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대한민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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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칭 | 아시아의 호랑이, 태극전사, 붉은 악마 | ||
협회 | 대한축구협회 | ||
대륙 연맹 | 아시아 축구 연맹 | ||
감독 | 홍명보 | ||
주장 | 이청용 | ||
최다 출전자 | 홍명보 (136) | ||
최다 득점자 | 차범근 (55) | ||
홈 구장 | 서울월드컵경기장(2001년 ~ 현재) 서울올림픽주경기장(1984년 ~ 2000년, 2013년 ~ 현재) | ||
FIFA 코드 | KO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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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랭킹 | |||
현재 | 확인 | ||
최고 순위 | 17위 (1998년 12월) | ||
최저 순위 | 62위 (1996년 2월) | ||
첫 국제 경기 출전 | |||
대한민국 5 - 1 홍콩 [[파일:{{{국기그림-1910}}}|22x20px|border |홍콩|링크=홍콩]] (영국령 홍콩; 1948년 7월 6일) [1] | |||
최다 점수차 승리 | |||
대한민국 16 - 0 네팔 (대한민국 인천; 2003년 9월 29일) | |||
최다 점수차 패배 | |||
대한민국 0 - 12 스웨덴 (영국 런던; 1948년 8월 5일) | |||
FIFA 월드컵 | |||
출전 횟수 | 9회 (1954년에 처음 출전) | ||
최고 성적 | 4위 (2002년) | ||
AFC 아시안컵 | |||
출전 횟수 | 11회 (1956년에 처음 출전) | ||
최고 성적 | 우승 (1956년, 1960년) | ||
컨페더레이션스컵 | |||
출전 횟수 | 1회 (2001년에 처음 출전) | ||
최고 성적 | 1라운드 (2001년) |
메달 기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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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축구 | |||
아시안 게임 | |||
은 | 1954 마닐라 | 축구 | |
은 | 1958 도쿄 | 축구 | |
은 | 1962 자카르타 | 축구 | |
금 | 1970 방콕 | 축구 | |
금 | 1978 방콕 | 축구 | |
금 | 1986 서울 | 축구 | |
동 | 1990 베이징 | 축구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대한민국의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대한축구협회에 의해 구성된다.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강팀으로,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 처음 국제 무대에 발을 내디뎠고 월드컵 진출은 1954년 FIFA 월드컵 스위스 대회가 처음이다.
이후 1986년 FIFA 월드컵 멕시코 대회부터 2014년 FIFA 월드컵 브라질 대회까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8회 연속 본선에 진출했으며, 일본과 공동개최한 2002년 FIFA 월드컵에서는 4위를 기록하였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아시아 축구 연맹에 포함된 국가중에서 월드컵 최다 출전 국가로 기록되어 있다. 라이벌인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과는 적대적인 관계이다.
월드컵 역사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대한민국이 월드컵 본선에 처음 나선 것은 6.25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던 1954년 FIFA 월드컵이다. 김용식 코치 등 22명의 선수단이 방콕을 거쳐 50여 시간의 비행 끝에 대회 개막 바로 전날 밤에 스위스 베른에 도착하였고, 미숙한 준비 속에서 경기에 임한다. 결국 헝가리에게 0:9, 터키에게 0:7이라는 큰 점수차로 패하였고, 대회 최하위를 기록하며 세계의 높은 장벽을 실감하며 귀국한다. 이후, 계속된 노력에도 불구하고 32년 만인 1986년 FIFA 월드컵에서야 월드컵 본선 무대를 다시 밟게 되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1986년 FIFA 월드컵에서는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한 조별 예선 첫 번째 경기에서 마라도나의 활약을 막지 못하고 3골을 내줬다. 하지만 대한민국도 막판 분전을 하여 후반 28분 박창선이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최초의 월드컵 경기에서의 득점을 성공시켰으나, 1:3으로 패했다. 두 번째 경기인 불가리아와의 경기에서는 김종부의 득점에 힘입어 1:1로 비기며, 월드컵 사상 첫 승점을 따낸다. 그러나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였던 이탈리아전에서 편파판정에 시달린 끝에 2:3으로 패하며 1무 2패로 16강 진출에 실패하였다. 이탈리아전에서 이탈리아 측에서 패널티킥을 얻었지만 골포스트를 맞춰서 실패하였다. 비록 16강 진출에는 좌절했지만 월드컵에 진출한 역사상 처음으로 골을 넣고 첫 승점을 따낸 대회였다.
1986년 6월 2일 12:00 | ||||||
아르헨티나 | 3 : 1 | 대한민국 | 에스타디오 올림피코 우니베르시타리오, 멕시코 시 관중: 60,000 심판: Arminio Victoriano Sánchez | |||
발다노 6′ 46′ 루헤리 18′ |
리포트 | 박창선 73′ | ||||
1986년 6월 5일 16:00 | ||||||
불가리아 | 1 : 1 | 대한민국 | 에스타디오 올림피코 우니베르시타리오, 멕시코 시 관중: 45,000 심판: Fallaj Al Shanar | |||
게토프 11′ | 리포트 | 김종부 70′ | ||||
1986년 6월 10일 12:00 | ||||||
이탈리아 | 3 : 2 | 대한민국 | 콰우테모크 경기장, 푸에블라 관중: 20,000 심판: David Socha | |||
알토벨리 17′ 73′ 조광래 82′ (자책골) |
리포트 | 최순호 62′ 허정무 83′ | ||||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역대 지역예선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내며 16강의 부푼꿈을 안고 2회 연속으로 진출한 1990년 FIFA 월드컵에서 한국은 벨기에에게 0 : 2 패, 스페인에게 1 : 3 패, 우루과이에게 0:1 패로 월드컵 조별 예선 최악의 성적인 3패를 기록하였다. 스페인전의 황보관의 프리킥 골이 유일한 득점이였다.
1994년 미국 월드컵
1994년 FIFA 월드컵에서는 도하의 기적에 힘입어 3회 연속으로 본선에 진출하는 데 성공하였다. 1차전인 스페인와의 경기에서 후반 45분에 터진 서정원의 골로 2:2 무승부를 기록함으로써, 지난 1990년 FIFA 월드컵에 이어 스페인에게 2번 연속 패배를 간신히 면했다. 볼리비아와의 2차전에서는 0 : 0으로 무승부를 거두어 승점 2점을 땄다. 그러나 3차전 독일과의 경기에서 2 : 3으로 패함으로써 조 3위를 기록한 팀들 중에서 최하위 순위에 머물러 16강 진출에 실패하였다. 조 3위는 2002년 한일 월드컵 전까지는 최고의 성적이었다.
1994년 6월 17일 18:35 CDT | ||||||
스페인 | 2 : 2 | 대한민국 | 커튼 볼, 댈러스 관중: 56,247 심판: Peter Mikkelsen | |||
살리나스 51′ 고이코에체아 55′ |
리포트 | 홍명보 85′ 서정원 90′ | ||||
1994년 6월 23일 19:35 EDT | ||||||
볼리비아 | 0 : 0 | 대한민국 | 폭스버러 경기장, 폭스버러 관중: 54,453 심판: Leslie Mottram | |||
리포트 | ||||||
1994년 6월 27일 15:05 CDT | ||||||
독일 | 3 : 2 | 대한민국 | 커튼 볼, 댈러스 관중: 63,998 심판: Joël Quiniou | |||
클린스만 12′ 37′ 리들레 20′ |
리포트 | 황선홍 52′ 홍명보 63′ | ||||
1998년 프랑스 월드컵
4회 연속으로 진출한 1998년 FIFA 월드컵에서는 1차전 멕시코전에서 한국은 하석주의 선제골로 앞서 나갔지만, 하석주가 득점을 기록한 이후 퇴장을 당하였고, 이후 연이어 실점을 거듭하여 1:3으로 패배했다. 2차전은 조별 예선 상대 중 가장 강한 네덜란드였다. 선수들은 기량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0:5로 대패했다.
당시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은 이후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의 감독을 맡게 되는 거스 히딩크였다. 대표팀은 네덜란드전의 대패 여파로 인해 당시 대표팀 감독이었던 차범근 감독이 대회 도중에 경질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겪게 되었다.
마지막 경기였던 벨기에전에서 한국은 유상철의 동점골로 1:1로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1무 2패로 다시 한 번 16강 진출에 실패하였다.
1998년 6월 13일 17:30 | ||||||
멕시코 | 3 : 1 | 대한민국 | 스타드 드 제를랑, 리옹 관중: 39,133 심판: 귄터 벤쾨 | |||
펠라에스 51′ 에르난데스 74′ 84′ |
리포트 | 하석주 28′ | ||||
1998년 6월 20일 21:00 | ||||||
네덜란드 | 5 : 0 | 대한민국 | 스타드 벨로드롬, 마르세유 관중: 55,000 심판: 리사르드 보이시크 | |||
코퀴 38′ 오버르마르스 42′ 베르흐캄프 71′ 판 호이동크 80′ R. 더 부르 83′ |
리포트 | |||||
1998년 6월 25일 16:00 | ||||||
벨기에 | 1 : 1 | 대한민국 | 파르크 데 프랭스, 파리 관중: 45,500 심판: 마르시우 레젠지 지 프헤이타스 | |||
닐리스 7′ | 리포트 | 유상철 71′ | ||||
2002년 한국-일본 월드컵
대한민국과 일본에서 개최된 2002년 한국-일본 월드컵은 한국 축구 역사는 물론 세계 축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대회였다. 네덜란드 출신의 거스 히딩크 감독의 지휘 아래 맞이한 폴란드와의 예선 첫 경기에서 황선홍, 유상철의 득점으로 1954년 FIFA 월드컵에 출전한 이후 월드컵 사상 첫 승을 거두었다.
예선 두 번째 시합이었던 미국과의 경기에서, 전반전에는 미국이 한국을 제압했다. 전반전에 미국은 클린트 매시스의 선제골로 앞서가고, 한국은 이을용이 페널티킥 기회를 놓쳤다. 하지만 후반전에는 안정환의 동점골이 터지면서 1:1무승부를 기록하며 사상 첫 16강 진출에 대한 희망을 이어나갔다.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였던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포르투갈의 두 선수 (주앙 핀투, 베투)가 퇴장당한 가운데, 박지성의 득점으로 1:0승리. D조 1위로 16강에 최초로 진출하였다. 이 때 포르투갈에는 아홉 명의 선수만 남아 있었다.
16강전의 상대는 이탈리아였다. 한국은 전반 3분 안정환이 페널티킥 기회를 놓쳤다. 게다가, 이탈리아의 크리스티안 비에리에게 선취점을 내주면서 리드를 허용했으나, 후반 43분에 설기현이 동점골을 넣고, 연장 후반전에 안정환이 역전골을 넣으며 2-1로 승리하여 8강에 진출하였다. 당시, 이탈리아 대표팀 선수였던 프란체스코 토티는 연장전에서 시뮬레이션 액션을 이유로 두 번째 경고를 받고 퇴장당했는데, 이 판정에 관한 논란이 뜨거웠다.[2] 하지만 당시 이탈리아 선수들의 팔꿈치가격으로 인해 김태영, 김남일 같은 선수들이 줄부상을 입기도 했다.[3]
8강전의 상대는 스페인이었다. 이 경기에서 양팀은 정규 시간과 연장을 모두 거친 후에도 0:0 무승부를 기록하였고, 경기는 승부차기로 이어졌다. 결국 스페인의 4번째 키커인 호아킨 산체스의 슛을 골키퍼 이운재가 막아내고, 한국의 마지막 키커였던 홍명보가 승부차기를 성공시키며 한국은 사상 최초로 월드컵 4강에 진출하였다.
4강전에서 한국은 독일의 미하엘 발라크에게 득점을 허용하며 0:1로 패배하였다. 결국 한국은 브라질에게 패한 터키와 3•4위전을 치르게 되었다. 3•4위전에서는 이을용이 골을 기록했지만 터키의 하칸 쉬퀴르의 최단 시간 골과 일한 만시즈의 추가골로 인해 패배했다. 그리고, 90분이 지나고 추가시간에 송종국이 추가골을 넣었지만 2:3으로 패하여 4위를 기록했다.
또한 대표팀 서포터즈인 붉은악마를 중심으로 한 길거리 응원은 월드컵의 또다른 볼거리로 꼽혔다. 2002년 월드컵 개인별 수상으로 주장이자 수비의 핵이었던 홍명보가 브론즈볼을 수상하였다.
2002년 6월 4일 20:30 | ||||||
폴란드 | 0 : 2 | 대한민국 |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 부산 관중: 48,760 심판: 오스카 루이즈 | |||
리포트 | 황선홍 26′ 유상철 53′ | |||||
2002년 6월 10일 15:30 | ||||||
미국 | 1 : 1 | 대한민국 | 대구월드컵경기장, 대구 관중: 60,778 심판: 우르스 마이어 | |||
매티스 33′ | 리포트 | 안정환 78′ | ||||
2002년 6월 14일 20:30 | ||||||
포르투갈 | 0 : 1 | 대한민국 | 인천문학경기장, 인천 관중: 50,239 심판: 앙헬 산체스 | |||
리포트 | 박지성 70′ | |||||
2002년 6월 18일 20:30 | ||||||
이탈리아 | 1 : 2 (연장전) | 대한민국 | 대전월드컵경기장, 대전 관중: 38,588 심판: 비론 모레노 | |||
비에리 18′ | 리포트 | 설기현 88′ 안정환 117′ | ||||
2002년 6월 22일 15:30 | ||||||
스페인 | 0 : 0 (연장전) | 대한민국 | 광주월드컵경기장, 광주 관중: 42,114 심판: 가말 알간두르 | |||
리포트 | ||||||
(승)
2002년 6월 25일 20:30 | ||||||
독일 | 1 : 0 | 대한민국 | 서울월드컵경기장, 서울 관중: 65,256 심판: 우르스 마이어 | |||
발라크 75′ | 리포트 | |||||
2002년 6월 29일 20:00 | ||||||
튀르키예 | 3 : 2 | 대한민국 | 대구월드컵경기장, 대구 관중: 63,483 심판: 사드 마네 | |||
하칸 S. 1′ 일한 13′ 32′ |
리포트 | 이을용 9′ 송종국 90+3′ | ||||
2006년 독일 월드컵
2002년 한일 월드컵 직후 명예롭게 떠난 거스 히딩크의 후임으로 움베르투 코엘류를 기용하고 얼마 안가 경질하더니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당시 나이지리아를 이끌고 에르난 크레스포의 아르헨티나를 이기고 금메달을 획득했던 경험이 있는 조 본프레레를 감독으로 앉혔다가 또 다시 얼마 못가 경질했다. 그렇게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선임되어 2006년 월드컵을 준비하게 되었고 뒤늦게 부임한 아드보카트는 시간부족에 허덕여야 했다.
2006년 FIFA 월드컵 조별 예선 1차전에서 토고에게 전반 선제골을 내주었으나 이천수, 안정환의 연속골로 2:1 역전승을 거두며 월드컵 원정 사상 첫 승을 기록했다. 2차전 프랑스와의 경기에서는 박지성의 동점골로 1:1무승부를 기록했다.
마지막 상대인 스위스와의 3차전에서는 0 : 2로 패하여 1승 1무 1패를 기록하여 2승 1무를 기록한 스위스에게 밀렸는데 프랑스가 토고전에서 후반전에 2골을 넣어 2:0으로 프랑스가 승리하여 1승 2무가 된 프랑스에게도 밀려 16강 진출에는 실패했다. 3차전 스위스와의 경기에서 알렉산더 프라이에게 허용했던 두 번째 실점에 대해서는 오프사이드 논란이 뜨거웠고, 한국 내에서는 당시 주심이었던 오라시오 엘리손도에 대한 비난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FIFA의 정밀 분석 결과 오프사이드가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졌다.[4] 또한, 경기 후 24시간 안에 국제축구연맹에 500만명의 국민이 항의시 재경기가 가능하다는 헛소문이 퍼지기도 하였다.[5]
201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
3차 예선에서 3승 3무(3조 1위), 최종 예선 4승 4무(B조 1위)로 1954년, 1990년 대회에 이어 다시 한번 무패로 예선을 통과하였다.
한편 3차 예선과 최종 예선에서 모두 대한민국과 같은 조에 편성되었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B조 2위로 본선 직행을 결정지어, 역사상 1974년 FIFA 월드컵에서 참가한 동독과 서독에 이어 두 번째로 분단국가가 월드컵에 동시에 참가하게 되었다.
조 추첨 결과,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그리스와 한 조인 B조에 속했다. 첫 경기 상대인 그리스를 만나 이정수와 박지성의 득점으로 2 : 0으로 승리하여 원정 경기에서 유럽 팀을 상대로 첫 승을 거두었다.
다음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는 박주영의 자책골과 곤살로 이과인에게 해트트릭을 허용하였다. 이청용의 만회골로 한 점을 만회했으나 결국 1 : 4로 패하고 말았다. 특히 이과인의 두 번째 골(한국의 3번째 실점)은 오프사이드라는 결론이 나와 논란이 일었다. 같은 날에 열린 그리스와 나이지리아의 경기에서 그리스가 2 : 1로 역전승을 거둠으로써, 대한민국이 불리한 입장에 서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자력으로 16강에 진출하는 길은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길 밖에 없었으며 패배할 경우 무조건 탈락, 무승부를 거둘 경우 아르헨티나가 그리스를 상대로 승리해야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으며 아르헨티나와 그리스가 무승부를 기록할 경우 골득실으로 진출팀이 결정되게 되었다.
예선 마지막 경기인 나이지리아와의 게임에서는 우체의 선제골이 있었지만 이정수의 동점골로 만회하였고 이어 박주영이 프리킥으로 역전골을 터뜨려 2 : 1로 앞서던 도중 김남일의 반칙으로 페널티킥을 얻은 나이지리아의 야쿠부가 동점골을 넣어 경기는 2 : 2동점으로 끝났다. 하지만 같은 시각에 열린 아르헨티나가 그리스를 상대로 데미첼리스와 팔레르모의 골로 2 : 0승리하여서 대한민국은 조 2위의 자리로 16강에 진출하였다. 결국, 대한민국이 2006년 FIFA 월드컵에서 같은 승점인 1승 1무 1패, 골득실차도 -1를 기록했지만 아르헨티나가 3승으로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함으로써, 사상 처음으로 원정 16강에 진출하는데 성공하였다. 한편, 대한민국과 월드컵 본선에 동반 진출했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3패에 골득실 -11로 조 최하위뿐만 아니라 32개 참가팀 중에서도 최하위로 탈락하였다.
16강전에서 대한민국은 A조 1위인 우루과이와 경기를 치루게 되었다. 경기 초반 우루과이의 수아레즈에게 역습을 통한 선제골을 허용했지만 후반 이후 경기 흐름을 다시 주도를 만들게 되면서 후반 23분 이청용의 득점으로 동점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수아레즈에게 후반 35분 역전 결승골을 내줘 1 : 2로 패배하여 8강 진출에 실패하였다.
또한 대한민국은 스페인에 이어 페어플레이상 2위에 오르기도 했었다. 대한민국은 이 대회에서 미국, 이탈리아와 더불어 전 경기 득점을 기록하였다. 대한민국이 전 경기에서 득점을 올린 일은 1986년 대회 이후 24년만이다.
2010년 6월 12일 13:30 UTC+2 | ||||||
그리스 | 0 : 2 | 대한민국 | 넬슨 만델라 베이 경기장, 포트 엘리자베스 관중: 31,513명 심판: 마이클 헤스터 (뉴질랜드)[6] | |||
리포트 | 이정수 7′ 박지성 52′ | |||||
2010년 6월 17일 13:30 UTC+2 | ||||||
아르헨티나 | 4 : 1 | 대한민국 | 사커 시티, 요하네스버그 관중: 82,174명 심판: 프랑크 더 블레익케러 (벨기에)[7] | |||
박주영 17′ (자책골) 이과인 36′ 76′ 80′ |
리포트 | 이청용 45+1′ | ||||
2010년 6월 22일 20:30 UTC+2 | ||||||
나이지리아 | 2 : 2 | 대한민국 | 모세스 마비다 경기장, 더반 관중: 61,874명 심판: 올레가리우 벤케렌사 (포르투갈) | |||
우체 12′ 야쿠부 69′ (페널티킥) |
리포트 | 이정수 38′ 박주영 49′ | ||||
2010년 6월 26일 16:00 UTC+2 | ||||||
우루과이 | 2 : 1 | 대한민국 | 넬슨 만델라 베이 경기장, 포트엘리자베스 관중: 30,597명 심판: 볼프강 슈타르크 (독일) | |||
수아레스 8′ 80′ | 리포트 | 이청용 68′ | ||||
선수단
현재 선수 명단
2014년 2월 19일에 발표한 3월 6일 그리스와의 평가전 선수 명단 (출장 수와 골 수 기준: 2014년 2월 19일) (차두리, 곽태휘, 황석호가 부상으로 대표팀 합류가 불발되어 김주영, 박진포가 대체선발되었다.)
# | 이름 | 생일 (나이) | 클럽 | 출장 | 골 | 데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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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K | |||||||
정성룡 | 1985년 1월 4일 | (39세)수원 블루윙즈 | v. 칠레, 2008년 1월 30일 | ||||
김승규 | 1990년 9월 30일 | (33세)울산 현대 | v. 페루, 2013년 8월 14일 | ||||
김진현 | 1987년 7월 6일 | (36세)세레소 오사카 | v. 스페인, 2012년 5월 31일 | ||||
DF | |||||||
홍정호 | 1989년 8월 12일 | (34세)FC 아우크스부르크 | v. 나이지리아, 2010년 8월 11일 | ||||
김영권 | 1990년 2월 27일 | (34세)광저우 헝다 | v. 나이지리아, 2010년 8월 11일 | ||||
박주호 | 1987년 1월 16일 | (37세)FSV 마인츠 05 | v. 핀란드, 2010년 1월 18일 | ||||
이용 | 1986년 12월 24일 | (37세)울산 현대 | v. 중화인민공화국, 2013년 7월 24일 | ||||
김진수 | 1992년 6월 13일 | (31세)알비렉스 니가타 | v. 오스트레일리아, 2013년 7월 20일 | ||||
박진포 | 1987년 8월 13일 | (36세)성남FC | v. 멕시코, 2013년 1월 30일 | ||||
김주영 | 1988년 7월 3일 | (35세)FC 서울 | v. 미국, 2014년 2월 2일 | ||||
MF | |||||||
기성용 | 1989년 1월 24일 | (35세)선덜랜드 | v. 요르단, 2008년 9월 5일 | ||||
이청용 | 1988년 7월 2일 | (35세)볼턴 원더러스 | v. 요르단, 2008년 5월 31일 | ||||
구자철 | 1989년 2월 27일 | (35세)FSV 마인츠 05 | v. 중화인민공화국, 2008년 2월 17일 | ||||
김보경 | 1989년 10월 6일 | (34세)카디프 시티 | v. 잠비아, 2010년 1월 9일 | ||||
손흥민 | 1992년 7월 8일 | (31세)바이어 04 레버쿠젠 | v. 시리아, 2010년 12월 30일 | ||||
남태희 | 1991년 7월 3일 | (32세)레크위야 SC | v. 튀르키예, 2011년 2월 9일 | ||||
하대성 | 1985년 3월 2일 | (39세)베이징 궈안 | v. 카타르, 2008년 11월 15일 | ||||
박종우 | 1989년 3월 10일 | (35세)광저우 푸리 | v. 이란, 2012년 10월 16일 | ||||
한국영 | 1990년 4월 19일 | (34세)가시와 레이솔 | v. 레바논, 2013년 6월 5일 | ||||
FW | |||||||
박주영 | 1985년 7월 10일 | (38세)왓퍼드 | v. 우즈베키스탄, 2005년 6월 3일 | ||||
이근호 | 1985년 4월 11일 | (39세)상주 상무 | v. 이라크, 2007년 6월 29일 | ||||
지동원 | 1991년 5월 28일 | (32세)FC 아우크스부르크 | v. 시리아, 2010년 12월 30일 | ||||
김신욱 | 1988년 4월 14일 | (36세)울산 현대 | v. 잠비아, 2010년 1월 9일 |
최근 차출된 선수 명단
최근 12달 이내에 국가대표팀에 소집된 선수 명단. 은퇴한 선수는 명단에 없다.
# | 이름 | 생일 (나이) | 클럽 | 출장 | 골 | 최근 소집 |
---|---|---|---|---|---|---|
골키퍼 | ||||||
이범영 | 1989년 4월 2일 | (35세)부산 아이파크 | v. 미국, 2014년 2월 2일 | |||
김영광 | 1983년 6월 28일 | (40세)경남 FC | v. 이란, 2013년 6월 18일 | |||
김용대 | 1979년 10월 11일 | (44세)FC 서울 | v. 카타르, 2013년 3월 26일 | |||
수비수 | ||||||
강민수 | 1986년 2월 14일 | (38세)울산 현대 | v. 미국, 2014년 2월 2일 | |||
김기희 | 1989년 7월 13일 | (34세)전북 현대 | v. 미국, 2014년 2월 2일 | |||
김대호 | 1988년 5월 15일 | (35세)포항 스틸러스 | v. 미국, 2014년 2월 2일 | |||
김민우 | 1990년 2월 25일 | (34세)사간 도스 | v. 미국, 2014년 2월 2일 | |||
박진포 | 1987년 8월 13일 | (36세)성남 FC | v. 미국, 2014년 2월 2일 | |||
이지남 | 1984년 11월 21일 | (39세)허난 젠예 | v. 미국, 2014년 2월 2일 | |||
곽태휘 | 1981년 7월 8일 | (42세)알힐랄 | v. 러시아, 2013년 11월 19일 | |||
장현수 | 1991년 9월 28일 | (32세)광저우 푸리 | v. 러시아, 2013년 11월 19일 | |||
신광훈 | 1987년 3월 18일 | (37세)포항 스틸러스 | v. 러시아, 2013년 11월 19일 | |||
김창수 | 1985년 9월 12일 | (38세)가시와 레이솔 | v. 말리, 2013년 10월 15일 | |||
윤석영 | 1990년 2월 13일 | (34세)퀸즈 파크 레인저스 | v. 말리, 2013년 10월 15일 | |||
정인환 | 1986년 12월 15일 | (37세)전북 현대 | v. 이란, 2013년 6월 18일 | |||
오범석 | 1984년 7월 29일 | (39세)경찰 | v. 카타르, 2013년 3월 26일 | |||
박원재 | 1984년 5월 28일 | (39세)전북 현대 | v. 카타르, 2013년 3월 26일 | |||
최철순 | 1987년 2월 8일 | (37세)상주 상무 | v. 카타르, 2013년 3월 26일 | |||
미드필더 | ||||||
고요한 | 1988년 3월 10일 | (36세)FC 서울 | v. 미국, 2014년 2월 2일 | |||
김태환 | 1989년 7월 24일 | (34세)성남 FC | v. 미국, 2014년 2월 2일 | |||
송진형 | 1987년 8월 13일 | (36세)제주 유나이티드 | v. 미국, 2014년 2월 2일 | |||
이명주 | 1990년 4월 24일 | (33세)포항 스틸러스 | v. 미국, 2014년 2월 2일 | |||
이호 | 1984년 10월 22일 | (39세)상주 상무 | v. 미국, 2014년 2월 2일 | |||
윤일록 | 1992년 3월 7일 | (32세)FC 서울 | v. 러시아, 2013년 11월 19일 | |||
고명진 | 1988년 1월 9일 | (36세)FC 서울 | v. 러시아, 2013년 11월 19일 | |||
고무열 | 1990년 9월 5일 | (33세)포항 스틸러스 | v. 일본, 2013년 7월 28일 | |||
조영철 | 1989년 5월 31일 | (34세)오미야 아르디자 | v. 일본, 2013년 7월 28일 | |||
김남일 | 1977년 3월 14일 | (47세)전북 현대 | v. 이란, 2013년 6월 18일 | |||
백성동 | 1991년 8월 13일 | (32세)주빌로 이와타 | v. 페루, 2013년 8월 14일 | |||
임상협 | 1988년 7월 8일 | (35세)부산 아이파크 | v. 페루, 2013년 8월 14일 | |||
조찬호 | 1986년 4월 10일 | (38세)포항 스틸러스 | v. 페루, 2013년 8월 14일 | |||
신형민 | 1986년 7월 18일 | (37세)알자지라 | v. 카타르, 2013년 3월 26일 | |||
공격수 | ||||||
염기훈 | 1983년 3월 30일 | (41세)수원 블루윙즈 | v. 미국, 2014년 2월 2일 | |||
이승기 | 1988년 6월 2일 | (35세)전북 현대 | v. 미국, 2014년 2월 2일 | |||
조동건 | 1986년 4월 16일 | (38세)수원 블루윙즈 | v. 크로아티아, 2013년 9월 10일 | |||
김동섭 | 1989년 3월 29일 | (35세)성남 FC | v. 페루, 2013년 8월 14일 | |||
서동현 | 1985년 6월 5일 | (38세)경찰 | v. 일본, 2013년 7월 28일 | |||
이동국 | 1979년 4월 29일 | (44세)전북 현대 | v. 이란, 2013년 6월 18일 |
주장
역대 대표팀 주장
이름 | 활동 기간 | 임명날짜 | 비고 |
---|---|---|---|
최영일 | 1997~1998 | ||
홍명보 | 1998-2002 | ||
유상철 | 2003-2005 | ||
이운재 | 2004-2009 | ||
김남일 | 2006-2008 | 2006년 8월 14일 | 베어백호 1기 주장 |
박지성 | 2008-2011 | 2008년 10월 9일 | 당시 역대 최연소 대표팀 주장 |
박주영 | 2011-2012 | 2011년 2월 8일 | 역대 최연소 대표팀 주장 |
곽태휘 | 2012-2013 | 2012년 2월 19일 | 최강희호 1기 주장 |
하대성 | 2013 | 2013년 7월 17일 | 홍명보호 1-3기 주장 |
구자철 | 2013 | 2013년 9월 30일 | 홍명보호 4기 주장 |
이청용 | 2013-현재 | 2013년 11월 14일 | 홍명보호 5기 주장 |
역대 대표팀 월드컵 본선 대회 주장
# | 이름 | 선수가 주장을 맡은 대회 | 출전 | 비고 |
---|---|---|---|---|
1 | 주영광 | 1954년 FIFA 월드컵 | ? | 경기 비출전 본선 조별리그 2차전은 박규정이 임시 주장직 수행 |
2 | 박창선 | 1986년 FIFA 월드컵 | 32 | |
3 | 정용환 | 1990년 FIFA 월드컵 | 77 | 경기 비출전 본선 조별리그 2차전, 3차전은 최순호가 임시 주장직 수행 |
4 | 최인영 | 1994년 FIFA 월드컵 | 48 | 경기 도중 교체된 본선 조별리그 3차전은 홍명보가 임시 주장직 수행 |
5 | 최영일 | 1998년 FIFA 월드컵 | 55 | 경기 비출전 본선 조별리그 1차전, 3차전은 유상철이 임시 주장직 수행 |
6 | 홍명보 | 2002년 FIFA 월드컵 | 136 | 경기 도중 교체된 본선 토너먼트 16강전, 3,4위전은 유상철이 임시 주장직 수행 |
7 | 이운재 | 2006년 FIFA 월드컵 | 132 | |
8 | 박지성 | 2010년 FIFA 월드컵 | 100 |
코칭스태프
직위 | 이름 | 비고 |
---|---|---|
감독 | 홍명보 | |
수석 코치 | 김태영 | |
코치 | 박건하 | |
코치 | 톤 뒤 하티니어르 | |
골키퍼 코치 | 김봉수 | |
피지컬 코치 | 이케다 세이고 |
역대 감독과 수석코치
감독 | 수석코치 | 경기수 | 승 | 무 | 패 | 승률 (%) | 취임 | 사임 |
---|---|---|---|---|---|---|---|---|
홍명보 | 김태영 | 14 | 5 | 3 | 6 | 35.7 | 2013년 6월 24일 | |
최강희 | 최덕주 | 12 | 6 | 2 | 4 | 50 | 2011년 12월 21일 | 2013년 6월 19일 |
조광래 | 박태하 | 21 | 12 | 6 | 3 | 57.1 | 2010년 7월 21일 | 2011년 12월 8일 |
허정무 | 정해성 | 33 | 21 | 15 | 7 | 48.8 | 2007년 12월 7일 | 2010년 7월 2일 |
핌 베어벡 | 홍명보 | 17 | 6 | 6 | 5 | 35.3 | 2006년 7월 1일 | 2007년 7월 25일 |
딕 아드보카트 | 핌 베어벡 | 20 | 10 | 5 | 5 | 50.0 | 2005년 10월 1일 | 2006년 6월 30일 |
요하네스 본프레레 | 허정무 | 25 | 11 | 8 | 6 | 44.0 | 2004년 6월 24일 | 2005년 8월 23일 |
박성화 (대행) | 4 | 2 | 1 | 1 | 50.0 | 2004년 4월 20일 | 2004년 6월 15일 | |
움베르투 코엘류 | 박성화 | 18 | 8 | 3 | 7 | 44.4 | 2003년 2월 3일 | 2004년 4월 19일 |
김호곤 (대행) | 1 | 0 | 0 | 1 | 0 | 2002년 11월 18일 | 2002년 11월 20일 | |
거스 히딩크 | 박항서 | 38 | 16 | 11 | 11 | 42.1 | 2001년 1월 1일 | 2002년 6월 30일 |
박항서 (대행)[ref 1] | 1 | 0 | 1 | 0 | 0 | 2000년 12월 20일 | 2000년 12월 20일 | |
허정무 | 정해성 | 34 | 18 | 5 | 11 | 42.9 | 1998년 10월 14일 | 2000년 11월 13일 |
김평석 (대행) | 1 | 0 | 1 | 0 | 0 | 1998년 6월 22일 | 1998년 6월 25일 | |
차범근 | 김평석 | 41 | 22 | 8 | 11 | 53.7 | 1997년 1월 8일 | 1998년 6월 21일 |
박종환 | 최만희 (96년 7월 8일 ~ 97년 1월 7일) |
16 | 8 | 3 | 5 | 50.0 | 1996년 2월 15일 | 1997년 1월 7일 |
정해성 (트레이너) (96년 2월 15일 ~ 96년 6월) | ||||||||
고재욱 | 박경훈 | 1 | 0 | 0 | 1 | 0 | 1995년 10월 20일 | 1995년 10월 30일 |
정병탁 | 조윤환 | 0 | 0 | 0 | 0 | - | 1995년 9월 16일 | 1995년 9월 30일 |
허정무 | 이장수 | 1 | 0 | 1 | 0 | 0 | 1995년 8월 1일 | 1995년 8월 12일 |
박종환 | 최만희 | 2 | 1 | 1 | 0 | 50.0 | 1995년 4월 26일 | 1995년 7월 31일 |
아나톨리 비쇼베츠 | 김성남 | 16 | 8 | 4 | 4 | 50.0 | 1994년 7월 24일 | 1995년 2월 26일 |
김호 | 허정무 (93년 12월 6일 ~ 94년 7월 23일) |
37 | 14 | 15 | 8 | 37.8 | 1992년 7월 8일 | 1994년 7월 23일 |
유기흥 (92년 12월 29일 ~ 93년 11월 24일) | ||||||||
조광래 (92년 7월 8일 ~ 92년 11월 9일) | ||||||||
고재욱 | 허정무 | 6 | 3 | 0 | 3 | 50.0 | 1991년 5월 22일 | 1991년 7월 27일 |
박종환 | 김희태 | 10 | 8 | 2 | 0 | 80.0 | 1990년 8월 9일 | 1991년 10월 23일 |
이차만 | 김희태 | 4 | 3 | 0 | 1 | 75.0 | 1990년 7월 3일 | 1990년 8월 8일 |
이회택 | 이차만 | 30 | 19 | 5 | 6 | 63.3 | 1988년 10월 6일 | 1990년 7월 2일 |
김정남 | 김호곤 | 2 | 2 | 0 | 0 | 100.0 | 1988년 7월 6일 | 1988년 10월 5일 |
박종환 | 원흥재 | 9 | 4 | 1 | 4 | 44.4 | 1986년 11월 20일 | 1988년 7월 5일 |
김정남 | 김호곤 | 26 | 15 | 7 | 4 | 57.7 | 1985년 3월 19일 | 1986년 11월 19일 |
문정식 | 김정남 (84년 12월 17일 ~ 85년 3월 18일) |
10 | 4 | 3 | 3 | 40.0 | 1984년 7월 3일 | 1985년 3월 18일 |
공석 (84년 7월 3일 ~ 84년 12월 16일) | ||||||||
박종환 | 이이우 | 2 | 1 | 1 | 0 | 50.0 | 1983년 8월 23일 | 1984년 7월 2일 |
조윤옥 | 이세연 | 6 | 4 | 0 | 2 | 66.7 | 1983년 1월 29일 | 1983년 8월 22일 |
최은택 | 김정남 | 3 | 1 | 2 | 0 | 33.3 | 1982년 6월 21일 | 1983년 1월 28일 |
김정남 (대행) | 김호곤 (트레이너) | 35 | 23 | 4 | 8 | 67.6 | 1980년 5월 4일 | 1982년 6월 18일 |
장경환 | 최은택 | 8 | 7 | 1 | 0 | 87.5 | 1979년 3월 29일 | 1980년 5월 3일 |
함흥철 | 김정남 | 21 | 18 | 1 | 2 | 85.7 | 1978년 3월 2일 | 1979년 3월 28일 |
김정남 (대행) | 5 | 2 | 0 | 3 | 40.0 | 1977년 9월 17일 | 1977년 12월 18일 | |
최정민 | 김정남 | 21 | 14 | 1 | 6 | 66.7 | 1977년 1월 1일 | 1977년 9월 16일 |
문정식 | 박경화 | 14 | 8 | 2 | 4 | 57.1 | 1976년 5월 14일 | 1976년 12월 31일 |
함흥철 | 김정남 | 29 | 22 | 5 | 2 | 81.5 | 1974년 11월 17일 | 1976년 5월 13일 |
최영근 | 최은택 | 9 | 3 | 5 | 1 | 33.3 | 1974년 1월 | 1974년 11월 17일 |
민병대 | 문정식 | 17 | 10 | 2 | 5 | 58.8 | 1972년 12월 21일 | 1973년 11월 20일 |
함흥철 | 박경화 | 19 | 11 | 3 | 5 | 57.9 | 1972년 6월 16일 | 1972년 12월 20일 |
박병석 | 박경화 (72년 4월 6일 ~ 72년 6월 15일) |
5 | 1 | 2 | 2 | 20.0 | 1971년 12월 7일 | 1972년 6월 15일 |
박상훈 (71년 12월 5일 ~ 72년 4월 5일) | ||||||||
홍덕영 | 4 | 1 | 0 | 3 | 25.0 | 1971년 11월 | ||
한홍기 | 그레이엄 아담스 (71년 3월 ~ 71년 10월 6일) |
27 | 17 | 2 | 8 | 63.0 | 1970년 2월 13일 | 1971년 10월 6일 |
우상권 (70년 2월 13일 ~ 70년 10월?) | ||||||||
강준영 | 5 | 4 | 0 | 1 | 80.0 | 1969년 11월 | 1969년 12월 | |
김용식 | 강준영 | 4 | 1 | 1 | 2 | 25.0 | 1969년 1월 | 1969년 10월 |
박일갑 | 6 | 4 | 2 | 0 | 66.7 | 1968년 8월 | 1968년 12월 | |
장경환 | 박일갑 | 15 | 10 | 3 | 2 | 66.7 | 1967년 7월 | 1967년 11월 |
민병대 [ref 2] | 한창화 | 8 | 5 | 3 | 0 | 62.5 | 1966년 7월 | 1966년 12월 |
홍건표 [ref 3] | 정남식 | 6 | 3 | 1 | 2 | 50.0 | 1965년 8월 | |
정국진 | 김규환 | 0 | 0 | 0 | 0 | 0 | 1964년 9월 | |
민병대 [ref 4] | 김규환 | ' | 1962년 3월 | |||||
이종갑 [ref 5] | 김규환 | ' | 1961년 10월 | |||||
이유형 [ref 6] | 김용식 | ' | 1961년 3월 | |||||
위혜덕 [ref 7] | 김용식 | ' | 1960년 10월 | |||||
김용식 | 민병대 | ' | 1960년 3월 | |||||
정국진 | 정남식 | ' | 1959년 7월 | |||||
김근찬 | 민병대 | ' | 1958년 4월 | |||||
이유형 | 김성간 | ' | 1956년 8월 | |||||
박정휘 | 주영광 | ' | 1955년 12월 | |||||
김용식 | ' | 1954년 6월 | ||||||
이유형 | 배종호 | ' | 1954년 3월 | |||||
김화집 | 이용일 | ' | 1952년 4월 | 1954년 2월 | ||||
박정휘 | 이유형 | ' | 1948년 12월 | 1950년 4월 | ||||
이영민 | ' | 1948년 6월 | ||||||
박정휘 | ' | 1948년 5월 |
주요 대회 기록
월드컵 기록
본선 | 예선 | ||||||||||||||
---|---|---|---|---|---|---|---|---|---|---|---|---|---|---|---|
연도 | 결과 | 순위 | 경기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경기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
1930년 | 불참(일제 강점기) | - | - | - | - | - | - | ||||||||
1934년 | - | - | - | - | - | - | |||||||||
1938년 | - | - | - | - | - | - | |||||||||
1950년 | 불참(한국 전쟁) | - | - | - | - | - | - | ||||||||
1954년 | 1라운드 | 16 | 2 | 0 | 0 | 2 | 0 | 16 | 2 | 1 | 1 | 0 | 7 | 3 | |
1958년 | FIFA 참가 신청서 분실로 기권 | - | - | - | - | - | - | ||||||||
1962년 | 예선 탈락 | 4 | 2 | 0 | 2 | 6 | 9 | ||||||||
1966년 | 기권 | - | - | - | - | - | - | ||||||||
1970년 | 예선 탈락 | 4 | 1 | 2 | 1 | 6 | 5 | ||||||||
1974년 | 8 | 3 | 4 | 1 | 10 | 4 | |||||||||
1978년 | 12 | 5 | 6 | 1 | 16 | 9 | |||||||||
1982년 | 3 | 2 | 0 | 1 | 7 | 4 | |||||||||
1986년 | 1라운드 | 20 | 3 | 0 | 1 | 2 | 4 | 7 | 8 | 7 | 0 | 1 | 17 | 3 | |
1990년 | 1라운드 | 22 | 3 | 0 | 0 | 3 | 1 | 6 | 11 | 9 | 2 | 0 | 30 | 1 | |
1994년 | 1라운드 | 20 | 3 | 0 | 2 | 1 | 4 | 5 | 13 | 9 | 3 | 1 | 32 | 5 | |
1998년 | 1라운드 | 30 | 3 | 0 | 1 | 2 | 2 | 9 | 12 | 9 | 2 | 1 | 28 | 8 | |
2002년 | 4위 | 4 | 7 | 3 | 2 | 2 | 8 | 6 | - | - | - | - | - | - | |
2006년 | 1라운드 | 17 | 3 | 1 | 1 | 1 | 3 | 4 | 12 | 7 | 3 | 2 | 18 | 7 | |
2010년 | 16강 | 15 | 4 | 1 | 1 | 2 | 6 | 8 | 14 | 7 | 7 | 0 | 22 | 7 | |
2014년 | 본선 진출 | ? | ? | ? | ? | ? | ? | ? | 14 | 8 | 3 | 3 | 27 | 11 | |
합계 | 28 | 5 | 8 | 15 | 28 | 61 | 117 | 70 | 33 | 14 | 226 | 76 |
컨페더레이션스컵 기록
연도 | 결과 | 경기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
1992년 | 예선 탈락 | ||||||
1995년 | |||||||
1997년 | |||||||
1999년 | |||||||
2001년 | 조별 리그 | 3 | 2 | 0 | 1 | 3 | 6 |
2003년 | 예선 탈락 | ||||||
2005년 | |||||||
2009년 | |||||||
2013년 | |||||||
2017년 | ? | ? | ? | ? | ? | ? | ? |
2021년 | ? | ? | ? | ? | ? | ? | ? |
합계 | 1/8 | 3 | 2 | 0 | 1 | 3 | 6 |
아시안컵 기록
연도 | 결과 | 경기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
[[파일:{{{국기그림-1910}}}|22x20px|border |홍콩|링크=홍콩]] 1956년 | 우승 | 3 | 2 | 1 | 0 | 9 | 6 |
1960년 | 우승 | 3 | 3 | 0 | 0 | 9 | 1 |
1964년 | 3위 | 3 | 1 | 0 | 2 | 2 | 4 |
1968년 | 예선 탈락 | - | - | - | - | - | - |
1972년 | 준우승 | 5 | 1 | 2 | 2 | 7 | 6 |
1976년 | 예선 탈락 | - | - | - | - | - | - |
1980년 | 준우승 | 6 | 4 | 1 | 1 | 12 | 6 |
1984년 | 조별 리그 | 4 | 0 | 2 | 2 | 1 | 3 |
1988년 | 준우승 | 6 | 5 | 1 | 0 | 11 | 3 |
1992년 | 예선 탈락 | - | - | - | - | - | - |
1996년 | 8강 | 4 | 1 | 1 | 2 | 7 | 11 |
2000년 | 3위 | 6 | 3 | 1 | 2 | 9 | 6 |
2004년 | 8강 | 4 | 2 | 1 | 1 | 9 | 4 |
2007년 | 3위 | 6 | 1 | 4 | 1 | 3 | 3 |
2011년 | 3위 | 6 | 4 | 2 | 0 | 13 | 7 |
2015년 | 진출 확정 | ||||||
2019년 | ? | ||||||
합계 | 12/15 | 56 | 27 | 16 | 13 | 92 | 60 |
- 무승부는 승부차기까지 간 경기도 포함된다.
하계 올림픽 기록
연도 | 결과 | 경기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
---|---|---|---|---|---|---|---|---|
1900년 | 불참 (대한 제국) | |||||||
1904년 | ||||||||
[[파일:{{{국기그림-1828}}}|22x20px|border |그리스|링크=그리스]] 1906년 | ||||||||
1908년 | ||||||||
1912년 | 불참 (일제 강점기) | |||||||
1920년 | ||||||||
1924년 | ||||||||
1928년 | ||||||||
1936년 | ||||||||
1948년 | 8강 | 2 | 1 | 0 | 1 | 5 | 15 | |
1952년 | 불참 (한국 전쟁) | |||||||
1956년 | 예선 탈락 | |||||||
1960년 | ||||||||
1964년 | 조별 리그 | 3 | 0 | 0 | 3 | 1 | 20 | |
1968년 | 예선 탈락 | |||||||
1972년 | ||||||||
1976년 | ||||||||
1980년 | 참가 거부 1 | |||||||
1984년 | 예선 탈락 | |||||||
1988년 | 조별 리그 | 3 | 0 | 2 | 1 | 1 | 2 | |
모든 연령의 선수 참가에서 23세 이하로 변경[8] | ||||||||
합계 | 3/20 | 8 | 1 | 2 | 5 | 7 | 37 |
- 1980년 하계 올림픽은 대다수 서방 세계 국가들이 보이콧하였다. 대한민국 역시 이에 동참하였기 때문에 예선 참가조차 하지 않았다.
아시안 게임 기록
연도 | 결과 | 경기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
---|---|---|---|---|---|---|---|---|
1951년 | 불참 (한국 전쟁) | |||||||
1954년 | 2위 | 4 | 1 | 2 | 1 | 15 | 12 | |
1958년 | 2위 | 5 | 4 | 0 | 1 | 15 | 6 | |
1962년 | 2위 | 5 | 4 | 0 | 1 | 9 | 5 | |
1966년 | 예선 탈락 | |||||||
1970년 | 우승 | 6 | 3 | 2 | 1 | 5 | 3 | |
1974년 | 예선 탈락 | |||||||
1978년 | 우승* | 7 | 6 | 1 | 0 | 15 | 3 | |
1982년 | 예선 탈락 | |||||||
1986년 | 우승 | 6 | 4 | 2 | 0 | 14 | 3 | |
1990년 | 3위 | 6 | 5 | 0 | 1 | 18 | 1 | |
1994년 | 4위 | 6 | 3 | 0 | 3 | 17 | 7 | |
1998년 | 8강 | 6 | 4 | 0 | 2 | 12 | 6 | |
모든 연령의 선수 참가에서 23세 이하로 변경[9] | ||||||||
합계 | 9/13 | 45 | 30 | 7 | 7 | 120 | 46 |
- *: 공동 우승을 나타낸다.
다이너스티컵 / 동아시안컵 기록
연도 | 결과 | 경기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
1990년 | 우승 | 4 | 3 | 1 | 0 | 5 | 1 |
1992년 | 준우승 | 4 | 1 | 4 | 0 | 5 | 3 |
1995년 | 준우승 | 4 | 1 | 3 | 0 | 6 | 5 |
1998년 | 3위 | 3 | 2 | 0 | 1 | 4 | 3 |
2003년 | 우승 | 3 | 2 | 1 | 0 | 4 | 1 |
2005년 | 4위 | 3 | 0 | 2 | 1 | 1 | 2 |
2008년 | 우승 | 3 | 1 | 2 | 0 | 5 | 4 |
2010년 | 준우승 | 3 | 2 | 0 | 1 | 8 | 4 |
2013년 | 3위 | 3 | 0 | 2 | 1 | 1 | 2 |
합계 | 8/8 | 30 | 12 | 15 | 4 | 39 | 25 |
골드컵 기록
연도 | 결과 | 경기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
2000년 | 조별 리그 | 2 | 0 | 2 | 0 | 2 | 2 |
2002년 | 4위 | 5 | 0 | 2 | 3 | 3 | 7 |
합계 | 7 | 0 | 4 | 3 | 5 | 9 |
개인 기록
최다 출장 선수
# | 이름 | 활동 기간 | 경기 | 골 |
---|---|---|---|---|
1 | 홍명보 | 1990–2002 | 136 | 10 |
2 | 이운재 | 1994–2010 | 132 | -114 |
3 | 이영표 | 1999–2011 | 127 | 5 |
4 | 유상철 | 1994–2006 | 122 | 18 |
5 | 차범근 | 1972–1986 | 121 | 55 |
6 | 김태영 | 1992–2004 | 105 | 3 |
7 | 황선홍 | 1988–2002 | 103 | 50 |
8 | 박지성 | 2000–2011 | 100 | 13 |
9 | 이동국 | 1998–현재 | 99 | 30 |
10 | 김남일 | 2000–현재 | 98 | 2 |
11 | 최순호 | 1980–1991 | 95 | 30 |
11 | 하석주 | 1991–2001 | 95 | 23 |
13 | 조영증 | 1975–1986 | 92 | 2 |
13 | 박성화 | 1974–1984 | 92 | 24 |
15 | 최종덕 | 1975–1986 | 89 | 12 |
16 | 박경훈 | 1981–1990 | 88 | 1 |
17 | 서정원 | 1990–2001 | 87 | 16 |
18 | 허정무 | 1974–1986 | 84 | 29 |
19 | 설기현 | 2000–현재 | 83 | 19 |
20 | 조광래 | 1975–1986 | 80 | 10 |
최다 득점 선수
# | 이름 | 활동 기간 | 경기 | 골 | 경기당 평균 골 |
---|---|---|---|---|---|
1 | 차범근 | 1972–1986 | 121 | 55 | 0.45 |
2 | 황선홍 | 1988–2002 | 103 | 50 | 0.49 |
3 | 박이천 | 1969–1974 | ? | 36 | ? |
4 | 김재한 | 1972–1979 | ? | 33 | ? |
5 | 김도훈 | 1994–2003 | 72 | 30 | 0.41 |
5 | 최순호 | 1980–1991 | 95 | 30 | 0.32 |
5 | 이동국 | 1998– | 99 | 30 | 0.30 |
8 | 허정무 | 1974–1986 | 84 | 29 | 0.35 |
9 | 최용수 | 1995–2003 | 69 | 27 | 0.39 |
10 | 박주영 | 2005– | 61 | 23 | 0.38 |
최연소 데뷔 선수
- 명단은 10대에 데뷔한 선수들 전체를 데뷔 나이 기준으로 정렬한 것이다
# | 이름 | 생년월일 | 데뷔일 | 데뷔 나이 | 상대국 |
---|---|---|---|---|---|
김판근 | 1966년 3월 5일 | 1983년 11월 1일 | 17세 242일 | 태국 | |
김봉수 | 1970년 12월 4일 | 1988년 12월 11일 | 18세 7일 | 이란 | |
고종수 | 1978년 10월 30일 | 1997년 1월 18일 | 18세 80일 | 노르웨이 | |
손흥민 | 1992년 7월 8일 | 2010년 12월 30일 | 18세 171일 | 시리아 | |
최순호 | 1962년 1월 10일 | 1980년 9월 16일 | 18세 249일 | 말레이시아 | |
이천수 | 1981년 7월 9일 | 2000년 4월 5일 | 18세 270일 | 라오스 | |
박병철 | 1954년 11월 25일 | 1973년 9월 22일 | 18세 301일 | 크메르 공화국 | |
차범근 | 1953년 5월 22일 | 1972년 5월 10일 | 18세 353일 | 크메르 공화국 | |
구자철 | 1989년 2월 27일 | 2008년 2월 17일 | 18세 355일 | 중화인민공화국 | |
이동국 | 1979년 4월 29일 | 1998년 5월 16일 | 19세 17일 | 자메이카 | |
최태욱 | 1981년 3월 13일 | 2000년 4월 7일 | 19세 25일 | 몽골 | |
박지성 | 1981년 2월 25일 | 2000년 4월 5일 | 19세 39일 | 라오스 | |
석현준 | 1991년 6월 29일 | 2010년 9월 7일 | 19세 71일 | 이란 | |
노정윤 | 1971년 3월 28일 | 1990년 7월 31일 | 19세 125일 | 중화인민공화국 | |
김진규 | 1985년 2월 16일 | 2004년 7월 14일 | 19세 148일 | 트리니다드 토바고 | |
지동원 | 1991년 5월 28일 | 2010년 12월 30일 | 19세 216일 | 시리아 | |
서정원 | 1970년 12월 17일 | 1990년 7월 27일 | 19세 222일 | 일본 | |
기성용 | 1989년 1월 24일 | 2008년 9월 5일 | 19세 225일 | 요르단 | |
박주영 | 1985년 7월 10일 | 2005년 6월 3일 | 19세 328일 | 우즈베키스탄 | |
이청용 | 1988년 7월 2일 | 2008년 5월 31일 | 19세 333일 | 요르단 |
최연소 데뷔 골
# | 이름 | 기록 나이 | 기록일 | 상대국 |
---|---|---|---|---|
고종수 | 18세 87일 | 1997년 1월 25일 | 뉴질랜드 | |
손흥민 | 18세 194일 | 2011년 1월 18일 | 인도 | |
이천수 | 18세 270일 | 2000년 4월 5일 | 라오스 | |
차범근 | 18세 353일 | 1972년 5월 10일 | 캄보디아 | |
최태욱 | 19세 25일 | 2000년 4월 5일 | 라오스 | |
박지성 | 19세 102일 | 2000년 6월 7일 | 북마케도니아 | |
지동원 | 19세 216일 | 2010년 12월 30일 | 시리아 | |
기성용 | 19세 229일 | 2008년 9월 9일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
박주영 | 19세 328일 | 2005년 6월 3일 | 우즈베키스탄 |
용품 스폰서
기간 | 스폰서 | 비고 |
---|---|---|
1977–1984 | 아디다스 아식스 코오롱액티브 프로스펙스 위크엔드외 다수 [10][11][12] |
최초 용품 스폰서는 아디다스이나 1987년 지금과 같은 용품 스폰서십 계약이 있기까지 아식스, 코오롱액티브, 삼성물산 위크엔드 등 국내외 브랜드의 여러 유니폼을 그때그때 마다 선정해서 착용하였으며 현재와 같은 용품 스폰서십 개념은 아니었다. |
1984–1987[13] | 위크엔드 |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출전시 삼성물산 SS패션 스포츠 브랜드 위크엔드 유니폼 착용[14] 1987년 대한축구협회와 현재와 같은 공식 용품 스폰서십 계약을 한 최초의 스포츠 브랜드이다. |
1988–1995 | 라피도 | 1988년 1월 라피도 브랜드 출시로 변경[15][16] |
1996–현재 | 나이키[17] | 대한축구협회는 1995년 말에 나이키와 1996년 1월 1일부터 1997년 12월 31일까지 2년간 용품 스폰서십 계약 체결을 시작으로 2019년까지 12월 31일까지 24년간 장기 계약을 유지중이다.[18] |
유니폼 변천사
1954 홈
(1954 WC) |
1960 홈
(1960 AC) |
---|
위크엔드 (1984년–1987년)
|
---|
라피도 (1988년–1995년)
|
---|
나이키 (1996년-현재)
|
---|
1. 1993년 9월 미국 월드컵 최종 예선을 앞두고 당시 세계적인 유니폼 트렌드에 맞게 화려한 무늬 추가해서 변경하였다.[19]
2. 붉은색 유니폼이 상대팀에게 적개심을 불러 일으켜 경기력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하얀색 유니폼으로 교체하였다.
3. 미국 월드컵 조별 예선 2차전 볼리비아전에서는 홈 유니폼 상의와 원정 유니폼 하의를 조합하여 임시 써드 유니폼을 만들어 착용하였다.
4. 1995년 말 용품 스폰서십 계약 후 1996년 나이키가 최초로 공급한 유니폼은 라피도에서 디자인하여 1995년 10월 31일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공개된 유니폼과 똑같은 디자인에 브랜드 로고만 나이키로 변경한 유니폼이었다.
5. 나이키가 디자인한 최초의 유니폼으로 디자인을 한 토모코 반도씨는 "한국에 대해 가장 강렬하게 기억되는 이미지인 태극기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하였으며
1996년 7월 8일 올림픽 대표팀의 콜롬비아 대표팀과의 평가전때 처음 착용되었다.
6. 4년 동안 기본적인 디자인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넘버 프린팅과 골피커 유니폼 등에 있어서 약간의 변경이 있었다.
관련 항목
- 대한축구협회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 결과
- 대한민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 코리아컵 국제축구대회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트레이닝 센터
- 도하의 기적
- 도쿄 대첩
- 한일전 (축구)
- 공한증
- 붉은악마
- 대~한민국
- 오 필승 코리아
주석
- ↑ 첫A매치 골은 故정남식•정국진씨, 《문화일보》, 2007년 8월 6일 작성.
- ↑ 8강 태극전사들 “헛구역질 날 정도로 뛰었다”, 《동아닷컴》, 2002년 6월 19일 작성.
- ↑ -월드컵- 대표팀, 김남일.김태영 부상 변수, 《연합뉴스》, 2002년 6월 19일 작성.
- ↑ 이석무. “FIFA, 한-스위스전 비디오 분석 '심판판정 옳았다'”. 마이데일리. 2010년 1월 18일에 확인함.
- ↑ 홍제성. “네티즌들 스위스전 재경기 주장”. 스포츠한국. 2008년 1월 2일에 확인함.
- ↑ “Referee designations for matches 1-16” (PDF) (영어). 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
- ↑ “Referee designations for matches 17-24” (PDF) (영어). 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
- ↑ 이 문서에서는 1992년 하계 올림픽 축구 예선 이전의 내용만 다룬다. 이 이후의 기록은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을 참고하시오.
- ↑ 이 문서에서는 1998년 아시안 게임까지의 내용만 다룬다. 이 이후의 기록은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을 참고하시오.
- ↑ 송기룡. “한국 대표팀 유니폼 역사”. 월간 축구가족. 다음 글자 무시됨: ‘작성일자 --’ (도움말)
- ↑ “대표선수도 국제경기서 버젓이 서독 아디다스, 일본 미즈노등 외제 스포츠용품 국내시장 석권”. 경향신문. 다음 글자 무시됨: ‘작성일자 1981년 2월 27일’ (도움말)
- ↑ 축구 국가대표팀의 유니폼에 대해서 알아보자
- ↑ “월드컵 상혼 장외서 뜨거운 "광고전쟁"”. 경향신문. 다음 글자 무시됨: ‘작성일자 1990년 6월 20일’ (도움말)
- ↑ “필승!위크엔드스포츠-멕시코월드컵에서 대표팀과 함께 뜁니다”. 경향신문. 다음 글자 무시됨: ‘작성일자 1986년 5월 30일’ (도움말)
- ↑ “외국스포츠상표 국내진출러시의류”. 매일경제신문.
- ↑ “3개상표 개발 삼성물산”. 매일경제신문.
- ↑ “축구협회 월드컵유니폼 교체 '후원금 최소 100억'”. 경향신문. 다음 글자 무시됨: ‘작성일자 1997년 12월 11일’ (도움말)
- ↑ “축구협회, 나이키와 1200억원 후원 계약”. 스포츠경향. 다음 글자 무시됨: ‘작성일자 2012년 1월 4일’ (도움말)
- ↑ “축구대표 선수복 노랑, 흰색 가미”. 한겨레. 1993년 9월 28일.
바깥 고리
- (한국어/영어/일본어) 대한축구협회 공식 웹사이트
- 대한축구협회 페이스북
- 대한축구협회 트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