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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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학교
Pusan National University


표어진리, 자유, 봉사
종류국립
설립1946년 5월 15일
총장김기섭
학부생 수21,613명 (2011.4.1)[1]
대학원생 수8,417명 (2011.4.1)[1]
교직원 수교원: 3,246명 (2011.4.1)[1]
국가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위치부산광역시 금정구 부산대학로63번길 2
부산광역시 서구 구덕로 179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삼랑진로 1268-50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금오로 50
교색청색      
녹색      
상징물독수리
웹사이트http://www.pusan.ac.kr/
Map 부산대학교의 위치

부산대학교(釜山大學校)는 대한민국 부산광역시 있는 국립 종합대학교이다. 1946년에 설립되었으며, 부산광역시 금정구 장전동의 부산 캠퍼스서구 아미동의 아미 캠퍼스,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의 양산 캠퍼스,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청학리의 밀양 캠퍼스로 이루어져 있다. 1946년에 두 개의 학부(지금의 단과대학)로 출발하여 2011년 기준으로 14개의 단과대학, 11개의 학부, 1개의 대학원, 5개의 전문대학원과 6개의 특수대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1946년 5월 15일에 국립 부산대학교는 인문학부와 수산학부(부산수산전문학교를 대학으로 승격시킨 후 종합대학의 수산학부로 편입) 두 개의 학부(단과대학)를 지닌 종합대학으로 설립인가받았다. 신설 국립종합대학교의 명칭은 '국립 부산대학'으로 확정하고 '인문학부'와 '수산학부'의 두 학부가 개설되었다. 인문학부는 인문학과, 사회학과, 무역학과였고, 수산학부는 어로학과, 제조학과, 양식학과였다. 대학명칭과 학부칭호는 1946년 6월 19일 국립서울대학교설립안이 발표되고, 1946년 8월22일 국립서울대학교 설치령이 공포된 이후부터는 그에 준하여 '국립 부산대학'은 '국립 부산대학교'로, '인문학부'는 '인문과대학'으로, '수산학부'는 '수산과대학'으로 개칭되었다.(이 때의 학부는 오늘날의 단과대학에 해당하는 것이였다. 1946년 3월 7일에 공포된 대학령 제2조 후단에는 인문계 학부와 자연계 학부가 병설될 때는 두 개 이상의 학부로써 종합대학교를 구성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경성제국대학도 의학부(1개과), 법문학부(4개과), 이공학부(7개과) 3개의 단과대학으로 구성된 학교였다.) 이후 1947년 7월 국립 부산대학교(종합대학)는 '국립 부산대학'과 '국립 부산수산대학'으로 분리되었다.

국립 부산대학교은 종합대학으로 설립인가 받았지만, 초창기 '인문과대학'과 '수산과대학'과의 내분으로 결국 1947년 7월 '수산과대학'이 분리되고(문교부도 인문과대학(국립부산대학)과 수산과대학(국립부산수산대학)에 대해 '이 두 대학은 분리된 대학으로 간주한다."고 함으로써 분리을 인정하였다.), 1948년 7월 '국립 부산대학교 인문과대학'은 '국립 부산대학'으로 문교부가 교명변경을 승인했고, '국립 부산대학교 수산과대학'은 '국립 부산수산대학'으로 변경됨으로써 '국립 부산대학'은 '단과대학'형식으로 운영될 수 밖에 없었다. 1953년 4월 1일에 국립 부산대학교설립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고, 4월 3일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같은 해 9월15일 국립학교설치령이 공포됨에 따라 다시 종합대학으로 승격되었다. 1979년 부마민주항쟁의 중심에 있었으며 1987년 학원민주화투쟁과 전두환 정권 퇴진 운동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2005년에 국립 대학교의 구조 개혁에 따라 밀양대학교와 통합하였다.

상징 동물은 독수리로 웅비의 탑에 독수리상이 있으며, 캐릭터로는 독수리를 형상화한‘산지니’가 있고 상징색은 청색과 녹색이며 교훈은 진리·자유·봉사이다. 약칭으로 부대(釜大)라고 부르거나 영문 약칭 PNU로 표기하기도 한다. 부산대의 또다른 이름으로는 효원(曉原)이 있다. 효원은 순우리말로는 새벽벌 또는 샛벌'이다. 상징 건물은 우리나라 최고의 현대건축가였던 김중엽의 작품인 인문관(옛 본관)과 무지개문, 웅비의 탑이다. 부산대학교를 상징하는 말 중‘문창(文昌)’이라는 말이 있고, 그 상징물로 문창대(文昌臺)가 있는데, 부산대학교의 문운(文運)을 상징한다.

연혁

1945년 ~ 1960년

옛 정문이었던 무지개문

1945년 광복이후 대학설립이 전국적으로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부산경남지역[주 1]에서도 1945년 10월에 부산대학교 설립기성회가 조직되었다.[2] 1946년 5월 15일에 대학명칭은 '국립 부산대학'으로 확정하고, 인문학부와 수산학부를 둔 국립종합대학교로 설립인가를 받았고 인문학부는 인문학과, 사회학과, 무역학과를 두고, 수산학부는 어로학과, 제조학과, 양식학과였다.[주 2] 대학명칭과 학부칭호는 1946년 6월 19일 국립서울대학교설립안이 발표되고, 1946년 8월22일 국립서울대학교 설치령이 공포된 이후부터는 그에 준하여 '국립 부산대학'은 '국립 부산대학교'로, '인문학부'는 '인문과대학'으로, '수산학부'는 '수산과대학'으로 개칭되었고,(이 때의 학부는 오늘날의 단과대학에 해당하는 것이였다. 1946년 3월 7일에 공포된 대학령 제2조 후단에는 인문계 학부와 자연계 학부가 병설될 때는 두 개 이상의 학부로써 종합대학교를 구성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1946년 7월에 2년제 예과를 설치하였으며 9월에 첫 입학식이 거행되었다.

문교부는 이에 앞서 1946년 8월에는 대학 총장으로 베커(Becker) 박사(미시간대학 이학박사, 연희전문학교 교장)가 임명되었지만 대학설립 당시의 특수한 사정 때문에 초대 총장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주 3] 한편, 개교 초기 '부산수산전문학교'를 흡수하여 설치되었던 수산학부는 1947년 7월에 부산수산대학으로 분리되어 나갔고, 1948년에는 문리·법·상학부 등 3개 학부가 개설되었다.[2] 부산경남지역에는 유일한 고등교육기관으로 1941년 3월 28일 설립된 관립부산고등수산학교(1944년 4월 '부산수산전문학교'로 교명변경)뿐이였고, 일제시대 고등교양과 지식인을 양성하는 대학이 전무한 실정이였기 때문에 해방후 어느 지역보다 인문계 중심의 국립대학 설립이 필요했던 지역이였다. 부산대학교는 처음에는 인문계대학을 중심으로 독립적인 국립 부산종합대학 설립안을 마련하였으나, 교사마련이 여의치 않아서 인문계대학을 신설하여 인문학부로 하고 기존의 관립전문학교(부산수산전문학교)를 대학으로 승격시켜 수산학부로 하여 국립종합대학교로 출범했지만, 1947년 7월 수산과대학이 분리(2008년 7월 문교부 분리승인)되어 나감으로써 일제에 의해 설립된 관립전문학교와는 완전히 독립된 해방후 우리나라 최초로 설립된 국립대학이라는 데 역사적 의의[주 4] [주 5]가 있다.

문교부는 1947년 10월 15일자로 대학령에 의해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으로 정식인가된 곳은 26개교뿐이므로 일반 국민들은 비인가대학들과 혼동하지 말 것을 주문하고 있었고,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정식 고등교육기관으로 인정된 26개 대학중에서 국립대학은 국립서울대학교(종합), 국립부산대학교(종합), 대구사범대학(전문학교에서 단과대학으로 승격)과 대구농과대학(전문학교에서 단과대학으로 승격) 4곳에 불과(대구의과대학은 도립)했으므로 해방후 우리나라 국립대학은 일제강점기하에서 관립전문학교로 설립된 후 1946년 9월 국립대학으로 승격된 2곳과 정부가 독자적으로 세운 부산대학교(1946년 5월15일)와 서울대학교(1946년 8월 22일) 2곳 뿐이였다.[3] 부산대학이 서울대학 보다 3개월 앞서 설립인가를 받았는 데, 이는 서울대학교 설립당시 "국대안 파동"에 따른 설립지연에 기인한 바 크다.

1946년 5월15일 종합대학으로 설립인가[주 6]된 후 1946년 7월 예과시험을 거쳐 1946년 9월 입학식을 거행하고 1년 정도 운영되다가 1947년 7월 수산과대학이 '국립 부산수산대학'으로 분리됨으로써 종합대학으로써 '국립 부산대학교'은 와해되었다. 그후 1948년 7월 '국립 부산대학교 인문과대학'의 명칭을 '국립 부산대학'으로 변경하고 1948년 9월 문리학부, 법학부, 상학부 3개의 학부를 설치하고 단과대학으로 운영되다가 1948년 12월말 안호상 초대 문교부장관이 부산대학에 들렀을 때 부산수산대학을 다시 수산과대학으로 하고, 부산대학을 문리과대학과 상과대학으로 개편하여 모두 3개의 단과대학으로 구성된 종합대학으로 재건하려는 신부산종합대학교안을 구상하고 1949년 1월 이범석 국무총리에게 보고했고, 이 국무총리의 찬성으로 국무회의에 제의하여 1949년 2월초 문리과대학,상과대학,수산과대학으로 구성되는 “국립 부산대학교 설립안”을 의결했다. 하지만, 안호상 문교부장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산수산대학측의 결사적인 반대와 진정으로 인해 이승만 대통령의 재가가 보류됨으로써 종합대학 재건안은 무산되었다. 1949년 10월 안호상 문교부장관이 부산대학을 우선 문리학부, 법학부, 상학부 등 3개학부로 운영하되 교사가 확보되면 각각 문리과대학, 법과대학, 상과대학으로 승격하여 3개의 단과대학으로 구성되는 종합대학으로 재구성하는 계획안을 수립하였지만, 문현동 신교지에 건립하려던 교사건축공사 문제로 큰 난관에 봉착하고 지지부진하게 되었다.

1952년 3월 '국립 부산대학' 제1회 졸업식에 참석한 백낙준 문교부장관이 "한국의 임시수도 부산에 일찍이 종합대학교가 1차 설립되었다가 와해된 지 수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종합대학교의 재구성이 완결되지 않고 여러 번 논의만 되어왔던 것은 이해할 수 없고 이 현안은 조속히 해결되어야 한다."며, 문교부장관을 중심으로 한 '부산대학의 종합대학교 승격 추진 기성회'가 결성되었다. 결국 1953년 4월 1일에 국립 부산대학교설립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고, 4월 3일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같은 해 9월15일 국립학교설치령이 공포됨에 따라 다시 종합대학으로 승격되었다.[주 7] 당시 문리과대학·법과대학·상과대학·의과대학·약학대학·공과대학 등 6개 단과대학으로 구성되었으며, 대학원도 같은 해에 설립되었다. 같은 해 11월 26일에 초대 총장으로 윤인구 박사가 취임하였다.[4]

1960년 ~ 1980년

5·16 쿠데타 직후인 1961년 9월문교부의 ‘국립대학 정비절차’에 의해 부산수산대학 및 부산교육대학이 부산대로 흡수되고[5], 문리과 대학의 6개 학과와 법과대학이 폐지되었다.[6] 그러나, 1962년 12월 30일의 각의에서 국립대학교 설치령을 개정하여 전국 6개대학 14학과의 부활과 2개 대학의 4학과 신설이 결정되었다. 부산대학교는 1963년 1월 16일 폐지되었던 법과대학이 부활되었고[7], 1964년 3월 1일 다시 국립학교설치령이 개정되어 약학과는 대학으로 승격되고, 또 폐과되었던 문리과대학의 학과중 사학과, 철학과, 수학과, 물리학과, 지리지질학과가 복과되고 정치학과는 법과대학이 법정대학으로 개칭되어 복과 편입되었다. 부산교육대학은 1963년, 부산수산대학은 1964년에 다시 분리되었다.[주 8]

1969년에 사범대학과 경영대학원이 신설되었으며 1972년에는 행정대학원, 1974년에는 교육대학원, 1975년에는 가정대학이 설치되었다. 한편 1979년 10월 15일에는 부산대학교에서 민주선언문이 배포되었고[8], 그 다음날에는 부산대학교 학생 오천여 명이 민주화 시위를 시작하여 부마민주항쟁이 발생했다.[9]이후 부마민주항쟁은 유신 체제가 몰락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10]

1980년 ~ 2000년

부산캠퍼스 제2도서관에 세워진 부마민중항쟁탑

1980년신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비상계엄을 시행하자 5월 9일에 부산대학교 단과대학 학생단은 구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11]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사회관 앞 소나무 위에서 기습적으로 정부를 규탄하는 유인물을 배포하기도 했는데[12] 교내에서 합법적인 시위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경찰에 구속되는 것을 피하기 위함이었다.[13]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내에서 시위를 하던 학생들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이라는 이유로 체포되었고,[14][15] 법정에서 1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는 사례도 있었다.[16]

1982년에 법정대학이 법과대학과 사회과학대학으로 분리되었고, 산업대학원과 예술대학이 설립되었으며 1989년에는 환경대학원이 신설되었다.

1983년에 학원자율화 조치 이후 1987년 3월부터 학교를 민주화할 것을 요구하는 학원민주화투쟁이 시작되었다. 매일 만 여명의 대학생들이 시위에 참여하며 5월까지 진행되었던 이 투쟁은 이 시기 학원민주화운동의 성공사례로 일컬어진다.[17] 6월 항쟁 당시에 부산대학교 학생들의 주도적인 참여로 부산 지역에서 학원민주화투쟁과 정권퇴진운동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18] 6월 항쟁을 기점으로 학내에서도 교수들의 직선제 총장 선출 요구에 따라 1991년에 첫 직선제 총장 선거로 장혁표 교수가 14대 총장으로 선출되었다.[19] 1999년 6월에는 첫 외부 인사 출신의 총장으로 박재윤 순천향대학교 교수가 16대 총장으로 선출하였다.[20][21]

1990년대에 기계공학 관련 학과 중심의 공과대학이 국책지원 공과대학으로 지정되어[22] 공과대학이 이전보다 획기적으로 발전하게 되었으며 기계공학 관련 학과 5개 중 3개가 높은 취업률를 기록하여 당시 기계공학과는 영남대 기계공학과와 함께 전국 최대 시설과 수준이라는 평을 받기도 하였다.[23] 한편, 전국국공립대 교수협의회[24]와 부산대교수협의회가 Brain Korea(두뇌한국21) 사업에 대한 반대에 앞장서 각 대학에서 모인 교수들이 부산대학교에서 집회를 벌이고 성명을 발표하여 찬반 논란을 가열시켰으며[25] 이러한 반발은 두뇌한국21 사업이 전면 수정되는 원인이 되었다.[26]

2000년 ~ 2010년

2000년대에 들어와서 오랜 해결 과제로 지적된 제2캠퍼스 건립 문제와 부산대학교의 역외 이전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당시 부산대학교의 학생 1인당 교지 면적은 26.44m²(8평)으로 전국 9개 국립 대학교의 평균 수치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캠퍼스 과밀화 문제가 심각하였으며 대학 측은 1999년부터 전담팀을 구성하여 제2캠퍼스 건립이 해결책으로 제시되었다.[27] 같은 해 7월에 부산광역시와 함께 건립 부지 선정을 시도하였지만 부산 시내 용지를 선정하지 못하였고[27] 교육부에 캠퍼스를 경상남도 양산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신청하였다.[28] 그러나 부산광역시와 부산 시민들이 이전 방안에 반대하면서 지역 사회의 분열로까지 비화되었다.[29] 특히 부산광역시와 일부 부산 지역 국회의원들이 역외 이전을 반대하며 교육부와 부산대학교에 압력을 행사하자 2002년 1월 2일에 당시 박재윤 총장은 단식 투쟁을 벌이게 되었고[30] 교육부가 중재에 나서게 된다. 결국 2002년 1월 9일에 부산대학교 의·치과대학을 양산시로 이전하는데 합의하여 제2캠퍼스 이전 문제는 해결되고 양산캠퍼스는 2003년 8월에 조성 공사가 시작되었다.[31]

2005년부터 교육인적자원부가 국립대 구조 개혁을 본격화하자 부산대학교는 밀양대학교와의 통합에 나서게 되고[32] 2005년 10월에 통합을 승인 받아 2006년 3월에 밀양대학교 부지에 부산대학교 밀양캠퍼스를 출범시켰으며 나노과학기술대학과 생명자원과학대학 2개 단과대학이 밀양캠퍼스에 설치되었다.[33] 그러나 통합과 관련하여 부산대학교생이 되기 위한 방법을 두고 기존 밀양대학교 학생들은 4월 6일부터 무기한 수업 거부를 시작하였고 한 달 뒤 밀양대학교 학생회 측이 부산대학교 본부 측의 제시안을 받아들임으로써 갈등은 일단락되었다. [34]

2006년 3월에는 밀양캠퍼스에 생명자원과학대학을 신설하고 나노과학기술학부를 나노과학기술대학으로 승격시켜 밀양캠퍼스로 이전하였다. 기존의 의과대학 간호학과가 간호대학으로 승격되었고 스포츠과학부가 신설되었다. 의과대학 의예과와 치과대학 치의예과는 2006학년도부터 의학전문대학원과 치의학전문대학원으로 전환되었다. 2008년 3월에 한의학전문대학원이 개원하였고[35] 2009년에는 법학전문대학원이 개원하였다.[36]

2008년에는 국립철도전문대학,[37] 창원대학교와의 통합이 논의되었으나 무산되었다.[38] 2009년에 관광컨벤션학부가 설립되었으며, 제2캠퍼스인 양산캠퍼스가 개교함에 따라 부산대학교는 부산-양산-밀양 3원 캠퍼스 체제를 구축하게 된다. 부산캠퍼스의 한의학전문대학원과 아미캠퍼스의 의학전문대학원, 치의학전문대학원, 간호대학이 양산캠퍼스로 이전하였다.[39] 2010년 10월에 상과대학을 경영대학과 경제통상대학으로 분리하여 독립 학부였던 관광컨벤션학부가 경제통상대학으로 흡수되었다.[40]

2011년 ~ 현재

효원문화회관 신축 및 구조 개선 공사 중인 부산캠퍼스 정문 (2008년 12월)

2011년 6월에 있었던 19대 총장 선거에서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사전선거운동으로 인한 교육공무원법 위반을 이유로 부산대학교가 추천한 후보들에 대해 임용 제청을 거부하였고[41][42] 이후 재선거를 실시하여 김기섭 교수를 19대 총장으로 선출하였다.[43][44]2011년 8월 11일부터는 부경대학교와의 통합 논의가 시작되기도 했지만[45] 부산대학교 총학생회,[46] 부산대학교 교수회가 통합 반대 성명을 발표하는 등 학교 구성원 간의 갈등이 고조되었고,[47] 2012년 19대 총장에 취임한 김기섭 교수는 부경대와의 통합에 부정적인 입장과 함께 대학 통합 보다는 지역 거점대학으로서의 위상 확보와 내실 구축에 주력해야 한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48]

2012년 이후 부산대의 내우외환이 극심해졌다.[49] 먼저 3월 30일 교육과학기술부에서 대학 선진화를 근거로 요구한 "총장 직선제 폐지"를 부산대가 거부하고 이로 인해, "대학 교육역량강화 지원사업 선정"에서 부산대가 탈락하면서 국고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50] 이후 총장직선제는 2012년 8월 21일 교내 교무회의에서, 총장선출을 총장임용 추천위원회에서 선정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학칙개정안을 의결하면서 폐지 수순을 거치게 되었으며, 이에 항의한 부산대 원로 교수 10여명이 총장실을 점거하고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51]박남철 부산대병원장의 사퇴로 공백이 생겼던 부산대병원 신임 병원장에 정대수(57) 신경과 교수가 선임됐다. 부산대병원은 1일 정대수 교수가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제 25대(법인 제8대) 병원장의 임명 승인을 받았다고 밝혔다. [52]

교육

교육 이념과 비전

부산대학교의 교육 이념은 진리·자유·봉사이다. 더 나아가 진리·자유·봉사의 교육이념과 대한민국 교육의 근본 이념에 입각해 학술이론과 응용방법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에 교육 목적을 두고 있다.[53] 특히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 속의 명문대학"이라는 비전 하에 국내 상위 5개 대학 진입과 5개 이상의 학문 분야에서 세계 100위권에 진입하는 것을 대학의 발전목표로 삼고 있다.[54]

한편, 2012년 5월 10일 개교 66돌 기념식과 함께 진행된 "부산대 비전 2030" 선포식에서 올해부터 2030년까지 세계 100대 명문대학에 진입하는 목표 달성을 위한 3단계 계획을 발표했다.[55]


교육 제도

정규 학사 과정

부산대학교의 정규 학사 과정은 부산대학교 학칙 제62조와 부산대학교 교육과정 편성 및 운영규정에 의하여 편성된다. 그 구성은 교양교육과정, 전공교육과정, 일반선택교육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교양교육과정의 과목들은 반드시 이수하여야 하는 교양필수과목, 학생이 수강을 선택할 수 있는 교양선택과목으로 구성된다. 교양 필수 과정은 6학점을 반드시 이수하여야 하나, 공학교육인증과 관련된 학과는 '공학작문 및 발표' 과목을 필수과목으로 하고, '창의적사고와 글쓰기', '열린생각과 말하기' 과목은 이수하지 않는다. 한편, 교양선택과정은 다시 핵심교양과목과 일반교양과목으로 나뉜다. 핵심교양과목은 6개의 영역으로 분류되며 재학생은 6개의 영역 중 5개의 영역에서 각각 1개 이상의 과목을 수강하여야 한다. 이와 별도로 핵심교양과목은 반드시 1과목, 3학점 이상을 이수해야 한다. [56]

전공교육과정에 포함된 전공과목은 크게 최소전공과 심화전공으로 구분하고, 최소전공은 다시 전공기초와 전공일반으로 구분하며, 전공일반은 전공필수와 전공선택으로 구분한다. 전공교육과정은 각 과목의 개설시기에 따라 이수한다. 참고로 복수전공, 부전공, 연합전공, 교직 중에서 하나를 이수하지 않는 학생은 반드시 심화전공을 이수해야 한다.[57] 한편, 2001학년도 신입생부터 최소전공인정학점제를 시행되면서, 이 제도가 시행되는 단과대학의 최소전공인정학점은 36학점, 사범대학은 42학점으로 통일되었다. 그러나 최소전공인정학점제를 시행하지 않는 단과대학도 있으며, 이들 단과대학의 경우 이수해야 하는 전공과정 학점이 다르다.[57]

공학교육인증제도

부산대학교는 2003년 공과대학 8개 학과를 대상으로 한국공학교육인증원(ABEEK)의 공학교육인증을 신청하여[58] , 2005년 1월에 새로 7개의 공학인증프로그램을 인증받았다.[59] 2011년 기준으로, 공과대학 내의 4학부, 1전공, 4학과[주 9]에서 공학교육인증제도에 의한 인증프로그램이 실시되고 있다.

공학교육인증제도로 인증받은 학부와 학과 또는 전공은 한국공학교육인증원의 인증 기준에 맞춰 교육 프로그램을 구성한다.[60] 공학교육인증제도를 시행하는 곳의 학생은 먼저 인증프로그램에 따라 전공을 이수하는 전문과정과 인증프로그램을 포기하는 일반과정을 두고 선택할 수 있다. 전문과정을 이수하는 학생은 한국공학교육인증원과 해당 인증프로그램에서 제시하는 인증기준을 동시에 충족하여야 하며, 정해진 인증프로그램의 교과목 커리큘럼에 따라 과목을 이수해야 공학인증을 받을 수 있다.[61] 전문과정을 이수한 졸업생은 학적부와 각종 증명서 등에 인증 사실이 기재되며, 증명서에서 전공을 표기할 때, 인증프로그램 이수자는 전공 명칭에 ‘전문’을 추가하여 표기한다. 그러나 일반과정을 이수한 졸업생은 전공 명칭에 ‘일반’을 추가 기재해 전문과정 이수자와 차이를 두게 된다. [62]

공학교육인증제도는 인증프로그램을 이수하는 학생이 엔지니어로 일하는 현장에서 필요한 능력과 자질을 배우고, 기업에 따라 취업 자격 시험에서 면제를 받을 수 있는 등 취업경쟁력을 확보할 목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63] 그러나 전자전기공학부가 제도 운영의 현실적인 어려움과, 공학인증 자체의 실질적인 혜택이 미비한 점을 들어, 2012학년도 8월 졸업생을 끝으로 공학인증프로그램 운영을 중단하기로 하였고,[64] 건축공학과도 비슷한 이유를 들어 공학인증제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65]

장학 제도

부산대학교는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입학성적우수자 특별장학금, 사회적 배려 장학금 등 각종 장학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2011학년도부터 故 남안 강처녀 여사의 출연기금으로 조성된 남안장학금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66]

캠퍼스

부산대학교가 관리하는 여러 캠퍼스의 위치

부산대학교는 1946년 설립 당시 부산에 소재했지만 경남의 국립대였다. 부산은 당시 경남의 도청소재지로서 경남에 소속된 시였으나 1963년 정부직할시로 승격됨으로써 경상남도에서 독립했다. 개교장소는 처음에 서구 대신동의 임시 교정이었으나 윤인구 초대총장 때인 1954년 장전동 이전이 결정되었고 1955년 지금의 부산캠퍼스로 이전했다. [67] 양산캠퍼스는 2002년 1월, 박재윤 총장의 재임 기간 중에 조성이 확정되었다. 2003년 7월 착공에 들어갔고 2009년 3월 양산캠퍼스를 개교했다.

또 2005년 4월 밀양대와의 통합합의에 따라 2006년 3월 밀양캠퍼스가 문을 열었다. 이로써 부산대는 경남-부산 분리 후 40여 년 만에 경남지역에 재진출하게 되었다.[68] 2012년 기준으로 부산대학교에서 관리하고 있는 캠퍼스는 부산캠퍼스, 아미캠퍼스, 양산캠퍼스, 밀양캠퍼스가 있으며, 이 중 학부생이 재학 중인 곳은 부산캠퍼스, 양산캠퍼스, 밀양캠퍼스 3곳으로 이 세 캠퍼스는 부산-양산-밀양을 잇는 캠퍼스 벨트로 불리기도 한다.[69]

부산대학교의 각 캠퍼스는 분교의 개념이 아닌 각 학문영역별 기능을 각 캠퍼스에 나눠 캠퍼스별 특성화를 꾀하고 있다. 캠퍼스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부산캠퍼스는 종합 연구 중심 대학으로, 양산캠퍼스는 양산부산대학교병원와 연계되어있는 의·생명과학 특성화 캠퍼스로, 밀양캠퍼스는 나노와 바이오 분야가 특성화된 캠퍼스로 재편되었다.[69]

하지만 캠퍼스 크기에 맞지 않는 학생 수와 교통편 부족으로 인해, 밀양캠퍼스와 양산캠퍼스에 대학촌이 형성되지 않으면서 공동화 현상이 심화되었다. 특히, 밀양대 통합 이후, 가치가 하락하던 나노과학기술대학이 밀양캠퍼스로 이전한 이후 발생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2012년 부터 대부분의 수업을 부산캠퍼스로 이전하여 진행하게 되었다.[70] 또한, 밀양대와의 통합 이후 관리권이 부산대학교로 넘어왔던 내이캠퍼스 부지는 산학협력과 국제화 기능이 특화되도록 리모델링할 예정이었으나, [71] 2011년 12월 22일 기획재정부로부터 캠퍼스 부지의 활용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 용도가 폐지되고 관리권이 부산대학교에서 국가로 넘어갔다. [72] 양산캠퍼스의 경우 편의시설 부족과 아미캠퍼스 간 이동시간이 너무 길어 학사일정운영 차질이 일어나고 있어, 현재 부산대의 멀티 캠퍼스 정책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73][74]

한편 부산대학교병원이 같이 위치하고 있는 아미캠퍼스는 2017년까지 총사업비 2,180억원을 들여 외상전문센터, 호흡기전문질환센터, 보건의료연구센터, 지원시설동 등을 단계적으로 신축, 리모델링하고 병동을 대폭 확충할 예정이다. [75][71]

부산캠퍼스

부산캠퍼스 제도관 앞에서 찍은 파노라마 사진 (2009년 7월)

부산캠퍼스는 부산광역시 금정구 장전동 일대에 조성된 캠퍼스이다. 경우에 따라 장전캠퍼스라고 불리기도 하며, 2003년에는 대학공모를 통해 금정캠퍼스로 명칭을 정하기도 했다. 금정캠퍼스의 명칭은 캠퍼스가 금정산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는 데에서 유래했다.[76]

부산대학교 본관
부산대학교의 국제지원센터인 운죽정

1946년 개교 당시 제대로된 교사가 없어 서구 대신동에 임시로 조성한 건물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1955년 윤인구 초대 총장 때 미군의 원조로 장전동 일대에 현재의 캠퍼스 부지를 조성할 수 있었다.[77] 부산캠퍼스에는 학교 개교 초기에 건설된 고 김중업의 건축 작품이 다수 있는데, 특히 현재 인문관으로 쓰이고 있는 구 본관 건물은 김중업의 첫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78]

부산캠퍼스에는 대학본부 및 대부분의 학부, 대학원이 설치되어 있으며, 부산캠퍼스 외부에는 상당히 유동인구가 많은 상권이 형성되어 있다.[79][80] 부산캠퍼스에서 60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부산 도시철도 1호선 부산대역이 있으며, 캠퍼스 외부에 양산, 김해시의 시내버스를 포함한 많은 시내버스 노선이 운영되고 있다.

한편, 부산 금정구 마을버스 7번 노선은 부산캠퍼스의 순환버스 역할을 하고 있으며, 도시철도역에서 다소 거리가 먼 캠퍼스 꼭대기까지 재학생을 수송해주는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다.

주요 교내 시설

도서관

부산대학교 도서관은 캠퍼스의 기능에 맞게 도서관이 재편되어 있는데, 부산캠퍼스에는 제1도서관, 제2도서관, 법학도서관, 건축도서관이 있고, 양산캠퍼스에는 의생명과학도서관, 밀양캠퍼스에는 나노생명과학도서관 등이 있다. 또한 소장자료 검색, 원문 제공, 타기관의 자료 검색 및 복사 신청 등 대부분의 서비스를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제공하고 있다.[81] 주제자료관 외에 고전자료실, 멀티미디어센터, 북한자료실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으며, 2001년 UN기탁도서관 지정을 시작으로, 2006년 EU 자료기증 협정 체결에 이어, 2007년 IMF 기탁도서관 지정에 의한 EU/UN/IMF자료, 주한미대사관과 공동파트너십 체결에 의한 ‘Window on America’자료, 그 외 국제교육학프로그램자료, 독서치료프로그램자료 등 전문화된 자료를 별도 코너를 마련하여 비치하고 있다.[82][83]

제1도서관에는 문학예술자료관, 인문사회과학자료관, 과학기술자료관, 예체능자료관이 있고 제2도서관에는 폐가제로 운영되는 보존서고, 북한자료실, 대학원열람실 등이 있다.[83]


효원문화회관 및 BTO사업 관련 사건사고

효원문화회관

2007년부터 구상된 이 건물은 국립대학으로는 최초로 BTO 민자사업으로 추진한 것으로 부산캠퍼스의 옛 학교 체육관 부지에 항공관 건물 일부를 헐어 지어진 것이며,[84] 2012년 3월 1일부터 NC백화점 부산대점이 입점해 운영중이다.[85] 2009년 2월‘효원 굿플러스’라는 상업명칭으로 개관했으며, 개관 당시 효원문화회관에는 평생교육원, 총동문회 등 학교 관련 기관과 은행, 패밀리레스토랑, 각종 의류점, 멀티플렉스 영화관, 병·의원이 들어섰다. 이 건물이 들어서는 대가로 부산대학교는 민간사업주로부터 체육관, 제12공학관 등의 부산캠퍼스의 신축건물 건립 및 정문 주변의 환경을 개선하였고, 민간사업주는 문화회관의 사용권을 30년간 가지게 되었다.[86] 하지만 건립을 진행하던 당시 실시계획이 승인 안 된 상태에서 사업 진행을 진행해 법을 위반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으며[87], 대학교 부지에 상업시설이 들어선다는 것에 대해 일부 교수와 학생회 측이 전면 재검토를 대학본부측에 요청하기도 했다.[88]

한편, 개장 이후 상권 미활성화로 인한 극심한 적자에 시달리자[89] 운영·관리 민간사업체인 효원이앤씨가 적자를 보존하기 위해 유통전문업체인 이랜드리테일과 쇼핑몰 위탁계약을 맺었고, 이후 내부 리모델링을 이유로 2011년 9월 11일부터 영화관인 롯데시네마를 비롯해 대부분의 효원굿플러스 내 상점은 휴업에 들어갔다.[90] 이후, 위탁계약을 맺은 이랜드 측은 비어있는 상점 자리를 리모델링해, 'NC백화점 부산점'으로 오픈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고, [91] 2012년 3월 1일, 대부분의 리모델링을 마치고 NC백화점 부산대점으로 다시 개장하였다. [85]


BTO사업 관련 사건사고

2012년 5월, 수익형 민자사업으로 추진돼왔던 효원문화회관(효원굿플러스)의 시행사 효원이앤씨가 대출금 400억원을 갚지 못해 사업 해지 위기에 빠지면서, 부산대학교가 이자를 포함해 총 800억원의 빚을 부담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92] 사업 시행 전이었던 2006년에 학교본부 측이 학교 구성원과의 논의도 거의 없이, 시행사 간의 사업이 해지될 경우 학교 측이 해지로 인한 손실 분을 기성회비 등을 이용해 부담하는 것으로 실시협약을 맺은 것이 원인이 되었다.[93] 이후 5월 11일 부터 검찰에서는 김인세 총장 직무 당시, 이 사건 말고도 여러 비리와 특혜 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 교내본부 등을 압수수색하였고,[94] 4월에는 대학본부 측이 감사원에 감사를 자청해 2주간 이 사건과 관련해 감사를 받았다.[95] 또한, 이러한 비리 의혹은 박남철 부산대병원장의 연임 문제로도 이어졌다. 부산대병원 측에서 편법으로 병원 수익을 학교 측으로 지원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부산대병원의 일부 의사들이 병원장 연임에 반대하는 서명에 들어가는 등 학교 구성원 간의 내분이 심화되었다. [96] 학교와 지역사회에서는 현재 상황이 개교 이래 최대 위기로 간주되었으며, 이에 대처하기 위해 5월 21일, 확대비상대책위원회가 조직되었다.[97]

이 문제로 연임에 성공했던 박남철 부산대병원장은 사퇴했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부산대 교수들로부터 고발당한 김인세 전 총장은 2012년 7월 10일 부산지방검찰청에서 업무상 배임혐의와 관련한 피고발인 신분으로 소환조사를 받았고,[98] 효원이앤씨 측에서 1억원 가량의 뇌물을 받은 정황이 포착되어, 7월 31일 구속 수감되었다. [99] 이후, 김인세 전 총장이 효원이앤씨 측에 먼저 금품을 요구해 1억원 가량의 금품을 받은 혐의와 학교 기성회비를 대출 담보로 제공한 혐의가 확인되면서, 8월 17일 구속기소되었다. 그리고 앞서 일부 의사들이 연임 반대에 나섰던, 박남철 부산대병원장에 대한 수사도 진행되었다. 수사 과정에서, 박 병원장은 김인세 전 총장과 공모하여 병원자금 18억원을 효원이앤씨가 빌린 대출금의 이자 지급에 쓴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김 전 총장에게 뇌물을 제공한 효원이앤씨 대표는 뇌물 제공 혐의가 공소시효 말소로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불구속 기소 처리되었다.[100] 이후 1심 첫 공판에서 김 총장은 수뢰혐의를 인정했으나, 업무상 배임 혐의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피해자가 없다는 논리로 부인했다. [101] 한편 부산지법은 2013년 2월 1일 부산대 교내 수익형 민자사업(BTO)과 관련해 업자로부터 억대의 뇌물을 받고 특혜를 준 혐의로 기소된 김인세(65) 전 총장에게 징역6년을 선고했다.[102]

밀양캠퍼스

밀양캠퍼스 행정지원본부동

밀양캠퍼스는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청학리 일대에 조성된 캠퍼스로, 기존의 내이캠퍼스와 구분하기 위해 "밀양청학캠퍼스"라고 불리기도 한다. 원래 내이동에 있던 밀양대가 청학캠퍼스로의 이전을 추진하여 2005년 이 캠퍼스로의 이전이 완료된 상황이었다. [103] 밀양대가 통합된 이후 부산대학교의 캠퍼스 특성화 정책에 따라 나노과학기술대학, 생명자원과학대학이 캠퍼스에 설치되었으며[33], 2009년에는 기숙사를 확충하기 위한 공사를 시작해 2010년 3월 31일 '청학관' 준공식을 가졌다. [104]

신축 기숙사인 청학관은 연면적 6,505㎡에 지상 7층의 규모로 국고와 기성회 재원 총 105억여 원을 투입해 1년 동안의 공사를 거쳐 완공됐다. 명칭은 캠퍼스가 위치한 삼랑진읍 청학리의 지명을 딴 것이다. 2인실 144실, 1인실 24실, 가족형 6실로 총 174실에서 318명을 수용할 수 있는 기숙시설과 공동세탁실, 행정실, 다목적실 등의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또한 밀양캠퍼스가 경암반 지역임을 감안, 토목공사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형을 고려한 필로티 구조로 건립했으며, 기숙사 원생간의 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해 전면과 필로티에 휴게공간을 확보했다.[105]

양산캠퍼스

양산캠퍼스에 위치한 의학전문대학원
(2011년 11월)

양산캠퍼스는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일대에 조성된 캠퍼스이다. 부산대 캠퍼스 이전은 25년의 숙원사업으로서 2002년 1월 박재윤 당시 총장 때 양산캠퍼스 조성이 확정되었다. 양산캠퍼스는 부산대학교 제2캠퍼스라고도 불리며, 2003년에 명칭 공모를 통해 정해진 명칭은 부산대학교 열림캠퍼스이다.[76] 2003년부터 양산신도시 부지에 공사를 시작해[31] 2009년 3월 1단계 공사를 마치고, 캠퍼스를 개교했다. 2009년 6월에는 국토해양부, 건설교통기술평가원의 지원을 받아 분산공유형 지진실험센터를 완공하였다. 이 실험센터는 세계 최고수준의 다지점 진동대 실험시설로 세계에서 가장 긴 지점의 지진실험이 가능하다. [106] 현재 대학단지 내에는 한의학전문대학원, 의학전문대학원, 치의학전문대학원, 간호대학이 설치되어 있고, 단지 옆에 있는 병원단지에는 양산부산대학교병원과 그 부속건물들이 건립되어 있다.[107] 현재 양산캠퍼스 단지 주변에는 부산 도시철도 2호선 부산대양산캠퍼스역이 조성되어 있고, 이 역과 캠퍼스 사이를 오가는 셔틀버스가 운영되고 있다.[108]

한편, 부산대 측은 2008년까지 양산캠퍼스 조성을 완료하려 했으나, 부지조성과 사업비 확보 지연을 이유로 2010년 말로 한 차례 연기했고, 이후 2010년 8월에 부산대 측이 양산시에 사업기간 연장 실시계획인가를 승인받으면서 2012년 말로 준공시기를 늦췄다.[109]


부지대금 관련 기부금 반환소송

2003년 10월 15일, 부산의 중견기업인 주식회사 태양의 송금조 회장이 학교 발전을 위해 부산대에 기부하기로 한 305억원 중 먼저 100억원을, 당시 총장이었던 김인세 총장에게 전달하고, 나머지 205억원은 2004년부터 2009년까지 6차례에 나눠 발전기금으로 기부하겠다는 약정을 학교 측과 체결한다.[110]이에 학교 측은, 같은 해에 그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고,[111] 다음 해에는 학교 본관 옆에 그의 동상을 세워 그의 기부를 기렸다.[112] 그러나 2008년 송금조 회장이 자신의 기부금 중 일부가 자신의 기부 목적이었던 "양산캠퍼스 부지매입금"이 아닌 "캠퍼스 건립비, 교수 연구비 등"으로 전용됐다고 주장하며 학교 측을 상대로 기부약정에 대한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을 제기하였다. [113] 이 소송은 양측의 첨예한 법적 공방으로 이어졌고,[114] 1심과 2심 재판부는 장기간 법적 공방으로 인한 기부 문화 훼손을 우려해 양측 간의 조종을 시도하였으나 무산되었다.[115][116][117]

이후 2009년 5월 7일 1심에서 재판부는 기부금을 내기로 약정한 이상 남은 기부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판단으로, 원고의 소송을 기각했으며, [118]2심 판결에서도 재판부는 "원고와 피고가 기부약정 당시 사용용도를 '부산대 캠퍼스 건설 및 연구지원 기금'으로 정했다"고 판단하고, 1심과 마찬가지로 원고의 소송을 기각했다. [119] 대법원은 2012년10월 송금조 회장의 2심판결 불복에 따른 상고심에서 최종적으로 "원고(송금조측)와 피고(부산대)가 기부약정 당시 사용용도를 '부산대 캠퍼스 건설 및 연구지원 기금'으로 정했다"고 판단한 원심을 받아들여 부산대 승소판결을 내렸다.[120]

학생 활동

부산대학교 총학생회

2007년 총학생회에서 내건 현수막

부산대학교 총학생회는 학교 축제 및 각종 학교 문제에 대한 대학 본부와의 협의를 주관한다. 2009년 부회장 안득균, 회장 이원기의 선출로 출범했던 41대 총학생회는 "18367 자신감" 이라는 슬로건으로 활동했다. 회장직에 선출된 이원기는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의 5대 의장으로도 선출되어 그에 대한 활동도 겸했다.[121]

2009년 총학생회는 노무현의 서거 이후 "다시 바람이 분다"라는 이름으로 노무현 추모 콘서트를 추진해왔으나 대학 측이 콘서트가 열리기 4일 전 불허 방침과 함께 학교 내 모든 출입문을 버스 등으로 봉쇄했고,[122] 총학생회 측은 촛불집회로 맞서는 등 학교-총학 간의 긴장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공연 하루 전날에 학생회 측이 필요한 장비 대부분을 대학 내에 반입시키는 데 성공해,[123] 7월 10일 예정대로 추모 콘서트를 진행하였다.[124]

한편 한대련 의장이자 부산대학교 총학생회장인 이원기는 2009년 7월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개최된 기자회견에서 특수공무집행방해 및 집시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검거되었다. 이에 앞서서 경찰 측으로부터 3차례의 소환요구를 받았으나 이를 거부하였고, 결국 체포영장이 발부됐다.[125] 경찰은 이원기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이라고 밝혔으나[126], 이틀 뒤인 7월 17일 검찰의 석방 지시에 의해 풀려났다. [127]

한편 2010년 총학생회 선거에서 단일후보로 나선 모 후보가 피선거권은 재학생만 가질 수 있다는 부산대 총학생회 회칙을 어기고, 휴학생 신분으로 후보로 출마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학생들 사이에 논란이 되었다. 또한 부산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후보가 없다는 이유로 일반 학생들과의 논의 없이 겨울계절학기 복학자 또한 후보자로 인정하도록 세칙을 변경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결국 후보자는 사퇴하고, 부산대 중앙선관위 위원장으로 있던 이원기 전 학생회장도 선관위원장직을 사퇴했다. [128]

이후 2010년 42대 총학생회 회장으로 강성민 후보가 당선되어, "We Can"이라는 슬로건으로 활동했다.[129] 2011년에는 43대 총학생회 회장으로 김종현 후보가, 부총학생회장으로 이준호 후보가 당선되었으며, "세상에 당신을 더해 우리, 하이파이브!"라는 슬로건으로 활동했으며, [130] 2012년, 김인애 총학생회 회장을 중심으로 "너랑나랑"이라는 슬로건으로 44대 총학생회가 활동. [131]

2013년 최소정 총학생회 회장이 당선, "우리PNU"라는 슬로건으로 활동하였으나, 임기 중 총학생회장의 개인사정으로 인한 사퇴선언, 부회장의 휴학 등으로 인해 파행운영 및 자격 논란이 일었다. 이에 부회장의 사과 및 해명 대자보가 붙고, 학칙상 무자격이지만 임시로 휴학생인 부회장이 학생회장 직무대행을 맡게 되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차기 총학생회 선거가 치러져 논란은 일단락되었다.

교내 축제

2012년 10월 5일, 시월제 중 콘서트(시월스탁 2012)

부산대학교 축제는 매년 5월 경에 실시하는 효원 대동제10월 경에 실시하는 시월제가 있으며, 대학 총학생회에서 주최하고 있다.[132] 대동제는 1980년대 학생들이 각 대학의 축제를 계기로 모두 하나가 된다는 의미로 시작된 것이 유래이며[133], 시월제는 1979년 10월 16일에 부산대학교 학생들로부터 발생한 부마민중항쟁을 기리자는 의미가 있다.[134] 축제에는 인기 연예인이 초청되기도 하며, 동아리 한마당, 플리마켓, 가요제, 전시회, 박람회 등이 열린다.[135]

한편, '부산대 축제에 오는 것은 부산 3대 바보 중 하나'라는 소문이 있을만큼 내용이 부실하고 학생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일방적인 축제라는 비판이 있으며,[132]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부족해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136]

학내 동아리

학생 동아리는 본부에 소속된 중앙동아리와 단과대학에 소속된 과동아리로 나뉘어 있으며, 2007년 기준으로 중앙동아리의 숫자는 총 67개이다. 중앙동아리에 가입된 학생 수는 3,584명에 달한다. [137]

교내 언론

부산대학교 내에서 발간되는 잡지들, 왼쪽부터 《문창대》, 《효원》

부산대학교의 언론사에는 교내 방송을 주관하는 부산대학교 방송국과 신문을 발행하는 《부대신문》, 영어 신문을 발행하는 The Hyowon Herald (효원헤럴드)가 있으며, 이 언론국들은 모두 부산캠퍼스 문창회관에 있다. 방송이나 신문 말고도, 부산대학교 홍보실에서 발행하는 잡지 《문창대》와 재학생들이 직접 발행하는 학교 교지 《효원》등이 있다.

The Hyowon Herald (효원헤럴드)

1972년 The Budae Times (부대타임스)라는 이름의 잡지로 창간된 이후, 1984년 The Hyowon Herald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타블로이드판으로 발행된 것이 현재에 이른다.[138]

부산대학교 방송국

부산대학교 방송국(PUBS)은 1963년 부산대학교 방송실로 개국하여 1972년 부산대학교 방송국으로 승격된 것이 오늘날에 이른다.[139] 캠퍼스 곳곳에 스피커가 설치되어 아침이나 점심시간에 PUBS가 제작한 오디오 방송을 들을 수 있다.[140] 최근에는 캠퍼스에 설치된 교내 TV를 이용해 자체 제작 영상을 방영하기도 하고[140], 오픈스튜디오를 열어 방송 진행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141][142] 밀양캠퍼스와 아미캠퍼스에는 방송국 분국이 설치되어 있다.[139]

부대신문

부대신문(釜大新聞)은 1947년 타블로이드판 소식지를 전신으로 1954년 11월 25일 공식적으로 창간했다.[143] 그러나 예산 부족으로 발행 중단과 개간을 거듭하였다. 4.19혁명 이전에는 주로 교양이나 역사에 대한 내용을 많이 담았으나, 1960년 '부대신문 독립선언' 이후로 편집자율권을 기반을 한 비평과 사회 비판이 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는 충돌을 일으켰고, 결국 1985년부터 신문배포가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다. 이에 1987년 학교의 일방적인 조치에 반발했던 부대신문의 모든 기자가 사퇴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143] 또한 1996년 연세대학교에서 발생한 '한총련 사태'로 인해 부대신문사 암실에 보관돼 있던 6천컷 분량의 필름을 경찰 측에 의해 무작위로 압수당하는 등, 많은 고초를 겪었어야 했다.[144]

최근에는 컬러지면이 많이 늘었으며, 부산대학교 내의 소식이나 사설 등이 담겨진다. 정문이나 제2도서관, 사회관, 인문관 등 캠퍼스 곳곳에 누구나 가져갈 수 있도록 비치해 둔다.

위상

부산대학교는 같은 지방거점대학교인 경북대학교전남대학교와 함께 지방 국립대 중 가장 경쟁력 높은 우수 대학으로 인식되고 있으며[145], 특히 경북대학교와는 개교 이래로 "한강 이남 최고 대학"을 두고 라이벌 관계로 인식되었다.[146] 그러나, 2000년대 이래로 내부로는 내부 갈등의 심화와, 정부와의 마찰[147], 외부로는 지방대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지고, 수도권 집중 현상이 심화되면서, 예전만큼 위상이 높지 않은 실정이다.[148][149]

한편, 2011년 중국 상하이 자오퉁 대학교가 공개한 세계 대학 학술 순위(ARWU)에 따르면 부산대는 397위를 기록했고[146], 2012년, 조선일보와 영국 QS가 주관한 아시아 대학 평가에서는 국내 종합대 9위(전체 11위, 지난해 12위), 지방거점국립대학교 중 1위, 아시아 대학 중 63위를 기록했다.[150]

1970년대 이래로 경제, 법률, 언론계 등에 부산대학교 졸업생이 상당수 포진되었다.[151] 특히 2011년 시사저널의 조사에 의하면, 대기업 임원 중 부산대 졸업생의 숫자는 전체 순위의 5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대한민국 내의 지방국립대 중 가장 높은 순위다. 시사저널 측에서는 부산대 출신 임원이 많은 원인을 영남 지역에 중공업 생산 시설이 밀집되어 있고, 부산대 졸업생들의 다수가 그 곳의 기술직 임원으로 재직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151]

현재 설치된 학부와 대학원

학부

대학원

전문대학원

특수대학원

사건·사고 및 논란

조갑제닷컴에 리포트 등록 강요

2012년 10월 31일 오마이뉴스는 부산대학교 철학과 최우원 교수가 전공필수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부산대학생이 언론을 비판함'이란 제목의 과제를 보수 성향의 인터넷 사이트에 실명으로 게재하라고 요구했다고 보도하였다. 일부 학생이 반발했지만 결국 30여 명의 학생들이 조갑제닷컴 등의 게시판에 실명으로 글을 올렸다.

최 교수는 그동안 전자개표기를 사용한 선거의 부정 의혹을 제기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정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주장해온 인물로 19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종북 세력 척결 등을 내걸고 서울특별시 서초을 지역구에서 대한국당 후보로 출마했다 낙선한 바 있다.[152] 또한, 부산대학교 철학과 조교 면접 대상자들에게 “국립대학교의 조교는 국가 공무원으로서 교육 공무원에 속하며 대학의 전통에서는 Faculty Member에 들어감으로 상당한 지위와 책임을 지닌다. 오늘날 대학 사회와 국가를 어지럽히고 있는 종북좌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 등으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153]

이에 대해 해당 수업을 듣는 한 한생은 "리포트를 제출하는 것도 아니고 웹사이트에 실명으로 거론 해야한다는 것이 생각을 강요당하는 것이고 학교 이름으로 올려야 한다는 것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도 "공개된 장소에 실명과 학교를 거론하며 중립도 아닌 편향적인 글을 쓰라고 한다면 진보 성향의 교수가 시켰더라도 고민했을 것"이라며 "교수의 정치적 활동에 이용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154]

한편, 당사자인 최 교수는 30일 밤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언론이 정확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왜곡하거나 숨기고 종북좌익을 진보로 부르는 것은 사기"라며 "언론 조작의 일환으로 잘못된 사고방식을 주입하고 있다"며 자신의 수업방식이 정당했다고 주장했다. 학생들의 정치적 신념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에는 "주관식 시험 문제로 내는 것은 얼마든지 자기 생각을 개진할 수 있고 언론이 그 점에서는 잘못하는 게 맞다"고 반박했다. 또 최 교수는 "(실명으로) 공개적인 장에서 나가서 발표하는 훈련도 교육을 시키는 과정"이라고 밝혔다.[155]

이러한 논란에 대해 부산대학교 철학과 손영삼 학과장은 "교수에게는 강의권이 있는 만큼 직접적으로 최 교수에게 건의하기는 어렵다"며 "수강권을 가진 학생들이 공식적으로 문제제기하면 공론화가 가능하겠지만 그 전에는 제약이 있다"고 말했으며 부산대학교 학사과 관계자는 "이런 일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서 논의가 필요하다"며 "보고가 들어가면 교무처장이나 위원회에서 결정해야 할 사항"이라고 밝혔다.[156]

2012년 11월 7일 철학과 학생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최 교수의 사과 및 퇴출 ▶F학점이 우려되는 수강생들의 피해 대책 마련 등을 학교 쪽에 요구하고 철학과 전체 수업 거부를 결의하였으며 11월 19일부터 최 교수의 퇴진을 요구하는 서명을 받고 있다.[157][158]

2012년 11월 9일 부산대 철학과 교수들은 이 문제에 관해 회의를 열었으며 손영삼 부산대 철학과 학과장은 “헌법에서 인정하고 있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교수 지위를 이용해 침해했다고 판단했다”며 “철학과는 이 문제를 그냥 넘길 수 없다”고 전했다. [159]

2012년 11월 20일 부산대학교 철학과 강사협의회도 최우원 교수의 교수권 남용을 성토한 부산대학교 철학과 학생회에 대한 지지성명을 발표하였다.[160]

2012년 11월 30일 부산대학교 인문대학은 진상조사를 위해 인사위원회를 열었다. 김성진(한문학과) 인문대학장은 “교육공무원법에는 교수가 특정 정당을 위해 학생들을 유도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있지만 최우원 교수가 이를 위반한 것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기 때문에 신중을 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정 정당에 유리하도록 학생들을 유도했다는 점을 해당 교수가 인정하지 않을 시 이를 판단할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철학과 학생들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는 최우원 교수의 처벌을 요구하기 위해 11월 19일부터 30일까지 대학본부 앞에서 서명운동을 벌였으며 서명에 동참한 사람의 수는 약 1,500명이다. 이준호(철학 3)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2,000명 서명을 달성하기 위해 서명운동을 계속 진행할 것이며 모든 수업을 거부하는 것도 고려 중”이라고 전했다. 반면 최우원 교수는 “해당 과제에 문제가 없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며 “남은 학생들을 위해 강의를 계속할 것”이라고 전했다.[161]

2014년 4월 부산대는 학생들에게 편향된 정치적 소신을 강요했다는 논란을 불러일으킨 부산대 철학과 최 교수에게 정직 3개월의 처분을 내렸으며 해당 과목은 폐강됐다. 최 교수는 2012년 2학기 전공필수 과목에서 학생들에게 '종북 좌익을 진보라 부르는 언론을 비판하시오'라는 시험 문제를 내고, 이와 비슷한 주제의 글을 유명 보수 언론인과 논객의 홈페이지에 게재하라는 과제를 내기도 했다. 지난해 1학기에도 비슷한 내용의 과제를 내 일부 학생들이 수업을 거부하는 등 학내에서 다시 한 번 논란이 일었다. 학생들은 당시 교수권 남용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고 최근 인권위가 대학 측에 최 교수에 대한 징계조치를 권고했다.[162]

같이 보기

주해

  1. 광복 당시 부산경상남도내의 행정구역(경상남도 부산부)이었으며 이와 동시에 도청소재지였다. 부산광역시 서구 부민동에 위치한 지금의 동아대박물관이 그 당시 경상남도 도청이였다.
  2. 부산대학교의 60년사, 2006.10.9.발행, 세종문화사, 50쪽 참조
  3. 미국인 선교사 출신으로서 미시간(Michigan)대학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연희전문학교에서 재정이사, 학감 및 교장직을 역임했던 베커(Becker) 박사의 청교도적 인품과 탁월한 관리능력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유억겸 문교부장(지금의 교육부장관)은 미군정시기에는 잠정적이나마 미국인 총장을 임명하는 것이 대학운영상 능률적이라는 판단 아래 베커 박사를 국립 부산대학교 총장으로 인선하였다. 그후 1년 남짓 총장으로 있다가 수산과대학과의 내분등으로 본국(미국)으로 돌아가버림으로써 종합대학으로서의 부산대학교는 사실상 해체되게 되었다. 이러한 특수한 사정 때문에 부산대학교는 베커 박사를 초대총장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부산대학교의 공식적인 초대 총장은 윤인구 박사이다. 참고로 서울대학교는 미군정에 의해 총장으로 임명된 해리 엔스테드(Harry Bidwell Ansted, 해군 대위) 박사를 초대 총장으로 인정하고 있다.<부산대학교의 60년사, 2006.10.9.발행, 세종문화사, 48쪽 참조>
  4. 부산대학교가 1945년 10월 부산대학교 설립기성회를 조직하고, 국립 종합대학교로 처음 설립인가를 받은 것은 1946년 5월 15일이다. 이는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등이 일제때 전문학교로부터 해방후 종합대학으로 승격한 것은 모두 1946년 8월 15일이고, 일제때 경성제국대학이라는 모체를 갖고 있던 서울대학교도 국립대학 체제로 새롭게 설치령이 제정된 것이 부산대학교 설립인가일 보다 3개월 뒤인 1946년 8월 22일이고 보면, 정부로서는 해방후 4,5년이 지나도 대학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에 부산대학이야말로 독자적으로 세운 첫 대학이었다. 즉, 부산대학교는 정부에 의해 해방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설립된 국립대학이라는 뜻깊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부산대학교의 60년사, 2006.10.9.발행, 세종문화사, 45쪽 참조>
  5. 1946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에 따라 초대 문교부장관에 서울대학교 교수 안호상 박사가 취임하였다. 대한민국 수립과 더불어 미군정청이 新政府(신정부)에 이관한 事務引繼書(사무인계서) 가운데서 '부산대학에 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이 대학은 국제적인 대도시인 부산에 있어서 고등교육기관이 부족한 실정에 비추어 해방후 문교부가 창설한 유일한 국립대학이다. 물론, 그 설립의 동기는 경상남도 관민의 일치협력에 의하여 1,000만원에 상당한 재원을 문교부에 헌납하고 그 설립을 열망한 데에 기인한다. 문교부는 그 설립을 정식으로 승인하였다.(이하생략)" 미군정청 사무인계서중 '국립 부산대학 문제' 부분을 발췌하였다. <부산대학교 20년사, 1966.5.15.발행, 태화인쇄소, 49쪽 참조>
  6. 부산수산전문학교측은 전문학교를 대학으로 승격시켜 수산학부로 편입하려는 국립 부산종합대학교 설립안에 반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46년 5월 10일 국립 부산대학교 설립안을 경상남도 도지사 명의로 군정청 문교부장 유억겸(지금의 교육부장관)에게 제출함으로써 대학설립에 관한 정식절차는 차질없이 진행되었고, 1946년 5월 15일 유억겸 문교부장(지금의 교육부장관)과 문교부 고문관 피틴거(Pittenger) 중령의 최종 결재로 부산대학교 설립이 최종확정되었다. 이렇게 대학설립이 확정된 내용을 문교부는 1946년 5월 20일자 공문으로 경상남도 당국에 정식 통보했다. <부산대학교의 60년사, 2006.10.9.발행, 세종문화사, 44-45쪽 참조>
  7. 1953년 부산대학교의 종합대학으로의 재편성은 1946년 5월 15일 부산대학교가 인문학부와 수산학부을 둔 종합대학으로 설립인가를 받고 1946년 7월 예과시험을 거쳐 1946년 9월 입학식을 거행하고 1년 정도 운영되다가 1947년 7월 ‘수산과대학’이‘국립 부산수산대학’으로 분리되어 나감으로써 종합대학이 사실상 와해된 후‘국립 부산대학교 인문과대학’의 교명이 ‘국립 부산대학’으로 변경되어 1948년 문리학부, 법학부, 상학부 를 둔 단과대학으로 운영되다가 안호상 초대 문교부장관의 노력에 힘입어 문리과대학,상과대학,수산과대학으로 구성되는“국립 부산대학교 설립안”을 국무회의 의결까지 거쳤지만 다시 좌절되고 난 뒤 1952년 '국립 부산대학' 제1회 졸업식에 참석한 백낙준 문교부장관의 지원 등으로 다시 종합대학으로 승격한 것은 초창기 윤인구 총장을 비롯한 대학관계자들의 종합대학 재건을 위한 끈질긴 노력과 열의, 사회 각계각층의 후원이 어우러진 6년만의 쾌거였다. <부산대학교의 60년사, 2006.10.9.발행, 세종문화사, 76쪽 참조>
  8. 1961년 9월‘대학교 정비기준령(각령 제283호)’에 의해 폐과 또는 폐쇄된 대학의 운영에 대한 정부의 시행세칙은 오래동안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가 1962년 4월 3일에 가서야 그 시행요령이 발표되었다. 그후 불과 8개월도 안되서 1962년 12월 30일 각의에서 국립대학교 설치령 개정을 결의하여 전국 6개대학 14학과의 부활과 2개 대학의 4학과 신설이 결정되었고, 그후 1964년 국립대학교설치령이 다시 개정됨으로써 완전히 원상회복되었다. 이는 5.16 군사정권이 대학에 대한 예비지식도 없이 졸속처리한 대학정비령은 대학에 혼란만 가져다 준 결과가 되었다.
  9. 2012년 5월 기준으로 공학인증제는 기계공학부, 전자전기공학부, 정보컴퓨터공학부, 재료공학부, 토목공학전공, 조선해양공학과, 항공우주공학과, 산업공학과, 건축공학과에서 운영되고 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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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부산대교수회, 부경대와 통합논의 반대 성명”. 뉴시스. 2011년 11월 18일에 확인함.  이름 목록에서 |이름1=이(가) 있지만 |성1=이(가) 없음 (도움말)
  48. “김기섭 신임 부산대 총장, "부경대와 통합보다 지역 거점대 위상 정립 주력". 부산일보. 2012년 3월 8일에 확인함.  이름 목록에서 |이름1=이(가) 있지만 |성1=이(가) 없음 (도움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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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7. “부산대 잇따른 잡음 ‘삐걱’”. 한국대학신문. 2012년 10월 21일에 확인함.  이름 목록에서 |이름1=이(가) 있지만 |성1=이(가) 없음 (도움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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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2. 부산대 교수, “조갑제닷컴에 과제제출 해” 물의《경향신문》2012년 10월 31일 권기정 기자
  153. 최우원, '교육부는 부산대를 감사하라!'《올인코리아》2012년 7월 6일 류상우 기자
  154. 부산대 교수 “조갑제닷컴에 리포트 올려라” 논란《헤럴드경제》2012년 10월 31일
  155. 부산대교수 “조갑제닷컴에 리포트 올려라” 학생들에게 정치소신 강요《21세기대학뉴스》2012년 10월 31일 이예지 기자
  156. 부산대 교수, '조갑제닷컴에 리포트 올려라' 강요《오마이뉴스》2012년 10월 31일 정민규 기자
  157. 부산대 철학과 최우원 “진보비판 과제, 트레이닝일뿐”《고발뉴스》2012년 11월 29일 김미란 기자
  158. 조갑제.지만원 싸이트에 '레포트 올려라' 강요한 부산대 수꼴교수《서울의소리》2012년 11월 13일
  159. ‘종북좌익 언론비판, 과제 올려라’ 논란《캠퍼스위크》2012년 11월 13일 박창완 기자
  160. '종북 비판 리포트' 물의 부산대 철학과 수업거부《부산일보》2012년 11월 26일 권상국 기자
  161. 철학과 사태 장기화, 학생들 수업 거부《부대신문》2012년 12월 3일 추슬기 기자
  162. '종북 비판' 과제물 낸 부산대 교수 정직 3개월《연합뉴스》2014년 4월 8일 박창수 기자

바깥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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