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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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FC
전체 이름 성남시민프로축구단
별칭 까치 군단
창단 연도 1989년 일화 천마 축구단으로 창단[1]
연고지 경기도 성남시
연맹 한국프로축구연맹
경기장 탄천종합운동장
수용 인원 16,406명
소유주 대한민국 성남시
구단주 대한민국 이재명 (성남시장)
대표이사 대한민국 곽선우
단장 대한민국 김하목
감독 대한민국 김학범
리그 대한민국 K리그 클래식
2014 시즌 9위
웹사이트 공식 웹사이트
우승
국내 리그
국내 대회 3 FA컵
3 리그컵
1 슈퍼컵
국제 대회 2 AFC 챔피언스리그
1 아시안 슈퍼컵
현재 시즌

성남 FC(Seongnam Football Club)는 경기도 성남시를 연고지로 하는 대한민국의 프로 축구단이다. K리그 클래식 7회 우승, FA컵 3회 우승, AFC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 아프로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우승 등 각종 대회에서 총 19회의 우승을 기록하였다.

1989년, 통일교의 기업그룹 집단인 통일그룹의 주도로 일화 천마 축구단으로 창단되어 초기엔 서울 강북 지역을 연고로 하는 축구단이었지만, 1996년 충청남도 천안으로 옮겨갔으며, 2000년 경기도 성남으로 다시 옮겨 정착하였다. 홈구장은 탄천종합운동장이다.

2013년, 모기업인 통일교 계열의 일화가 구단 운영에서 손을 떼 해체 또는 안산시로의 연고지 이전이 거론되었으나, 성남시에서 인수하여 시민구단으로 출범하기로 했다. 2014년 1월 21일 성남 FC로 구단명칭이 확정되고,[2] 2014년 1월 25일 성남 FC는 시민구단으로 출범했다.

일화 천마 시절

서울(1989–1995): 일화 천마

통일그룹에서 1986년부터 프로축구단 창단 계획이 있었으나 당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자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최순영 회장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하였다.[3][4] 그 후 대한축구협회김우중 집행부로 바뀐 후부터 다시 창단 작업이 진행되어 1988년 9월 20일 한국프로축구위원회 (현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창단 승인을 받고 11월 1일 공식 창단 발표를 거쳐 [5] 1989년 3월 18일 창단식이 거행되었다. 당시 구단 명칭은 일화 천마 축구단이었으며 원래는 당시 프로축구계의 숙원이었던 호남 연고 프로축구단으로 출범하려고 했지만 호남 지역의 반대로 서울특별시를 연고지로 선택하여[6] 한국 프로축구 사상 서울특별시를 단독 연고지로 하는, 또한 독자법인으로 출발하는 최초의 프로축구단이 되었다.

출범 초기에는 성적이 부진해 1989 시즌 5위, 1990 시즌 최하위를 기록했으나[7] 1992년 타지키스탄 출신 골키퍼 발레리 사리체프[8]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표팀 출신의 신태용[9] 이태홍을 영입하면서 성적이 급상승해 아디다스컵 우승과 정규리그 준우승을 차지하였다.[10] 초창기에는 당시 서울특별시에서 프로축구에 목말라 있던 축구팬들과 박종환 감독의 인기, 그리고 신생팀 효과로 인해 많은 축구팬을 동대문운동장으로 끌어들였다.[출처 필요] 이 후 1990년 충청도 연고의 럭키금성 황소1991년 인천광역시+경기도 연고의 유공 코끼리서울로 연고지를 이전하면서 이들과 함께 동대문 시대를 열었다.[11][12]

일화 천마는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정규 리그 3연패를 기록하였다.[13][14][15] 특히 포항 아톰즈와의 1995년 챔피언 결정전은 지금도 K리그 역사에 길이 남는 명승부로 회자되고 있다. 1995년 12월 29일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했다.

천안 일화 천마(1996–1999)

1996년 일화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클럽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박종환 감독이 수뇌부와의 갈등으로 해임되었고, 그 후임으로 박종환 감독을 보좌하던 이장수 수석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게 되었으며,[16] 1996년 8월 18일 정식 감독으로 취임하였다.[17] 한편 2002년 FIFA 월드컵 유치 활동과 맞물려 서울 축구전용구장 건설과 지역연고제 정착, 지방 축구 활성화라는 명분으로 한국프로축구연맹과 정부에서 강제 시행한[18]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으로[19] 1996년 LG 치타스, 유공 코끼리와 함께 서울에서 연고지 이전을 하여[20] 1996년 3월 충청남도 천안시(선문대학교 소재)를 새 연고지로 선정하고 구단명을 천안 일화 천마로 변경하였다. 당시 일화와 같은 연고지의 축구단이었던 LG 치타스유공 코끼리는 각각 경기도 안양경기도 부천에 둥지를 틀게 된다.[21]

천안시를 새 연고지로 삼은 일화는 성적이 곤두박질쳤다. 1996년아프로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에서 1995년 아프리카 챔피언스 클럽컵 우승 팀 자격으로 참가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올랜도 파이리츠 FC를 맞아 5:0 대승을 거두며(요하네스버그 0:0, 서울 5:0) 우승을 차지한 것 이외에는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였다. 애틀랜타 올림픽, AFC 아시안컵에 주축 선수들이 차출된 것과 K리그 우승 팀 자격으로 아시아 클럽 선수권에 출전하면서 선수들이 혹사당한 것도 큰 원인이었으나, 홈 경기장인 천안오룡경기장의 조명탑 설치가 미비되어 여름 및 평일 야간경기 진행이 불가능해지면서 홈 어드밴티지를 누리지 못한 것도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이 결과 1996 시즌 정규리그 성적은 전기 리그 최하위를 비롯해 8위로 곤두박질쳤고, 구단은 레네 드자이에르, 차경복으로 감독을 차례대로 바꿔 보았으나 정규 리그 성적은 1997년 8위, 1998년-1999년 최하위 등 하위권을 맴돌았다. 그나마 1999년 FA컵 정상에 다시 올랐던 게 위안거리.

성남 일화 천마(2000–2013)

왕조의 부활

1998년 정규 리그에서 천안 일화 천마는 개막 이후 7연패의 부진에 빠진 상황에서 전남 드래곤즈와의 홈경기를 가졌다. 초반 선취점을 지키지 못한 끝에 1-1로 시합이 종결되고 승부차기에 들어갔으나 5-5로 맞선 상황에서 일몰 상황이 발생하면서 조명시설이 없는 구장 특성상 경기 진행이 불가능하게 되었고, 결국 제비뽑기로 승부를 결정하게 되었는데 제비뽑기에 나선 수비수 장대일이 승리제비를 뽑으면서 그들은 어렵게 승점 1점을 따냈다. 이후 구단은 조명탑 시설이 없는 경기장 인프라, 시의 부족한 지원 등을 이유로 연고 이전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천안 일화 천마의 연고지 이전 계획이 대외로 알려지자 경기도성남시, 강원도 강릉시대구광역시는 유치 의사를 표명하였다.[22] 한편 천안시는 이에 대해 천안오룡경기장을 대신할 신축 구장 천안종합운동장이 이미 1998년 12월에 기공을 하여 한창 공사중이며[23] 2001년 완공이 되니 기다려달라고 요청하였으며, 거기에 덧붙여 다음 해 오룡경기장 조명탑 설치를 위한 예산을 편성한 상태라고 밝혔고, 천안 일화 천마 서포터즈인 일레븐 플러스 또한 연고지 이전 반대 활동을 펼쳤지만[24][25] 일화는 연고지 이전을 강행하였고 1999년 12월 27일, 경기도 성남으로 연고지 이전을 확정지었다.[26] 이 과정에서 성남의 일부 개신교 단체들은 통일교 산하의 일화에 대해 반발하여 퇴출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27]

성남으로 연고지 이전을 완료한 후 새 시즌 개막에 앞서 올림픽 대표 출신 김대의, 김현수재일교포 박강조를 영입하면서 대대적으로 선수단 리빌딩에 들어갔다.[28] 이 결과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으나, 대한화재컵 및 정규리그 3위, FA컵아디다스컵 준우승으로 일약 우승 후보군에 들어갔다.

이듬해에 팀은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부터 공격수 사샤 드라쿨리치를 영입하면서[29] 스트라이커 보강에 성공해 4번째 우승을 차지했고, 김도훈윤정환이 가세한[30] 2003년까지 3연속 정규리그를 제패했다. 하지만 2004년에는 김대의, 김현수 등 주축선수들의 공백으로 정규리그 우승권에서 멀어졌고, 이 후 컵대회(삼성 하우젠컵AFC 챔피언스리그)에 집중했으나 알 이티하드와의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 1차전 원정 경기에서는 3:1로 승리를 거두어 결승 2차전 홈 경기에서 1골차로 져도 우승이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0-5로 참패를 당해 끝내 준우승에 그치고 K리그 3연패를 이끌었던 차경복 감독이 사임하였다.[31]

2006년부터 지휘봉을 잡은 김학범 감독은 첫 시즌부터 우승컵을 따내며 막강한 전력을 뽐냈다. 리그 우승으로 2007 AFC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획득한 성남은 조별 예선과 8강전을 무난하게 통과하였으나 4강에서 일본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에 승부차기 끝에 패하였고 2007 K리그에서도 정규 리그 우승을 거머쥐었으나 6강 플레이오프를 뚫고 올라온 포항 스틸러스와의 챔피언 결정전에서 패하며 무관에 그치고 말았다. 2008 K리그에도 막강한 전력으로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며 정규 리그를 3위로 끝마쳤으나 플레이오프에서 전북 현대 모터스에 패하며 우승이 좌절되었다. 결국 김학범 감독이 사퇴하고 감독 대행으로 신태용이 선임되었다.

신태용 체제(2009–2012)

신태용 감독 대행 체제로 2009 K리그를 맞은 성남은 시즌 초반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며 팬들의 걱정을 샀지만 리그 후반기에는 좋은 성적을 거두며 K리그 챔피언십에 4위로 안착하였다. K리그 챔피언십 첫 경기인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선 연장전 막판 김용대를 승부차기 키커로 기용하기 위해 골키퍼 정성룡이 필드 플레이어로 뛰는 해프닝이 벌어지는 끝에 승부차기로 인천을 꺾고, FC 서울을 꺾고 올라온 전남 드래곤즈와 맞대결하게 되었다. 이어진 전남과의 경기에선 전반전에 터진 몰리나의 결승골로 승리를 거둬 챔피언 결정전 티켓을 놓고 포항 스틸러스와 격돌하게 되었다. 2009시즌 홈 무패 기록을 가지고 있던 포항과의 원정 경기에서도 몰리나의 결승골로 승리를 거둬 정규 리그를 1위로 마친 전북 현대 모터스와 챔피언 결정전에서 격돌하게 되었다. 홈에서 벌어진 챔피언 결정전 1차전에선 0-0으로 무승부를 거뒀으나 원정에서 치러진 2차전에서는 3-1로 완패를 당해 우승은 좌절되었다. 한편, 2009년 K리그 챔피언십에선 관중석에서 무전기를 통해 선수들을 지휘했던 신태용 감독 대행의 '무전기 매직'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AFC 챔피언스리그 2010 결승전 선발 라인업.

2010년 2월 신태용 감독 대행이 정식 감독으로 승진되었다. 시즌 초, 예산 감축으로 2009 시즌보다 팀의 여건이 더 안 좋아진 상황에서 AFC 챔피언스리그와 리그를 병행해야 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시각이 많았으나, 신인 선수들이 기존 선수들의 공백을 잘 메꿔주고 신태용 감독의 지도력이 빛을 발하며 ACL 조별 예선을 1위로 통과하고 리그에서도 꾸준한 상위권의 성적을 내어 주변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ACL 16강에서 감바 오사카를 만난 성남은 3-0으로 대승을 거두며 8강전에 진출하였으며, 8강과 4강에서 각각 수원알 샤바브를 격침시키며 결승에 진출하였다. 결승전에서는 뛰어난 수비력을 바탕으로 강팀들을 꺾고 이변을 일으키며 결승전까지 올라온 이란조브 아한을 만났다. 제난 라돈치치, 전광진, 홍철이 결승전에 결장하게 된 가운데 어려운 경기가 예상되었으나 주장인 사샤 오그네노브스키가 이른 시간 선제골을 만들어내어 경기를 쉽게 풀어나가 최종 스코어 3-1로 경기를 마쳐 AFC 챔피언스리그 개편 이후 첫 우승을 차지하였다. 2010년 FIFA 클럽 월드컵 출전권을 얻어내었으며 선제골을 넣은 사샤는 대회 MVP로 선정되었다. 클럽 월드컵에 출전한 성남 일화 천마는 준준결승전에서 알와흐다를 4-1로 격파하고 준결승전에 올랐다.[32] 준결승전에서 만난 팀은 UEFA 챔피언스리그를 제패한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였다. 이 경기에서 성남 일화 천마는 3분 만에 데얀 스탄코비치에게 골을 내주며 불안한 출발을 했고, 결국 0-3으로 패배하여 결승전 진출에 실패하였다. 이어진 인테르나시오나우와의 3, 4위전에서도 2-4로 패하며 4위에 머물고 말았다.[33]

2011 시즌을 앞두고 지속되던 재정난으로 인해 이적 시장에서 정성룡, 최성국, 마우리시오 몰리나, 조병국 등 주전급 선수들이 팀을 떠났다.[34] 반면 들어온 선수는 수원에서 데려온 하강진, 남궁웅과 강원에서 데려온 정산 단 3명에 불과했다. 전반기에는 15위까지 내려가며 위기에 빠졌지만 후반기에 라돈치치가 부상에서 복귀하였고, 강원미드필더 이창훈과 브라질 U-20 국가대표로 뛴 경험이 있는 에벨찡요를 영입하였다. 또, 9월에 상무에서 제대하여 복귀한 김정우의 합류로 반등을 노렸다. 그 결과 후반기에 상승세를 탔으며, 결승전에 진출한 FA컵에서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였다.[35] 정규 리그 최종 경기에서 포항 스틸러스에게 패배하며 정규 리그를 10위로 마감했다. 시즌을 마치고 경남 FC에서 윤빛가람을 영입하였으나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는 이적 논란을 일으켰고, 결국 윤빛가람은 슬럼프만 겪은 채 이후 2013년 제주 유나이티드로 떠나게 된다.

2012년에는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 리그 1위로 16강에 진출하여 다시 한 번 아시아의 정상을 노렸으나 2012년 5월 29일, 16강에서 만난 부뇨드코르에 PK 결승골을 내줘 1-0으로 패하고 말았다. 이는 성남의 ACL 홈경기 첫패였다. 이후 부진을 겪으며 16개 팀중 11위를 기록하여 상위 스플릿 진출에 실패하였다. 스플릿 이후 상주전 기권승을 제외하면 광주 원정 경기에서만 승리를 거두었으며, 2012년 11월 17일 홈에서 열린 광주전에서는 전반에만 3골을 넣어 앞섰지만 전반 종료 직전 2골, 후반에 2골을 내주며 3-4로 역전패를 당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부진으로 인해 다음 경기인 2012년 11월 21일에는 서포터즈 황기청년단이 '위대한 성남은 죽었다'를 외쳤고, 대구와의 경기에선 0-2로 패한 이후 골키퍼 하강진과 서포터즈가 다툼을 벌이기도 하였다. 리그 최종전에서 12위 자리를 지키며 1부 리그에 잔류를 확정지었다. 시즌이 종료 후 신태용 감독은 사의를 표명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후임으로는 부산 아이파크의 감독이자, 일화 천마 선수 출신의 안익수가 선임되었다.

천마는 걸음을 멈추었다(2013)

2012년 9월, 구단주였던 문선명이 사망한 후, 구단을 넘겨받은 문국진은 축구단 운영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구단의 존망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었다. 실제로 문선명 사망 이후 같은 통일교 산하의 피스컵조직위원회와 충남 일화 천마가 해체되었으며, 성남도 운영비를 3분의 1 수준으로 줄여버렸기 때문에 이는 곧 해체를 뜻하는 것이 아니냐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이에 성남시에서는 성남 일화를 시민구단화하는 작업을 연구 용역을 통하여 검토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안산시에서 축구단을 인수하며 연고 이전을 시도하려 했다.[36] 복잡한 사정 속에서 성남의 성적은 하위권으로, 마지막을 맞았다.

시민구단(2013.10~현재)

그러자 '성남 연고 사수' 여론이 급속 확산되어 지지부진하던 성남 일화와 성남시 간의 인수협상이 물살을 탔고, 결국 2013년 10월 2일 이재명 성남시장이 일화 축구단 인수 및 시민구단화를 발표했다.[37] 시민구단으로 전환되면서 구단의 상징이었던 천마가 성남시의 시조인 까치로 변경되었고, 전통적인 노란색 유니폼도 검정색 계열로 바뀌게 되었다.

2013 시즌을 마치고 안익수 감독이 경질되고, 후임으로는 박종환이 선임되었다.[38] 시민구단 전환이후 초반기에는 9경기에서 단 3득점만을 성공하여 골 가뭄에 시달렸다.그러나 부임한 지 불과 4개월 만에 박종환 감독이 선수 폭행 사건에 연루되어 2014년 4월 22일 자진 사퇴하였다. 이후 수석 코치 직책을 맡고 있던 이상윤이 감독 대행으로 부임하였다. 이후 4월 30일에 홈에서 펼쳐진 대구 FC 와의 FA컵 32강전에서 황의조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두었는데, 이는 울산 원정에서 김철호의 득점 이후 3주만의 득점이었다. 이후 8경기 연속 무패행진을 달리고 있던 포항 스틸러스를 3-1로 대파하는등 득점력이 상승했다. 그러나 월드컵 휴식기 이후 경남과의 홈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것을 제외하면 수비가 급격히 무너지며 8월 9일 홈에서 열린 전북 현대 모터스에 0-3, 8월17일 홈에서 열린 부산 아이파크에 2-4로 대패를 당하는 등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강등권까지 추락하고 말았다.FA컵에서 16강 상대는 2014시즌 당시 2부리그 에서 뛰었던 광주 FC였는데,2대1로 역전승을 거두었지만 2부리그팀을 상대로 필드골을 허용하여 연장전까지치루었으며,8강전 상대인 영남대학교를 상대로 2-1로 승리했지만 대학팀을 상대로 필드골을 허용하기도 하였다. 이후 8월 26일 이상윤 감독 대행이 성적 부진을 이유로 경질되었다. 이후 코치였던 이영진이 새로운 감독 대행으로 선임되어 한 경기를 치렀으며, 곧이어 2014년 9월 6일 팀의 전 감독이었던 김학범이 팀의 정식 감독으로 선임되어 6년 만에 팀에 복귀하게 되었다. 그리고 약 2개월만인 11월 23일 FA컵 결승전에서 상대팀인 FC 서울을 승부차기 끝에 4-2로 꺾으면서 구단 역사상 3번째 FA컵 트로피를 손에 쥠과 동시에 2004년 9월 이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승리가 없던 상암 징크스를 깨는데 성공하였다. 이로써 시민구단 최초로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 자격을 얻게되었다. 그 후 마지막 2경기에서, 경남 FC가 2연패 당하는 동시에 2부리그 강등이 현실화될 우려가 있었던 성남이 인천과의 원정 경기에서 1-0으로 승리를 거두었으며, 최종전인 11월 29일 홈에서 2014 시즌 한번도 이기지 못한 부산 아이파크를 상대로 1-0으로 승리를 거둬 2연승을 거두며 잔류에 성공하였다.

2015 시즌에는 남준재, 박태민, 브라질 출신 외국인 선수 3인방, 일화 시절 에이스였던 김두현을 영입하며 전력을 강화하였다. 이후 시즌 첫 경기로 열린 2015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 예선 1라운드에서 부리람에 패배했으나 2라운드에서 J리그 디비전 1 챔피언 감바 오사카에게 승리를 거두며 시민 구단 최초의 챔피언스리그 승리를 기록했다. 정규 리그 개막전에선 전북에 2-0으로 패하였고 이후 3라운드까지 승리를 거두지 못하였다. 하지만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전과의 리그 4라운드 경기에선 아드리아누에게 선제 실점하고도 황의조의 1골과 김두현의 해트트릭에 힘입어 4-1로 대역전승을 거두며 첫 승을 챙겼다. 4월 22일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 예선 5라운드에서 부리람을 상대로 2-1 승리를 거두며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 진출하였다.[39] 16강에선 강호 광저우 헝다를 만나 홈 1차전에서 2-1 승리를 거두었으나[40] 2차전에서 2-0으로 패배하여 원정 다득점 원칙에 의해 탈락하였다. 대신 리그에서 승승장구, 8월 30일 29라운드 홈 전북전[41]에서 석패하기 전까지 11연속 무패 행진(3연승 포함 7승 4무)을 기록하며 순위를 3위까지 끌어올렸다. 그리고 9월 23일에는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 서울과의 원정경기에서 1대0으로 승리를 거두어 상위스플릿을확정지었으며,11년간 리그에서 단 한번도 이기지못한 상암징크스를 깨는데 성공했다.

역대 성적

AFC 챔피언스리그 2010에서 우승을 차지한 성남 일화 천마.

국내 대회

우승 (7): 1993, 1994, 1995, 2001, 2002, 2003, 2006
우승 (3): 1999, 2011, 2014
우승 (3): 1992, 2002, 2004
우승 (1): 1999

국제 대회

우승 (2): 1995, 2010
우승 (1): 1996
우승 (1): 2004
우승 (1): 2012

정규 리그 결과

시즌 리그 순위 경기 승점
1989 K리그 5 40 6 21 13 44 52 33
1990 K리그 6 30 7 10 13 28 40 24
1991 K리그 5 40 13 11 16 56 63 37
1992 K리그 2 30 10 14 6 27 21 34
1993 K리그 1 30 18 0 12 35 23 68
1994 K리그 1 30 15 9 6 42 30 54
1995 K리그 1 28 13 9 6 36 25 48
1996 K리그 8 32 8 8 16 52 63 32
1997 K리그 8 18 2 7 9 19 31 13
1998 K리그 10 18 5 0 13 17 32 11
1999 K리그 10 27 10 0 17 34 44 23
2000 K리그 3 29 19 0 10 47 38 45
2001 K리그 1 27 11 12 4 35 20 45
2002 K리그 1 27 14 7 6 43 32 49
2003 K리그 1 44 27 10 7 85 50 91
2004 K리그 9 24 7 8 9 23 28 29
2005 K리그 3 27 12 7 6 41 26 43
2006 K리그 1 29 17 7 5 46 26 58
2007 K리그 2 26 16 7 3 43 18 55
2008 K리그 5 26 15 6 6 45 21 51
2009 K리그 2 28 13 6 9 40 39 48
2010 K리그 4 28 13 9 6 46 26 45
2011 K리그 10 30 9 8 13 43 47 35
2012 K리그 12 44 14 10 20 47 56 52
2013 K리그 클래식 8 38 17 9 12 51 42 60
2014 K리그 클래식 9 38 9 13 16 32 39 40

선수 명단

현재 선수 명단

2015년 7월 31일 기준 참고: FIFA 자격 규정에 따라 소속된 국가대표팀 국기를 표시합니다. 선수는 복수의 FIFA 비회원국 국적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번호 포지션 국적 이름
1 GK 전상욱
2 DF 곽해성
3 DF 심우연
4 DF 이요한
5 DF 임채민
6 DF 김태윤
7 MF 김철호
8 MF 김두현
10 FW 콜롬비아 하비에르 레이나
11 FW 이상협 (전북에서 임대)
13 FW 김동희
14 MF 정선호
16 FW 황의조
17 MF 박태민
18 MF 김성준
19 FW 브라질 루카스 파제우
20 DF 윤영선
번호 포지션 국적 이름
21 GK 정산
22 MF 이종원
23 MF 남준재
24 DF 장석원
25 DF 이태희
26 FW 문창현
27 DF 강진욱
28 DF 유청윤
29 GK 박준혁
30 FW 성봉재
31 FW 박용지
32 DF 이원규
33 DF 장학영
34 DF 한상현
35 FW 이승민
36 DF 염유신

임대 및 군 복무 중인 선수 명단

참고: FIFA 자격 규정에 따라 소속된 국가대표팀 국기를 표시합니다. 선수는 복수의 FIFA 비회원국 국적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번호 포지션 국적 이름
DF 박진포 (상주 상무에서 군 복무 중)
FW 이창훈 (상주 상무에서 군 복무 중)
FW 이민우 (부천 FC로 임대)

역대 선수

코칭스태프

직위 이름 비고
감독 대한민국 김학범
수석 코치 대한민국 이영진
코치 대한민국 김영철
코치 대한민국 김호영
골키퍼 코치 대한민국 김해운

감독 연혁

  • 취임은 공식 취임식 일자이며 취임식이 없거나 미상인 경우 공식 선임 일자를 기재한다.
순번 이름 취임 사임 재임시즌 비고
1대
대한민국 박종환 1988/09/16 1996/04/02 1989-1995 한국 프로축구 사상 첫 3연패(1993~1995) 및 팀 첫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우승
선수 문제로 구단과 갈등을 빚은 끝에 1996년 첫 경기 앞두고 전격 사임
대행
대한민국 원흥재 1990/04/27 1990/06/27 1990 박종환 감독 징계 기간중 한시적 감독대행[42]
대행
대한민국 이장수 1996/04/03 1996/08/17 1996 시즌 첫 경기 앞두고 박종환 감독 사임으로 감독대행 맡음
시즌 종료 후 성적 부진 책임을 지고 사임
2대
1996/08/18 1996/12/05 1996 감독대행직 수행 후 정식감독으로 승격
성적 부진 책임을 지고 사퇴
3대
벨기에 레네 드자이에르 1996/12/18 1998/09/08 1997-1998 성남의 유일무이한 외국인 감독으로 부임
성적 부진과 세레소 오사카 초청이 겹치며 사임
4대
대한민국 차경복 1998/09/09 2004/12/01 1998-2004 1999년 FA컵 첫 우승 및 국내 축구 두번째 3연패(2001~2003)&6번째 우승, 2002년 더블(리그+리그컵), 리그컵 2차례 우승
2004년 AFC 챔피언스 리그 2차전 0:5 패배(합계 3-6 패, 준우승) 직후 사임
대행
대한민국 김학범 2004/12/07 2004/12/29 2004 차경복 감독의 전격 사퇴 이후 FA컵과 리그에서 감독대행
5대
2004/12/30 2008/11/27 2005-2008 정식감독으로 승격, 리그 7번째 우승(2006)
선수 기용 문제로 구단과 마찰을 빚은 끝에 사임
대행
대한민국 신태용 2008/12/08 2010/02/17 2009 호주에서 급히 귀국[43], 국내에서 코치 자격을 취득하여 감독대행
2009년 리그+FA 준우승을 달성하며 '신태용 매직'이란 별칭을 얻음
6대
2010/02/18 2012/12/07 2010-2012 정식감독으로 승격, 2010년 AFC 챔피언스 리그[44] & 2011년 FA컵 두번째 우승으로 기대를 받으며 3년 재계약
2012년 성적 미흡과 팀 내 불화 등을 이유로 사퇴
7대
대한민국 안익수 2012/12/14 2013/12/22 2013 부산 아이파크 감독을 맡고 있다가 성남 일화 천마로 불려와 '질식수비'를 선보였으나 모기업 사정으로 팀 사기는 저하된 상태라 성적은 체면치레할 수준에 그침
시즌 종료 후 영국 연수 중에 구단 법인이 바뀌며 해촉됨
8대
대한민국 박종환 2013/12/23 2014/04/22 2014 시민구단(성남 FC) 전환 후 초대 감독으로 17년만에 성남 복귀, 수원을 격파하는 등 반짝 성과
단 4개월만에 선수폭행 사건으로 징계를 받고 자진사퇴
대행 대한민국 이상윤 2014/04/22 2014/08/26 2014 수석코치 자격의 대행 체제[45]로 가다가, 7월 '감독대행'으로 지명됨
8월말 상주전을 앞두고 성적 부진 및 내부 갈등으로 전격 경질
대행 대한민국 이영진 2014/08/26 2014/09/05 2014 2014년 8월 30일 상주 상무와의 원정경기에서 수석코치 자격으로 팀 지휘
김학범 감독 부임 후에는 다시 수석코치로써 활약중
9대
대한민국 김학범 2014/09/05 2014- 2008년 사임 후 6년 만의 감독 복귀. 세번째의 FA컵을 안기고 강등위기 탈출에 성공함.

주석

  1. 한국프로축구연맹 공식 구단 소개
  2. “성남시민축구단, 성남FC로 이름 지은 이유는?”. 스포츠서울. 2014년 4월 21일. 
  3. “스포츠서울 창간 당시 '최고 스타' 박종환 감독”. 스포츠서울. 2009년 6월 21일. 
  4. '문선명시대' 이후의 성남일화 새롭게 출발하자”. 스포츠서울. 2012년 10월 16일. 
  5. “일화프로축구팀 창단”. 동아일보. 1988년 11월 1일. 
  6. "공격축구로 바람 일으키겠다" 1일 창단 일화 프로축구팀 박종환 감독”. 동아일보. 1988년 10월 29일. 
  7. “-프로축구-”. 연합뉴스. 1990년 11월 3일. 
  8. “蘇聯축구선수 국내프로 진출”. 연합뉴스. 1991년 10월 12일. 
  9. “<인터뷰> 수훈갑 신태용”. 연합뉴스. 1994년 11월 12일. 
  10. “<'92 프로축구 결산> 1.경기 종합”. 연합뉴스. 1992년 11월 28일. 
  11. “프로축구 시즌오픈 일정확정”. 연합뉴스. 1990년 1월 19일. 
  12. “프로축구 서울연고팀 구장난”. 연합뉴스. 1991년 1월 16일. 
  13. “<종합> 일화, 창단 5년 만에 프로축구 정상”. 연합뉴스. 1993년 9월 25일. 
  14. “일화, 프로축구 첫 2연패”. 연합뉴스. 1994년 11월 12일. 
  15. “일화, 사상 첫 프로축구 3연패 달성”. 연합뉴스. 1995년 11월 18일. 
  16. “이장수 일화감독 대행”. 연합뉴스. 1996년 4월 4일. 
  17. “이장수 대행 천안 감독에”. 연합뉴스. 1996년 8월 18일. 
  18. 위원석 (2009년 9월 8일). “위원석의 하프타임-K리그서 '서울 더비'를 보고 싶다.”. 스포츠서울. 
  19. “서울 연고 이랜드 프로축구단 출범…FC서울과 '투톱'. 한국경제신문. 2014년 5월 1일. 
  20. “일화 유공 LG, 내년에 서울연고 없어”. 《월간축구 (현 베스트일레븐)》 12월호. 1995. 
  21. “프로축구 일화, 홈구장 천안 결정”. 연합뉴스. 1996년 3월 29일. 
  22. “프로축구 일화, 강릉으로 이전할 듯”. 연합뉴스. 1999년 8월 31일. 
  23. “천안종합운동장 기공식”. 경향신문. 1998년 12월 18일. 
  24. “일화 연고지 이전에 천안 반발 거세”. 연합뉴스. 1999년 12월 27일. 
  25. “일화축구단 연고지 이전 반대 시민 궐기”. 연합뉴스. 1999년 10월 4일. 
  26. “일화 연고지 이전에 천안 반발 거세”. 연합뉴스. 1999년 12월 27일. 
  27. “막내 ‘천마불사’ 장외서포팅 “시끌””. 동아일보. 2000년 5월 18일. 
  28. “김대의 "뛰고 싶은데...". 한국일보. 2000년 5월 8일. 
  29. “유고 출신 샤샤, 성남과 3년 계약”. 동아일보. 2001년 1월 17일. 
  30. “김도훈, 최고연봉에 성남 이적”. 연합뉴스. 2003년 1월 16일. 
  31. “차경복 성남 감독 사의 표명”. OSEN. 2004년 12월 1일. 
  32. 윤진만 (2010년 12월 16일). “성남, 알 와다에 4-1 대승…인터밀란과 준결승서 격돌”. 스포탈코리아. 
  33. 하경헌 (2010년 12월 19일). “성남, 클럽월드컵 4위로 마무리”. 경향신문. 
  34. '젊은 명장' 신태용 성남일화 감독”. 경인일보. 2011년 3월 6일. 
  35. “성남 2년 만의 FA컵 우승, 수원에 ‘복수 성공‘”. 매일경제. 2011년 10월 15일. 
  36. 박소영 (2013년 9월 22일). “안산시 축구팬, ‘성남 일화 유치’ 발 벗고 나섰다”. 일간스포츠. 
  37. 우충원 (2013년 10월 2일). “성남 이재명 시장, "종교적 갈등 뛰어 넘고 시민구단 창단 결정". OSEN. 
  38. 김태규 (2013년 12월 20일). “성남시 "박종환 감독 확정…23일 기자회견". 뉴시스. 
  39. “[ACL][종합2보]성남, 시민구단 최초 16강 진출”. 뉴시스. 2015년 4월 22일. 
  40. 이 승리로 성남은 아시아 3개 리그의 우승 팀을 모두 이기는 기록을 작성했다.
  41. 워낙 기대되는 경기였기 때문인지 광저우 헝다 1차전 이후 처음으로, 또한 올 시즌 리그 경기 처음으로 1만 명 이상의 관중이 찾아왔다. 12,187명
  42. “사관의 마음가짐으로 기록사를 써 가는 프로연맹을 보고 싶다”. 베스트일레븐. 2014년 4월 11일. 
  43. 선수 생활의 마지막 무대였던 퀸즐랜드 로어 팀에서 코치를 맡고 있었다.
  44. 이 대회에서 선수(1995)&감독(2010)으로 우승한 최초의 아시아 인물
  45. 누구나 감독대행으로 생각했으나, 지위는 수석코치였다.

바깥 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