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베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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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베컴
OBE
2009년의 데이비드 베컴
개인 정보
본명 David Robert Joseph Beckham
출생일 1975년 5월 2일(1975-05-02)(48세)
출생지 잉글랜드의 기 잉글랜드 런던 레이턴스톤
183cm
포지션 은퇴 (선수시절 윙어)
청소년 구단 기록


1991-1993
잉글랜드 토트넘
잉글랜드 브림스다운 로버스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구단 기록*
연도 구단 출전 (득점)
1993-2003
1995
2003-2007
2007-2012
2009
2010
2013
합계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잉글랜드 프레스턴 노스 엔드 (임대)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
미국 LA 갤럭시
이탈리아 AC 밀란 (임대)
이탈리아 AC 밀란 (임대)
프랑스 파리 생제르맹
2650(62)
50(2)
1160(13)
980(18)
180(2)
110(0)
100(0)
5230(97)
국가대표팀 기록
1992-1993
1994-1996
1996-2009
잉글랜드 U-18
잉글랜드 잉글랜드 U-21
잉글랜드
30(0)
90(0)
1150(17)
* 구단의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정규 리그의 공식 리그 경기 기록만 집계함.

데이비드 로버트 조지프 베컴 (영어: David Robert Joseph Beckham, OBE[1], 1975년 5월 2일[2] ~ )은 잉글랜드의 전 축구선수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프레스턴 노스 엔드, 레알 마드리드, AC 밀란, LA 갤럭시, 파리 생제르맹에서 뛰었다. 특히 잉글랜드 대표팀 선수로는 골키퍼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경기에 나선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3] 그리고 또한 4개국 리그에서 우승한 최초의 잉글랜드 선수이기도 하다.[4] [5] 그는2013년 5월 16일리그 1 2012-13을 끝으로 공식적인 은퇴를 선언하였다.[6] [7] [8] [9] [10] [11] [12] 베컴의 프로 경력은 1992년 만 17세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함께 시작되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 리그 우승 6회, FA컵 우승 2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1회, 이후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리그 우승을 마지막으로 LA 갤럭시와 5년 계약을 체결하였고, 그는 2009년2010년AC 밀란에서 2번 임대되었다. 국가대표에서는 만 21세의 나이에 1996년 9월 1일 잉글랜드 대표팀 데뷔하였다. 그는 6년동안 대표팀 주장으로 활약하였고, 지금까지 115 경기를 뛴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의 선수 시절 포지션은 중앙 미드필더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 원래 윙어 였던 그는 레알 마드리드 이적 후, 중앙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 하였고, 2004-05시즌 후반기부터 중앙 미드필더윙어를 번갈아가며 출전하였고, 2005-06시즌 부터는 윙어로 출전 하였다. LA 갤럭시 이적 후, 다시 중앙 미드필더로 활약하기도 하였다. 베컴은 킥력이 굉장히 뛰어나기 때문에 프리킥이나 코너킥을 전담해서 처리하며, 크로스와 패스 능력도 훌륭하다. 출중한 외모와 훌륭한 실력으로 전 세계에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다. 1999년, 2001년 FIFA 올해의 선수 2위에 2번 선정되었다.[13] 영국인으로는 처음 UEFA 챔피언스리그 100경기의 출장을 달성했다.[14] 2003년, 2004년 구글 스포츠 부분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인물이다.[15] 2004년 처음으로 가장 수입이 많은 축구선수가 되었다.[16] 2006년 독일 월드컵 이후 잉글랜드 대표팀의 주장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2000년 11월 15일부터 2006년 독일 월드컵까지 58경기 동안 주장을 맡았다.[17] 그 후에도 대표로 선출되어 2008년 3월 26일 프랑스 대표팀과의 친선경기에서 A매치 100경기 출장을 기록해 센추리 클럽에 가입하였고.[18] 필드 플레이어로서는 최다의 경기 출전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2007년 7월 1일 MLS사상 최고 금액으로 LA 갤럭시와 계약을 맺었으며, MLS 전체 평균 연봉인 14만 7천945달러의 43배가 넘는 연봉 650만달러를 받았다.[19]

1999년 스파이스 걸스의 멤버 빅토리아 베컴과 결혼하여, 슬하에 4명의 자녀인 브루클린 조셉, 로미오 제임스, 크루즈 데이비드, 하퍼 세븐을 두고 있으며, 2012년 미국 포브스 조사에 의하면, 광고 스폰서 수입등을 포함한 추정 연수입은 4,600만 달러(한화 532억원)로, 세계 축구 선수중에서 1위이다.[20] 또한 같은 해 영국 일간지 선데이 타임스에 따르면 베컴은 1억 6000만 파운드(한화 3000억원)를 보유해 영국 출신 스포츠 스타 가운데 가장 재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21]

생애

어린 시절

1975년 5월 2일 영국 런던 북동부에 위치하는 레이턴스톤의 휩스 크로스 대학병원에서 배관기술자의 아버지 데이비드 에드워드 알랜 "테드" 베컴(David Edward Alan "Ted" Beckham, 1948년 출생)과 미용사의 어머니 산드라 조지나 베컴(Sandra Georgina Beckham (nee West), 1949년 출생)의 아들로 태어났다. 베컴의 부모님은 1969년 런던 해크니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형제로는, 누나 린 조지나 베컴(Lynne Georgina Beckham, 1972년 출생)과 여동생 조앤 루이스 베컴(Joanne Louise Beckham, 1980년 출생)이 있다.

런던에서 인쇄업에 종사하던 베컴의 외할아버지는 유대계 영국인으로 자신은 4분의 1은 유대인의 피를 갖고 있다고 자서전을 통해 밝히기도 했다.[22]

베컴 일가는 한층 더 북쪽의 칭포드로 이사해, 베컴은 여기서 소년 시절을 보내며, 체이스 래인 초등학교(Chase Lane Primary School)를 거쳐, 칭포드 고등학교(Chingford Senior High School)를 다녔다. 1982년 만 7세 때 릿지웨이 로버즈(현재 브림스다운 로버스 FC)에 입단하였다. 베컴은 3시즌에 115경기에 출장해 101 득점을 올려, 이후 1986년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의 입단 권유를 받았지만, 시기상조라는 판단으로 로버스에서 총6년 간 뛰었다. 또한 병행한 학교 대항 시합에도 참가해, 베컴은 지구와 주 대표로 선발되고 있었다. 1985년, 1986년 바비 찰튼이 주관하는 전국 규모의 축구 스쿨에 참가하였고, 그곳에서 실시된 기술 테스트로 런던지구 우승자가 되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옛 연습장과 올드 트래포드에서 행해진 결승전에서는 과거 6년간 최고 득점을 올려 우승했다. 입상의 상품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홈구장(누 캄프)에서 소속선수들과 2주간의 합동 연습이었다.

연습생 시절

베컴은 이후 런던 북부에 있는 모든 클럽의 입단 제안을 받았고, 집 근처의 토트넘 홋스퍼 FC의 유소년 스쿨에도 매주 월요일 마다 다니면서, 당시 총6년간의 계약을 제안 받았지만, 같은 시기 계약제의가 온 1988년 5월 2일 만 13세 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 4년간의 유소년 입단 계약을 맺고 유소년 후보 선수가 되었으며, 1989년 8월 정식으로 유소년 선수가 되었다. 1991년 7월 8일 계약금 29.50파운드+주급10파운드를 받고 연습생 계약을 하였다. 1992년 5월 FA 유소년 컵 대회에서 득점을 하며, 팀을 당당히 우승으로 이끌었다. 다음해인 동대회에서도 결승에 진출하였지만, 리즈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져 준우승을 하였다. 동시기에 선수들은 리저브 팀에 승격해, A리그와 센츄럴 리그에서 우승하며 20년만의 쾌거를 이루었다.

브리스틀 로버스 FC와 경기중인, 데이비드 베컴

클럽 경력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인 알렉스 퍼거슨은 클럽의 신진 선수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어 베컴은 니키 버트, 게리 네빌, 필립 네빌 형제들과 함께, 1990년대 퍼거슨이 영입해 온 「퍼거슨의 아이들」라고 불리는 선수들 중 한 사람이었다. 1993년 1월 23일 만 17세의 나이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 프로 계약을 하였다.

1992-93시즌, 9월 23일에 행해진 리그 컵의 브라이튼 앤 호브 앨비언전에 후반부터 도중 출장해, 1군 데뷔를 완수한다. 1994년 12월 7일UEFA 챔피언스 리그, 갈라타사라이 전에 선발 출장하면, 1군 팀으로의 자신 첫 골을 기록했다.[23][24]

1994-95시즌, 베컴은 경험을 쌓기 위해서 당시 리그 2 소속의 프레스턴 노스 엔드 FC으로 1개월간의 임대 되었다. 당시의 감독 게리 피타즈의 프리킥과 코너킥을 맡으며, 5경기에 출장해 FK과 2득점을 기록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부상자가 속출하면서 다시 원 소속팀으로 복귀하게 되었고, 1995년 4월 2일 리즈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 선발 멤버로서 출장하였다. 베컴은 곧바로 오른쪽 윙어 포지션을 꿰찼고, FA컵 준결승의 첼시와의 경기에서 골을 기록하였고 결승전에서는 에릭 칸토나의 골을 어시스트 하는 등의 활약으로, 클럽의 리그와 FA컵의 타이틀 획득에 공헌했다. 베컴이 처음으로 획득한 타이틀은, 그 해 10포인트의 차이로 리드하고 있었던 뉴캐슬 유나이티드 FC를 따라잡은 것이었다. 베컴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후보 선수로 플레이 해,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UEFA 유로 1996 이전에 잉글랜드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다. 1994-95시즌을 마지막으로 경험이 풍부한 여러 선수들이 클럽을 떠나게 되었는데, 퍼거슨은 몇몇 스타 선수들을 이적시키는 대신에 다른 클럽의 유명한 선수를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클럽의 유소년 출신의 선수를 대신에 기용할 것을 결정하였는데 여기에 많은 비판을 받았다. 시즌 개막전에서 베컴은 골을 기록하였음에도 애스턴 빌라 FC에게 1-3으로 패배하였고, 알란 한센이 말했던 "어린 아이들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 라는 유명한 비난처럼 많은 사람들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그 시즌 리그에서 고전을 할 것이라고 했지만, 예상을 뒤집고 6연승을 하면서 어린 선수들의 멋진 기량을 과시했다.

1996-97시즌 개막전에 베컴에게 등번호 10번이 주어졌다. 1996년 8월 17일의 프리미어 리그 개막전의 윔블던 FC 경기에서 하프라인 앞으로부터, 골키퍼의 키를 넘는 롱 슛을 성공시켰고 베컴의 이름은 유명해졌다. 베컴의 가장 유명한 골이 된 이 골을 넣었을 때, 그가 신고 있던 스파이크는 베컴에게 잘못 지급된 것으로, 원래 찰리 밀러를 위해 준비 된 스파이크였다. 베컴은 프리미어 리그의 제왕으로 자리 잡은 맨유에서 부동의 레귤러로 활약하였고, 시즌 종료 후에는 PFA연간 최우수 신인 선수상을 수상했다.[25] 1997년 5월 18일 에릭 칸토나가 현역 은퇴를 발표해, 베컴은 새로 입단한 테디 셰링엄에게 자신의 등번호 10번을 물려줬고, 칸토나가 달던 등번호 7번을 이어받게 되었다. 칸토나 은퇴 후에는 7번을 영구 결번으로 하는 것을 바라는 팬들도 있었지만 오늘까지 계속 사용되고 있다. 1997-98시즌도 기분 좋은 스타트를 보였지만, 시즌 후반에 다소 부진한 성적으로 아스날 FC에 이어, 2위로 시즌을 끝냈다.

1998-99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프리미어리그FA컵,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해 트레블을 달성하였다. 베컴도 그 일원의 한명으로 팀 우승에 막대한 공헌을 하며, 기쁨을 맛봤다. 하지만 1998년 1998년 FIFA 월드컵 16강전에서 퇴장으로 특히 많은 비판을 받고 있었던 시기여서, 여러 가지 억측이 난무했지만, 베컴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잔류한다고 하는 결단을 내렸다. FA컵 결승의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전과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의 바이에른 뮌헨 전에서 팀은 시합 종료 직전까지 0-1로 지고 있었지만, 연장시간에 2 골을 넣어 트로피를 차지했다. 2 골 모두 베컴의 코너킥을 계기로 이어진 것이다. 이러한 어시스트나 시즌을 통해 보인 훌륭한 활약이 평가되었지만 발롱도르FIFA 올해의 선수에서, 아쉽게도 모두 2위에 선출되었다. FIFA 클럽 세계 선수권 대회의 네카사 전에서 고의의 파울로 퇴장 처분을 받은 후에 비판을 받았지만, 퍼거슨 감독은 베컴을 지지하였다.[26] 1999-2000시즌 중에는, 이탈리아유벤투스 이적의 이야기가 있었지만, 루머에 불과했다.

그러나, 1999년 스파이스 걸스의 멤버 빅토리아 베컴과 결혼 이후, 베컴이 축구와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명성을 얻기 시작하면서, 퍼거슨 감독과 베컴의 관계는 악화되기 시작했다. 2000년 구토, 설사로 아픈 아들 브루클린을 간병하기 위해서 연습을 결석하는 허가를 받았지만, 퍼거슨 감독은, 같은 날에 런던 패션 위크의 이벤트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던 빅토리아 베컴이 아이의 간병을 하면 베컴은 연습에 참가할 수 있었다고 격노해, 베컴에 대해서 클럽으로의 최대의 벌금(2주간 분의 급료, 베컴의 경우는 50,000 파운드)를 부과해, 리즈 유나이티드와의 중요한 시합의 멤버로부터 제외했다. 그러나, 팀은 기록적인 차이로 리그의 타이틀을 획득해, 베컴 역시 타이틀 획득에 공헌했다. 「결혼할 때까지 그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밤에는 자주 아카데미로 나와 연습을 하는 훌륭한 젊은이였다. 그러나 결혼에 의해서 엔터테이너로 변화된 것이 문제였다. 그 순간부터 그의 생활은 결코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 되어 버렸고, 그는 그렇게 유명인이 되어 버렸다. 축구는 그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2007년에 베컴의 결혼 생활에 대해 언급)

1999-2000시즌은, 2위의 아스널에 18점의 차이를 내며 우승해, 나머지 11 경기를 11연승으로 장식해 선두를 쾌주했다. 연승중에 베컴은 5 골을 넣었고, 시즌을 통해 6 골, 전 공식전에서 8 골을 기록하며, 팀 asdgSGA끝, 3년간의 계약 연장에 사인했다. 새로운 계약에 따른 급료와 광고 수입 증가로, 베컴은 세계에서 가장 수입이 많은 축구 선수가 된다.

2001-02시즌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로서 베컴에게 최고의 시즌이었다. 리그전 28 경기에 출장해 11 골, 전 공식전 42 경기에 출장해 16 골을 기록했다. 부상 회복으로 맞이한 2002-03시즌이었지만, 올레 군나르 솔샤르가 베컴을 대신해 오른쪽 윙어로 플레이 하고 있어, 팀에서 이전과 같은 포지션을 얻을 수 없었다. 퍼거슨 감독과의 관계도 2003년 2월 15일에 행해진 FA컵의 아스널전 후에 악화되어, 드레싱 룸에서 크게 화를 낸 퍼거슨이 발로 찬 스파이크가 베컴의 눈 위를 직격해,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그 유명한 '축구화 사건'을 계기로 베컴의 이적 소문이 일어났고, 팀은 저조한 스타트를 끊었지만, 12월 무렵부터 회복해, 리그 우승을 완수했다. 베컴은 공식적인 52 경기에 출장해, 11 골을 넣었다. 그리고 끝내 이적을 발표하며, 2003년 6월 이적료 2500만 파운드(4300만 달러)에 레알 마드리드로 전격 이적했다.[27] 이후 퍼거슨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당시 베컴 이적에 대한 안타까움을 털어놓기도 했다.[28] 베컴의 이적 직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영입해, 등번호 7번은 호날두가 물려받았다. 그러나 베컴은 인터뷰에서 「내가 잉글랜드에 돌아간다고 하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밖에 없다. 퍼거슨은 지금도 존경하고 있다」라고 말하였다. 퍼거슨 자신도 「데이비드의 마음에는 항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베컴은 프리미어 리그로 265 경기 출장해, 61 골,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81 경기에 출장해, 15 골의 성적을 남겼다. 6번의 리그 우승과 2번의 FA컵 우승, UEFA 챔피언스리그인터컨티넨탈컵, FA유스컵의 타이틀을 12년간의 사이에 획득했다.

레알 마드리드

2003년 8월, 데이비드 베컴과 지네딘 지단

2003년, 조안 라포르타가 FC 바르셀로나의 회장으로 입후보 했을 때, 베컴의 영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FC 바르셀로나로의 이적을 바라고 있었지만, 베컴은 레알 마드리드를 선택해, 4년간의 계약을 맺었다. 이적금은 약 3500만 유로라고 추정 되고 있다. 이적 수속은 2003년 7월 1일에 완료해, 로리 커닝햄, 스티브 맥마나만에 이어,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게 된 영국인의 축구 선수가 되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 대표에서는 등번호 7번을 달고 있었지만, 클럽의 캡틴 라울 곤잘레스가 달고 있는 등번호였기 때문에, 7번을 선택하지 못하고, 베컴은 23번을 선택했다. 그 선택의 이유는, 존경하는 농구선수의 마이클 조던이 달고 있던 등번호이기 때문이라고 말해지고 있다. 2003-2004시즌, 레알 마드리드는 4위로 시즌을 종료해,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준결승으로 패했지만, 베컴은 개막전에서의 골을 포함해 최초의 공식전 16경기로 5골을 기록해 곧바로 서포터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리그나 챔피언스리그에서 몇 개의 타이틀을 획득하는 것을 바라고 있던 회장의 기대에 부응하지는 못했다.

2004-05시즌, 팀은 무관에 그쳤다. 베컴은, 이적 후 오랫동안 중앙 미드필더로 플레이하고 있었지만, 수비를 담당할 수 있는 토마스 그라베센이 합류한 것과 당시 감독이었던 룩셈부르고와 루이스 피구의 확집에 수반해, 2005년에 들어서 루이스 피구를 대신해 오른쪽 윙어로서 출장할 기회가 증가했다. 중앙 미드필더로서의 퍼포먼스는 아첨에도 높다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그 경험이 살아 측면에서도 자신의 플레이의 폭을 펼치는 것에 연결되어, 이것에 의해 서서히 본래의 퍼포먼스를 되찾아 갔다. 오른쪽 윙어로 출장한 2005년 엘 클라시코와 마이클 오언에 어시스트를 결정하는 등 2 어시스트를 기록해, 공격과 수비의 모든 장면에서 얼굴을 내밀어, 이적 후 최고의 퍼포먼스라고 칭해질 정도의 활약을 해 4-2의 승리에 공헌했다. 그 후도 베컴은 오른쪽 윙어로서 출장을 계속해 구단과 서포터의 기대한 부응한 경기를 펼치며, 리그에서 가장 많은 어시스트를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2005-06시즌은, 루이스 피구의 이적에 의해 오른쪽 윙어로 정착했지만, 우승한 바르셀로나에 12점 차이를 내며 2위를 하였고,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아스널 FC에 결승 토너먼트 1회전으로 패했다.

2007년 레알 마드리드, 데이비드 베컴

2006-07시즌은 감독으로 취임한 파비오 카펠로에 의해, 당초는 선발 멤버로 출장했지만, 베컴이 선발 멤버로서 출장한 최초의 9 경기로, 새로 입단한 선수인 호세 안토니오 레예스에게 오른쪽 윙어 포지션을 빼앗겼다. 2007년 1월 10일, 길어진 교섭의 끝에, 스포츠 디렉터를 맡고 있던 프레드라그 미야토비치는, 시즌 종료 후에 클럽을 떠난다고 발표했지만, 저것은 오역이며, 실제로는 재교섭은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1월 11일, 베컴은 연장계약을 원하는 구단의 요청에도 LA 갤럭시7월 1일부터의 5년간의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하였다다.[29]

1월 13일에 카펠로 감독은, 베컴은 연습은 계속하지만, 레알 마드리드 선수로의 마지막 경기를 끝냈다고 말해 향후의 경기에서는 기용하지 않는 것을 시사한다. 그러나 항상 연습을 열심히 실시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라울이나 구티가 카펠로 감독에 베컴의 경기 출장을 요청해, 팀도 침체하고 있던 적도 있어, 카펠로 감독은 2월 10일의 레알 소시에다드 전의 멤버로 소집하였고, 베컴은 골을 넣어 팀도 시합에 승리한다.그 후, 만족스러운 활약을 보이지 못한 호세 안토니오 레예스와는 대조적으로 베컴은 멋진 경기를 선보여, 레예스에게서 포지션을 빼앗았다. 베컴의 마지막 UEFA 챔피언스리그 출장은, 2007년 3월 7일바이에른 뮌헨 전이며, 챔피언스리그 통산 103 경기는, 당시 3번째로 많은 기록이었다. 2007년 6월 17일, 베컴은 레알 마드리드로의 마지막 경기가 된 마요르카 전에 출장, 팀은 3-1으로 승리했다. 부상을 입은 베컴과 교대로 출장한 레예스가, 2골을 넣어 베컴은 클럽 가입 이래 처음으로, 리가 에스파뇰라의 타이틀을 획득했다. 레알 마드리드 선수로의 캐리어 종료의 1개월 후에, 미국의 경제잡지 「포브스」는, 베컴은 광고탑으로서 클럽의 상품 판매에 공헌해, 4시즌 동안에 6억 달러에 달하는 매상을 기록했다고 보도되었다.

LA 갤럭시

LA갤럭시, 데이비드 베컴

2007년 1월 11일, 베컴은 레알 마드리드를 떠나 특별 지정 선수 제도(영어: Designated Player Rule)를 사용해 MLSLA 갤럭시에 이적하는 것이 밝혀져, 다음날 공식적인 기자 회견이 열렸다. 베컴과 LA 갤럭시와의 계약은 7월 11일에 시작되어 13일에 공식 입단 발표를 했다. 베컴은 등번호 23번을 선택해, 입단 발표 전에 이미 갤럭시의 레플리카 유니폼의 판매 매수는 250,000매 이상의 기록적인 판매수를 보였다고 보도하였다. 갤럭시에서의 데뷔전은, 7월 21일에 행해진 월드 시리즈의 첼시 FC전으로 베컴은 78분부터 출장했고, 0-1로 패했다. 8월 9일D.C. 유나이티드 전에 도중 출장해, 리그 데뷔를 하였다.

슈퍼 리거 준결승의 D.C. 유나이티드 전으로 처음으로 선발 멤버로서 출장해, 팀의 주장을 맡았다. 시합 중에 옐로우 카드를 받았지만, 전반에는 프리킥으로 첫 골을 넣고, 후반에는 랜던 도노반의 득점을 어시스트했다. 팀도 2-0로 승리해, 8월 29일의 파츄카와의 결승전에 진출하게 되었다. 결승전에서 베컴은 오른쪽 다리의 무릎 부상을 당해, MRI를 실시한 결과, 안쪽 측부 인대가 손상된 것이 판명되어, 그 앞으로 6주간 경기에 뛸 수 없게 되었다. 팀에 복귀한 것은 시즌의 최종전으로 10월 21일에 행해진 시카고 파이어와의 경기에서 베컴은 교체로 출장했지만, 팀은 0-1에서 져 플레이오프에 진출에 실패했다. 데뷔 시즌은 리그전 5 경기를 포함해 8 경기에 출장, 리그전에서는 득점은 못했지만, 2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베컴은 2008년 1월 4일부터, 갤럭시의 프리시즌이 시작될 때까지의 3주간, 아스널의 연습에 참가했다. 리그전으로의 첫 골은, 4월 3일의 샌노제 아스크에이크스 전의 전반 9분에 득점하였다. 5월 24일의 캔자스시티 위자즈 전에서 3-1에서 이겨, 팀은 선두로 부상했다. 그 시합의 종료 직전에, 베컴은 1996년에 결정한 골과 같은 위치로부터, 골을 넣었다. 그러나 갤럭시는 최종적으로 컨퍼런스 6위의 성적에 끝나,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2008년 10월 베컴은 파비오 카펠로 감독의 요구대로 잉글랜드 대표팀에 합류하기 위해 유럽 무대로 자리를 옮겨 월드컵에 대비하려 하였고, MLS 사무국, LA 갤럭시, AC밀란, 베컴 모두 이번 계약에 동의를 하여 AC밀란으로 임대가 결정되었다.[30] 베컴은 당초 미국 MLS가 개막하는 3월까지만 단기 임대로 뛸 예정이었으나 시즌 개막까지 임대 기간을 연장하며 AC밀란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AC밀란에서 빠른 적응력을 보이며 녹슬지 않은 기량을 과시했고, 파비오 카펠로 감독이 이끄는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도 자리를 잡았다. 그로 인해 2009년 시즌은, AC밀란과의 임대 계약 연장 때문에, 시즌의 전반을 결장하게 되었고, 그 때문에 2009년 7월 19일에 행해진 AC밀란과의 친선 시합으로 미국 축구 팬으로부터 「사기꾼」등과 야유하는 소리를 받는 등, 자신들과의 계약을 등한시한 베컴에게 비난을 쏟았고, 팀에 복귀한 베컴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베컴은 "자신에게 기회를 준 LA 갤럭시 구단 관계자와 브루스 어리나 감독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며 "LA 갤럭시MLS에서 오랜 기간 활동할 것이며 미국 축구를 부흥시키겠다는 열정은 아직도 한결같다"는 말로 감사와 사과를 전했다. 팀은 근년에 가장 좋은 시즌을 보내, 베컴 복귀 후에 팀은 서컨퍼런스의 3위로부터 선두로 부상했다. 베컴은 팀의 중심 선수로서 활약해, MLS컵에서는 휴스턴 다이나모를 2-0으로 이기며, 결승 진출에 성공한다. 2009년 11월 22일에 행해진 결승의 레알 솔트레이크 전에서는 베컴도 풀 출장했지만, 연장전에서도 1-1인 채 끝나, PK 전의 끝에 4-5으로 패했다.

AC 밀란 (임대)

AC밀란, 데이비드 베컴

월드컵의 예선은 MLS의 시즌 종료 후에도 행해지기 위해 베컴은, 파비오 카펠로 감독이 이끄는 잉글랜드 대표로 플레이하기 위한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서, 유럽으로 복귀하는 거 아니냐는 소문이 났고, 2008년 10월 22일AC밀란은, 2009년 1월 7일부터, 베컴이 임대로 입단한다고 발표한다. 여러 가지 억측이 난무했지만, 베컴은 MLS를 떠날 의사가 없고, 2009년 3월에 개막하는 LA 갤럭시로 돌아온다고 밝힌다. 일부에서는, 마케팅 목적의 이적이라고 야유되었지만, AC밀란은 팀을 강화하기 위해서 필요한 이적이라고 주장한다. 등번호 7번과 23번은 이미 다른 선수가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베컴은 32번을 선택했다. 메디컬 체크를 끝낸 베컴은, 클럽의 의사로부터, 38세가 되는 5년 뒤에까지 축구 선수로서 플레이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전해 듣는다.

2009년 1월 10일 2-2 무승부였던 AS 로마 전에서 선발 멤버로서 89분까지 출장해, 세리에 A 데뷔를 장식하였고, 4-1로 승리한 1월 25일의 볼로냐 FC 전에서 첫 골을 기록한다. 3월에는 LA 갤럭시에 돌아오게 되어 있었지만, 베컴은 최초의 4 경기로 2 골을 넣어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의 활약을 하였고, 베컴은 AC밀란에 남고 싶다고 희망해, AC밀란도 베컴 잔류를 위해서 수백만 달러를 지불할 의사가 있다는 보도가 되었다. 2월 4일에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잉글랜드 대표팀로 해 뛰기 위해서도, 베컴은 AC밀란에 완전 이적하는 것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 밝혀졌지만, AC밀란이 제시한 1000-1500만 달러의 금액은, LA 갤럭시의 베컴의 평가에 알맞은 액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교섭은 1개월간 계속되어, 3월 2일의 LA 타임즈는, 베컴의 이적 기간은 7월 중순까지 연장되었다고 알려져, 베컴도 7월 중순부터, 2009년MLS의 시즌 종료까지, LA 갤럭시에서 뛰겠다고 말한다.

2009년 11월, 2010년 1월부터 AC밀란에 재 임대되는 것이 발표되었고,[31] 세리에 A에 복귀하고 처음으로 맞이한 2010년 1월 6일에 행해진 제노아 CFC전에 선발 멤버로서 75분간 출장해, 팀도 5-2로 승리한다. 2010년 2월 16일에는 2003년에 클럽을 떠나고 처음으로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전 토너먼트 1회전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 대전해, AC밀란의 홈구장에서 베컴도 76분간 플레이 했지만, 팀은 2-3로 졌다. 2010년 3월 10일, 베컴은 2차전의 시합을 위해서 AC밀란의 선수로서 올드 트래포드에 귀환했다. 선발 멤버에게서는 제외되었지만, 교체선수로 64분부터 출장하면, 팬에게서는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올드 트래포드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대전하는 것은 첫 경험이었지만, 크로스와 코너 킥에서 찬스를 연출했다. 그러나 팀은 0-4에서 져 8강 진출이 무산되었다. 그 후에 행해진 AC 키에보 베로나 전에는 선발 멤버로서 출장했지만, 베컴은 아킬레스건 단열이 중상을 입어, 2010년 3월 15일에 수술을 받았다.

LA 갤럭시 복귀 후

2009-10시즌 종료 후는 LA 갤럭시에 복귀하였다. 2010년 9월 11일 베컴은 아킬레스건 부상에서 회복 후 콜럼버스 크루와의 3-1 승리 경기로 컴백하였다. 10월 4일 CD 치바스USA 경기에서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프리킥골을 성공시키며 2-1 승리를 거두었다. 10월 24일 베컴은 MLS 서부지구 최종전인 FC 달라스 경기에서 동점골을 넣었고, 랜던 도노반이 결승골으로 승리하며 3년 연속 서부지구 우승을 차지하였고, 서포터즈 쉴드(레귤러 시즌 1위) 획득에 공헌했다.[32] 시즌 종료 후의 2010년 12월, 프리미어 리그의 토트넘 홋스퍼 FC의 감독인 해리 레드냅 감독이 베컴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고 기사화되어 1월에는 다시 임대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돌았지만, 보험의 문제로 무산되었다. 그러나 레드냅 감독은 베컴이 팀에 좋은 영향을 가져온다는 판단으로부터 연습에 참가를 타진해, 베컴과 LA 갤럭시측도 이것을 수락하였다.

LA 갤럭시 재계약

2012년 LA 갤럭시, 데이비드 베컴

5월 15일 베컴은 스포르팅 캔자스 시티와의 경기에서 시즌 첫 골인 30야드(27미터) 프리킥을 성공시키며 4-1 승리로 시즌의 첫 번째 목표를 이뤘다. 7월 9일 시카고 파이어와의 경기에서는 1-1 동점상황이던 후반 21분 코너킥골을 넣으며 2-1 승리를 이끌었다. 베컴은 소속팀인 LA 갤럭시와 함께 최고의 시즌을 보내며 그의 다섯 번째 MLS 시즌을 마쳤다. 베컴은 훈련 도중 햄스트링을 다치고, 감기 등으로 안좋은 컨디션에서 불구하고 3~4일 간격으로 벌어진 타이트한 일정 속에서도 11월 21일 MLS컵 플레이오프 휴스턴 디나모와의 결승전에서 90분 풀경기를 뛰며 팀의 승리를 이끌며, 지난 2007년 LA 갤럭시 입단한 이래 처음으로 MLS컵을 들어올리며 감격을 누렸다.[33] 또한 LA 갤럭시와의 계약기간도 만료되는 시기여서 베컴의 차기 행선지에 대해 많은 언론에서도 연일 보도하며 화제가 되었다.[34] 그 중에서도 프랑스의 파리 생제르망과 연봉 1,200만달러(약 140억원)계약이 임박했다고 보도하는 등, 유럽 복귀가 유력한듯 보였으나, 베컴은 차기 행선지에 대해 신중함을 나타나며 "자신과 내 가족를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하겠다"라고 밝히며 잔류를 선택하였고, LA 갤럭시와 2년 연장 계약에 합의하였다.[35][36]

2012시즌에서는 베컴은 7 골과 9 어시스트를 추가로 LA 갤럭시가 서부 지구 2012 정규 시즌 4위로 마무리하는데 공헌하였고, LA 갤럭시밴쿠버 화이트캡스 FC, 산호세 어스퀘이크, 휴스턴 다이너모를 연이어 물리치며, 12월 1일 결승전에서는 3-1로 승리하며 2년 연속 MLS컵을 들어올렸다.[37][38][39] 베컴은 2012 MLS컵 결승전이 있기전 아직 계약이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LA 갤럭시 선수로써 마지막 경기가 될 것이라고 발표하였고, 앞으로 자신의 행선지에 대해서는 크리스마스 이후에 발표하겠다고 밝혔다.[40]

파리 생제르맹과 현역 선수 은퇴

LA 갤럭시와의 결별 이후 유럽은 물론 중국과 호주, 중동 등 10개가 넘는 수많은 팀에서 영입제안을 받은 베컴은 파리 생제르맹과의 계약에 앞서 새로운 팀을 정하지 못한 시기인 2013년 1월 아스널 FC 1군 선수들과 지난 2007년에 이어 함께 훈련을 받기도 했다.[41] 2013년 2월 1일 파리 생제르맹 FC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베컴의 이적을 공식 발표하며 3년여만에 유럽 무대에 복귀하였고,[42] 프랑스 파리 파크 데 프랭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자신의 입단 기자회견에서는 베컴을 비롯, 나세르 알 켈라이피 회장, 레오나르도 단장 등 구단 운영진이 참석하였다. 베컴은 이 자리를 통해 "지금까지 축구 인생을 돌아보면 난 행운아였다. 특별한 일을 하고 싶어 파리 생제르맹을 선택했다"며 자신의 급여 전액을 파리의 어린이 자선단체에 기부할 것이라고 밝혔다.[43] [44] 그는 2월 25일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와의 홈경기에 교체 투입돼 약 15분간 활약하며 팀의 2-0 승리를 도왔다.[45] 베컴은 예상과 달리 발렌시아와의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에 출전하지 않았지만 챔피언스리그 무대에 복귀한 그 자체의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였다.[46] 이후 4월 3일 FC 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에서 언론의 예상을 뒤엎고 이 날 경기에 깜짝 선발 출전하였다.[47] 하지만 베컴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파리 생제르망은 FC 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에서 2-2, 2차전에서 1-1로 무승부로 통합전적 2무를 기록하며 아쉽게도 FC 바르셀로나가 원정 다득점에서 앞서 파리 생제르망은 4강행에서 실패했다.[48] 5월 16일 그는 카를로스 안첼로티 감독과 파리 생제르망 구단의 재계약 희망에도 불구하고,[49] [50] 파리 생제르망에서의 선수 생활을 끝으로 프로 축구에서 은퇴한다고 공식 발표했다.[51] [52] [53] 2012-13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길 원한 그의 결정에 따라 베컴은 그의 마지막 경기에서 유니언 잭의 색으로 특별히 디자인 된 축구화를 착용했다. 이 축구화에는 그의 아내 빅토리아 베컴, 그리고 4명의 자녀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5월 18일 파르크 데 프랭스에 열린 현역 선수로써 마지막 경기에서 베컴은 스타드 브레스트 29와의 그의 마지막 경기에서 주장으로 선발 출장되었다. 이 경기에서 베컴은 블레이즈 마투이디의 결승골을 돕는 1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교체 직전까지 83분동안 맹활약했다. 베컴은 동료 선수들와 구단 관계자뿐만 아니라 수많은 팬들의 기립 박수를 받으며 그라운드를 떠났고, 파리 생제르망은 3-1 승리하였다.[54] [55] [56] [57] [58] [59] [60] [61] [62] [63] [64]

대표 경력

1996년 9월 1일에 행해진 월드컵 예선의 몰도바 전에서 A매치 데뷔했다.[65] 그 후의 예선의 경기에도 출장을 계속해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잉글랜드 대표의 멤버에게 선출되었다. 감독을 맡고 있던 글렌 호들이 대회에 집중되어 있지 않다고 판단하여 최초의 2경기는 선발에서 제외됐지만, 3경기째인 콜롬비아 전에서 선발 출전하였고, 베컴은 프리킥으로 골을 넣어 2-0의 승리에 공헌했다. 이 골은 베컴의 국가대표로의 첫골이었다. 그러나, 결승 토너먼트 1회전(16강 전)의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당시 베컴은 디에고 시메오네를 가격해 레드카드를 받아 퇴장을 하게 되었고, 팀도 PK전 끝에 패하게 되어, 「10명의 사자와 1명의 어리석은 젊은이」라고 하는 표어가 붙여져 전범으로서 미디어를 포함해 많은 비난을 받아 베컴은 죽음의 협박도 받았다. 심지어는 그의 안티팬들은 그의 얼굴이 새겨진 다트판을 만들 정도였다. 팬에 의한 비판이 절정으로 달한 것이, 2-3로 진 UEFA 유로 2000의 포르투갈 전이다. 써포터는 경기내내 베컴에 야유하는 소리를 계속 퍼부었지만, 베컴은 오른손의 중지를 세워 응했다. 그 행위도 또 비난 당했지만, 일찍이 그를 비판하고 있던 신문사는 독자에 대해, 이제 베컴을 비판하는 것은 멈추도록 요구한다.

2002년 한일월드컵 브라질 전, 데이비드 베컴

2000년 10월에 감독을 사임한 케빈 키건의 뒤를 이은 피터 테일러 감독에게 주장으로 지명되어 감독으로 취임한 스벤 예란 에릭손 감독에게서도 주장으로서 플레이를 계속하게 되었다. 베컴은, 5-1으로 승리한 독일 전을 포함해 월드컵 최종 예선으로 활약을 계속했다. 그리스 전에서는, 1-2이라고 리드되고 있는 후반 로스타임, 동점이 되는 프리킥을 넣어 잉글랜드를 월드컵 본선 진출로 이끌었다. 이러한 활약으로 베컴이 야유하는 소리를 받아 비판되는 일은 일절 사라지게 되었다. 그 해는 BBC 선정 올해의 스포츠인상을 수상하였고, FIFA 최우수 선수상로는 2위로 선택되었다.

2002년 FIFA 월드컵 조별 예선의 스웨덴 전에 출장을 완수해, 아르헨티나 전에서는, PK로부터 골을 기록했다. 그 당시 이 PK는 할리우드 액션으로 따낸 PK이라는 많은 비판이 있었다. 잉글랜드 대표는 8강전에서 브라질과의 만나 1-2로 역전패해 최종 8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UEFA 유로 2004에도 잉글랜드 대표로 해 출장했지만 1-2로 진 프랑스 전에서 PK를 실패한 외에도 8강전의 포르투갈 전의 PK전에서도 최초의 키커로서 실축하였다. 2004년 10월 4일의 웨일즈 전에서, 옐로카드를 받아 누적으로 아제르바이잔 전은 출장 정지가 되었다. 베컴은 시합중에 늑골을 부상하고 있는 것에, 다음의 시합에는 출장할 수 없는 것을 알고, 옐로카드를 받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파울을 범했다고 밝혔다. 잉글랜드 축구 협회는 조사에 나서, 베컴은 「중대한 잘못을 범해 버렸다」라고 인정 사죄를 했다. 베컴은, 2005년 1월유니세프 친선 대사로 임명되었다. 또, 2012년 런던에서의 개최를 목표로 하는 올림픽의 유치 활동에 참가해, 큰 공헌을 했다. 2005년 10월 행해진 오스트레일리아 전에서 퇴장해, 대표 주장으로서 처음으로 퇴장 처분을 받은 선수가 되어, 잉글랜드 대표로 퇴장한 첫 선수로가 되었다.

2006년 6월 10일, 잉글랜드 대표에 있어서의 2006년 독일 월드컵 조별 예선인 파라과이 전에서는 베컴의 프리킥이 상대선수의 자살골로 이어져 잉글랜드는 1-0으로 승리했다. 6월 15일에 행해진 2번째 경기의 트리니다드토바고 전에서는 피터 크라우치스티븐 제라드의 골도 어시스트 했다. 시합은 2-0으로 승리하여 대회 스폰서의 버드와이저가 선출하는 맨오브더매치로 선택되었다. 16강전의 에콰도르 전에서는 59분에 프리킥으로부터 골을 기록, 잉글랜드 대표 선수로서 월드컵 3대회에서 연속으로 득점을 올린 첫 선수가 되었고 시합도 1-0로 승리하여 8강 진출을 완수했다. 베컴은 시합 전부터 몸이 불편하고, 컨디션 불량과 탈수증상에 빠진 결과 득점 후도 플레이를 계속했지만, 시합중에 몇차례 구토했다. 8강전의 포르투갈 전에서는 부상을 우려하여 52분에 교체되었고 경기는 연장전을 끝내 0-0까지 PK전의 끝에 졌다. 교대 후 베컴은 플레이 할 수 없는 것으로부터 눈에 보여 낙담하고 있어 벤치에서 눈물을 흘렸다. 월드컵 패한 후의 다음날, 기자 회견에서 대표 주장을 물러난다라는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주장으로서 대표를 이끄는 것은 매우 명예로운 특권이며, 대표에서는 95 경기(실제는 94 경기)에 출장해, 58 경기로 주장을 맡았지만, 팀은 스티브 맥클라렌 감독 아래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려 하고 있을 때로, 주장 마크를 양도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다고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 후 존 테리가 주장을 물려받았다.[66] 주장 사임후의 2006년 8월 11일, 스티브 맥클라렌 감독은 처음으로 대표를 소집했지만, 베컴은 멤버로부터 제외되어 맥클라렌 감독은 「팀은 새로울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하고 있어 거기에 베컴은 포함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다만, 장래적으로는 차출할 가능성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2008년 3월 20일, 잉글랜드 대표팀에 새로 부임한 파비오 카펠로 감독은, 26일의 프랑스 대표와 친선 경기 멤버로 베컴을 소집했다. 베컴은 선발 멤버로서 시합에 출장해, 잉글랜드인으로서 100 경기를 기록한 5명째의 선수가 되었다. 2008년 5월 11일, 카펠로는 28일에 웸블리에서 행해진 미국 대표와의 경기와 6월 1일에 행해지는 경기에 임하는 대표 멤버 31명을 발표하여 베컴도 거기에 포함되었다. 시합전에 베컴은 100경기를 기념한 금빛의 모자를 바비 찰튼으로부터 건네받았을 때에는 수많은 관중에게 박수갈채를 받았다. 6월 1일트리니다드토바고 전에서는 카펠로는 베컴을 주장으로 지명하여 베컴은 월드컵 이래 2년만에 주장으로서 시합에 출장했다. 월드컵 예선의 벨라루스 전에서 87분부터 출장, 107경기를 기록하여 역대 3위의 경기 출장수가 되었고 2009년 2월 11일에 행해진 스페인 대표와의 친선 시합에서는 스튜어트 다우닝에 대신해 후반부터 출장, 대표 108 경기를 기록하여 바비 무어가 가진 필드 플레이어로서의 최다 출장수의 기록에 이어, 잉글랜드 대표 역대 2위 타이의 경기 출장수가 되었다. 2009년 3월 28일슬로바키아 대표와의 시합에 도중 출장하여 무어의 기록을 갱신하였고, 시합에서는 웨인 루니의 골을 어시스트 했다. 2009년 6월 10일안도라 전에서 선발 멤버로서 100 경기의 선발 출장을 완수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의 출전은, 부상에 의해 선수로서 출장할 기회는 놓치게 되었지만, 2010년 5월 14일에 월드컵에 코치자격으로 합류했다.[67]

2006년 독일월드컵, 잉글랜드 대표팀 주장인 데이비드 베컴

현재 잉글랜드 대표팀에서의 공식적인 은퇴는 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은퇴로 여겨지고 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최고의 화제거리였던 52년만의 '영국 축구 대표팀' 결성은 연일 화제였고, 베컴은 런던 올림픽 흥보대사로서 당시 개최권을 따오는 것에 큰 공로를 세우며, 현재도 전혀 녹슬지 않은 기량의 실력을 뽐내는 등 당연히 와일드카드로 선발 될꺼라고 예상되었다. 하지만 영국 단일팀의 감독을 맡은 스튜어스 피어스이 발표한 대표팀 최종 명단에 들지 못해 베컴의 합류를 기대한 영국의 축구팬들과 베컴 본인 역시 큰 아쉬움을 느끼며 실망하였다.[68][69] 또한 베컴을 선택하지 않은 스튜어스 감독에 대한 비난과 반대의 의견이 커져, 잉글랜드 대표팀 간판 스트라이커였던 게리 리네커는 "베컴의 단일팀 제외는 끔찍한 짓"이라며 피어스 감독을 비판했고, 비틀즈의 멤버인 폴 매카트니는 베컴의 탈락에 크게 분노하며, "베컴은 관중을 몰고 다니는 인물이자, 국가적 영웅이라고 추켜세우며, 어떤 멍청이들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라고 비난했다. 전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이었던 스벤 예란 에릭손도 "베컴은 무조건 데려갔어야 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텔레그라프지의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영국 국민의 67%가 '베컴이 올림픽에 나갔어야 했다'라고 생각한다고 보도하였다.[70]

베컴 열풍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잘생긴 외모로 전 세계 여성들로부터 절대적인 인기를 얻었고, 특히 폭발적인 인기를 끌은 일본의 매스컴에서는 「축구계의 「브래드 피트」나 이례적인 존칭을 붙여 「베컴사마」라고 불렀다.[71][72] 또한 보다폰 모바일, 펩시, 아디다스, 모토로라, 질레트, 조르지오 아르마니(언더웨어), 디젤, 폴리스 선글라스 등과 일본에서는 도쿄 뷰티 센터(TBC 그룹), 메이지 제과, 리뉴카, M702iS(NTT 도코모)등의 여러편의 텔레비전 광고에도 연이어 출연하였다.[73] 또한 한일 월드컵 때의 닭벼슬 헤어스타일은 「베컴 헤어」 라는 이름이 붙으면서 전 세계적으로 크게 유행하였다.[74]

베컴 부부

가족 관계

1997년 1월 베컴은 우연히 텔레비전을 통해 영국의 인기 걸그룹 스파이스 걸스의 〈Say You'll Be There〉 뮤직비디오를 보게 되었고, 현재 아내이자 스파이스 걸스의 멤버인 빅토리아 아담스을 보고 한눈에 반하며, 이 여성과 반드시 결혼하겠다고 결심한다. 이후 빅토리아가 다녀갔다는 클럽을 모두 수소문한 끝에 연락을 하지만 당시 톱가수였던 빅토리아는 데이비드를 수많은 남성팬 중 하나로 생각한 나머지 만남으로까지는 성사되지 못했다. 그러던 3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열성팬이였던 스파이스 걸스의 매니저인 사이먼 풀러와 함께 경기를 보러온 빅토리아와 첼시와의 경기를 마치고 난후 바에서 둘은 아쉬운 첫만남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베컴은 갑작스런 첫만남에 너무 떨린 나머지 빅토리아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한달후 빅토리아가 스파이스 걸스 멤버의 멜라니 C와 함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를 다시 보러 오게 되었고, 두 번째 만남때 서로의 전화번호를 교환하며 처음으로 긴 대화를 나누었고 베컴은 자신의 경기를 보러 와준 빅토리아에게 크게 감동한다. 하지만 스파이스 걸스미국 투어 공연으로 장기간 떨어져 지내게 되었고 전화로 데이트를 하며 사랑을 키워나가게 되었다. 당시 베컴은 빅토리아와의 전화번호 교환이후 너무 기쁜 나머지 번호를 잊어버릴까봐 여러장의 종이에 옮겨 적어 보관했다고 한다.

이후 두사람은 3개월간 비밀 데이트하며 사랑을 싹틔웠다. 빅토리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팝·뮤직 그룹인 스파이스 걸스의 멤버의 한 사람으로 「포쉬 스파이스」의 애칭으로 알려져 있었고, 베컴이 소속하는 팀은 잉글랜드에서 수많은 성공을 거두고 있는 팀이었기 때문에, 두 명의 관계는 미디어로부터 많은 주목을 끌어 이 커플을 포시 앤드 벡스(Posh and Becks)라고 불렸다. 1998년 1월 24일 잉글랜드의 체스 헌트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베컴은 빅토리아에게 로맨틱한 프로포즈를 하였고, 언론을 통해 두사람의 약혼 발표를 하였다.

1999년 7월 4일 아일랜드에 있는 르트레스타운 성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고, 빅토리아의 성은 남편의 성을 따라 베컴이 되었다. 결혼식 피로연에서는 베컴의 어린시절부터 절친이기도 한 게리 네빌이 베스트 맨을 맡았고, 생후 4개월의 큰 아들 브루클린이 반지를 들고 가는 아이의 역을 담당했다. 당시 OK!잡지와 독점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그 외의 미디어는 회장에 들어갈 수 할 수 없었지만, 다른 신문사에서도 금빛의 왕좌에 앉는 두 사람의 사진을 입수하는 것에 성공해, 신문에 게재했다. 결혼식에는 총437명의 스탭이 고용되어 500,000파운드(한화 8억 5천만원)의 비용이 사용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해 베컴 부부는 런던 북부의 하트포드셔에 위치한 현재 베킹엄 궁으로 불리고 있는 대저택을 구입했다.

데이비드와 빅토리아 사이에는 4명의 아이들이 있는데, 세 아들은 브루클린 조셉 베컴(영어: Brooklyn Joseph, 1999년 3월 4일영국 런던에서 태어남), 로미오 제임스 베컴(영어: Romeo James, 2002년 9월 1일에 런던에서 태어남), 크루즈 데이비드 베컴(영어: Cruz David, 2005년 2월 20일에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태어나 이름의 Cruz는 스페인어로 십자가를 의미한다)[75]으로, 브루클린과 로미오의 대부는 엘튼 존이며, 대모는 엘리자베스 헐리이다. 2011년 7월 10일 베컴 부부가 그토록 기다리던 첫 딸을 출산하였으며,[76] 딸의 이름은 하퍼 세븐 베컴(영어: Harper Seven, 2011년 7월 10일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남)으로 지었다고 베컴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하였다.[77] 베컴 부부는 "하퍼"라는 이름을 짓게 된 이유를 공개하기도 했는데, 이는 빅토리아가 좋아하는 미국 출신 작가 하퍼 리(Harper Lee)에서 따온 것이라고 밝혔다.[78]

자산

2007년 4월 베컴은 계약을 맺은 새 소속팀 LA 갤럭시과 가까운 위치인, 베버리힐즈에 위치한 이탈리아풍 저택을 구입했다. 이 건물은 2,200만 달러로, 가까운 곳에는 친분이 있는 톰 크루즈가 살고 있다. 2012년에는 베컴 부부가 1999년부터 살아온 베킹엄 궁으로 불리는 2,800만 달러(한화 310억원)에 달아는 대저택은 가족의 완전한 미국 정착을 위해 처분을 결정하였지만, 현재는 취소된것으로 알려졌다.[79] 그외 프랑스에 있는 400만 달러(한화 40억원)의 저택 등 50만 파운드(한화 9억 5천만원) 상당의 벤틀리, BMW 645, 레인지 로버 스포츠, 람보르기니 가야르도, 할리 데이비슨 바이크 등의 고급 승용차 또한 함께 처분을 결정하였다.

2008년 4월 프랑스 풋볼잡지가 발표한 세계 축구 선수의 연수입 랭킹(연봉 등, 스폰서 수입도 포함)에서 1위로 3100만 유로(한화 480억원)로 발표되었다. 하지만 2010년 3월 23일에 발매된 같은 잡지에 의하면 세계 축구 선수의 연수입 랭킹으로 베컴은 2위(3040만 유로)로 밀려나, 1위는 리오넬 메시의 3300만 유로, 3위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3000만 유로였다.

2012년 5월, 영국 선데이 타임즈가 「부자 리스트」를 발표하였는데, 데이비드의 총자산이 1억 6000만 파운드(한화 3,000억원)로 1위로 알려졌다. 베컴은 LA 갤럭시로부터 2년간 5,600만 파운드(한화 1,030억원)의 계약을 맺고 있는 것 외에 2012년 영국 런던 올림픽에서 삼성전자의 브랜드 홍보대사를 맡는 계약을 맺었고, 아디다스펩시 콜라, 버거킹 모델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스웨덴 의류 업체 H&M와의 속옷 출시 계약을 체결하여 몇달 사이에 3,700만달러(한화 430억원)를 챙기는 수완을 발휘하며 상당한 개런티를 받았다.[80]

한층 더 패션 디자이너로써 명성을 쌓고 있는 아내 빅토리아 베컴의 패션 브랜드의 수입까지 합쳐지면, 향후에도 베컴가족의 자산은 계속 증가하게 될 것으로 보고있다. 같은 해 6월 할리우드 리포터지에 의하면,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고급 주택지 말리부에 있는 베컴의 별장이 여름 기간 한정으로 월 15만 8000달러(한화 1억 7천만원)로 임대에 나왔다고 한다. 이 장소는 해변의 한적한 고급 주택지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멜 깁슨, 스팅, 제임스 카메론 감독 등의 많은 부자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외

런던에 위치한 데이비드 베컴 유소년 아카데미
  • 베컴 부부의 영국의 대저택은 '베킹엄 궁(Beckingham Palace)으로 불리고 있으며, 이것은 영국 왕실의 버킹엄 궁전을 모방한 것으로 고급 주택가가 많은 하트포드셔에 위치하고 있어, 런던 중심부로부터 차로 1시간 정도의 장소에 있다. 약 97,000m의 부지면적이 있다.
  • 유소년 시절부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시합을 정장차림으로 관전해, 상당한 경의를 나타내고 있었다. 또한 팀에서 가장 헤딩이 강했다.
  • 베컴의 신체에는, 아내 빅토리아나 4명의 자녀들(브루클린, 로미오, 크루즈, 하퍼)의 이름이 타투(문신)로 새겨져 있다. 왼팔에는, 인도의 힌두어 등의 언어로 사용되는 데이바나가리 문자로 「VHIKTORIYA」를 새겨져 있다.
  • 2002년 인도의 여성 감독 거린다 차다가 연출한 베컴을 소재로 한 영화 《슈팅 라이크 베컴》이 제작되어 파민더 나그라, 키이라 나이틀리,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 주연을 맡아, 개봉되었다.
  • 2002년 한일 월드컵때의 모히칸 헤어스타일이 「베컴 헤어(닭벼슬)」이라고 불리며 현재까지도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
  • 2002년 「베컴 나의 축구 나의 인생」에 이어, 2003년 「데이비드 베컴 (마이 사이드)」 자서전을 발간하였다.
  • 외모가 뛰어난 유럽 출신의 스포츠 선수를 「제2의 베컴」이라고 부르는 일이 있다.
  • 어린 시절, 천재 축구 소년으로서 텔레비전으로 소개되었던 적이 있다.
  • 2005년, 2007년, 2009년에 각 개봉된 시리즈 영화골 (영화)골》에 지네딘 지단, 라울 곤살레스등과 함께 특별출연하였다.[81]
  • 2005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영국 런던에 "데이비드 베컴 축구 아카데미"를 설립하였다.[82]
  • 2006년 1월 베컴이 평소 아끼는 차인 「BMW·X5」를 도둑맞는 피해를 당했다. 2년 뒤 2007년 4월 마케도니아 공화국 내무장관의 관용차로 쓰이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베컴의 열광적인 팬이었던 내무장관(여성)은 「되찾고 싶다면 마케도니아까지 본인이 찾으러 오는 것이 조건」이라고 발언했다.
  • 2006년 자신이 강박성 장애인 것을 미디어에 고백했다.
  • 취미는 우표 모음과 테디 베어의 컬렉션. 옥션으로 1800파운드의 테디 베어를 EBAY(인터넷 경매)로 구입했던 것이 영국BBC 뉴스로 보도된 적이 있다.
  • 2007년 아내인 빅토리아와 함께 "dvb(David+Victoria+Beckham)" 브랜드를 런칭했다.

경기 기록

최신 업데이트
2012년 12월 4일 집계

클럽

클럽 시즌 리그 리그 컵 유럽(UEFA) 그외 합계
출장 득점 출장 득점 출장 득점 출장 득점 출장 득점 출장 득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프리미어리그 1992-93 0 0 0 0 1 0 0 0 0 0 1 0
프리미어리그 1993-94 0 0 0 0 0 0 0 0 0 0 0 0
프레스턴 노스 엔드 FC (임대) 프리미어리그 1994-95 5 2 0 0 0 0 - 0 0 5 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프리미어리그 1994-95 4 0 2 0 3 0 1 1 0 0 10 1
프리미어리그 1995-96 33 7 3 1 2 0 2 0 0 0 40 8
프리미어리그 1996-97 36 8 2 1 0 0 10 2 1 1 49 12
프리미어리그 1997-98 37 9 4 2 0 0 8 0 1 0 50 11
프리미어리그 1998-99 34 6 7 1 1 0 12 2 1 0 55 9
프리미어리그 1999-2000 31 6 - 0 0 12 2 5 0 48 8
프리미어리그 2000-01 31 9 2 0 0 0 12 0 1 0 46 9
프리미어리그 2001-02 28 11 1 0 0 0 13 5 1 0 43 16
프리미어리그 2002-03 31 6 3 1 5 1 13 3 0 0 52 11
합계 265 62 24 6 12 1 83 15 10 1 399 87
레알 마드리드 CF 프리메라리가 2003-04 32 3 4 2 - 7 1 2 1 45 7
프리메라리가 2004-05 30 4 0 0 - 8 0 0 0 38 4
프리메라리가 2005-06 31 3 3 1 - 7 1 0 0 41 5
프리메라리가 2006-07 23 3 2 1 - 6 0 0 0 31 4
합계 116 13 9 4 - 28 2 2 1 155 20
LA 갤럭시 메이저 리그 싸커 2007 5 0 0 0 - - 2 1 7 1
메이저 리그 싸커 2008 25 5 0 0 - - 0 0 25 5
AC밀란 (임대) 세리에 A 2008-09 18 2 0 0 - 0 0 2 0 20 2
LA 갤럭시 메이저 리그 싸커 2009 11 2 0 0 - - 4 0 15 2
AC밀란 (임대) 세리에 A 2009-10 11 0 0 0 - 2 0 0 0 13 0
합계 29 2 0 0 - 2 0 2 0 33 2
LA 갤럭시 메이저 리그 싸커 2010 7 2 0 0 - - 3 0 10 2
메이저 리그 싸커 2011 26 2 0 0 - - 4 0 30 2
메이저 리그 싸커 2012 24 7 0 0 - 1 1 6 0 31 8
합계 98 18 0 0 - 1 1 19 1 116 20
파리 생제르맹 FC 리그앙 2012-13 10 0 2 0 - 2 0 0 0 14 0
합계 10 0 2 0 - 2 0 0 0 14 0
총 계 523 97 35 10 12 1 118 18 31 3 719 129
잉글랜드 대표팀
년도 출장 득점
1996 3 0
1997 9 0
1998 8 1
1999 7 0
2000 10 0
2001 10 5
2002 9 3
2003 9 4
2004 12 2
2005 9 1
2006 8 1
2007 5 0
2008 8 0
2009 8 0
합계 115 17

국가대표팀 득점 기록

최신 업데이트
2010년 2월 20일 집계
# 날짜 경기 장소 상대 국가 득점 결과 경기 형식
1. 1998년 6월 26일 스타드 드 제를랑, 리옹 콜롬비아 콜롬비아 2-0 2-0 1998년 FIFA 월드컵
2. 2001년 3월 24일 안필드, 리버풀 핀란드 2-1 2-1 2002년 FIFA 월드컵 예선
3. 2001년 5월 25일 프라이드 파크 스타디움, 더비 멕시코 3-0 4-0 친선경기
4. 2001년 6월 6일 올림픽 스타디움, 아테네 그리스 2-0 2-0 2002년 FIFA 월드컵 예선
5. 2001년 10월 6일 올드 트래포드, 맨체스터 그리스 2-2 2-2 2002년 FIFA 월드컵 예선
6. 2001년 11월 10일 올드 트래포드, 맨체스터 스웨덴 1-0 1-1 친선경기
7. 2002년 6월 7일 삿포로 돔, 삿포로 아르헨티나 1-0 1-0 2002년 FIFA 월드컵
8. 2002년 10월 12일 Tehelne pole, 브라티슬라바 슬로바키아 슬로바키아 1-1 2-1 UEFA 유로 2004 예선
9. 2002년 10월 16일 세인트 메리스 스타디움, 사우샘프턴 북마케도니아 북마케도니아 1-1 2-2 UEFA 유로 2004 예선
10. 2003년 3월 29일 라인파크 경기장, 파두츠 리히텐슈타인 리히텐슈타인 2-0 2-0 UEFA 유로 2004 예선
11. 2003년 4월 2일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 선더랜드, 타인 위어 주 튀르키예 튀르키예 2-0 2-0 UEFA 유로 2004 예선
12. 2003년 8월 20일 포트먼로드, 입스 위치 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 1-0 3-1 친선경기
13. 2003년 9월 6일 마케돈, 스코페 국립 아레나 필립 II 북마케도니아 북마케도니아 2-1 2-1 UEFA 유로 2004 예선
14. 2004년 8월 18일 세인트 제임스 파크, 뉴캐슬 어폰 타인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1-0 3-0 친선경기
15. 2004년 10월 9일 올드 트래포드, 맨체스터 웨일스 웨일스 2-0 2-0 2006년 FIFA 월드컵 예선
16. 2005년 3월 30일 세인트 제임스 파크, 뉴캐슬 어폰 타인 아제르바이잔 아제르바이잔 2-0 2-0 2006년 FIFA 월드컵 예선
17. 2006년 6월 25일 메르세데스 - 벤츠 아레나, 슈투트가르트 에콰도르 에콰도르 1-0 1-0 2006년 FIFA 월드컵

획득 타이틀

클럽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프리미어 리그 (6) : 1995-96, 1996-97, 1998-99, 1999-00, 2000-01, 2002-03
  • FA컵 (2):1996, 1999년
  • UEFA 챔피언스리그( 1) : 1998-99
  • 인터컨티넨탈 컵 (1) : 1999년
  • FA커뮤니티 쉴드(4) : 1993, 1994, 1996, 1997년
  • FA유스컵 (1) : 1992년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
  • 프리메라리가 (1) : 2006-07
  •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1) : 2003년
  • 코파 델 레이 (1) 준우승 : 2003-04
미국 로스앤젤레스 갤럭시
  • MLS Cup 우승 (2) : 2011, 2012
  • MLS 써포터즈 쉴드 (2) : 2010, 2011
  • MLS 서부 지구
    • 정기 시즌 우승 (3) : 2009, 2010, 2011
    • 플레이오프 우승 (3) : 2009, 2011, 2012
프랑스 파리 생제르맹
  • 리그 1 (1) : 2012-13
잉글랜드 잉글랜드
  • Tournoi de France : 1997년
  • FA Summer Tournament : 2004년

개인

  •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상 (1) : 1996년 8월
  • PFA 연간 최우수 신진 선수상 (1) : 1996–97
  • 맷 버스비경 올해의 선수 (1) : 1996–97
  • PFA 연간 베스트 일레븐 (4) : 1996-96, 1997-98, 1998-99, 1999-00
  • UEFA 최고의 미드필더상 (1) : 1998–99
  • UEFA 연간 최우수 선수상(MVP) (1) : 1998–99
  • 프리미어 리그 10시즌 어워드(1992–93 ~ 2001–02)
    • 10주년 기념 베스트 일레븐 선정
    • 10주년 기념 베스트 골 : 1996년 8월 17일, 윔블던전에서의 골
  • 20세기의 위대한 축구 선수 100명 49위 : 1999년
  • NFA 올해의 선수상 : 2000년
  • BBC 선정 올해의 스포츠인상 : 2001년
  • UEFA Team of the Year(올해의 베스트팀) 2001년, 2003년
  • FIFA 100 선정
  • ESPY 어워드 - 최고의 남자축구선수 선정 : 2004년
  • 레알 마드리드 올해의 선수상 (1) : 2005–06
  • ESPY 어워드 - 최고의 MLS 선수상 : 2008년
  • 잉글랜드 명예 축구 전당 : 2008년
  • FWA 공헌상 : 2008년
  • BBC 선정 스포츠 평생 공로상 : 2010년
  • MLS 올해의 재기상(Comeback Play of the Year) : 2011년
  • MLS 베스트11 선정 : 2011년
  • UEFA 특별상 : 2012년
  • ESPY 어워드 - 최고의 MLS선수상 : 2012년

그외 수상·홍보대사

  • 1996년 스카이 스포츠, 파나소닉 올해의 신인상
  • 1999년 FIFA 올해의 선수 2위
  • 1999년 발롱도르 2위
  • 2001년 FIFA 올해의 선수 2위
  • 2001년 BBC 올해의 인물상, 황금의 순간상
  • 2001년 웨스턴 유니언(Western Union) MVP
  • 2001년 골드 블루 피터 뱃지(Gold Blue Peter Badge) 수상
  • 2003년 올해의 잉글랜드 선수상(England Player of the Year)
  • 2005년 ~ (현재) 유니세프 친선대사 [83]
  • 2005년 ~ (현재) 2012 런던올림픽 홍보대사 [84]
  • 2007년 영국의 위대한 대사 - 100 위대한 영국인상
  • 2007년 영국 체육협회 스포츠 산업상
  • 2007년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40대 미만의 남성 1위 선정 - 아레나
  • 2007년 올해 유명인(Celebrity)100인 중 15위 - 포브스 선정
  • 2008년 Time 100 선정
  • 2008년 미국 틴초이스 시상식 남자 스포츠스타상
  • 2008 ~ 2010년 "2018년 잉글랜드 월드컵" 홍보대사 [85]
  • 2010년 미국 틴초이스 시상식 남자 스포츠스타상
  • 2010년 ~ (현재) 야후! 글로벌 축구 홍보대사 [86]
  • 2011년 ~ 2012년 삼성전자 런던 올림픽 글로벌 홍보대사[87]
  • 2011년 미국 두 섬씽 시상식(Do Something Awards) - 두 섬씽 스포츠 선수상
  • 2012년 미국 카툰네트워크 게임 시상식 - 킹 오브 더 킥
  • 2013년 ~ 중국 슈퍼리그 홍보대사
그외 기록
4개의 국가에서 리그 타이틀을 우승을 한것은(영국, 스페인, 미국, 프랑스) 1번째 잉글랜드 선수의 기록이다.
FIFA 월드컵에서 3경기 연속 득점한 영국선수이다.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100경기를 달성한 최초의 잉글랜드(영국)선수이다.

서훈

데이비드 베컴축구를 통한 국위선양 공적을 인정받아, 2003년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 대영 제국 4등급 훈장(OBE)을 받았다.[88]

주된 기록

소속팀 경력


등번호

  •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 7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7
  • 레알 마드리드 : 23
  • 로스앤젤레스 갤럭시 : 23
  • AC 밀란 : 32
  • 파리 생제르맹 : 32

주석

  1. “Beckham's pride at OBE”. BBC Sport. 2003년 6월 13일. 2008년 9월 9일에 확인함. 
  2. “David Beckham - Rise of a Footballer”. BBC. 2003년 8월 19일. 2008년 9월 9일에 확인함. 
  3. “Beckham reaches new caps landmark”. 《BBC Sport》 (British Broadcasting Corporation). 2009년 3월 28일. 2009년 5월 4일에 확인함. 
  4. '佛축구 평정' 베컴, '세계 4개리그 석권한 첫 잉글랜드 선수' 기염”. 스포츠한국. 
  5. 박찬준 기자. “베컴, 4개 리그서 우승한 최초의 영국인 되다”. 스포츠조선. 
  6. 정희돈 기자. “데이비드 베컴 "이번 시즌 끝나면 프로 축구서 은퇴". SBS 뉴스. 
  7. “베컴, 현역은퇴 선언… “판타지 같은 인생이었다””. 풋볼리스트. 
  8. 고민경 기자. “베컴, 이번 시즌 끝으로 은퇴 "지금이 적당한 시기". 스포츠서울. 
  9. 김준영 기자. “굿바이! 베컴…"최정상서 뛰는 지금이 떠날 때" 은퇴 선언”. 세계일보. 
  10. '슈퍼스타' 베컴, 현역 은퇴 선언..."모든 것이 영광이었다". 스포탈코리아. 
  11. '은퇴 선언' 베컴 "모든 꿈을 현실로 이뤄 영광". 아시아경제. 
  12. [데이비드 베컴, 페북에 남긴 은퇴사 전문 “데이비드 베컴, 페북에 남긴 은퇴사 전문”] |url= 값 확인 필요 (도움말). 위키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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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구자윤 기자. “베컴, 석연찮은 챔스리그 100경기 출장”. 스포탈코리아. 
  15. 장원구 기자. “베컴, 전 세계 네티즌이 가장 많이 검색한 스타”. OSEN 스포츠. 
  16. 권순일 기자. “베컴은 ‘황금발’…2003년 314억원 수입 1위”. 동아일보. 
  17. 박상원. “베컴, 잉글랜드 대표팀 주장 사퇴”. OSEN 스포츠. 
  18. 이지석 기자. “베컴, 프랑스전서 센추리 클럽 가입”. 스포츠서울. 
  19. 미디어칸 뉴스팀. “베컴, LA 갤럭시行…몸값 주당 1백만달러”. 스포츠경향. 
  20. 홍성원 기자. “‘노장은 죽지 않는다’ 베컴 4600만달러로 수입 ‘킹’”. 헤럴드경제. 
  21. 김규식 기자. “베컴 재산3000억원…英 스포츠스타중 최고 부자”. 매일경제. 
  22. 정은령 기자. “포스트모던 보디­…월드컵스타들 혼성이미지 화제”. 동아일보 스포츠.  |제목=에 소프트 하이픈 문자가 있음(위치 9) (도움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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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데이비드 베컴 '마이사이드' 자서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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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이건 기자. “베컴, 맨U에서 레알 거쳐 갤럭시로 가기까지”. 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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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이지석 기자. “퍼거슨 감독 "결혼이 베컴을 바꿔놓았다". 스포츠서울. 
  29. 차상엽 특파원. “레알 마드리드 회장 "베컴 잔류시키고 싶다". 마이데일리. 
  30. 박대로. “베컴, 伊 AC밀란 임대 확정, 1월부터 3월까지 뛴다”. 뉴시스. 
  31. 김종국 기자. “AC밀란 갈리아니 부회장 "베컴 재임대 합의". 마이데일리. 
  32. 박상경 기자. '베컴 동점골' LA갤럭시, MLS 서부지구 1위 등극”. 뉴시스. 
  33. 이상철 기자. “‘햄스트링에 감기까지’ 베컴, 투혼 발휘해 MLS 우승 견인”. 뉴시스. 
  34. 유성현 기자. “토트넘 레드냅 감독 "베컴, 원한다면 여전히 입단 가능해". 스포츠 서울. 
  35. 스포츠 뉴스팀. “베컴의 가족사랑, 연봉 140억 포기하고 LA서 2년 더!”. 유코피아 스포츠. 
  36. 김정민 기자. “베컴, LA 갤럭시 잔류, 2년 연장 계약 "美생활 만족". 스포츠 한국. 
  37. 김진회 기자. “베컴, 3만여명 기립박수 받고 미국 무대 떠났다”. 스포츠조선. 
  38. 스포츠월드 체육부. “데이비드 베컴, 고별전서 소속팀 2연속 정상 이끌어”. 스포츠월드. 
  39. 이민아 기자. “美 프로축구 LA갤럭시 2년 연속 우승, '굿바이 베컴'. 머니투데이. 
  40. 한민성 기자. “베컴 "거취 결정은 크리스마스 이후에". 골닷컴. 
  41. 안혜림 기자. “베컴, 아스널 1군과 훈련... "합류 아니다". 스포탈 코라이. 
  42. 김희선 기자. “PSG, 베컴 영입 공식 발표... 2013년 6월까지 계약”. OSEN. 
  43. 김용일 기자. “마음도 특급스타…'PSG 입단' 베컴, 급여 전액 어린이 자선단체 기부”. 스포츠 서울 닷컴. 
  44. 뉴미디어부01. “베컴 "굉장한 아이디어! 무척 기대된다"…5개월 급여를 몽땅 기부?”. 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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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 이형석 기자. '벤치맨' 베컴, 챔스 무대 복귀 자체만으로 만감이 교차'. 스포탈코리아. 
  47. 전영지 기자. “38세 베컴,3년만의 챔스복귀'클래스는 영원하다'. 스포츠조선. 
  48. 김종국 기자. “바르셀로나, PSG에 원정 다득점 앞서며 챔스 4강행”. 마이데일리. 
  49. 박상경 기자. “안첼로티 "베컴, 다음 시즌도 PSG 남아주길". 스포츠조선. 
  50. 김청 기자. '은퇴 후에도 남아줘!’... PSG, 베컴 잡기에 나섰다”. 풋볼리스트. 
  51. 이진영 기자. '베컴을 볼 수 없다니' 베컴 은퇴에 전 세계에서 아쉬움의 목소리”. 스포츠경향. 
  52. 김동찬 기자. “캐머런 英 총리 "베컴은 축구 팬들이 오래 기억할 것". 연합뉴스. 
  53. “퍼거슨이 기억하는 베컴은? “스스로를 재창조한 ‘놀라운 선수’””. 스포츠경향. 
  54. 허종호 기자. “베컴, 은퇴 경기서 결승골 도움...눈물의 작별”. OSEN. 
  55. 김수현 기자. “은퇴 선언 베컴, 마지막 경기서 눈물”. 연합뉴스. 
  56. 김용일 기자. '은퇴 경기' 베컴 감정 복받쳐…英 "진정한 챔피언의 눈물". 스포츠서울. 
  57. 김희선 기자. “베컴, 은퇴 결심한 이유는 '가족사랑' 때문?”. OESN. 
  58. 이근홍 기자. '그라운드여 안녕'…'은퇴' 베컴, 홈고별전서 끝내 눈물”. 뉴시스. 
  59. 뉴스핌=대중문화부. “베컴 은퇴 경기, 끝내 눈물 "정말 행복했다…그라운드여 안녕". 뉴스핌. 
  60. 이승민 기자. “베컴 은퇴 경기, 마지막 주장 완장 ‘뜨거운 눈물’”. SSTV. 
  61. 김철오 기자. “21년 만에 그라운드 떠난 데이비드 베컴, 눈물 ‘왈칵’”. 쿠키뉴스. 
  62. . 스포츠경향.  |제목=이(가) 없거나 비었음 (도움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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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 안경남 기자. “폴 매카트니, "베컴, 지금이라도 뽑아라"…피어스 감독 비난”. 마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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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 도쿄 특파원. “베컴, 일본에선 `사무라이 머리”. 연합뉴스. 
  75. 김관명 기자. “베컴 부부, 세 번째 아들 출산”. 스타뉴스. 
  76. 이명주 기자. “베컴 부부, 10일 득녀...“하늘 떠다니는 기분””. OSEN 스포츠. 
  77. 김진경 기자. “데이비드 베컴, '하퍼 세븐 베컴' 사랑~스러운 막내 딸 이름 공개”. 티브이데일리. 
  78. 송혜민기자. “훈남4명 사랑 독차지한 ‘가장 행복한 아기’ 누구?”. 서울신문 나우뉴스. 
  79. 셀럽스타일. “베컴 부부, LA 정착 위해 영국의 310억원 대저택 내놓아”. 조선닷컴 단미. 
  80. 백종민기자. “베컴, 속옷 내놓더니 연소득이 523억”. 아시아경제. 
  81. 박정민 기자. “레알마드리드 스타들, 할리우드 영화출연”. 헤럴드경제. 
  82. 최정환 기자. '데이비드 베컴'의 축구인생은 바비 찰튼 축구학교서 시작됐다”. 뉴시스. 
  83. 강필주 기자. “베컴, 유니세프 친선대사!”. 조이뉴스24 스포츠. 
  84. 박상경 기자. “런던올림픽 홍보대사 베컴, "최고 스포츠는 축구". 뉴시스 스포츠. 
  85. 조효성 기자. “베컴, 英월드컵유치 팔 걷었다”. 매일경제 스포츠. 
  86. 스포츠칸 온라인뉴스팀. “데이비드 베컴, 야후! 글로벌 축구 홍보대사 계약 체결”. 뉴시스 스포츠. 
  87. 조태현 기자. “삼성전자, 런던서 베컴과 올림픽 마케팅”. 이데일리. 
  88. 런던=로이터/뉴시스. “베컴, 대영제국훈장 받아”.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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