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소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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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카(Ashoka Maurya)는 인도 마가다 국 제3왕조인 마우리아 제국의 세 번째 임금으로 인도사상 최초의 통일국가를 이룬 왕이다(재위: 기원전 265년경 ~ 기원전 238년 혹은 기원전 273년경 ~ 기원전 232년).

찬드라굽타 마우리야의 손자이며, 인도에서 가장 위대한 황제의 하나이자 황제 중의 황제인 전륜성왕(samrāṭ Chakravartin)으로 인용된다. 아소카는 수많은 군사 정복뒤에 오늘날의 인도 대부분을 지배하였다. 아소카의 제국은 지금의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과 서쪽 페르시아 제국의 일부, 동쪽으로는 인도의 아삼 주 남쪽으로는 미소레 주까지 세력을 넓혔다.

그러나 전쟁의 비참함을 깊이 느껴 불교를 융성하게 하고 비폭력을 진흥하고 윤리에 의한 통치를 실현하고자 하였다. 곳곳에 절을 세우고 불교를 정리하였으며, 실론·타이·버마에까지 불교를 전파하기에 노력하였다. 총애하는 왕비를 잃고 고독과 번민 속에서 죽었으며, 아라한의 자리에 올랐다.

치세

아소카는 한자 문화권에서 아육왕(阿育王)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권좌에 있는 동안 불교 장려책을 강력하게 추진하여 인도 전역에 불교를 퍼트렸다. 동부 해안 칼링가국에 대한 피비린내 나는 정복전에서 승리한 이후 무력 정복을 포기하고 대신 비폭력과 사회 윤리에 기초를 둔 '다르마(dharma:올바른 삶의 원리, 法)에 의한 정복'이란 정책을 폈다. 아소카는 자신의 가르침과 사업을 널리 알리기 위해 구두 포고뿐만 아니라 마애(磨崖)와 돌기둥石柱에 그것을 새겨 적절한 곳에 세워두었다. 사르나트에서 발굴된 돌기둥 주두(柱頭)의 사자상은 현재 인도의 국장(國章)이 되었으며, 바위 조칙(詔勅), 석주 조칙이라고 불리는 이들 명문(銘文)은 대부분 아소카 치세 동안 일어난 여러 역사적 사건, 그의 사상과 활동이 서술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해 아소카의 삶과 업적을 알 수 있다.

그가 왕위에 오른 지 8년째 되던 해 인도의 남동부인 오리사 주 해안의 칼링가 지방을 정복했는데, 그 전쟁의 참혹한 참상을 반성하고 불교를 믿게 되었으며, 그후로는 무력에 의한 정복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모든 인간이 지켜야 할 윤리인 다르마(dharma: 法)에 의한 정치를 이상(理想)으로 삼고 이를 실현하는 데 힘을 쏟았다. 부모·어른에 대한 순종, 살생을 삼가는 등의 윤리를 백성들에게 장려하고, 지방관이나 신설된 관리에게 명령하여 백성들이 윤리를 철저히 지키도록 하였다.

또 도로·관개(灌漑) 등의 공공사업을 펼치는 등 많은 치적을 남겼다. 당시 인도에는 그에게 대항하는 세력이 없었고, 북서쪽 국경의 그리스 세력도 그들사이의 내분 때문에 다른 지방을 침략할 힘이 없었다. 이와 같은 정세에서 제반 생활양식이 다른 광대한 영토를 현실적으로 지배하기 위해서는 그가 취한 정책이 매우 현명했던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그 뒷면에는 원시불교의 영향이 있었다. 또 아소카의 정치이념은 인근 제국이나 민족에게까지 전파되어 그의 사절(使節)이 이집트·마케도니아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왕의 정책은 마우리아 제국과 함께 점차 쇠퇴하였으나, 그의 치세(治世) 중에는 불교를 비롯한 갠지스강 유역의 고도의 문화가 다른 지방에 급속히 퍼져 문화의 발달을 촉진시켰다.

종교 전파

스리랑카 불교에 미친 영향

스리랑카 불교는 기원전 3세기 데바남피야티샤왕이 집권하던 시절, 아소카 왕의 아들로 상좌부 불교의 장로인 마힌다가 아소카 왕의 명령으로 실론섬에 오면서 포교되었다. 데바남피야티샤왕은 바로 불교에 귀의하였으며, 아누라다에 마힌다 장로를 위한 큰 사원(大寺: Mahavihara)를 세웠다. 이것이 바로 훗날 대사파의 기원이 된다. 대사의 창건은 상좌부불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다. 현재의 남방상좌부 불교 모두가 마힌다의 대사 창건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1]

기독교에 미친 영향

유명한 역사학자이자 저술가인 윌듀란트(Will Durant)는 아소카 왕이 불교 선교사들을 인도의 모든 지역과 스리랑카, 시리아, 이집트, 그리스까지 보냈으며, 아마도 이들이 기독교 윤리학(ethics of Christ)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2]

미국의 역사학자 케네스 스콧 라두렛(Kenneth Scott Latourette)에 따르면 예수가 태어난 시기에 "불교는 이미 인도, 실론(스리랑카), 중앙 아시아, 중국에 널리 퍼져있었다."고 한다.[3]

기원전 270년무렵 인도에서는 아소카 왕이 집권했다. 집권 이후에 그는 불교로 개종하였으며, 선교사들을 전 세계에 파견해서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전파했다. 아소카 왕은 그의 포교활동이 서방 국가에게 우호적으로 수용되었다고 기록하였다.

일부 학자들은 예수가 불교의 영향을 받았으며, 토마스 복음서나그 함마디 텍스트(Nag Hammadi texts)는 이러한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믿는다.[4]

갤러리

주석

  1. 김영고 동국대 교수, 남방불교의 어제와 오늘 - 남방불교의 略史, 월간불광 2008년 3월호
  2. Will Durant, The Story of Civilization: Our Oriental Heritage, Part One (New York: Simon and Schuster, 1935), vol. 1, p. 449
  3. Latourette, Kenneth Scott (1975). A History of Christianity. p. 274
  4. 민희식, 법화경과 신약성서, 블루리본, 2007

관련 항목

  • 불교와 기독교 - 예수가 태어날 당시, 그 지역에는 아소카 왕이 전파한 불교가 퍼져 있었다고 한다.

바깥 고리

전 대
빈두사라
제3대 인도 마우리아 국왕
기원전 273년-기원전 232년
후 대
다사라타 마우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