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국민회의
인도 국민 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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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칭 | INC (영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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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색 | 아쿠아색 | ||
이념 | 자유민족주의 사회민주주의 진보주의 | ||
스펙트럼 | 중도좌익 | ||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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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당 | 1885년 | ||
내부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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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당사 | 뉴델리 | ||
청년조직 | 인도 청년 회의 | ||
외부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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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조직 | 민주주의자 연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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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국민 회의(Indian National Congress)는 1885년에 설립된 정치 단체이다. 인도 정부의 내무장관이던 영국인 흄이, 1876년에 인도 협회를 결성하고 있었던 바널지 등과 더불어 만든 것으로, 영국의 인도 통치를 개선하려는 목적으로 결성된 단체였다. 그러나, 1905년에 영국이 벵골분할령을 내리면서 반영 단체를 주도하게 되었고 이후 인도 근대화 및 민족 운동을 전개한 단체로 발전해 나갔다.
개요
지식인·지주·상인·고리대금업자 등으로 구성된 정치 단체로서 영국과 인도 간의 관계를 긴밀하게 하고 영국의 인도 통치에 협력하기 위한 조직으로 출발하였다. 영국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이면서 불공정하고 유해한 부분에 대해서는 개혁을 요구하는 포지션이었고, 영국이 인도를 통치하는 데 있어서의 편의를 도모하고 반영 운동을 무마하려고 애썼다.
이런 친영 단체가 반영 운동을 주도하고, 민족 운동을 지도하게 된 것은 20세기에 접어든 뒤부터이다. 1905년에 영국이 인도에서 반영 여론이 높은 벵골 지방을 동·서로 분열하는 벵골분할령을 내렸는데, 벵골분할령은 영국이 인도 통치의 수단으로 사용한 정책으로서 반영 기운이 높은 벵골을 힌두 교도가 많은 서 벵골과 이슬람 교도가 많은 동 벵골로 분단함으로써 민족적 통합을 분열시키고자 하였던 법이다. 이에 인도 국민 회의는 영국의 기만적 행동에 반기를 들어 반영 운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인도 국민 회의는 영국 상품을 배척하였고, 완전 자치를 표방하는 '스와라지' 운동과 인도 국산품 애용하자는 구호로 '스와데시' 운동 등을 주도해 나갔으며, 국민·민족 교육 등을 주장하면서 민족의 일체감을 높였고, 국내 산업의 발전을 유도하는 등에 기여를 했다. 이같은 인도 국민 회의의 활약으로 영국은 1911년에 벵골분할령을 철회하였다.
인도 국민 회의는 오늘 날에도 존재하는 인도의 정치 정당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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