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콘트라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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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건 대통령 (중앙)이 백악관 캐비닛 룸에서 타워 커미션 보고서를 받고 있다. 존 타워는 왼쪽, 에드먼드 머스키가 오른쪽. 1987년에 찍음

이란-콘트라 사건(페르시아어: ماجرای مک‌فارلین, 스페인어: caso Irán-contras, 영어: Iran–Contra affair)은 1987년 미국의 레이건 정부가 스스로 적성 국가라 부르던 이란에 대해 무기를 불법적으로 판매하고 그 이익으로 니카라과산디니스타 정부에 대한 반군콘트라 반군을 지원한 정치 스캔들이다.[1] 스캔들에 관련된 많은 문서가 레이건 정부에 의해 폐기되었거나 비밀에 붙여졌다. 많은 사건이 아직 비밀에 싸여 있다. 무기 판매는 1986년 11월에 이루어졌다고 알려져 있으며,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국영 텔레비전과의 인터뷰에서 이를 부인하였다.[2] 1주일 후인 11월 13일 로널드 레이건은 방송에서 무기이란으로 수송되었음을 인정했지만 여전히 인질 교환의 댓가라는 점은 부인하였다.[3]

사건 개요

이란-콘트라 스캔들은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두 사건이 연결되어 있다. 하나는 이란에 대한 무기의 판매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콘트라 반군에 대한 지원이다. 니카라과의 콘트라 반군에 대한 지원은 볼랜드 수정법안에 의해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이란-콘트라 스캔들은 미국이 헤즈볼라에 의해 납치된 인질의 석방 댓가로 이란에 무기를 공급했다고 한 레바논 신문이 보도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사실은 당시 미 해병대 장교였던 올리버 노스가 당시 미국 국가 안전 자문위원이었던 존 포인덱스터에게 이메일을 보낸 내용이 확인되면서 정치 스캔들이 되었다.[4]

주미 이스라엘 대사는 미국의 이란에 대한 무기 판매에 대해 해명을 요구하였고 콘트라 반군에 대한 지원금 중 일부가 마약 매매에 쓰였음이 드러났다.

경과

인질 사건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기까지 중동에서는 1979년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미국 대사관 직원 52명이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하는 등 인질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1983년 이라크의 무장 정치 조직인 알다와는 헤즈볼라와 연계하여 쿠웨이트에서 미국인 6명을 포함한 외국인 30명을 인질로 납치한다. 미국은 이란이 헤즈볼라에 영향력을 발휘하여 인질이 석방되게 하는 조건으로 무기 판매를 제안한다.

당시 이란은 이라크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무기가 필요했다. 한편에서는 미국이 이란-이라크 전쟁이 어느 일방의 승리로 끝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이란에 무기를 제공하였다는 주장이 있다.[5]

콘트라 반군

당시 니카라과우파 무장 게릴라인 콘트라 반군좌파산디니스타정권에 대항에 내전을 벌이고 있었고,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의 올리버 노스는 콘트라 반군에 대한 재정적인 지원을 하고 있었다.

콘트라 반군마약 밀매에 관여하고 있었는데,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당시 중앙 아메리카에서는 레이건이 "중앙 아메리카의 구원"이나 "이 지역에 대한 민주 정부의 육성과 자유시장체제의 구축"을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과격 "반공주의자"로서 인권에 대해서는 눈감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지도자 다니엘 오르테가는 "레이건이 벌이는 니카라과에 대한 더러운 전쟁에 대해 신께서 용서하시기를 희망한다"는 말로 레이건 정부를 비난하였다.[6]

폭로

레바논의 신문사인 아쉬시라(Ash-Shiraa)는 1986년 11월 3일 인질교환을 조건으로한 무기 판매를 최초로 보도한다. 그 후 미국의 CIA 공작원이었던 유진 하센퍼스가 니카라과 상공에서 총기를 투하하는 작전 중에 니카라과 정부에 의해 체포되었다. 이란 정부는 아쉬시라의 보도를 인정하였고 결국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11월 13일 텔레비전과의 인터뷰에서 "전략의 일환일 뿐"이라면서도 이란에 대한 무기판매를 인정하였다.

이후 11월 21일 이란-콘트라 스캔들의 핵심에 있었던 올리버 노스가 사건의 전모를 인정하면서 레이건이 탄핵의 위기까지 몰리는 정치 스캔들로 확대되었다.

재판과 사면

미 의회는 특별검사로 로런스 월시를 임명하여 사건을 수사 하였으며, 1988년 존 포인덱스터, 올리버 노스등 핵심 인물을 기소했다. 그러나 포인덱스터와 노스의 묵비권 행사와 미 행정부의 정보 공개 거부 및 문서 파기 등 조직적인 은폐에 의해 사건의 본질을 파헤치는데 실패했다.

1992년 미국 대통령 조지 H. W. 부시는 관련자 모두를 사면하였으며 이에 대해 "부시 자신이 이란-­콘트라 스캔들에 깊숙이 관여했음을 자인한 꼴"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조지 H. W. 부시는 레이건 정부의 부통령이었다.

같이 보기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