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 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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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 드니즈 퀴리 라부이스(프랑스어: Ève Denise Curie Labouisse, 1904년 12월 6일 ~ 2007년 10월 22일), 영어식으로 이브 퀴리(영어: Eve Curie 이브 큐리[*])는 프랑스미국의 국적을 가진 작가, 언론인, 피아노 연주자이다. 물리학자 피에르 퀴리마리 퀴리의 딸이자, 이렌 졸리오퀴리의 동생이다.

생애

16세 때의 이브 퀴리(1921년)

1904년 12월 6일, 프랑스 파리에서 물리학자인 피에르 퀴리마리 퀴리 부부의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6살 때 어머니 마리, 언니 이렌과 함께 올림픽 호를 타고 미국을 여행하였고, 1926년 언니 이렌이 결혼한 후에는 어머니 곁에 남아 1934년 어머니가 사망할 때까지 돌보았다.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면서 자신이 과학에 흥미가 없음을 발견한 이브는 1935년 어머니의 모국인 폴란드를 방문하여 어머니의 어린 시절의 자취를 확인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1937년 어머니의 전기인 "퀴리 부인"(프랑스어: Madame Curie)을 출간하였다. 이 책은 1943년 미국 메트로-골드윈-메이어 영화사에 의하여 시나리오로 각색되기도 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리비아와 러시아, 미얀마, 중국 등지에서 전쟁 특파원으로 활약하였으며, 샤를 드골이 주도한 대독(對獨) 프랑스 해방운동(FFL)에 적극 가담하기도 했다.

1944년부터 1949년까지 이브는 일간지 파리 프레스(프랑스어: Paris-Presse)의 부발행인으로 활동하였으며, 국제 정치에도 관심을 가져 북대서양 조약 기구 사무총장 특별 보좌관, 아동 구호 활동가 등으로도 활약하였다.

국제 기구 활동을 통하여 만난 미국 외교관 헨리 리처드슨 라부이스 주니어(Henry Richardson Labouisse, Jr.)와 1954년 11월 19일 결혼하였으며, 1958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여 죽을 때까지 프랑스미국의 이중 국적을 유지하였다. 1965년 남편 헨리 라부이스 퀴리는 유니세프 대표로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1987년 남편이 사망한 후, 이브는 뉴욕 시 맨해튼 구에 기거하였다. 이브는 헨리 라부이스와의 사이에 자녀가 없었기에 헨리가 전 부인 사이에서 얻은 딸 앤 페레츠가 이브를 돌보았다. 2005년에는 유니세프 활동 공로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받았다. 2007년 10월 22일, 이브는 뉴욕 맨해튼의 서튼 플레이스에 자리잡은 자신의 자택에서 향년 102세로 세상을 떠났다.

참고 자료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