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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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철도대한민국에서 운영하는 철도 노선, 시스템, 차량 등을 의미한다.

개요

대한민국의 철도는 대한제국 시절, 1899년에 개통된 경인선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주요 간선 노선은 이후에 일본을 중심으로 한 열강의 침탈로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6년간 일본에 점령당하며 군사·정치적 목적에 의해 생겨났다. 주권을 찾은 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세웠지만 극빈한 후진국이어서, 유엔·미국 등에서 차관을 들여와 일부 간선을 건설하고 철도 차량을 수입했다.

1960~70년대 산업화 시대까지만 해도 철도는 자동차·항공운송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여객·화물수송에서의 지위는 확고했지만, 1980년대 들어 시설의 노후화나 서비스의 부재 등으로 심각한 재정 악화와 서비스의 퇴보를 보였다. 그래서 지속적인 노후 시설 대체와 서비스 개선 등으로 모습을 일신하고 있고, 도로수송의 적체나 항공수송의 고운임에 비해 저운임·신속·대량수송의 장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도시철도를 제외한 일반철도는 2005년까지 철도청을 통한 국영 체제였고, 2005년부터 지금까지는 한국철도공사에 의한 공영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적자가 쌓여갔지만 국가에서 보조금을 지급하므로 다소 방만한 경영을 계속했는데, 일부에서 이를 개혁하자는 주장이 나타나 같은 해 12월수서고속선을 한국철도공사의 자회사가 운영하는 소위 "경쟁 체제"가 도입되었다. 경쟁 체제 찬성론자는 이것이 경영합리화 작업의 일종이며 차후 서비스의 질이 높아져 이용하기에 편해질 것이라 보지만, 하지만 반대론자는 국가의 기간망인 철도를 여러 기업에서 운영한다면 시설물 구입이나 직원 채용 등에서 예산을 추가로 사용하게 되므로 되려 낭비가 있을 것으로 보았다.

1899년에 현재의 서울 지역에서 개통한 서울전차를 시작으로, 대한민국의 대도시들에는 도시철도라고 불리는 자체적인 철도 교통망을 갖추게 되었다. 1974년에는 서울특별시에, 1985년에는 부산광역시에, 1997년에는 대구광역시에, 1999년에는 인천광역시[1], 2004년에는 광주광역시에, 2006년에는 대전광역시에 개통되었다. 2014년 1월 현재 수도권 전철은 19개의 노선이(인천 포함), 부산 도시철도는 5개의 노선이, 대구 도시철도는 2개의 노선이, 광주·대전 도시철도는 1개의 노선이 운행 중인데, 도시의 수송력을 분담하는 중요한 교통수단이 되고 있다. 창원 도시철도 또한 계획 중이다.

역사

개화기

1889년 주미대리공사인 이하영이 서양의 철도 모형을 가지고 귀국하며 철도 부설의 필요성을 주장했고, 이에 철도의 효용성을 느낀 고종은 철도의 건설을 위해 노력했다. 이때 정부는 사설 회사에 운영권을 주는 방식으로 건설하고자 하였다. 1896년 미국인 모스가 경인선의 부설을 추진했으나, 일본이 1899년에 이를 인수하여 같은 해 9월에 경인철도주식회사에서 운영하는 노량진 - 축현 구간을 개통했다. 바로 이 경인선이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철도이다. 이후 일본 외의 외세 또는 한국인을 시켜 철도를 건설하고자 했으나, 대부분 일본이 인수해 개통했다.

1898년에는 미국이 추진했던 경부선의 부설권 또한 일제가 인수하여 경부철도주식회사를 세우고, 1901년 미국의 건설 장비를 사들여 착공했다. 1903년에 경부철도주식회사에 기존의 경인철도주식회사를 합병한 뒤, 1905년 1월에 개통하였다. 삼랑진-마산 구간인 마산선박기종의 영남지선철도회사에서 부설권을 얻었다가 일제가 경부철도주식회사로 매수해, 1905년에 군용철도로 개통하였다. 경원선은 서울-원산-경흥(웅기)의 선로를 건설하는 것으로 계획하여 한국인 박기종이 부설권을 획득하여 착공했다가 자금이 없어 포기했고,[2] 일본이 부설권을 획득하여 1910년에 착공해 1914년에 완전 개통했다. 한편 1899년에 일종의 도시철도로서 서울전차가 개통하였는데, 이는 1909년에 일본에 매각되었다.

일제 강점기

1910년 8월 29일경술국치로 대한제국이 일본에 편입되며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었고, 일제는 대륙 침략을 위해 여러 간선 철도를 계획하였다. 호남선은 서울-목포 간 경목선으로 계획되어 프랑스가 운영권을 요구하다가 한국인이 설치한 회사에 권리를 주었으나, 일본의 압력으로 취소되어 1911년에 최초로 착공해 1914년에 완전 개통했다. [3] 경의선은 프랑스 회사가 부설권을 얻었다가 한국인에게 넘어갔다가 일본이 러일 전쟁때 부설하여 완공하였다.

사철 회사인 조선철도주식회사1917년에 대구-학산 간 협궤경동선(慶東線)을 착공해 1921년에 완전 개통했고, 1928년에 국가에서 인수해 1939년표준궤로 개궤된 뒤 3개의 노선으로 분할되었다[4]. 1923년조선총독부가 경부선을 보완하는 종관철도로 중앙선을 건설하기로 계획해, 1936년에 착공해 차례차례 개통되다가 경동선 일부를 편입시켜 1942년에 완공했다. 1935년에는 경동선 울산-학산 구간을 개궤 후 편입시키고 부산-울산 구간을 건설해 동해남부선이 개통했다. 1944년경부선이 원활한 물자 수송을 위해 복선화되었는데, 해방 전까지 이를 제외한 철도는 모두 단선이었다.

이때는 조선총독부에서 운행하던 철도 외에도, 사유 철도(사철)이라 불리는 민간 자본의 철도도 건설되었다. 전북철도주식회사에서 1914년에 이리-여수 간을 개통한 협궤 전북선, 조선중앙철도주식회사에서 1921년에 조치원-청주 간을 개통한 충북선, 남조선철도주식회사에서 1925년까지 마산-진주 간을 개통한 경남선, 조선경남철도주식회사에서 1927년1931년까지 각각 천안-장호원 간과 천안-장항 간을 개통한 안성·장항선(당시는 충남선), 조선경동철도주식회사에서 1930년1937년에 각각 수원-여주 간과 수원-남인천 간을 개통한 협궤 수려·수인선, 경춘철도주식회사에서 1939년에 성동-춘천 간을 개통한 경춘선 등이 있었다. 이중 일부는 간선 철도로 활용하기 위하여 정부에서 매수하여 개량하였다. 전북선은 1927년에 개궤와 함께 총독부가, 충북·경춘선과 안성·장항선은 1946년에 미군정이, 경남선은 1931년에 마산선과 통합하며 경전남부선으로 개칭하며 총독부가 인수했다. 또한 수려·수인선은 1942년에 조선철도주식회사에 양도되어 경동선(京東線)으로 통합되었다가 1946년에 국유화되었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군수 물자 조달을 위해 일부 철도를 조달을 위해 철거했다. 이때 금강산선, 안성선 안성-장호원, 경북선 예천-안동 등이 폐지되었다. 그러나 군사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노선은 공사를 계속 진행하였지만, 일제의 패망으로 당시 건설하던 동해중부선이나 영동선영주-철암 구간 등은 공사가 중단되었다.

한편, 북부 지방의 자원 수탈을 목적으로 일제는 평원선, 혜산선, 만포선, 함경선(경원선의 연장으로 건설) 등을 건설하였다. 민간 자본으로 1915년개천선이 개통, 1931년금강산선이 완공, 1932년토해선이 완공되었다. 1945년 해방 이후, 38선 이북 소군정 지역이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지역의 철도는 해당 문서를 참조하라.

해방 이후

1945년 8·15 해방 이후 철도가 남북으로 분할되어, 8월 24~26일 즈음에 남북간의 철도 연결 운행이 북측(당시는 소군정)에 의해 중단되었다.[5] 당시에 분단된 노선으로는 경의선, 경원선, 토해선[6]이 있다. 1946년에는 미군정이 정한 법률에 의해 사철인 충북·경춘·안성·장항·수려·수인선이 국유화되었다.

해방 이후 열악한 경제 상황을 극복하고자 세워진 제1차 국가산업부흥계획에 의해 영암선, 영월선, 단양선을 건설하고자 했다. 하지만 한국전쟁으로 공사가 중단되어 영주-철암 구간의 영암선과 제천-영월 구간의 영월선은 1955년에 개통되었다. 또한 영월-함백 구간의 함백선1957년에 개통해 영월선을 통합시켰다. 이후 철도의 미싱링크를 연결하는 공사를 착수하여 1958년충북선의 충주-봉양 구간을 개통했다.

한국 전쟁의 결과 한반도의 군사분계선을 관통하는 철도 구간이 파괴되어, 일부 노선은 선로 자체가 아예 끊기게 되었다.

1960~70년대

한국에서는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서 도로망이나 항만시설과 더불어 철도의 증설·근대화에서도 힘을 쏟아왔다. 디젤화가 진행되어 1967년에 증기기관차가 운행을 종료하였고[7], 철도의 전화사업(電化事業)도 활발히 추진되었다. 1974년서울 지하철이 일부 구간 개통되었다.

1980~90년대

서울~ 부산 사이의 경부선 고속철도 사업이 진행되었고, 서울에서는 지하철도 건설이 일부(1 ~4호선) 끝남으로써 운행되고 시작하였다. [8] 1995년에는 협궤 철도가 사라졌다.

2000년대~현재

경부선의 과다한 여객 수요를 분산시키기 위해 2004년 경부고속철도가 개통되었고, 정부에서는 호남고속철도의 건설을 추진 중이다. 또한 2007년에는 사설 철도인 인천공항철도가 개통되었다. 남북철도 연결사업을 통해, 남북간 단절된 경의선동해북부선의 일부 구간을 개통했다.

박근혜 대통령으로 인해 철도파업이 생김

여객 운송

간선 노선

지하철 및 광역전철을 제외한 대부분의 철도는 한국철도공사가 운행한다. 이 철도는 전국 각지를 연결하고 있다. 한편 1967년에는 일반 여객용 증기기관차가, 1995년에는 협궤 철도가 사라졌고, 경부선의 과다한 여객 수요를 분산시키기 위해 2004년 경부고속철도가 개통되었고, 정부에서는 2014년까지 완료를 목표로 호남고속철도를 공사중이다. 또한 2007년에는 대한민국 유일의 사설 철도인 인천공항철도가 개통되었다. 한편 간선 철도망과 간선 고속도로망의 길이는 약 3000km로 거의 같은데, 이는 다른 세계 주요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철도 인프라 과소 현상이라는 지적이 철도학계에서 제기되고 있다[9].

도시철도

대한민국 최초의 지하철은 서울 지하철 1호선(서울역 ~ 청량리)이다. 1971년 4월 12일 착공하여 1974년 8월 15일 개통하였는데, 이는 세계에서 22번째로 지어진 지하철 노선이다.[10] 이 구간은 도로를 뜯은 후에 지하 구조물을 만든 후 다시 메우는 방식인 개착식 공법으로 만들어졌는데, 지금은 도로사정에 따라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서울역 ~ 청량리 구간과 함께 서울역 ~ 인천 간의 경인선, 구로 ~ 수원 간의 경부선 구간을 직결 개통하였으며 이들 구간은 기존의 선로를 복선 전철화하여 운용하였다.

현재 수도권 지역에는 1 · 2 · 3 · 4 · 5 · 6 · 7 · 8 · 9호선 · 분당선 · 중앙선 · 경의선 · 경춘선 · 공항철도 · 신분당선 · 의정부 경전철 · 인천 메트로 1호선이 운영되고 있으며 부산광역시에 1 · 2 · 3 · 4호선 · 부산김해경전철이, 대구광역시에 1 · 2호선이, 대전광역시광주광역시에 각각 1호선이 운영되고 있다.

서울특별시에는 현재 여러 광역전철과 지하철 노선이 있다. 한국철도공사서울메트로, 서울도시철도공사의 세 회사가 운영하는 노선과 수도권 지역의 것을 간선과 지선, 건설되고 있는 것을 합치면 26개나 된다. 서울메트로·서울도시철도공사·서울시메트로9호선·한국철도공사·인천교통공사·코레일공항철도·신분당선주식회사·의정부경전철주식회사·용인경전철주식회사에서 운영하고 있다. [11] 또한 수도권을 비롯한 주요 지방도시에서도 지하철들이 건설되어 인천광역시 (1개 노선), 대구광역시 (2개 노선), 대전광역시 (1개 노선), 부산광역시 (4개 노선+ 부산과 김해시를 오가는 별도의 경전철 부산김해경전철운행중), 광주광역시 (1개 노선) 등이 운행 중이다. 이 경우에는 각각의 도시에서 세운 공기업이 운영하고 있다.

모노레일

현재 대구광역시에는 도시철도 3호선을 일반 지하철이 아닌 지상 모노레일로 건설하고 있다. 2014년 6월에 개통예정이다.

화물

오래됨오래됨 화물열차로는 시멘트컨테이너 등을 수송하며, 때로 공화차라 불리는 회송되는 빈 화차도 운행한다. 한편 우편물이나 곡물 등을 수송하는 화물열차는 분류상 여객열차의 범주에 들어간다.

2001년 기준으로 각 운송 수단별 화물 운송 분담률은 도로가 74.2%, 해운이 19.5%, 철도가 6.3%, 항공이 0.1%이다. 다만 자가용 화물차를 포함할 경우 도로는 83.1%, 해운은 12.8%, 철도는 4.1%, 항공은 0.03%를 차지하게 된다.

관광

대한민국에서는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철도를 이용한 관광 문화는 그닥 발달하지는 않은 편이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일부 관광열차가 운행하였지만, 큰 호응을 얻지 못해 운행이 중단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 다양한 관광열차가 운행되기 시작했다. 2007년에는 강릉-삼척 구간을 운행하는 바다열차가 등장했는데, 코레일관광개발에서 개발해 CDC를 개조한 열차로 1시간 20분간 58km를 달리는 상품이다.[12]

2008년레일크루즈 해랑이라는 고급 관광열차가 개발되었다. 이는 남아공블루트레인을 벤치마킹한 여행 상품이며, 철저히 고급화해 1인당 요금은 100만원 전후 수준이다.

2013년에 '대한민국 5대 관광벨트'가 선정되었다. 2013년 4월에는 중부내륙권을 달리는 O-trainV-train이, 같은 해 9월에는 남도해양권을 달리는 S-train이 운행하기 시작했다. DMZ-train, G-train, B-train 등도 운행할 예정이다.

한국철도공사

한국철도공사(韓國鐵道公社)는 대한민국국유 철도 영업과 관련 사무를 담당하는 공기업이다. 2003년 12월 31일 발효된 한국철도공사법[13]에 의하여 대한민국 정부 산하 철도청2005년 1월 1일자로 철도 영업 부문은 한국철도공사로, 시설 보유와 건설부문은 그 이전인 2004년 1월 1일자로 한국철도시설공단으로 각기 분할하면서 공기업의 형태로 출범하였다.[14]

사명은 한국철도공사이며, 2007년 5월부터 커뮤니케이션 명칭을 코레일(영어: Korail)로 일원화했다. 2009년 9월에 본사를 정부대전청사에서 신사옥(대전역 동광장 방향 위치)으로 이전했다. 단, 광역철도본부는 서울사옥(서울 용산구 동자동 소재)에 위치하고 있다.

주요 노선

비전철 구간

주석

  1. 인천광역시의 지하철은 수도권 전철과 연계된 동일한 요금체계를 가지고 있어서 일반적으로 수도권 전철의 일부로 보지만, 수도권 전철과 별도의 지하철로 보는 시각도 있다.
  2. 여명의 개척자들 박기종, 《경향신문》, 1984.3.24 작성, 2014.1.2 확인
  3. 1914년 호남선 철도 개통, 《경향신문》, 2011.1.10 작성, 2014.1.2 확인
  4. 이 3개의 노선은 현재의 대구선, 중앙선 영천 - 경주, 동해남부선 태화강 - 포항 구간이다.
  5. [1]
  6. 토해선은 개성의 당시 토성역해주해주역을 잇던 철도였다. 1945년 남북 분단 당시, 개성과 해주 모두 남측 소유였다.
  7. 1980년대 이후 일부 차량이 관광열차로 운행하다가 중단되었다. 1990년대에 901호 증기 기관차중국으로부터 수입해 교외선에서 관광열차를 운행했지만, 이 또한 운행을 멈추고 현재 해당 차량은 풍기역정태 보존 중이다.
  8.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아시아의 교통
  9. 한국철도연구회, 《자동차 권하는 사회》(양서각, 2007) : 78~81쪽.
  10. 《인천지하철》2007년 11월호, 인천지하철공사
  11. 목록은 다음과 같다 : 1호선(서울 1호선, 경인선, 경부선, 경원선, 장항선, 병점기지선), 수인선(별도의 선으로 간주되어 4호선 안산선과 연계하여 공사중), 2호선(신정지선, 성수지선 포함), 3호선(일산선 포함), 4호선(과천선, 안산선 포함), 5호선(마천지선 포함), 6호선, 7호선, 8호선, 9호선, 중앙선, 분당선, 경의선, 경춘선, 신분당선, 용인 경전철(공사중), 인천 1호선(연장 공사중). 여기에서 계획 중인 노선은 제외되었다.
  12. [week&커버스토리 여름휴가 사용설명서], 《중앙일보》, 2009-06-11 작성, 2009-06-14 확인
  13. 법률 제7052호, 2003. 12. 31
  14. 그러나 주요주주는 여전히 국가와 건설교통부에 있었으며, 현재도 국토해양부 산하 공기업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