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대교 붕괴 사고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117.53.77.84 (토론)님의 2014년 4월 27일 (일) 19:20 판

성수대교 붕괴 사고(聖水大橋崩壞事故)는 1994년 10월 21일서울특별시한강에 위치한 다리인 성수대교에서 상부 트러스가 무너졌던 사고이다. 이 사고로 17명이 다쳤고 32명이 사망 했다.

사고 내용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38분경에 제5 · 6번 교각 사이 상부 트러스 약 50m가 붕괴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사고부분을 달리던 승합차 1대와 승용차 2대는 현수 트러스와 함께 한강으로 추락했고, 붕괴되는 지점에 걸쳐 있던 승용차 2대는 물속으로 빠졌다. 지나가던 16번 시내버스는 통과 도중 뒷바퀴가 붕괴 지점에 걸쳐있다가 차체가 뒤집혀 추락한 후, 떨어진 상판에 박혀 찌그러지는 바람에 등교길의 학생들을 비롯한 승객들이 사고를 당하였다. 버스 추락으로 사망 한 사람은 24명이다. [1]

사고 차량 중 승합차에는 제49주년 경찰의 날[2]을 맞아 우수 중대로 선정되어 표창을 받기 위해 본대로 가던 의경들이 타고 있었는데, 이들은 사고 발생후 전원 무사하여 헌신적으로 피해자들을 구조했다.[3]

붕괴 원인

점검 부실

성수대교는 건설될 당시, 트러스식 다리로 건설되었다. 하지만 트러스식 공법은 이음새가 잘못되면 무너지기 쉬운 공법이었다. 뿐만 아니라 안정 시공인 이음새 핀 등의 세부 요소들을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하는데, 이러한 안전점검 조치를 소홀히 하였다.[4]

내부 결함

성수대교 건설 당시 다리 밑 부분을 이루고 있는 트러스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았으며, 연결 부분도 심하게 녹슬었을 뿐만 아니라 다리 위에 가해지는 압력을 분산시키는 이음새에도 결함이 있었다.[5] 공사 도중 볼트 삽입 과정에도 문제가 있었다. 볼트를 무리하게 집어넣다가 구멍의 모양이 변형되어 볼트의 강도가 약해졌다.[6]

과적차량의 통과

붕괴 전의 성수대교 설계 하중은 DB-18(총중량 32.4t)이었지만, 이를 초과하는 과적 차량들이 자주 통과하였다. 이로써 성수대교는 40t이 넘는 차량들의 압력을 받았기에 붕괴는 예견되어 있었다.[7] 특히, 붕괴되기 전 해였던 1993년 서울 동부간선도로가 개통되면서 교통량은 더욱 폭증했으나, 서울시에서는 이렇다할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피해 사항

32명(남 16명, 여 16명)이 숨지고, 17명이 부상을 입어 총 49명의 사상자를 낸 사고였다. 이 사고는 해외에도 크게 보도되어 건설업계에 큰 타격을 입혔을 뿐만 아니라 국가 이미지도 크게 훼손되었다. 사망자 중에 무학여자고등학교 학생 8명과 무학여자중학교 학생 1명, 서울교육대학교 여대생 1명, 필리핀인 아델 아이다 등 외국인 1명이 포함 되어 있었으며,[8] 이 중 서울교육대학교 여대생의 경우 사망 후 장기를 의대생 실습용으로 기증하였다.[9]

사고 이후

서울특별시 대책본부 설치

사고 발생 직후 서울특별시는 대책본부를 설치한 후 서울특별시장을 본부장으로 6개반을 편성 후 활동을 시작하였다.[10][11]

구조 활동

경찰에 의해 교통이 통제되고, 소방대와 119구조대는 구급차를 출동해 사상자를 구조하였다. 해난구조대는 잠수요원을 출동해 시체를 인양하고, 15개의 병원에 사망자를 안치, 6개의 병원에 부상자를 후송하였다.[12][13] [8]

교통 정리

성수대교 붕괴 이후 교통량 분산을 검토한 후 우회도로 안내판을 설치하여 영동대교, 동호대교로 교통량을 분산하고, 교통신호 주기를 조정하였다.[14][15][16]

또한, 성수대교를 통과하던 시내버스 노선도 변경되었다.[17]

서울특별시장의 경질

사고 당일 오후 7시에 사고의 책임을 물어 이원종 서울특별시장이 경질되었고, 우명규 시장을 거쳐 11월 3일 최병렬시장으로 부임했다.[18] 또한 개원 중이던 국회가 일체 중지되었고, 24일 김영삼 대통령이 대국민 특별담화문을 전국 TV를 통해 발표하고 국민에게 사과하였다.[19]

재건설

붕괴 이후 토목학계는 무너지지 않은 부분을 그대로 수리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의견을 냈으나, 시민들의 정서를 감안해 새로 건설하는 방향으로 결정되어 1995년 4월 26일부터 현대건설이 새로 건설하기 시작해, 1997년 7월 3일에 완성되어 차량통행이 재개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20][21]

관련 작품

노래

같이 보기

주석

  1. `꽝'소리와함께 떨어진 출근길 날벼락 : 네이버 뉴스, 1994-10-21 (2012-06-01 확인)
  2. 제49회 경찰의 날 기념식 : MBC뉴스, 1994-10-21 (2012-06-10 확인)
  3. 다리와 함께 떨어진 의경들, 목숨건 구조활동 벌여 : MBC뉴스, 1994-10-21 (2012-05-15 확인)
  4. 성수대교 건설 공법과 붕괴사고 원인은 : MBC뉴스, 1994-10-21 (2012-06-02 확인)
    성수대교, 정밀 안전점검 한번도 받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나 : MBC뉴스, 1994-10-21 (2012-06-02 확인)
  5. 검찰, 성수대교에 대한 현장검증 실시결과 이미 내정된 붕괴 : MBC뉴스, 1994-10-22 (2012-06-02 확인)
  6. 성수대교 붕괴원인, 상판 이음새의 연결핀 파손으로 추정 : MBC뉴스, 1994-10-22 (2012-06-02 확인)
  7. 성수대교, 설계통과하중 18t 이상 차량 통과 : 네이버 뉴스, 1994-10-21 (2012-06-13 확인)
    〈緊急診斷〉성수대교 붕괴사고 전문가 진단(3) : 네이버 뉴스, 1994-10-21 (2012-06-13 확인)
  8. 성수대교 붕괴사고 사망자 32명 명단 : MBC뉴스, 1994-10-21 (2012-05-15 확인)
  9. 성수대교 붕괴사고로 숨진 딸의 장기 의대생실습용으로 기증 : MBC뉴스, 1994-10-22 (2012-06-02 확인)
  10. 서울시, 사고대책본부 구성 : 네이버 뉴스, 1994-10-21 (2012-06-01 확인)
  11. 국회조사반 조사활동 착수 : 네이버 뉴스, 1994-10-21 (2012-06-01 확인)
  12. 출근길 날벼락, 성수대교 붕괴사고 현장 늦장 구조활동 : MBC뉴스, 1994-10-21 (2012-05-15 확인)
  13. 李국방, 성수대교 사고 구조 작업 특별지시 : 네이버 뉴스, 1994-10-21 (2012-06-01 확인)
  14. 영동대교.동호대교로 교통량 분산 : 네이버 뉴스, 1994-10-21 (2012-06-01 확인)
  15. 성수대교 붕괴와 한강 다리 보수공사로 인한 연말 교통 대란 : MBC뉴스, 1994-12-02 (2012-06-01 확인)
  16. 서울 경찰청,서울시의 교통난 해소책 내놔 : MBC뉴스, 1994-12-15 (2012-06-01 확인)
  17. 성수대교 통과하던 시내버스 노선 변경 : MBC뉴스, 1994-10-22 (2012-06-01 확인)
  18. 이원종 서울시장 경질 : MBC뉴스, 1994-10-21 (2012-05-15 확인)
  19. 김영삼대통령, 성수대교 참사와 관련한 대국민 사과문 발표 : MBC뉴스, 1994-10-23 (2012-05-15 확인)
  20. 성수대교 복구공사 착공 : MBC뉴스, 1995-04-26 (2012-05-15 확인)
  21. 한강 성수대교 붕괴된지 2년8개월만에 22일 재개통, 2등교에서 1등교로 탈바꿈 : MBC뉴스, 1997-06-21 (2012-05-15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