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특별자치도지사
전라북도지사(全羅北道知事)는 전라북도의 행정 사무를 총괄하는 광역자치단체장이다.
역대 도지사
정부수립 이전 도지사
선출 방식 | 대수 | 이름 | 임기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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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선 | 초대 | 갤로글 (R. F. Galloghy) |
1945년 9월 2일 ~ 1945년 10월 11일 | 미 육군 중령 |
2대 | 가포불지 | 1945년 10월 12일 ~ 1945년 12월 19일 | 미 육군 중령 | |
3대 | 갤로글 (R. F. Galloghy) |
1945년 12월 20일[1] ~ ? | ||
4대 | 윌리엄 | ~ | 미육군 중령[2] | |
5대 | 에거 | ~ 1946년 4월 3일 | 미육군 중령[2] | |
6대 | 정일사(鄭一史) | 1946년 4월 4일 ~ 1947년 6월 28일 | ||
7대 | 박종만(朴鍾萬) | 1947년 6월 29일 ~ 1947년 7월 8일 | ||
8대 | 1947년 7월 9일 ~ 1948년 9월 9일 |
정부수립 이후 도지사
선출 방식 | 대수 | 이름 | 임기 | 도정구호 | 도정방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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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선 | 초대 | 신현돈(申鉉燉)[3] | 1948년 9월 10일 ~ 1949년 8월 16일 | ||
2대 | 장현식(張賢植) | 1949년 8월 17일 ~ 1949년 12월 14일 | |||
3대 | 김가전(金可田) | 1949년 12월 15일 ~ 1951년 10월 5일 | |||
4대 | 이성득(李聖得) | 1951년 10월 29일 ~ 1952년 9월 16일 | |||
5대 | 이요한(李要漢) | 1952년 9월 17일 ~ 1955년 9월 1일 | 모범 농촌의 육성과 완성, 농촌의 분업별 채택으로 상부상조 기풍 앙양, 허례 허식의 관혼상제 간소화 | ||
6대 | 신용우(申鏞宇) | 1955년 9월 2일 ~ 1956년 9월 23일 | 기강쇄신, 농촌부흥, 문화행정 | ||
7대 | 김규진(金圭鎭) | 1956년 9월 24일 ~ 1957년 3월 10일 | 행정력의 강화, 농촌 부흥, 교육과 복지의 향상, 지방 재정의 개선 | ||
8대 | 이하영(李夏榮) | 1957년 3월 11일 ~ 1959년 5월 12일 | 민주 행정의 구현, 농촌의 부흥, 교육의 진흥 | ||
9대 | 박정근(朴定根) | 1959년 5월 13일 ~ 1960년 5월 11일 | 도민의 복지 증진과 품위 향상, 농축산 전북의 재건 도정 시책의 침투와 이도쇄신, 완벽한 선거관리 | ||
10대 | 이기세(李琦世) | 1960년 5월 12일 ~ 1960년 6월 26일 | |||
11대 | 임춘성(林春城) | 1960년 6월 27일 ~ 1960년 10월 6일 | |||
12대 | 이용택(李龍澤) | 1960년 10월 17일 ~ 1960년 12월 28일 | |||
민선 | 13대 | 김상술(金相戌) | 1960년 12월 29일 ~ 1961년 5월 23일 | 지역사회의 경제문화, 지방자치의 새터전 마련, 적재적소의 인사, 도민의 부담경감 교육의 혁신과 장학제도의 확립, 도민의 자유와 권리보호, 군산 화력발전소·섬진강댐·군산코스코 저유소의 건설 | |
관선 | 14대 | 이존일(李存一) | 1961년 5월 24일 ~ 1961년 8월 24일 | ||
15대 | 김인(金仁) | 1961년 8월 25일 ~ 1963년 12월 16일 | 행정의 능률화, 관기 확립, 산업의 진흥 명랑한 사회건설, 강력한 국민운동의 전개 | ||
16대 | 이정우(李正雨) | 1963년 12월 19일 ~ 1968년 2월 21일 | 인화단결, 신의성실, 산업의 진흥 사회복지의 진흥, 문화체육의 향상, 사회질서의 확립 | ||
17대 | 이환의(李桓儀) | 1968년 2월 22일 ~ 1971년 6월 12일 |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도민의 상 정립, 소득증대의 신앙적 생활화 행정쇄신과 새로운 기풍의 진작, 농공병진의 구현을 위한 거점 형성, 지역방위와 병행하는 개발의 촉진 | ||
18대 | 이춘성(李春城) | 1971년 6월 22일 ~ 1973년 10월 22일 | |||
19대 | 황인성(黃寅性) | 1973년 10월 23일 ~ 1978년 12월 25일 | |||
20대 | 김학중(金學中) | 1978년 12월 26일 ~ 1980년 7월 17일 | 풍요로운 전북건설 | 봉사하는 행정, 내실있는 소득, 균형있는 개발 | |
21대 | 조철권(趙喆權) | 1980년 7월 18일 ~ 1983년 10월 14일 | 살기좋은 전북건설 | 화합으로 사회안정, 창의로 소득증대, 의지로 지역개발 | |
22대 | 심재홍(沈裁弘) | 1983년 10월 15일 ~ 1986년 8월 28일 | 약진하는 새 전북 | 화합안정과 질서의 봉착, 헌신 봉사행정의 구현, 새마을운동의 내실발전, 도민생활과 복지의 향상 고소득 복지농촌의 건설, 상공진흥과 지역경제의 활성화, 지역균형개발의 촉진, 관광 문예의 진흥, 사회안정과 도민생활보호 | |
23대 | 홍석표(洪錫杓) | 1986년 8월 29일 ~ 1988년 5월 19일 | 300만의 전진 대전북 건설 | 위민봉사의 실천, 지역안정의 정착 농공병진의 촉진, 향토문화의 창달, 도민기상의 진작 | |
24대 | 강현욱(姜賢旭) | 1988년 5월 20일 ~ 1990년 6월 20일 | 서해안 시대의 새전북 건설 | 공직자 내부결속과 민주봉사 행정구현, 확고한 지역안정과 법질서 확립, 도민화합과 지방자치 역량의 확충 농어촌 소득증대와 주민복지 증진, 서해안시대 지역개발의 본격추진, 향토문화예술진흥과 관광개발 | |
25대 | 최용복(崔鎔福) | 1990년 6월 21일 ~ 1992년 4월 21일 | 살기좋고 활기찬 새전북 건설 | 지방자치의 성공적 실시, 새질서·새생활 실천정착, 사회안정의 공고화, 도민본위의 봉사행정 실천, 도민복지 향상 농어촌 활력화, 지역개발과 공업화 촉진, 향토문예·관광의 진흥, 완벽한 제72회 전국체전 개최 | |
26대 | 강상원(姜相源) | 1992년 4월 22일 ~ 1993년 3월 3일 | 밝은 미래 활기찬 대전북 | 함께하는 화합행정, 고루하는 복지실현 의욕적인 균형개발, 활력있는 경제발전, 격조높은 문화진흥 | |
27대 | 이강년(李康秊) | 1993년 3월 4일 ~ 1994년 9월 23일 | 새시대 다함께 새전북 창조 | 바른 행정, 참된 봉사, 힘찬 개발, 값진 문화 | |
28대 | 조남조(趙南照) | 1994년 9월 24일 ~ 1995년 6월 30일 | 화합으로 새전북 건설 | 도민 본위 행정, 자치 역량 제고, 경영 행정 구현 | |
민선 | 29대 | 유종근(柳宗根) | 1995년 7월 1일 ~ 1998년 6월 30일 | 세계로 뻗어가는 전북건설 | 도민이 참여하는 민주행정, 세계로 뛰는 경제행정 고루 잘 사는 복지행정, 삶의 질을 높이는 문화행정 |
30대 | 1998년 7월 1일 ~ 2002년 6월 30일 | ||||
31대 | 강현욱(姜賢旭) | 2002년 7월 1일 ~ 2006년 6월 30일 | 강한전북 일등도민 | ||
32대 | 김완주(金完柱) | 2006년 7월 1일 ~ 2010년 6월 30일 | 하나되어 전북을 바꿉시다 | ||
33대 | 2010년 7월 1일 ~ 2014년 6월 30일 | ||||
34대 | 송하진(宋河珍) | 2014년 7월 1일 ~ | 한국 속의 한국, 생동하는 전라북도 |
같이 보기
주석
- ↑ 전주문화재단, 《전주 근대생활 조명, 100년(1907-2006):전주의 8.15 해방과 6.25 전쟁 격동시대 구술 실록, 1945~1960 (전주문화재단, 2008) 17페이지
- ↑ 가 나 전주문화재단, 《전주 근대생활 조명, 100년(1907-2006):전주의 8.15 해방과 6.25 전쟁 격동시대 구술 실록, 1945~1960 (전주문화재단, 2008) 19페이지
- ↑ 초대 전북지사 신현돈 《새전북신문》 2009년 9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