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운룡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류운룡(柳雲龍, 1539년 ~ 1601년)은 조선문신이다. 자는 응견(應見), 호는 겸암(謙唵), 본관은 풍산(豊山). [1]

생애

경상북도 안동 하회리 출신으로 간성군수 류공작(柳公綽)의 손자이며, 황해도 관찰사 류중영(柳仲郢)의 첫째 아들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류성룡의 형이다.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음관으로 출사하여 선조 때 전함사별좌를 지냈으며, 지방관을 지내면서 백성들을 어질게 다스렸으므로 존경을 받았다. 그 후 1592년 사복시첨정으로 벼슬이 올랐으며, 이듬해 풍기군수로 재임하면서 도둑떼를 소탕하여 공을 세웠다. 1598년 홍진 (洪進)의 천거로 정3품 당상인 승지로의 추천이 여러번 있었는데 정언 송응순(宋應洵)의 반대로 무마되었다.

사후

1601년 사망하였고 사후에 자헌대부 이조판서로 추증되었고 문경(文敬)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가계

슬하의 차남 류기(柳裿)와 류심(柳襑)은 임진왜란 시 숙부 류성룡을 도와 호성원종공신에 책록되었으며 특히 류기는 낭천현감을 지냈고 명필 한석봉과도 친분이 두터웠다.

  • 조부 : 류공작(柳公綽)
  • 조모 : 연안 이씨
    • 아버지 : 류중영(柳仲郢)
    • 어머니 : 안동 김씨, 김광수(金光粹)의 딸
      • 동생 : 류성룡(柳成龍)
      • 부인 : 철성 이씨, 이용(李容)의 딸
        • 장남 : 류주(柳祩)
          • 손자 : 류원직(柳元直)
          • 손녀 : 권상현(權尙賢)에게 출가
        • 차남 : 류기(柳裿)
          • 손자 : 류원량(柳元亮)
          • 손자 : 류원리(柳元履)
          • 손자 : 류원경(柳元慶)
          • 손자 : 류원정(柳元定)
          • 손녀 : 김추임(金秋任)에게 출가
          • 손녀 : 홍준형(洪俊亨)에게 출가
        • 삼남 : 류심(柳襑)
          • 손자 : 류종지(柳宗之)
          • 손자 : 류성지(柳誠之)
          • 손자 : 류경지(柳敬之)
          • 손녀 : 김염조(金念祖)에게 출가
          • 손녀 : 김곤(金琨)에게 출가
          • 손녀 : 이영철(李英哲)에게 출가
          • 손녀 : 김시형(金時行)에게 출가
        • 사위 : 김홍미(金弘微)
        • 사위 : 노경임(盧景任)

연관인물

각주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의 내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