배 후 이어진 뒤무리에의 투항으로 대외적으로 열세에 놓이게 되었다. 또한 국내에서도 서부 방데 지역과 남동부 리옹 등에서 왕당파의 선동에 의한 반란이 일어났고, 툴롱 항에서도 도시 내의 왕당파가 영국과 스페인 함대를 입항시키는 등 내우외환을 안고 있었다. 같은 해 4월 6일, 혁명 정권은 공안위원회를 조직하여 내부의 긴축을 도모함과 동시에 8월 23일, 징병제를 시행하여 상실한 병력의 복구를 시도했다.

1793년 말부터 프랑스는 반격에 나서 국내에 침공했던 동맹군을 모두 국외로 쫓아냈다. 같은 해 12월 19일, 나폴레옹은 툴롱 탈환에 중요한 역할을 하여 명성을 높였다. 이후에도 프랑스의 공세를 계속하여, 1795년 4월 6일에 프로이센과 《바젤 조약》을 체결하고 라인란트를 얻었다. 같은 해 5월 남부 네덜란드에 위성국인 바타비아 공화국을 건국했다. 스페인도 《제2차 바젤 조약》으로 프랑스와 휴전했다. 1795년 10월 26일, 프랑스국민 공회가 해산되고 총재정부가 성립되면서 프랑스군은 독일과, 북부 이탈리아의 정복에 착수했다.

1796년 3월, 이탈리아 원정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던 나폴레옹은 이탈리아 원정을 시작하여 각 방면에서 동맹군을 격파하고 1797년 4월 7일, 《레오벤 조약》으로 오스트리아와 임시휴전하고 1797년 10월 17일캄포포르미오 조약》의 체결로 완전 휴전하면서 많은 영토를 할양받았다. 이것으로 제1차 대프랑스 동맹은 붕괴되었고, 영국만이 전쟁을 계속하게 되었다.

같이 보기

주석

  1. 김용구. 《세계외교사》, 1995(上 · 下 合本), 서울대학교 출판부, 4쪽. ISBN 89-7096-413-4 "그리하여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對프랑스연합전선을 결성하게 되었다.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바덴(Baden), 뷔르템베르크(Würtemberg), 바바리아(Bavaria), 포르투갈, 피에드몬트(Piedmont), 敎皇領(Papal States) 그리고 나폴리왕국 등이 연합전선에 참여하였고, 러시아는 프랑스와의 무역을 단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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