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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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토마스

토마스(Thomas, St Thomas the Apostle, Judas Thomas, Didymus) 또는 도마사도,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아람어로 ‘쌍둥이’를 뜻하며, 로마 가톨릭이 지정한 축일은 7월 3일, 동방 정교회가 지정한 축일은 10월 6일이다.

생애

복음서의 기록

토마스는 갈릴래아 출신으로 겐네사렛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는 어부로 일하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사도의 반열에 올랐다.

예수가 죽은 라자로를 되살리려고 베다니아로 가려고 하자 다른 사도들이 바리사이 파의 음모에 걸릴 위험이 있다며 모두 극구 만류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만은 “우리도 함께 가서 그 분과 생사를 같이 하자.”라고 말하였다.

최후의 만찬 때에도 예수가 사도들에게 이별을 고하자, 다른 사도들이 비통에 잠겨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 토마스만은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라고 한 예수의 말에 “주님, 저희는 당신이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라고 솔직히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라고 응답하였다.

그리고 예수와 더불어 게쎄마니 동산에 갔는데, 예수가 병사들에게 사로잡히자 다른 사도들과 같이 예수를 버리고 달아나 버렸다.

토마스는 자신이 없을 때 예수가 부활하여 다른 사도들에게 나타났다는 증언을 처음에는 “내 눈으로 그 분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그 못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내 손을 그 분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다”라며 믿지 못하였다. 여드레가 지나고 사도들이 모두 모여 있을 때 예수가 다시 나타나 토마스에게 “네 손가락으로 내 손을 만져 보아라. 또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하고 그 표징을 보여 주자 토마스는 그제서야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하고 대답하자 예수는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하였다.

전승에 따른 이후의 생애

인도 선교와 순교

전승에 따르면, 성령강림절 이후 사도들이 어디로 가서 사목을 한 것인지를 제비로 뽑았는데 토마스는 인도에 가도록 제비에 뽑혔다고 한다. 그런데 토마스는 그렇게 먼 곳까지 가는 것을 원치 않아 거부하였는데 인도의 서남단 지방인 마드라스 교외의 말라바르를 통치한 군다포루스의 상인 중 하나인 하반이라는 사람에게 예수가 나타나 토마스를 노예로 팔 테니 인도로 데려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토마스는 은 20냥에 팔려서 인도로 갔으며, 그곳에서 군다포루스 왕의 궁전을 짓는 일에 도움을 줌으로써 신임을 얻어 인도인들에게 세례를 주고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다고 한다. 최후에는 선교 활동을 벌이다가 힌두교 사제들이 던진 창에 맞아 순교했다고 한다. 그의 유해 중 일부는 인도에서 시리아에데사로 옮겨왔으며, 지금도 그 곳에 보존되고 있다.


1972년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하여 인도의 수호 성인으로 선언되었다. 이를 기념하여 토마스가 인도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곳이라는 크랑가노어에서는 성 토마스 순교 1900 주년 기념식이 거행되었다.

성모 승천설 관련

한편, 토마스는 성모 마리아가 건강이 부쩍 나빠졌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왔으나 너무 늦게 도착하여 이미 그녀는 죽고 난 후 사흘이나 지났다고 한다. 토마스가 마리아의 무덤 문을 열어 보니 그녀의 시신은 없고 시신을 쌌던 천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훗날 로마 가톨릭에 의해 성모 몽소승천의 교리가 탄생하게 된다. 《황금전설》에 따르면, 나중에 성모 마리아가 토마스에게 나타나 자신이 승천을 했음에 대한 징표로 자신의 허리띠를 주었다고 한다.

상징물

목수의 직각자, 창, 허리띠.

수호 성인

건축가, 예술가, 목수, 측량사, 재판관, 건축업자, 조각가.

바깥 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