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마 산장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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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마 산장 사건
아사마 산장 (2009년)
참가자연합 적군
일본 경찰청
장소일본 나가노현 가루이자와 정
날짜1972년 2월 19일 - 28일
사망자경찰관 2명
민간인 1명
부상자경찰관 26명
보도관계자 1명
결과연합 적군 조직원 5명 체포
인질 1명 구출

아사마 산장 사건(일본어: 浅間山荘事件, あさまさんそうじけん 아사마 산소 지켄[*])은 1972년 2월 19일 일본 나가노현 기타사쿠 군 가루이자와 정에 있는 가와이 악기 소유의 사원용 휴양 시설인 아사마 산장에서 일본 적군의 일부 세력인 연합 적군이 일으킨 사건을 말한다.

일본 연합 적군의 간부급 다섯 조직원인 사카구치 히로시(坂口弘), 반도 구니오(坂東國男), 요시노 마사쿠니(吉野雅邦), 가토 미치노리(加藤倫教), 가토 모토히사(加藤元久)와 나머지 10명의 조직원이 아사마 산장 관리인의 배우자를 인질로 하여 10일 간 산장에서 경찰과 대치하였는데 인질은 약 219시간 정도 감금되었다가 모두 무사히 풀려났으며, 일본에서 경찰과 대치 중에 일어난 인질 사건으로 인해 인질이 감금된 시간 기록에서는 가장 긴 기록으로 남아 있다.

당시 상황은 모두 텔레비전으로 중계되었다. 당일 일본 내 총 세대 시청률은 조사 개시 이래 최고의 수치를 기록하여 JST 오후 6시 26분 경에는 NHK와 기타 민방을 합쳐 간토 기준 89.7%를 기록하였다.[1] 같은 날 NHK의 특보 프로그램 (9시 40분부터 10시간 40분 동안 방송)은 평균 50.8%의 시청률을 기록하였다.

진압 후 일본 경찰이 아사마 산장을 조사하면서 아사마 산장을 점거했었던 연합 적군이 사상 단결을 구실로 29명의 적군파 대원중 12명을 구타를 포함한 잔학한 방법으로 살해한 것이 드러났으며, 이는 일본 전 국민들에게 매우 끔찍한 소식이었고, 전국에서 활동하던 적군파 대다수가 회의감을 느끼게 하여 일본 적군파가 해체되는 제일 큰 원인이 되었다.

각주

  1. 히키다 소야 (2004년), 《전기록 텔레비전 시청률 50년 전쟁-그 때 1억 명이 감동하였다》 , 고단샤, 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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