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본토 항공전
영국 본토 항공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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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의 일부 | |||||||
폭격당한 후의 런던 시가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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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영국 공군 참여국 |
나치 독일 이탈리아 왕국 | ||||||
지휘관 | |||||||
휴 다우딩 키스 파크 트래포드 리멜로리 C. J. 퀸틴 브랜드 리처드 솔 |
헤르만 괴링 알베르트 케셀링 후고 슈페를레 한스위르겐 슈툼프 리노 코르소 푸기에르 | ||||||
병력 | |||||||
단좌식 전투기 754대 복좌식 전투기 149대 폭격기 560대 기타기종 500대 합계 : 1963대 (초기엔 700대에 불과했으나 전쟁 중 생산을 증가했다) |
단좌식 전투기 1,107대 복좌식 전투기 357대 폭격기 1,380대 급강하 폭격기 418대 정찰기 569대 기타기종 233대 합계:4,074대 |
영국 본토 항공전(Battle of Britain)은 독일 공군이 해상 공격과 공수 부대 투입으로 요약되는 바다사자 작전을 위해 영국의 제공권을 장악하고자 벌인 작전으로, 제2차 세계 대전 초기에 일어난 가장 큰 전투 중 하나이다. 프랑스의 붕괴 이후 히틀러는 영국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바다사자 작전이라는 상륙 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괴링은 영국 공군(RAF)을 무찌르지 않는 한 이 상륙 작전은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이 항공전은 제공권 장악 외에 다른 목적도 있었다. 그것은 항공기 생산 시설과 지상 시설을 파괴하여 영국인들을 공포에 빠뜨려 휴전이나 항복을 받아낸다는 것이었다.
영국의 역사가들은 격렬한 주간 공습이 있었던 1940년 7월 9일부터 10월 31일까지를 전투 기간이라고 보지만, 독일의 역사가들은 1940년 중반부터 소련 침공을 위해 공습을 중단한 1941년 5월까지를 전투 기간이라고 보고 있다. 이 전투에서 나치 독일은 영국 국민을 오히려 더욱 단결시켰으며 항공 생산을 중단시키지도 못하였다. 그리고 캐나다가 막대한 자원으로 영국을 지원했다. 따라서 이 전투는 제3제국에게는 첫 번째 대패가 되었다.
영화
이 전투를 다룬 영화로, 배틀 오브 브리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