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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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RULE (토론 | 기여)님의 2015년 3월 24일 (화) 09:14 판
6세기 경 아바르족의 영토

아바르족(Avars)은 5~9세기에 중앙 아시아중앙 유럽, 동유럽에서 활약했던 유목 민족이다. 중앙 아시아에서 이주해와 중앙 및 동유럽에 이르는 넓은 제국을 건설했으며, 주변 국가를 위협했으나 비잔티움 제국과의 전쟁에서 패해 쇠약해졌으며, 후에 카롤루스 대제프랑크 왕국에게 멸망하였다.

기원 및 출현

아바르족은 6세기 중반 처음 출현했으며, 카프카스 일대에서 비잔티움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사주를 받고 그 지역에 거주하던 유목민족들을 공격했으며, 당시 동유럽을 장악하고 있던 슬라브족들을 복속시키며 서쪽으로 영토를 넓혀 나갔다. 이들은 출현한지 얼마되지 않아 카프카스에서 프랑크 왕국과 국경을 맞닿을 정도로 넓은 세력을 구축하게 되었다.

이들의 기원은 확실치 않으나, 중앙 아시아에서 발현했을 것으로 추측되며, 이들이 비잔티움 제국과 협약을 맺은 것을 안 서돌궐 측에서 분노하여 비잔티움 제국을 공격했던 사실을 볼 때 당시 중앙아시아에서 동아시아에 이르는 넓은 제국을 건설했던 돌궐과 적대관계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기원전 1세기경 알타이산맥을 거점으로 하는 동방 흉노(스키타이)의 묵돌 선우가 우랄산맥을 거점으로 하는 서방스키타이인 대월지국의 왕을 살해한 뒤로 동방과 서방의 스키타이는 적대관계로 발전 하였으며 몽골-쿠르드계인 돌궐, 즉 동방스키타이가 동유럽에서 밀려 내려 온 훈족의 일파와 캅카스에서 온 부족들로 이루어진 에프탈을 사산왕조와 연합하여 멸망(서기567년)시킨 것으로 그 원한은 깊다고 하겠다.

아바르족은 일찌기 캅카스지역에서 서진한 훈족과 에프탈과 밀접한 부족으로 이해를 해야 하며 인도유럽어족에서 많은 부족들이 동화, 분화됨에 서서히 북캅카스어족으로 진행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6세기에서 대략 9세기까지 존속한 마지막 아리안계 스키타이로 보아야 한다는 점에서 그 큰 의의가 있다. 현재 아바르족은 다게스탄공화국과 체첸공화국 등지에 널리 퍼져 살고 있다.

확장 및 몰락

아바르족은 세력이 확대되자, 비잔티움 제국과의 우호 관계를 청산하고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582년부터 아바르족의 바얀 1세는 비잔티움을 공격했고, 사산 왕조와 전쟁을 치르고 있던 비잔티움 측은 이 공세에 몹시 고전하였다. 그러나 비잔티움 측은 아바르족의 침략을 584년에는 아드리아노폴리스에서, 601년에는 티사 강에서 가까스로 막아낼 수 있었고, 아바르족의 공세는 한동안 멎어들게 된다.

그러나 얼마 후 사산 왕조가 비잔티움과의 전쟁에서 결정적인 승기를 잡게 되자, 아바르족 또한 사산 왕조와 동맹을 맺고 비잔티움에 대한 공세를 재개하였다. 비잔티움 측은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밀려났고, 아바르족과 사산 왕조의 연합군은 626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격하여 전쟁을 끝내고자 하였다. 그러나 페르시아의 군대는 비잔티움 함대의 해상 봉쇄에 막혀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너지 못해 성을 공격할 수 없었고, 유목 민족인 아바르족은 성을 함락할 만한 역량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 결국 연합군은 대패함으로서 전쟁은 큰 반전을 맞게 되고, 사산 왕조와 아바르족은 비잔티움의 공세에 더불어 각각 이슬람 제국프랑크 왕국에 의해 양면에서 공격을 받게 되면서 각각 멸망과 쇠락의 길로 접어든다.

국력이 쇠약해진 아바르족은 주변 국가의 공격에 대응하지 못함은 물론, 내부 반란에 직면했다. 제국 서부에서는 프랑크 족 출신 인물이었던 사모가 슬라브족을 규합하여 사모 왕국을 건설하고 독립을 선포했으며, 동쪽에서는 지배하에 있던 불가르 족이 독립해나갔다. 아바르족에게 이를 막을 국력은 남아있지 않았으며, 더 이상 주변 국가에도 위협이 되지 못했다.

소멸

아바르족은 아바르어란 자체 언어를 가지고 있었다. 그 표기는 라틴문자나 키릴문자로 대체하기도 하였으며 아랍의 문자를 차용했다고 한다. 지금도 다게스탄과 잉구쉬공화국, 체첸 등지에 살고 있는 아바르족 사람들이 그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국력이 쇠퇴한 이후에도 아바르족은 약 150년 정도를 존속했으나, 새롭게 프랑크 왕국의 왕으로 즉위한 카롤루스 대제의 팽창 정책은 아바르족의 존속에 결정타를 안겼다. 프랑크 왕국의 군대는 791년부터 아바르족을 공격하기 시작했으며, 795년에는 카롤루스의 아들 피핀이 대대적인 아바르족에 대한 공세를 벌여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아바르족은 곧 프랑크 왕국에 항복했으며, 얼마 안 가 반란을 일으켰지만 진압당함으로서 아바르족의 국가는 실질적으로 멸망한다. 멸망 후에도 아바르족은 영토 내에 존속하고 있었으나, 동쪽에서 불가르족이 이들을 공격함으로서 아바르족은 뿔뿔이 흩어지거나 이들에게 동화된다. 아바르족에 대한 기록은 9세기 말 경을 끝으로 역사에 나타나지 않는데, 아바르족은 훈족과 에프탈의 멸망이후 그 땅을 점유하여 옆의 프랑크족과 대치하다가 프랑크족 등에게 일부가 동화되었고 그 일부는 산 증인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아바르족은 역사적으로 아리안계 서방스키타이의 마지막 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