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돌궐
오노크 카간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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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oq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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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라 전투 직후 서돌궐의 강역. | ||||
수도 | 나베카트(여름수도), 수야브(본 수도) | |||
정치 | ||||
정치체제 | 카간국 | |||
카간 | ||||
인문 | ||||
공용어 | 고대 튀르크어 | |||
종교 | ||||
종교 | 텡그리교 |
서돌궐(西突厥)은 583년에 수나라의 이간책으로 독립한 돌궐의 한 세력이다.
개요
돌궐제국의 서쪽 가한이 분열 후 서역에 자리를 잡고, 실크로드를 통치하며 세력을 떨쳤다.
돌궐이 부흥한 후, 토문가한(土門可汗)의 아우 실점밀(室点密)이 서역을 정벌하여, 서역 철륵의 각 부족과 카를룩(葛逻禄), 바스밀(拔悉密) 등 여러 부족을 복속한다. 실점밀은 먼저 파사(波斯, 페르시아)와 연합하여 에프탈을 공략하고, 이후 또 비잔틴(拜占庭)과 결맹하여,페르시아를 공격한다.
583년, 수나라의 이간책으로 돌궐이 동서로 분열했다. 그 중의 서역 세력이 서돌궐이라고 칭해졌다. 당 태종에게 일단은 복속했지만, 태종의 사후에 독립해 세력 회복을 완수했다. 그러나 3대 고종이 본격적인 토벌군을 파견해, 657년에 멸망했다.
정치
10개의 부락으로 나누어 통치하고 10설(十設)이나 10성(十姓)이라고 했다. 각 부락마다 한 명의 장(長)을 두고 하나의 화살을 받았기 때문에 10전(十箭)이라고도 불렀다. 10성 부락은 쇄엽(碎葉)을 기준으로 동쪽의 5돌륙(咄陸)과 서쪽의 5노실필(弩失畢)로 다시 나누었다. 각 돌륙의 장은 철(啜)이라 하고, 각 노실필의 장은 사근(俟斤)이라 한다. 5돌륙은 처목곤률철(處木昆律啜), 호록거궐철(胡祿居闕啜), 섭사제돈철(攝舍提暾啜), 돌기시하라시철(突騎施賀邏施啜), 서니시처반철(鼠尼施處半啜)이고, 5노실필은 아실결궐사근(阿悉結闕俟斤), 가서궐사근(哥舒闕俟斤), 발새간돈사발사근(拔塞幹暾沙鉢俟斤), 아실결니숙사근(阿悉結泥孰俟斤), 가서처반사근(哥舒處半俟斤)이다.[1]
역대 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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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은 유연과 같이 최고 지도자에게 카간(可汗, 후일 몽고의 ‘칸’)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며, 서돌궐의 역대 카간은 다음과 같다.
- 葉護可汗(이스테미, 室点蜜, 시르지브로스, 디자브로스) (552년 - 575년)
- 達頭可汗(달두가한) (575년 - 602년)
- 泥利可汗(이리가한) (587년)
- 泥厥處羅可汗(이궐처라가한) (603년 - 611년)
- 射櫃可汗(사궤가한) (611년 - 619년)
- 統葉護可汗(통엽호가한) (619년 - 628년)
- 莫賀咄可汗(막하돌가한) (628년)
- 肆葉護可汗(사엽호가한) (628년 - 632년)
- 咄陸可汗(돌육가한) (642년)
- 乙毘射櫃可汗(을비사궤가한) (642년 - 651년)
- 沙鉢羅可汗(사발라가한) (651년 - 657년)당나라의 공격을 받아 사로잡힌다.
(739년, 서돌궐 멸망)
같이 보기
각주
- ↑ 《구당서》194권下 열전 제144下 돌궐下, 《신당서》215권下 열전 제140下 돌궐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