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야마 이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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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야마 이와오
출생지 일본 사쓰마 번
사망지 일본 제국
복무 일본제국 육군
복무기간 1871년 ~ 1914년
최종계급 원수
주요 참전 러일 전쟁
세이난 전쟁
청일 전쟁
러일 전쟁
기타 이력 제16대 일본 내각총리대신

오야마 이와오(大山 巌, おおやま いわお 1842년 10월 10일 ~ 1916년 12월 10일) 은 일본 메이지 시대의 정치가, 군인이다. 그는 메이지 유신에 참여하였으며, 러일 전쟁에서 일본 육군을 지휘하였다.

사쓰마 번(현재의 가고시마 현)에서 태어나서,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와 함께 도쿠가와 막부 타도운동을 벌여 메이지 유신의 주요 공신이 되었다. 이후에도 새롭게 창건된 육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당시 대위였던 그는 기미가요의 가사를 일본 국가로 채택했다.

1870년 프랑스에 유학하였고, 이때 보불전쟁을 참관하였다. 그 이후 제네바에서 3년간 공부하면서, 여러 서양 언어와 러시아어에 유창하게 되었다. 이후 육군의 서양화에 힘썼다. 세이난 전쟁이 발발하여, 그의 친척이기도 한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가 사쓰마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그는 이를 진압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청일 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제2군의 참모장이 되어 랴오둥 반도에 상륙했고, 뤼순을 함락시키고 계속 남하하여 웨이하이를 점령하였다. 이때의 공적으로 그는 후작 작위를 받았고, 군대에서는 원수로 승진하였다.

러일 전쟁 당시에는 일본 육군 총사령관으로 만주에서 싸웠고, 일본의 승리 후 공작 작위를 받았다.

이후 정계에 발을 들여놓기도 했으나, 정치적 야심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총리 후보에 오르는 것은 사양하였다.

그는 천황의 보좌격인 내대신을 맡았으나, 육군 연습을 참관한 뒤 돌아오다 당뇨병에 의한 합병증으로 쓰러졌다. 그 후, 요양 중 75세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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