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서울대학교
Seoul National University


표어"진리는 나의 빛" (라틴어: Veritas Lux Mea)
종류국립대학교
설립1946년[1]
총장오연천
부총장교육: 변창구(대학원장 겸임)
기획: 임정기
연구: 이준식
학부생 수16,712명 (2013년 4월 1일)[2]
대학원생 수11,299명 (2013년 4월 1일)[2]
국가대한민국 대한민국
위치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 (대학동)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 103 (연건동)
규모3 캠퍼스, 16 단과대학,
1 일반대학원, 9 전문대학원
교색청색      [3]
상징물백학
웹사이트서울대학교 공식 홈페이지
Map 서울대학교의 위치

서울대학교(한국 한자: -大學校, 영어: Seoul National University; SNU)는 대한민국의 국립대학 법인이다.

1895년에 고종에 의해 설립된 법관양성소를 기원으로 하여 1946년에 공포한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에 관한 법령’에 따라 경성대학을 중심으로 여러 관·공·사립 전문학교를 통합하면서 대한민국 최초의 국립 종합 대학인 '국립서울대학교'가 설립되었다. 1948년 '서울대학교'로 명칭이 바뀌었고, 2011년에는 국립대학법인으로 전환되었다.[5][6]

1946년에 개교할 당시에는 9개 단과대학(문리과대학, 공과대학, 농과대학, 법과대학, 사범대학, 상과대학, 의과대학, 예술대학, 치과대학)과 한 개 대학원으로 출발하였으며, 그 이후 점차 학부와 대학원의 규모가 늘었다. 캠퍼스도 옛 경성대학의 동숭동 캠퍼스를 주캠퍼스로 활용하고, 그 외에 연건동, 공릉동, 을지로, 소공동, 남산동, 그리고 수원 등지에 단과대학들이 있었다.

현재 서울특별시 관악구 대학동과 종로구 연건동, 수원시 영통구에 캠퍼스가 있으며, 16개 단과대학 83학과(부), 일반대학원 석사과정 5계열 69학과(부) 28협동 과정, 일반대학원 박사과정 5계열 70학과(부) 29협동 과정, 9개의 전문대학원으로 구성되어 있다.[7]

발자취

서울대학교의 기원

19세기 말 고종은 자력 근대화를 위한 교육 사업을 추진하면서 처음으로 여러 근대식 고등 교육 기관을 설치했다. 1895년 4월 19일, 칙령을 통해 최초의 근대 법학 교육기관인 법관양성소가 설립되었고, 그 해 5월 6일 입학 시험을 통해 학생을 선발하고 다음해 이준을 포함한 47명이 졸업장을 받았다. 조선 최초의 근대적 국립 고등 교육 기관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법관양성소는 이후 법학교(1909년) - 경성전수학교(1911년) - 경성법학전문학교(1922년) - 국립서울대학교 법과대학(1946년)을 거쳐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2007년)으로 이어졌다. 같은 해 5월 10일 소학교 설립 준비의 일환으로 소학교 교사 양성기관인 ‘한성사범학교’가 설립되었다. 일곱 차례에 걸쳐 졸업생 195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한성사범학교는 이후 관립경성고등보통학교 사범과(1911년) - 국립서울대학교 사범대학(1946년)을 거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으로 이어졌다.

고종은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후 더욱 적극적으로 고등 교육 기관 설립을 추진했다. 1899년 고종은 “우리나라에 각종 학교를 대략 설치했으나 의학교는 아직 만들지 않았다”며 의학교관제를 반포하고 전문 의료인을 양성했다. 의학교는 이후 대한의원 교육부-경성의학전문학교-국립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거쳐 서울대학과 의과대학 및 의학전문대학원으로 계승되었다. 대한의원은 1901년 최초로 교육부 산하에 산파 및 간호부양성과를 신설하는데 이는 서울대학교 간호대학의 시작이었다. 1904년에는 농업과 상업을 가르치는 농상공학교가 개교했고, 이후 분화와 재편을 거듭하면서 국립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을 거쳐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으로 이어졌다.[8]

1924년에 조선총독부경성제국대학을 설립하였다. 해방과 함께 경성제국대학은 경성대학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개교와 그 이후의 변천

1946년 7월 13일 미 군정청 문화교육부는 ‘국립서울종합대학안’을 공식 발표했다. 서울대학교에 따르면, 조선교육심의회에서 현대적 국립대학을 건립할 때 경성대학을 중심으로 여러 관ㆍ공립 및 사립의 전문학교를 통합하자는 구상이 있었다고 한다.[9] 1946년 8월 22일에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에 관한 법령’이 공포됨으로써 서울대학교는 공식적으로 설립되었다. 이 법령의 내용은 경성대학을 중심으로 여러 관·공·사립 전문학교를 통합하여 종합 대학을 설립하는 것이었는데, 9개 단과대학(문리과대학, 공과대학, 농과대학, 법과대학, 사범대학, 상과대학, 의과대학, 예술대학, 치과대학)과 1개 대학원으로 구성되었다. 초대 총장으로 해리 엔스테드(Harry B. Ansted) 미국 해군 대위가 취임하였다.[10] 그러나 설립 과정에서 기존 대학에 있던 교수, 직원, 학생들은 반대 운동을 강렬히 전개했으며, 이를 국대안 파동이라 부른다.

한국 전쟁의 발발로 1951년부터는 부산으로 옮겨가 전시 연합대학의 형태로 수업을 진행해야 했다. 이듬해 5월에 전시 연합대학은 해체되었으며, 그 다음 해인 1953년 9월 18일이 되어서야 본부와 문리과 대학이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

1960년에는 독재 정권에 항거한 4·19 혁명으로 서울대학교 학생 7명이 사망했으며, 그 해 11월 민족통일연맹이 결성되었다. 4·19 혁명이 끝나고 대학에는 학생회 조직과 같은 자율적인 분위기가 잠시 조성되었으나 이듬해 5·16 쿠데타로 탄압이 다시 이어졌다.[11] 1960년대는 이에 대한 학생들의 저항이 계속 이어지는 시기였다.[12] 한편 1961년에는 정부의 ‘국립대학 정비절차’에 따라 많은 사범대 학과가 폐지되고 문리대로 합쳐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사범대 교수와 학생들은 이에 거세게 항의했으며, 이듬해 정부는 없어진 학과들을 다시 부활시켰다.[13]

1970년대 중반까지 서울대학교 단과대학들은 서울특별시 동숭동, 연건동, 을지로(사범대학), 공릉동, 종암동(상과대학), 경기도 수원시(농과대학) 등 곳곳에 나뉘어 있었다. 이에 서울대는 종합화 계획을 세우고, 1975년에 공과대학, 농과대학(현재 농업생명과학대학, 수의과대학)과 의과대학 본과만을 제외하고 단과대학들을 모두 새로 세운 관악캠퍼스로 이전하였고, 1980년에는 공릉동의 공과대학을 관악캠퍼스로 이전하였다. 수원에 남아 있던 단과대학도 2003년에 관악으로 이전하게 됨에 따라, 현재와 같이 관악과 연건 캠퍼스만 남게 되었다.[14]

한편 10월 유신 이후 계속 억눌려 있던 대학에는 19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화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며, 1991년에 총장 선출 방식도 직선제로 변경되었다.[11] 첫 직선제 총장인 김종운을 시작으로 이수성, 선우중호, 이기준, 정운찬, 이장무 등이 총장으로 선출되었으며, 2010년에 오연천이 제25대 총장으로 선출되어 현재 재임 중이다. 2011년 12월 28일에는 새로 시행된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1946년 이래 65년 동안 유지해왔던 국립대학교 체제로부터 독립법인 체제로 전환하였다[15].

캠퍼스

역사적 캠퍼스

동숭캠퍼스

서울대학교 유지기념비(마로니에 공원내 소재)

해방 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법과대학이 설치된 곳은 과거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京城帝國大學法文學部)가 자리하고 있던 곳이었다. 한국 전쟁 중에는 한 때에 공산군의 병영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미학과 교수였던 우에노(上野)가 대학의 경관조성을 위해 지중해 지역에서 선박편으로 마로니에 나무 3그루를 실어와 심었는데, 마로니에 이외에도 10여 그루의 은행나무, 느티나무, 그 외에 차츰 자작나무, 개나리, 라일락 등도 심어져 지금의 마로니에 공원을 이루게 되었다. 당시 교정은 아름답기가 서울의 10대 정원(庭園) 중 하나로 꼽힐 정도였었다.[16]

도서관

도서관 건물은 1927년 8월에 경성제대 법문학부 연구실을 겸해 세워진 건물로, 4층짜리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이었다. 당시 총건평 1,491평 중에 도서관은 사무실 및 열람실 519평, 서고 392평이었는데 해방 후 1층을 더 올려 5층이 되었다. 1975년 당시 열람실은 154평에 불과해 4백여 명을 수용할 정도였다고 한다. 해방 직전의 장서(藏書) 수는 55만권에 달하였으나 해방 후 30년 동안 늘어난 장서의 양은 10만 권 미만이었다고 한다.[17]

강의실

문리대 운동장 쪽에 있었던 빨간 벽돌조 3층 건물로, 대한민국 최고(最古)의 대학 강의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강의실의 수는 16개로, 원래 경기도립상업전문학교 건물이었던 것을 1926년 경성제대가 인수를 해 사용하였다. 경성제대는 그 후 2년에 걸쳐 이 건물 주변에 도서관, 본관 등을 지어 대학으로서의 모습을 갖추어 나갔던 것이다. 1964년 과학관 건물이 지어지자 그 뒤에 가려 햇볕이 잘 들어오지 않게 되었고 상대적으로 초라한 모습이 되었다.[18]

본부

1931년 9월 완공된 건물로 1975년 관악캠퍼스로 이전하기 전까지 서울대학교 본부로 쓰였다. 본부 건물을 제외하고는 모두 철거되었으며, 현재 그 자리에는 마로니에 공원이 들어서게 되었다.

구 사대·상대 캠퍼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은 동대문구 용두동에 있었다. 1920년대 경성여자사범학교로 지어진 것을 서울 수복 후 옮겨온 것으로, 캠퍼스 뒤에는 선농단이 있었다. 한편 상과대학은 성북구 종암동 19번지에 있었으며, 원래 경성고등상업학교 건물이었다. 벽돌 건물 안에 연구실 35곳, 강의실 16곳이 있었다. 송림에 감싸여 황성(荒城)의 숲으로 통했으며, 인근에 고려대학교가 있었다.[19] 1975년 관악캠퍼스로 이전한 뒤 이들 건물은 현재 모두 철거되었다.

이공캠퍼스

노원구 공릉2동에 있던 구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 건물을 이어받아 광복 이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이 자리잡았으며, 다른 단과대보다 조금 늦은 1980년에 관악캠퍼스로 이전하였다. 당시의 건물은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가 사용하고 있으며 계속 관리되고 있다.

현재 캠퍼스

관악캠퍼스

위성에서 바라본 관악캠퍼스(남북이 역전되어 있다)

대학 본부가 있는 관악캠퍼스는 1975년 서울대학교 종합화 계획에 따라 조성되었다. 1970년대 1만 4천여 명이었던 학생 수가 1980년대에는 2만 4천여 명 이상으로 늘어나면서 학교 식당 등의 생활 지원 시설 및 연구 시설이 부족해지기 시작했고, 1987년 ‘서울대학교 발전장기계획-캠퍼스부문계획’이 수립되어 시설 면적이 기존에 비해 2배 가량 늘어났다.[20] 현재 관악캠퍼스에 있는 약 200개의 건물 중 절반은 1990년 이후에 지어졌으며,[21] 캠퍼스를 감싸고 있는 순환도로의 길이는 약 5킬로미터이다.[22]

관악캠퍼스의 정문을 이루는 구조물은 ‘국립’, ‘서울’, ‘대학교’의 머리글자인 ‘, , ’을 따서 만들어졌으며, 개교 60주년을 맞아 은회색을 입혔다. 정문 디자인을 새롭게 구상한 디자인학부의 백명진 교수에 따르면, 중립적인 색상인 은회색을 통해 공적인 교육 공간의 느낌을 표현하였고 조명을 설치해 24시간 열려 있는 서울대의 이미지를 구현한 것이라고 한다.[23] 서울대 정문은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에서 약 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데, 이는 서울 지하철에서 대학 이름을 역명으로 사용하는 역중 가장 먼 거리에 위치한 것이다.[24]

정문 근처에는 대운동장을 끼고 제일 가까이 체육관과 미술관, 경영대학 등이 있다. 서울대학교 체육관은 세계 최초의 올림픽 탁구 경기장으로서 1988년 서울 올림픽 탁구 경기가 이 곳에서 열렸다. 그 뒤로 산 쪽으로 사회과학대학, 법과대학, 음악대학, 미술대학, 인문대학, 사범대학 등의 순서로 인문 계통의 단과대학이 있으며 중앙도서관의 터널을 경계로 반대편에는 약학대학, 자연과학대학, 공과대학 등 이과 계통의 단과대학이 있다. 정문에서 순환도로를 따라 왼쪽으로 오르면 후문으로 가는 갈림길(속칭 ‘기숙사삼거리’)이 나오는데, 왼쪽 길을 택하여 내려가면 낙성대역에 이르게 되며 오른쪽 길을 택할 경우 버들골, 노천강당, 교수회관, 학군단, 신공학관 등으로 갈 수 있다. 낙성대역을 향하는 길에는 서울대학교 기숙사인 ‘관악사’와 교수 회관인 ‘호암교수회관’이 있다.[25]

한편 경영대-법대백주년기념관-문화관-중앙도서관-공대 폭포로 캠퍼스를 관통하는 길은 ‘걷고 싶은 거리’로 조성되어 있다.[22] 걷고 싶은 거리는 주위 조경과 보도를 정비하였으며 밤에는 은은한 조명 시설이 걷고 싶은 거리를 비춘다. 학교가 관악산을 끼고 있기 때문에 학내 각종 도로들은 등산객들에게 관악산 정상 등반을 위한 등산로로도 애용된다. 신공학관 부근에서 ‘자운암’이라고 쓰인 표지판 쪽 계단으로 올라가면 관악산 정상으로 이어진다. 봄에는 캠퍼스 내 벚꽃, 진달래, 개나리의 만개로 상춘객의 발길이 빈번하다. 2008년 4월 25일, 서울대는 캠퍼스 안에 있는 규장각, 미술관, 박물관, 문화관, 중앙도서관 등 5개 거점 문화시설을 활용해 ‘문화 캠퍼스’로 만드는 작업을 시작하였으며, 그 첫 프로그램으로 다음날인 26일에 학부모 3천여 명을 초청해 문화 행사를 개최했다.[26][27]

연건캠퍼스

옛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자리에 터를 잡은 연건캠퍼스에는 의과대학, 치의학대학원(치과대학은 학부 신입생을 뽑지 않음), 간호대학이 있으며, 서울대학교병원 본원도 이곳에 있다. 대학로창경궁로 사이에 있으며,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가깝다. 서울대병원 본관이 캠퍼스의 중심에 있으며, 의대본관, 함춘회관 등이 대학로 쪽에, 치과대학이 창경궁로 쪽에 자리 잡고 있다.

기타

과거에 농업생명과학대학, 수의과대학이 있던 수원캠퍼스는 이들 단과대학이 2003년 관악캠퍼스로 이전함에 따라 매각이 추진 중이지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28] 서울대는 또한 전라남도 구례군광양시 등지에 200㎢에 가까운 연습림을 소유하고 있다.[29] 2008년 수원시 영통구에 차세대 융합 기술 연구원을 세웠으며,[30] 현재 인천경제자유구역 청라지구에 KAIST와 함께 국제 과학 복합 연구 단지를[31], 강원도 평창군에 그린바이오 첨단 연구 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32] 과거 서울대 사범대학 부속국민학교가 사용하던 서울 중구 을지로의 땅은 현재 국방부와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해당 토지의 크기는 약 4만㎡ 정도로 현재 미군 극동사령부 공병단이 점유하고 있다.[33]

대학 및 개설 학과

학부 과정

현재 16개 단과대학에 83개 학과(부)가 설치되어 있다.[34] 단과대학별 개설 학과는 다음과 같다. 단, 치의예과 및 치의학과는 2002년 학번 50명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학부 신입생을 받지 않으며, ‘치의학전문대학원’ 제도로서 대학원에 통합되었다. 다만 2014년 입시에서부터 치의학과 학석사 통합과정 모집단위를 운영하며 이 단위로 신입생을 선발하고 있다[35]. 또한 2009학년도부터는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의 개원으로 법학부의 신입생을 받지 않는다. 2008학년도 신입생부터는 주전공 외에 복수 전공, 부전공, 연합 전공, 연계 전공 등 다른 학과의 학점을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제2전공제(규범화 되지는 않음)가 사실상 의무적으로 실시되었다.

서울대학교 학부 과정 학과 목록은 다음과 같다:

  
  
  
  
  
  
  
  
  
  
  • 연합전공
  

대학원 과정

서울대학교병원과 함께 있는 연건 캠퍼스

일반 대학원과 전문 대학원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일반 대학원은 석사 과정은 5계열, 69학과(부), 28협동과정이, 박사 과정에는 5계열, 70학과(부), 29협동과정이 설치되어 있다. 전문 대학원은 현재 9개가 있다.[34] 서울대학교는 또한 2008년에 법학전문대학원 유치에 성공하여 법학전문대학원의 인가 및 정원에 관한 심의 기구인 법학교육위원회으로부터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의 정원을 150명으로 배정받았다. 전문 대학원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대학 시설

도서관

중앙도서관 통로의 야경

1946년 개교하면서 경성대학의 건물과 서적을 이어받아 개관하였다. 1949년 도서관 명칭을 ‘국립서울대학교중앙도서관’에서 ‘서울대학교 부속도서관’으로 변경하였으며, 1975년 1월 본관을 관악캠퍼스로 옮기면서 도서관 명칭을 ‘서울대학교도서관’으로 변경하였고, 1992년 다시 ‘서울대학교중앙도서관’으로 변경하였다.[36] 수원캠퍼스에 있던 농업생명과학대학이 관악캠퍼스로 이전함에 따라 2005년 농학도서관도 수원캠퍼스에서 관악캠퍼스로 이전하였다. 2006년 기준으로 분관으로는 사회과학도서관, 경영학도서관, 농학도서관, 법학도서관, 의학도서관, 치의학도서관, 국제학도서관 이렇게 7개가 있다. 중앙도서관은 관악캠퍼스 62동으로 대학 본부 뒤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2009년 기준으로 분관을 포함한 총 장서량은 약 4백만 권 이다.[37]

도서관 내 열람실은 재학생 전용 열람실과 일반인도 사용 가능한 열람실로 나뉜다. 그동안 국립 대학교라는 성격에 비추어 지역 주민도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도록 전 열람실이 일반인에게도 개방되면서 운영되어 왔는데 서울대학교 학생들의 열람실 부족으로 인해 학내에서 개방 여부에 따라 토론이 계속 있어 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열람실 부족 현상이 심화되자, 현재는 일부 열람실의 일반인 출입은 제한하게 되었다. 이에 지속적인 도서관의 시설 확충 필요성이 제기되어 2012년부터 제2중앙도서관 건립을 추진, 디자인 공모전을 통해 건물 디자인을 입안하였다. 서울대학교 본부는 제2중앙도서관 신축 기금 1000억원 모금행사를 펼쳤는데 관정 이종환 장학재단 이사장인 이종환씨가 600억원을 한 번에 기부하면서 제2중앙도서관 이름을 ‘관정도서관’으로 결정하였다. 졸업 동문인 반기문(1970년 동 대학 외교학과 졸업, 현 국제 연합 사무총장)도 금일봉을 모금하며 ‘반기문 스터디룸’도 생길 예정이다. 관정도서관은 2013년 여름에 착공하여 현재 공사중이다.

규장각

1962년 5월에 서울대학교 부속중앙도서관 안에 규장각 도서위원회가 설치되었다. 1990년 6월에 규장각 전용 건물이 준공되어 교내 G1 게이트 우측편, 현재의 위치에 자리하게 되었다. 한국학연구에 기초자료가 되어온 규장각 도서 이외에 17만 5천여 책의 고도서, 5만 여점의 고문서, 1만 8천여 점의 책판 등 총 30만 여점의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2006년 2월 1일에는 서울대학교 규장각과 서울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가 통합되면서 현재의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다.

1986년부터 고문서 간행사업을 시작한 ‘규장각 자료조사 사업’이 진행되어 오고 있으며 2001년부터 ‘한국학장기기초연구사업’을 진행하면서 한국학 관련 연구 과제를 지원하고 있다. 한국학에 대한 워크숍/심포지엄, 콜로퀴엄, 학술세미나 등의 학술행사 열고 있으며 시민강좌, 초서강좌 등 일반인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한국문화’, ‘규장각’, ‘Seoul Journal of Korean Studies’ 등 학술지를 발행하고 있으며 무료로 자료를 열람하고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현재 규장각한국학연구원장은 국사학과 교수 김인걸이다.

2011년 특별연구원 박 연규는 위키백과에 소정의 자본을 기부하면서 지식재산의 보호를 위해 노력했다. 법관 양성의 후속세대를 벗어나, 법무를 시작했고 법령을 다지며 헌법강령을 강조했다. 와이규(瓦貽奎)를 추진하면서 금융감독원의 부분 이월업무를 계획했다. 국제법과대학의 양성으로 도약과 국제재판소 설립, 국제와이기구, 와이거래소에 대한 연구진행을 하고 있다. 서울대학교와 국가지식재산 보호연구회가 협력하여 추진중에 있다. 현재는 특별연구원 박 연규외 8명이 발표한 와이서법(瓦貽瑞法), 와이저법(瓦貽貯法), 와이정법(瓦貽廷法), 와이축법(瓦貽蓄法)을 중점적 연구과제로 다루고 있다.

연구 기관

서울대학교의 연구 기관으로는 주관대학연구소, 본부직할연구소, 국가지원연구센터, BK21플러스 사업단, 그리고 HK 사업단이 있다. 본부직할연구소로서는 다음과 같은 연구소들이 있다.

  • 통일평화연구원
  • 생명공학공동연구원
  • 금융경제연구원
  • 아시아에너지환경
  • 지속가능발전연구소
  • 그린바이오
  • 과학기술연구원

미술관

서울대학교 미술관

1995년 미술대학 동양화과 이종상 교수가 미술관의 건립 건의안을 냈으며, 삼성문화재단의 기증으로 만들어졌다. 설계는 네덜란드의 건축가 렘 콜하스가 맡았으며, 지상 3층, 지하 3층, 연면적 1357평의 규모로 삼성물산에서 시공을 맡았다. 2003년 관악 캠퍼스 정문 옆에 착공하는 것을 시작으로, 2005년에 완공, 2006년 6월 8일에 개관하였다. 건물의 절반이 지면에서 떨어져 떠있는 것이 특징이다. 건물 내에 기둥이 전혀 없을 뿐 아니라 나선형 계단으로 각 층이 연결돼 있는 독특한 구조로 국내 미술계와 건축계의 주목을 받아왔다.[38] 현재 미술대학 디자인학부 권영걸 교수가 미술관장을 맡고 있다. 2007년 10월 9일에는 마르그레테 2세 덴마크 여왕이 방문하기도 했다.[39] 외부인은 유료 관람비를 지불해야 한다.

박물관

서울대학교 박물관은 관악캠퍼스에 있는 부속박물관이며, 1946년 대학의 설립과 함께 ‘서울대학교부속박물관’이란 이름으로 개관하였다. 이는 1941년 세워진 경성제국대학 진열관의 동숭동 건물과 유물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1975년 중앙도서관 6층으로 옮겨졌으며 이름도 ‘서울대학교 박물관’으로 변경되었다. 1993년 동원관 옆에 있는 현재의 신축 건물로 이전되었다.[40]

1층에는 고고역사와 현대미술 및 기획물을, 2층에는 인류민속과 전통미술을 전시하고 있다. 주요 상설 전시물로는 발해 소조불상, 근역화휘, 김홍도장승업의 작품을 비롯하여 각종 고고유적 출토물과 자연사 표본 등이 있다. 현재 박물관장은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이선복이다.

언어교육원

언어교육원은 1963년 서울대학교 동숭동 캠퍼스에서 어학연구소로 발족하여 2001년 언어교육원으로 승격하였다. 언어교육원은 서울대 구성원에게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 교육을 실시하며, 외국인에게 한국어 및 한국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이 밖에도 국가공인 영어능력 인증시험인 ‘TEPS’, ‘TEPS- Speaking & Writing’, ‘u-TEPS’ 등과 중국어, 일본어를 포함한 6개의 외국어 능력을 측정하는 ‘SNULT’를 연구 개발하고 있으며, 언어학 학술지 《어학연구》를 발행한다. 현 원장은 사범대학 영어교육과 김진완 교수이다. 산하에 외국어교육센터, 한국어교육센터, TEPS 측정 센터, SNULT 센터가 있다.[41] 언어교육원은 관악 캠퍼스 수의대와 행정대학원 옆에 있으며,[42] 연건 캠퍼스에서도 분원을 두어 교육을 하고 있다.[43]

기숙사

2007년의 관악사 운동장. 2009년 폐쇄 이후 2010년에는 새 거주동이 완공되어 있다.

서울대학교 관악사는 학부생과 대학원생 및 가족이 거주하는 기숙사이다. 1975년 8월 서울대학교 설치령 제 14조에 의거하여 관악사 5개동과 후생동 1개동 개사하였으며 당시 수용 인원은 남학생 970명이었다. 여학생 거주동은 1983년 2월에 개사되었고 관리동은 1989년 9월에 개사했다. 1996년 8월 대학원 가족 생활동이 200세대의 수용 규모로 개사하였다. 2007년 6월을 기준으로 관리동 1동, 후생동 2동, 학부동 12동, 대학원동 6동이 있고 1인실, 2인실로 구분되며 총 3,680명의 수용 규모를 갖추고 있다.[44] 현재 사감은 공과대학 조선해양공학과 교수 김태완이다.[45] 다른 학교들과 달리 특별히 제한된 출입 시간은 없는 것이 특징이다.[46] 서울대학교 관악사는 재건축 계획을 세웠으며 2010년에 신축 기숙사동이 완공되었다. 신축 기숙사는 방 크기를 두 배로 늘리고 방마다 욕실이 구비되었으며, 공연장ㆍ체육관ㆍ커피숍 등의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47] 공사는 2008년 2월 시작돼 관악사 구관과 운동장 부지에 8~9층 건물 7개 동이 들어섰으며 2010년 2학기부터 입주를 시작하였다. 관악사 구관은 현재 1300여 명보다 2천 명가량 늘어난 3500명의 사생을 수용하게 되었다.[48] 7억 9천여만 원이 투입된 관악사 운동장이 재건축 사업으로 인해 개장 1년 반 만에 없어지게 되어 학생들로부터 비판받고 있다.[49] 기숙사 식당은 식당 운영 시간 종료 후 다음날 아침까지 ‘도서관 열람실’ 기능으로 개방되고 있다.

서울대학교 연건사는 의과대학 등이 있는 연건캠퍼스에 있는 기숙사로 일반 사생동은 553명, 가족 생활동은 17세대의 수용 규모를 갖추고 있다. 함춘사는 130명, 국제 회관은 51명이 그 수용 규모이다.

기타 시설

  • 기록관 은 1997년 7월 서울대학교 기록 및 역사 보존을 위해 설치된 대학 사료실에서 출발하였으며, 2001년 9월에 현재의 명칭인 기록관으로 개칭되었다. 서울대학교와 관련된 역사 기록 및 행정 문서들을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있다. 기록관에 소장된 기록물은 서울대학교의 역사적 발전과 변천을 보여주는 학교사 자료를 포함, 학생 운동 관련 자료, 교수 및 동문 등이 기증한 개인 컬렉션 등이다. 일반인도 열람 및 복사가 가능하며(단, 개인 정보가 포함된 자료는 부분열람만 가능), 현재 약 5만여 건의 서울대 관련 기록을 보존하고 있다. 기록관 홈페이지를 통해 기록물을 기증할 수도 있다.
  • 기초교육원 은 2002년 대학생들의 기본 소양과 각 전공의 기초 지식을 함양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치됐다. 서울대학교 합격자를 대상으로 하는 영어(TEPS 평가), 수학, 물리 성취도 평가를 담당하고 있으며 성적에 따라 수준에 맞는 기초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핵심교양의 지정과 관리를 담당하고 있으며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주제와 수업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제공하고 있다. 현 원장은 인문대학 철학과 교수 허남진이다.[50]
  • 대학생활문화원 은 학생들의 심리검사 및 상담을 비롯한 각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1962년 2월 ‘학생지도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는데 1964년 의과대학 함춘회관에 있다가 1975년 관악캠퍼스 학생회관으로 장소를 옮겼으며, 2001년에 현재의 명칭을 대학생활문화원으로 변경하였다. 현 원장은 사회과학대학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혜란이다.
  • 평생교육원 은 온/오프라인 평생교육을 통해 동반자 사회의 지식나눔을 실천하는 기관으로 2010년 5월 개원하였다. 다양한 시민교양교육 프로그램과 원격교육을 활용한 전문자격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이 중 서울대학교 온라인 한국어교원 양성과정은 2013년 1월 기준으로 33개국 80여개 지역의 학습자에게 서비스되고 있다. 현 원장은 국어국문학과 교수 장소원이다.

위상

대한민국 정부가 시행한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수석들이 주로 서울대학교에 입학하고[51], 졸업생들이 대한민국 정·재계에 대거 포진되어 있다.[52] 많은 인재를 배출해내고 있는 동시에 대한민국 학벌주의의 정점에 서있으며, 이를 타파하기 위해 서울대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53]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이 초기에 수능·서울대 폐지를 추진한 적이 있었다.

영국의 유력 일간지인 타임스가 발표한 세계 대학 평가에서 서울대의 순위는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2005년 93위로 처음 100위권에 진입한데 이어, 2006년에 63위, 2007년에 51위,[54] 2008년 50위, 2009년 47위, 2010년 50위, 2011년 42위, 2012년 37위로 매년 순위가 올랐다. 2013년 QS 세계 대학 평가에서는 세계 35위에 올랐다.[55] 서울대는 2015년까지 세계 30대 대학에 진입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56]

2009년 서울대는 프랑스 국립광업학교가 실시한 《최고경영자배출능력에 따른 대학평가》에서 세계 500대 기업 CEO 중 9명을 배출해 세계 5위에 올랐다.[57]

학생 활동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및 동맹 휴업 총투표 결의 후 행진하는 서울대학생들

서울대학교 총학생회는 군부독재 정권 시대에서 민주화운동을 이끈 주요 대학 학생회 가운데 하나이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민주화의 달성과정에서 서울대학교 학생의 희생도 적지 않았다. 2007년을 기점으로 50대를 맞았으며, 3.8 여성의 날 행사, 4.19혁명 기념 대행진, 4.30 메이데이 행사, 봄 대동제(5월), 가을 대동제(10월), 총학생회 선거(11월) 등을 기획한다.[58] 2006년 황라열 총학생회장의 탄핵과, 송동길 부총학생회장의 사퇴로 한동안 단대 회장단 회의 체제로 운영되었다.[59] 선거는 매년 11월에 열리지만, 2006년 선거 당시 투표율이 낮아 2007년 4월에 재선거가 있었으며, 학생행진(운동권 좌파) 계열인 한성실 후보가 회장으로 당선되었다. 2007년 선거에서는 비 운동권 계열인 실천 가능 선거운동본부의 전창열 후보가 당선되었고, 이듬해 선거에서도 같은 선본의 박진혁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후 이른바 '식권파동', '서울대 총학생회 선거 도청 사건' 등을 겪으며 2009년 11월, 2010년 4월 두 차례의 총학생회 선거가 무산되며 2010년은 단과대학생회장연석회의로 운영되었다. 2010년 11월, 학생행진 계열로 사회대 학생회장 출신인 지윤이 총학생회장에 당선되었으며, 이후 2012년 3월에 선출된 사노위 계열로 법대 학생회장 출신의 오준규가 총학생회장에 당선되었다. 현재 2013년 4월에 당선된 산림환경학과 소속 김형래가 총학생회장을 맡고 있다.

학생 동아리는 본부에 소속된 단체와 단과대학에 소속된 단체로 나뉘어 있으며 본부 동아리의 수는 2006년 기준으로 103개이다.[58] 본부 동아리에 가입한 학생들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 그들의 취미와 특기를 연마한다.

서울대학교에는 체육 특기생이 없지만 야구를 비롯한 축구, 농구부 등이 존재한다. 1977년 창단한 야구부는 199패 1무 뒤에 2004년 첫 승을 거뒀으며,[60] 축구부도 역시 같은 해인 2004년에야 18년 만에 승리를 맛보았다.[61] 농구부도 기록은 좋지 않아, 2001년 이후로 무승을 기록하고 있다.[62] 다만 서울대 복싱부는 2001년부터 대학 복싱 동아리연합대회에서 종합 우승을 네 번이나 차지하는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63]

교내 언론

관악캠퍼스 75동에 자리 잡은 대학신문사
  • 대학신문 : 주간지 《대학신문》(大學新聞)은 1952년 2월 4일 한국 전쟁 피난 중에 창간되어 1953년 서울 동숭동으로 이전하였으며, 1958년부터 고교판을 발행한 적도 있다. 1960년 재정난으로 한때 발간이 중지되기도 하였지만 1975년 관악캠퍼스로 이전하여 오늘날까지 발행해오고 있다. 창간 당시에는 유료(500원)였고 한때 주 2회 찍어내던 적도 있으나, 현재는 매주 월요일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방학이나 시험기간에는 발행하지 않는다.
  • 서울대저널 : 월간지 《서울대저널》은 1995년 총학생회에서 《우리세대》란 이름으로 창간했다. 1997년 총학생회에서 벗어났으며, 2001년 《서울대저널》로 이름을 바꾸었다.[64]
  • 교지 관악 : 1990년에 창간, 1년에 두 번 매 학기 말에 발행되고 있다. 본래 총학생회 산하에 있었으나 2006년 총학생회회칙에서 해당 조항이 삭제되었다. 2014년 교지관악은 신입 기자 부족으로 폐간을 발표하였다.
  • 쥬이쌍스·스누나우 : 여성주의 자치언론 《쥬이쌍스》는 2002년 시작하여 꾸준하게 발행되고 있으며, 2001년 문을 연 인터넷 뉴스 ‘스누나우’는 2007년 종간하였다.[65]
  • 스누라이프(SNULife) : 1999년에 개설되었으며 학내 뉴스, 선거 소식과 역사, 교수들과의 대화 등의 내용을 제공하는 등 언론으로서의 기능도 일부 담당하고 있다. 스누라이프는 비공식적인 사이트이지만 실질적으로 학생들의 의사소통을 담당하는 제일 중요한 사이트로써 기능하고 있다.

동문회

  • 서울대학교 총동창회 : 서울대학교는 설립과 개교 이래로 학계, 법조계, 정계, 재계, 언론계, 문화예술계 등 사회 다방면에 걸쳐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고 33만 동문을 보유하였다. 서울대학교 총동창회는 시기별로 단독활동기(1946년 ~ 1968년 12월)와 연립활동기(1968년 12월 ~ 1976년 2월)와 종합활동기(1976년 2월 ~ 1979년 12월) 그리고 발전구축기(1980년 1월 ~ 현재)로 나눌 수 있다.

참고 문헌

  • 서울대학교 40년사 편찬위원회 편, 서울대학교 40년사, 서울대학교출판사, 1986
  • 서울대학교 50년사 편찬위원회 편, 서울대학교 50년사, 서울대학교출판사, 1996
  • 서울대학교 60년사 편찬위원회 편, 서울대학교 60년사, 2006, 2014년 03월 18일에 확인
  •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50년사 편집위원회 저,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50년 (1961-2011),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인류학과, 2011, ISBN 9788928501694
  • 서울대교수민주화운동50년사발간 저, 서울대학교 교수민주화운동 50년사, 서울대학교출판사, 1997
  • 차배근, 서울대학교 대학신문사 1,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ISBN 9788952105363
  • 최종고, 서울법대시대. 내가 본 서울대 반세기,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3, ISBN 9788952114112
  • 한기언, 서울대학교의 정신, 한국학술정보, 2006, ISBN 8953441447

주석

  1. 개교 원년에 관한 논란
  2. 서울대학교 통계현황
  3. 서울대학교 - 서울대소개 - 상징 - 정장
  4.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의 전신인 법관양성소의 설립 연도를 기준으로 삼았다.
  5. 서울대학교 연혁
  6. 한양대 설립자 김연준 리더십 연구. 신동아, 2007-12-26.
  7. 서울대학교 통계연보 2011년판, 2011년 4월 11일 기준.
  8. 서울대 60년사
  9. 서울대학교 연혁.
  10. 서울대학교 창설 관련 기록
  11. “개교60년 서울대 세계와 경쟁하라”. 경향신문. 
  12. “27년 만에 빛 본 1980년 ‘신동아’ 계엄검열 삭제 기사 ‘4·19에서 10·26까지 학생운동이 걸어온 발자취’”. 신동아. 
  13. “파란만장했던 학제 변천사”. 대학신문. 
  14. 서울대학교 발자취 2000년대
  15. 기존의 『서울대학교 설치령』 은 폐지(2011.9.6)되었다.
  16. 浪漫 저무는 東崇洞50년 <3> 文理大교정, 경향신문 1975년 1월 18일자 7면
  17. 浪漫 저무는 東崇洞50년 <1> 부속圖書館, 경향신문 1975년 1월 16일자 7면
  18. 浪漫 저무는 東崇洞50년 <5> 빨간 벽돌 講義室, 경향신문 1975년 1월 23일자 7면
  19. 浪漫 저무는 東崇洞50년 <完> 독특한 學風자랑, 경향신문 1975년 1월 30일자 7면
  20. 관악 캠퍼스, 왜 이렇게 무질서한 미로 공간이 됐나, 대학신문, 2008년 4월 12일.
  21. “00~06학번들의 캠퍼스 ‘공사판의 추억’”. 한겨레신문. 
  22. '원래 등잔 밑이 어둡다잖아요' 숨겨진 서울 산책 코스 세 곳”. 중앙일보. 
  23. 서울대의 얼굴, ‘빛이 난다’, 2006년 9월 16일.
  24. “관악구청 앞~서울대 정문 1500m ‘디자인 서울거리’ 추가 선정”. 시민일보. 
  25. 관악 캠퍼스 안내
  26. 서울대 “SHOW를 하라”, 동아일보, 2008년 4월 26일.
  27. 학부모 여러분, 서울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대학신문, 2008년 5월 4일.
  28. 김소민. “애물단지가 된 서울대 수원캠퍼스”. 헤럴드경제. 
  29. 강동호. “서울대 보유 토지 여의도의 23배 달해”. 서울경제. 
  30. 유제원. “광교 명품신도시에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개원”. 전자신문. 
  31. 문혜정. “서울대 (BT)ㆍKAIST (IT) 청라에서 만난다”. 한국경제. 
  32. “〈평창〉 서울대 연구단지 조성사업 윤곽”. 강원일보. 
  33. 나경수 기자. “서울대-국방부, 서울 을지로 '땅 싸움' 점입가경”. 뉴시스. 
  34. 서울대학교 요람/백서
  35. http://admission.snu.ac.kr/under/early 수시모집
  36.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연혁
  37. 출처자료: 2009 한국도서관연감
  38. `문화 향연'에 흠뻑 취한 서울대생 학부모들, 연합뉴스, 2008년 4월 26일.
  39. 마그레테 2세 덴마크 여왕, 서울대 미술관 방문, 연합뉴스, 2007년 10월 9일
  40. 서울대학교 박물관 발자취
  41. 언어교육원 공식 홈페이지, 원장 인사
  42. 언어교육원 공식 홈페이지, 오시는 길
  43. 언어교육원 공식 홈페이지, 외국어교육센터
  44. 서울대학교 관악사 현황 및 건물배치도
  45. 서울대학교 관악사 사감인사말
  46. 서울대학교 관악사 생활규정
  47. 서울대 기숙사 33년 만에 화려한 변신, 연합뉴스, 2007년 12월 30일.
  48. 관악사 구관, 2011년부터 3500명 수용, 대학신문, 2007년 5월 19일.
  49. 관악사 재건축 7억 9천 예산낭비, 대학신문, 2007년 5월 5일.
  50. 기초교육원 공식 홈페이지, 원장인사말
  51. 현원섭, "대입 수석 합격자 23인의 인생 스토리", 월간중앙 2월호 (2000)
  52. 강준만. “학벌 엘리트여, 학원에 감사하라”. 한겨레21. 
  53. “〈서울대 개교 60주년〉 6·25때 부산 피란… 91년에 첫 직선총장”. 서울신문. 
  54. 이덕원. “서울대 「더 타임스」 대학평가 세계 51위”. 대학신문. 
  55. QS World University Rankings 2013 공식 홈페이지 2013년 순위 표
  56. 윤보람. “서울대, 영국QS 세계대학평가서 35위... 역대 최고”. 연합뉴스. 
  57. 서울대 홍보부. “글로벌경영자 배출 서울대 세계5위”. 서울대학교. 
  58. 2007년 서울대학교 요람집
  59. 박성미 기자. “송동길씨 사퇴 발표”. 대학신문. 
  60. “서울대 야구부, 창단 28년 만에 첫 승”. 연합뉴스. 
  61. “서울대 축구승리 “18년만이네”…순수 아마팀…86년 후 1무가 최고”. 국민일보. 
  62. “꼴찌의 도전, 서울대 농구부”. 세계일보. 
  63. “서울대는 돌주먹…각종 아마복싱대회서 우승 휩쓸며 최강군림”. 스포츠칸. 
  64. 서울대저널 소개
  65. “마지막 편집장 되고 싶지 않았지만…”. 미디어오늘. 

바깥 고리

틀:서울특별시의 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