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 공화국

남아프리카 공화국
11개 언어
영어: Republic of South Africa
아프리칸스어: Republiek van Suid-Afrika
남부 은데벨레어: iRiphabliki yeSewula Afrika
코사어: iRiphabliki yomZantsi Afrika
줄루어: iRiphabhuliki yaseNingizimu Afrika
스와티어: iRiphabhulikhi yeNingizimu Afrika
북소토어: Repabliki ya Afrika-Borwa
소토어: Rephaboliki ya Afrika Borwa
츠와나어: Rephaboliki ya Aforika Borwa
총가어: Riphabliki ra Afrika Dzonga
벤다어: Riphabuḽiki ya Afurika Tshipembe

국기

국장
표어!ke e: ǀxarra ǁke (참어)
표어 설명다양한 국민들의 단결
국가남아프리카의 찬가
수도프리토리아 (행정)
남위 25° 45′ 12″ 동경 28° 11′ 13″ / 남위 25.753333° 동경 28.186944°  / -25.753333; 28.186944
블룸폰테인 (사법)
남위 29° 06′ 00″ 동경 26° 13′ 00″ / 남위 29.1000° 동경 26.216667°  / -29.1000; 26.216667
케이프타운 (입법)
남위 33° 55′ 31″ 동경 18° 25′ 26″ / 남위 33.925278° 동경 18.423889°  / -33.925278; 18.423889
최대 도시요하네스버그 남위 26° 12′ 16″ 동경 28° 02′ 44″ / 남위 26.204444° 동경 28.045556°  / -26.204444; 28.045556
남아프리카 공화국(남아프리카 공화국)
정치
정치체제공화제, 단일 국가
의원내각제¹ 하의 대통령제
대통령
부통령
시릴 라마포사
폴 마샤타일
역사
독립영국으로부터 독립
 • 남아프리카 연방1910년 5월 31일
 • 웨스트민스터 헌장1931년 12월 11일
 • 공화국 수립1961년 5월 31일
지리
면적1,221,037 km2 (25 위)
내수면 비율거의 없음
시간대SAST (UTC+2)
DST없음
인문
공용어
인구
2016년 어림55,653,654명
2014년 조사54,002,000명 (24위)
인구 밀도39명/km2 (136위)
경제
GDP(PPP)2012년 어림값
 • 전체$5,790억 (25위)
 • 일인당$11,300 (84위)
GDP(명목)2012년 어림값
HDI0.629 (121위, 2012년 조사)
통화랜드 (ZAR)
종교
종교기독교 85.7%[1]
무종교 10.9%
토속신앙 4.4%
이슬람교 1.6%
힌두교 1.0%
유대교 1.0%
기타 4.1%
기타
ISO 3166-1710, ZA, ZAF
도메인.za
국제 전화+27
1. 총선에서 승리한 당이 내각(대통령 및 부통령)을 구성

남아프리카 공화국(영어: Republic of South Africa 리퍼블릭 오브 사우스아프리카[*], RSA, 아프리칸스어: Republiek van Suid-Afrika 레퓌블릭 판 사위트아프리카)은 아프리카 대륙 최남단에 자리한 공화국이다. 줄여서 남아공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북쪽으로는 나미비아, 보츠와나, 짐바브웨와 접해 있으며 북동쪽으로는 모잠비크, 에스와티니와 접한다. 1966년에 독립한 내륙국레소토가 남아프리카 공화국 영토 안에 둘러싸여 있다. 수도는 3개로 행정 수도는 프리토리아, 입법 수도는 케이프타운, 사법 수도는 블룸폰테인이다.

역사

백인의 남아프리카 이주

얀 반 리베크의 도착(찰스 벨)

1488년 포르투갈의 탐험가 바르톨로메우 디아스가 아프리카 대륙 최남단의 희망봉을 발견하고서 백인들이 남아공지역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1652년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케이프타운에 정착촌을 건설하고서 해상물류를 위한 보급기지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1679년 동인도회사는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에서 종교 박해를 피해 이민온 신교도 정착민에게 토지를 분배하였고, 그들은 스스로 보어(Boer)인이라 불렀다. 보어란 말은 네덜란드어로 "농부"란 뜻이다. 이들은 점차 내륙과 동부해안으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원주민과 자주 충돌했다. 1795년 영국 군대가 케이프타운을 점령하고서 1814년식민지로 삼았다. 영국인은 1820년대부터 대량으로 이주하기 시작했고, 보어인은 내륙으로 내몰리면서 영국과 보어인 사이 갈등이 커졌다. 1909년 영국 의회에서 남아프리카법을 통과시켜 남아프리카 연방이라는 입헌군주국형태의 자치체로 승인했고, 이듬해 1910년 정식으로 영연방국가 일원으로 독립했다. 1948년 영국계보다 숫적으로 우세한 보어계가 주축인 우익정당 국민당이 집권하여 영국과 관계가 악화되면서 종래 인종차별관행을 제도화한 가혹한 인종차별 정책 즉 아파르트헤이트를 펼쳤다.

공화국 수립

1961년 백인들만의 국민 투표에 의해 개헌이 되어 영국 여왕의 통치를 벗어나 대통령을 세우고 공화국이 되었다. 당시 대통령은 상징적인 지위였고 총리에게 실질적 권한이 있었으나 1983년 다시 한번 개헌이 되어 총리직을 철폐하고 대통령이 모든 권한을 갖게되었다. 1961년 공화국 수립시 여타 영 연방 국가들의 반발로 영 연방에서 탈퇴되었다가 1994년에 다시 복귀했다.

핵무기 개발과 포기

1960년대 이후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1970년대 들어서는 이웃의 앙골라, 모잠비크와 적대관계가 되자(앙골라는 나미비아 독립운동을, 모잠비크는 아프리카 민족회의를 지원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난국을 타개할 목적으로 핵무기 개발에 착수, 1980년대 말까지 총 6기의 핵무기를 개발했다.[주 1] 다만 개발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도중에도 추가 핵무기 생산계획이 대통령에 의해 취소되는 등 내부적으로 많은 논란이 있었으며, 1989년 당선된 클레르크 정권은 핵확산금지조약 가입과 핵무기 폐기를 추진, 1991년까지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보유한 모든 핵무기를 폐기했다.

국제사회의 제재

세계적으로 악명높은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으로 인해서 국제사회의 제재 및 통제를 받아왔으며 결국 유엔으로부터 1945년 가입 이래 강제축출되고 지위권마저 박탈되어서 한동안 안보리이사회에 참여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넬슨 만델라 정부가 출범하여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이 폐지되면서 유엔에 재가입되어서 복권되었고 안보리이사회에서도 다시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비정치기구인 국제 올림픽 위원회국제축구연맹으로부터도 이러한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이 여파를 주게되어서 1960년 로마 하계올림픽을 마지막으로 그 이후 대회부터 참가가 정지되었으며 1992년 바르셀로나 하계올림픽부터 참가지위를 회복하여 다시 참가하였고 월드컵에서도 아프리카 지역예선에 출전이 제한되었다가 지위를 회복하여 다시 출전하게 되었다.

정권 이양

1990년대에 들어서 국내외 여론의 압박에 못이긴 국민당정권은 인종차별정책폐기를 선언하고 1990년 상징적으로 흑인 운동가 넬슨 만델라를 석방하여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흑인계의 정치단체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로의 정권이양의 발판을 마련했다. 1994년 남아공사상 첫 보통선거가 치뤄지고 아프리카민족회의가 집권하여 첫 흑인대통령으로 넬슨 만델라가 선출됐다.

최근 상황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타보 음베키 대통령이 사임한 이후, 2009년 새로운 대통령으로 제이컵 주마가 당선되었다.[2]

정치

아프리카에서 몇 안 되는 다당제가 존재하는 민주주의 국가 중 하나이다. 의회는 상원과 하원 제도로, 모두 임기 5년의 《전국국가평의회》(90명, 상원), 《국민의회》(400명, 하원)로 구성되고, 원수가 되는 대통령은 의회의 의결로 선출된다.

2009년 5월 6일 국민의회(하원)는 아프리카 민족회의(ANC)의 제이콥 주마를 새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금액도 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입법부는 케이프타운 도시권, 행정부는 츠와나 도시권(프리토리아), 사법부는 블룸폰테인에 위치해 있다.

입법(국회)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이후 세 번의 선거가 실시되어 모두 인종차별 투쟁을 주도한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70%에 가까운 득표로 압승했다. 아프리카너와 보수에 지지 기반을 둔 《민주동맹》(DA), 콰줄루나탈 주를 기반으로 하는 《잉카타 자유당》(IFP), 한때 정권을 집권했던 국민당과 ANC의 탈당자를 중심으로 조직된 《통일민주운동》(UDM)이 계속 활동하고 있지만, 전체 의석의 70% 이상이 ANC가 차지하고 있다.

이후 UDM은 약화되어 해체되었고, 사임한 타보 음베키 전 대통령을 지지자들이 ANC에서 탈당해 《국민회의》(COPE)를 창당해 ANC에 대안 정당으로 부상하고자 하였으나 2009년 총선에서 별다를 영향을 주지 못하였다. ANC 또한 전 정권의 부패와 주마 현 대통령의 각종 스캔들로 말미암아 주요 지지 기반인 흑인들로부터 예전같은 열렬한 지지를 얻지 못하였고, 이는 곧바로 의석수 감소로 이어졌고, 개헌선인 2/3에 못 미치는 결과를 초래했다. 백인이 주요 지지 기반인 DA는 ANC와 COPE의 분열로 인한 흑인표 분산, 그리고 흑인 정권의 부패와 스캔들에 따른 ANC의 강력한 견제 세력으로 부상하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웨스턴케이프주》에서 ANC를 압도적으로 누르는 등 이전 선거에 비해 눈에 띠는 큰 성과를 얻었다. 그러나 2014년 선거에서 COPE가 참패하고 EFF당이 경제 정책을 내세워 큰 수의 의석을 확보했다.

남아공화국의 의회 구성(2014년 5월 총선 기준)
정당명 전국주평의회
(상원)
국민회의
(하원)
아프리카민족회의 (ANC) 33 249
민주동맹 (DA) 13 89
경제해방투사 (EFF) 6 25
잉카타 자유당(IFP) 0 10
기타 2 27
기타(특별의원) 36 -
90 400

행정

행정 중심지는 프리토리아이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장을 겸직하고 의회를 조직한다.

사법

1994년에 설치된 헌법재판소 외에, 대법원을 필두로 하는 세 심사 제도의 사법 제도이다. 사법부는 블룸폰테인에 위치해 있다.

경제

아르놋 발전소
케이프타운의 워터프론트, 테이블 만에 접한 항구로 쇼핑, 레스토랑, 호텔 등이 밀집

주요 산업

프리토리아 대학교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농목업이 발달하여, 남부 고원 지대에서는 옥수수가 많이 생산되고, 서부 지역에서는 이 많이 생산된다. 또한 지중해성 기후 지대에서는 밀과 함께 포도, 오렌지, 설탕 등이 산출되기도 한다. 한편 내륙의 건조한 초원 지대에서는 양을 많이 기르는데, 양모를 수출하기도 한다.

이 나라의 가장 중요한 산업은 광공업이다. 지하자원으로 , 다이아몬드, 우라늄, 백금, 망간, 크롬, 안티몬, 석탄, 철광석 등이 산출되는데, 대부분이 트란스발 주(Transvaal)에 집중되어 있다. 금은 세계 전체 생산량의 60% 정도가 산출되는데, 요하네스버그가 그 중심지다. 다이아몬드는 세계 전체 생산량의 약 20%를 차지하며, 킴벌리(Kimberley)에서 특히 많이 생산된다. 석유의 생산은 없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아프리카에서 공업이 가장 발달한 나라로 제철, 기계, 화학, 섬유, 자동차 등이 특히 발달하였다.

최근 다임러 크라이슬러사가 더반 시내에 자동차 생산 공장을 건설하였고, 메르세데스 벤츠 C 클래스의 오른쪽 핸들 차량을 생산하여 출하를 시작했다. 이 차량은 주로 일본이나 영국에 수출하고 있다. 또한 BMW, 폭스바겐닛산 자동차 등 수출 거점으로서 남아공에 공장을 두고 있다. 게다가 이 기지는 동해안의 포트엘리자베스에도 많이 존재하고 있다.

GDP 성장률은 2005년 5.1%, 2006년 5.0%으로 견조한 성장이 계속 되고 있다. JSE는 세계적인 증권거래소이다. 1인당 GDP는 2008년 시점으로 4,605 달러(MER), 10,119 달러(PPP)이다.

아파르트헤이트가 끝난 후 전력 수요가 급증했음에도 불구하고 발전소의 건설이 10년 이상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2007년 무렵부터 전력 부족이 문제가 되었다. 2008년 1월에는 남아프리카 전력공사(ESCOM)는 계획 정전을 실시하였고, 당시 호경기를 맞이하던 백금 광산의 조업이 제한되는 사태가 발생하여, 백금의 시세를 상승시켰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ESCOM는 주변 여러 나라에서 송전이나 발전소 증설을 계획하고 있지만, 전력 부족은 2015년까지는 해소되지 않을 전망이다.

지리

남아공에서 가장 높은 산맥인 드라켄즈버그 산맥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아프리카 대륙의 남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토의 대부분이 고원으로 되어 있다. 대서양인도양 두 대양에 걸친 2500킬로미터가 넘는 해안선을 가지고 있다.

오렌지 자유주와 나탈 경계에는 드라켄즈버그 산맥(최고봉 타바나 은틀레니아는 표고 3,482미터)이 있다. 케이프 주의 내륙 대지의 남쪽은 해안선과 병행해서 달리는 표고 2,000∼2,700m의 산맥이 있다. 해안 지방과 하천 유역은 농업에 적합하다. 남아프리카 최대의 오렌지 강이 국토의 중앙을 횡단하여 대서양으로 흘러들고 있으며, 그밖에 림포포 강, 발 강 등이 있다.

기후

기후대는 전체적으로 내륙 지방은 반건조 기후이지만, 지역별로 변화가 커서, 동쪽 지대는 온난 습윤 기후나미비아 부근의 칼라하리 사막으로부터 모잠비크와의 국경 부근의 아열대 기후, 남서쪽 해안 지대는 지중해성 기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남반구에 위치하고 있어 4계절이 대한민국과 반대이며, 습한 지역보다는 건조한 지역이 많다. 과도한 목장으로 인한 사막화가 진행 중이다. 남서부는 겨울에 비가 많은 지중해성 기후, 북동부는 아열대성 기후이다. 트란스발의 고저에는 겨울에 서리가 내리며 여름에는 적당한 양의 비가 내린다. 강우량은 서에서 동으로 갈수록 많아지며 여름 6개월 동안에 집중된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평균 기온(°C)[3]
도시 여름 (1월) 겨울 (7월)
최대 최소 최대 최소
블룸폰테인 31 15 17 -2
케이프타운 26 16 18 7
더반 28 21 23 11
이스트런던 26 18 21 10
조지 25 15 19 7
요하네스버그 26 15 20 4
킴벌리 33 18 19 3
움타타 27 16 21 4
무시나 34 21 25 7
넬스프루이트 29 19 23 6
피터마리츠버그 28 18 23 3
폴로콰네 28 17 20 4
포트엘리자베스 25 18 20 9
프리토리아 29 18 24 5
리차드 베이 29 21 23 12
스쿠쿠자 33 21 26 6
토호이안두 31 20 24 10
어핑턴 36 20 21 4

주민

인구밀도 지도
많은 이민자가 무지개 국가를 형성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주민 수는 약 5천만명으로 대한민국과 비슷하며, 이들 주민은 문화, 언어, 신앙 등이 저마다 달라 다양성이 넘친다. 2011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통계청(Statistics South Africa)의 인구 조사 는 응답자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다섯 가지 인종 구분 가운데 하나로 고르게 하였는데 결과는 다음과 같다.

  • 아프리카인 (Black African) 79.2%
  • 백인 (White) 8.9%
  • 컬러드 (Coloured) 8.9%
  • 인도인 또는 아시아인 (Indian or Asian) 2.5%
  • 그외 (Other/Unspecified) 0.5%

주민 구성

본래 이 지역에 살던 원주민은 반투족호텐토트 족 그리고 부시먼 족이었으나, 호텐토트 족과 부시먼 족은 반투 니그로 족과 유럽인에게 쫓겨 칼라하리 사막 주변으로 옮겨 갔고, 지금은 주로 보어 족과 영국계의 백인이 거주한다. 백인은 전체 인구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지만 정치·경제적인 실권을 쥐고 있으며, 아파르트 헤이트가 철폐되기 이전에는 흑인에 대해서는 철저한 인종 차별 정책을 사용했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인구 대부분이 스스로를 아프리카 흑인이라고 밝혔지만, 이는 문화상으로나 언어상으로나 균일한 집단이 아니다. 주요 민족은 줄루족, 코사족, 바소토족(남 소토), 바페디족(북 소토), 벤다족, 츠와나족, 총가족, 스와지족, 은데벨레족 등이다. 줄루족, 코사족, 바페디족, 벤다족 등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만 있다.

다른 집단은 거주지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이웃 나라와 겹친다. 바소토족은 레소토의 주요 민족이다. 츠와나족은 보츠와나의 다수 민족, 스와지족은 에스와티니의 다수 민족이다. 은데벨레족은 짐바브웨마테벨렐랜드에도 사는데, 거기서의 민족 명칭은 ‘마테벨레’이다. 하지만 이들은 사실 샤카의 탄압을 빗겨가기 위해 그곳으로 떠나 정착한 줄루족의 후예로 줄루어를 쓴다. 총가족은 모잠비크 남부에도 거주하는데, 거기서는 샹간족으로 알려져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중심으로 아프리카 남부에 많이 거주하는 네덜란드계 백인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백인 인구 중 60%를 차지하며 남아프리카의 실권을 잡고 있다. 이들을 보어인이라고 하며, 이들 백인은 대부분 네덜란드인, 독일인, 프랑스위그노, 영국인, 아일랜드인 등 식민 이주자의 후손이다. 언어상으로는 아프리칸스어를 사용하는 집단과 영어를 사용하는 집단으로 크게 나뉜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이민해 온 소수 집단은 다른 언어를 쓰기도 한다. 백인 인구는 낮은 출산율과 국외 이민으로 줄어들고 있다.

컬러드(Coloured, 유색인)란 명칭은 동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에서 들여온 노예, 당시 희망봉 주변에 살던 원주민인 코이산족, 원주민인 아프리카 흑인, 네덜란드인/아프리카너인영국인을 비롯한 백인, 자바인, 말레이인, 인도인, 마다가스카르인, 그 외 포르투갈인버마인을 비롯한 여러 유럽·아시아인 등 다양한 집단이 혼혈된 후손을 이르는데,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대부분 아프리칸스어를 쓴다. 코이산족이라 불리는 이들은 피부색이 옅고 키가 작다는 데서 함께 묶어서 다루는 두 집단을 함께 일컫는다. 이들은 유럽인이 ‘호텐토트’라 부른 농경인 코이코이족과 수렵 채집인 부시먼이다. 또 더 최근에 들어온 유색인 집단도 있는데, 옛 로디지아(현 짐바브웨)와 나미비아에서 들어온 유색인과 인도버마에서 인도와 버마의 독립 이후 희망봉을 찾아온 영국인-인도인, 영국인-버마인 혼혈인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시아인은 대부분 인도계이다. 상당수는 19세기에 당시 나탈이란 이름으로 알려진 동부 해안의 사탕수수 농장에 일하러 온 계약 노동자이다. 약 10만 명쯤 되는 화교도 살고 있다.

언어

남아공 언어 지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언어 (2011년)[4]
언어 사용자
줄루어
  
22.7%
코사어
  
16.0%
아프리칸스어
  
13.5%
영어
  
9.6%
북소토어
  
9.1%
츠와나어
  
8.0%
소토어
  
7.6%
총가어
  
4.5%
스와티어
  
2.5%
벤다어
  
2.4%
남은데벨레어
  
2.1%
남아공 수화
  
0.5%
아프리칸스어, 영어, 코사어가 쓰인 정부 건물.

영어를 비롯하여 북소토어, 벤다어, 소토어, 스와티어, 아프리칸스어, 남은데벨레어, 줄루어, 총가어, 츠와나어, 코사어 등 총 11개의 공용어가 있다. 공용어가 아닌 언어를 모어로 쓰는 인구는 전체 인구의 2% 이하이다.[5] 대부분의 남아프리카 공화국 사람들은 다중언어 구사자들이다. 1910년부터 1925년까지는 영어네덜란드어가 공용어였으며, 1925년에는 아프리칸스어가 공용어로 추가됐고 일상 생활에서는 사용자가 크게 줄어든 네덜란드어를 대체했다. 1984년에는 네덜란드어가 공용어에서 빠져 1994년까지는 영어아프리칸스어 두 언어가 공용어였다.[6]

1994년부터 아프리카 민족회의가 집권한 뒤로 영어가 정부에서 주요 언어로 쓰이고 있으나 남아프리카 공화국 사람들은 어떤 목적으로든 토착어 사용에 다소간 자부심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상업에서는 영어와 함께 아프리칸스어가 주로 쓰이며 두 언어를 유창하게 말하는 화자가 가장 많다.

언어학적으로 봤을 때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공용어는 두 개의 서게르만어군 언어와 아홉 개의 반투어군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반투어군 가운데 남은데벨레어줄루어, 코사어응구니어에 속하고, 북소토어소토어, 츠와나어소토츠와나어에 속하며 총가어츠와롱가어에 속한다.

언어 통계

줄루어, 코사어, 아프리칸스어 순서대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모어로써 흔히 쓰인다. 영어모어로 쓰이는 언어 가운데 네 번째로 흔한 언어이지만 대부분의 도시 지역에서 통용되며 정부와 언론에서 많이 쓰고 있다.[7]

대부분의 남아프리카 공화국 사람들은 반투어군소토츠와나어 또는 응구니어에 속하는 언어를 쓴다. 두 집단에 속하는 언어들은 대부분 서로 이해가 가능하다.

아홉 개의 토착어들은 크게 두 지역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응구니어에 속하는 언어들은 주로 남동쪽에서 쓰이며 소토츠와나어에 속하는 언어들은 주로 북쪽 내륙 지역과 보츠와나레소토에서 쓰인다. 하우텡 주는 여러 언어들이 섞인 지역으로 응구니어 사용자와 소토츠와나어 사용자, 인도유럽어족 언어 사용자가 거의 비슷해 도심 지역에서는 여러 언어가 뒤섞인 은어가 생기기도 했다.

네덜란드어에서 나온 아프리칸스어는 서쪽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언어로 약 61%의 백인들과 76%의 컬러드들이 모어로 쓰고 있다.[5] 아프리칸스어는 내륙 지역과 북쪽에서도 널리 쓰이며 농촌 지역의 흑인들이 제2언어 또는 제3, 제4언어로 쓰고 있다.

기타 주요 언어

헌법에는 명시돼 있지 않지만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쓰이는 토착어로는 파나갈로어, 로베두어, 북은데벨레어, 푸티어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로베두어북소토어의 사투리라는 주장이 많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는 유럽아프리카의 다른 지역, 인도 아대륙 등지에서 온 이민자들이 많으며, 이로 인해 다양한 외국어들이 쓰이고 있다. 그리스어, 구자라트어, 힌디어, 포르투갈어, 타밀어, 텔루구어, 우르두어, 이디시어, 이탈리아어 등은 오래 전부터 쓰였으며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쓰는 사용자들도 적은 수가 있다. 공용어가 아닌 이 언어들은 이 언어들이 많이 쓰이고 있다고 알려진 지역에서 제한적으로 반(半)공식적으로 쓰일 수 있다.

공용어가 아닌 언어들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로 사용자 수가 늘고 있는 언어는 포르투갈어앙골라모잠비크에서 온 이민자 및 난민들 사이에서 주로 쓰였다. 프랑스어프랑스어권인 중앙아프리카에서 온 이민자들 사이에서 쓰이며 역시 사용자 수가 늘고있다.

헌법 조항

남아프리카 공화국 헌법 제1장(설립 조항)과 제6장(언어)은 정부의 언어 정책의 근간이다.

1996년 12월 16일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서명한 영문 헌법에서는 언어의 이름들이 대부분 해당 언어의 이름으로 쓰였다. 세소토(Sesotho)는 소토어를 뜻하며, 이시은데벨레(isiNdebele)는 남은데벨레어를 뜻한다. 다만 북소토어를 넓은 의미의 세소토 사 레보아(Sesotho sa Leboa)가 아닌 주요 사투리인 세페디(Sepedi)로 규정한 것과 벤다어를 옳은 표기인 Tshivenḓa가 아닌 Tshivenda로 표기한 것과 관련해서는 논란이 있다.

  1. 공화국의 공용어는 세페디 (Sepedi), 세소토 (Sesotho), 세츠와나 (Setswana), 시스와티 (siSwati), 치벤다 (Tshivenda), 시총가 (Xitsonga), 아프리칸스어 (Afrikaans), 영어 (English), 이시은데벨레 (isiNdebele), 이시코사 (isiXhosa)이시줄루 (isiZulu)이다.
  2. 우리 국민들이 쓰는 토착어들의 상태와 그 사용이 역사적으로 약화됐으므로, 주들은 이 언어들의 사용을 증진시키고 상태를 개선시킬 수 있는 실용적이고도 분명한 방법들을 시행해야만 한다.
  3. (a)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는 어떤 특정한 공용어를 쓸 수 있으며 사용 빈도, 현실성, 비용, 지역의 상황과 전체적 또는 관련된 지역의 인구의 필요도와 선호도의 균형을 고려해야 한다; 다만 중앙 정부와 각 지방 정부는 적어도 두 개 이상의 공용어를 써야만 한다.
    (b) 지방 단체들은 거주민들의 사용 빈도와 선호도를 고려해야만 한다.
  4.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는 법적 기준과 기타 기준에 따라 공용어의 사용을 규제하고 감독해야만 한다. 세부 항목 조항을 벗어나지 않는 정도에서 (2), 모든 공용어들은 균등하고 공정한 대우를 받아야만 한다.
  5. 헌법에 따라 설치된 범남아프리카언어위원회(Pan South African Language Board)는
    (a) 다음 언어들의 발전과 사용을 촉진시키고 조건을 조성해야만 한다.
      (i) 모든 공용어;
      (ii) 코에어, 나마어, 코이산어족; 그리고
      (iii)수화; 그리고
    (b) 다음 언어들의 사용을 증진시키고 존중을 보장해야만 한다.
      (i) 독일어, 그리스어, 구자라트어, 힌디어, 포르투갈어, 텔루구어, 타밀어우르두어를 포함하는 남아프리카의 공동체에서 흔하게 쓰이는 모든 언어들; 그리고
      (ii) 아랍어, 히브리어, 산스크리트어와 남아프리카에서 종교적인 목적으로 쓰이는 다른 언어들
    — 남아프리카 공화국 헌법[8]

종교

종교구성 (남아프리카공화국)
기독교
  
79.8%
무종교
  
16.5%
이슬람교
  
1.5%
힌두교
  
1.2%
전통종교
  
0.3%
유대교
  
0.2%

남아공기독교 비율은 79.8%이다. 기독교가 처음 남아공에 유입하게 된 것은 1652년 네덜란드에서 로마 가톨릭의 박해를 피해 보어인(농민)이 이민해 오면서부터였고(대부분 개혁파교인), 그 후에 영국의 식민 정책과 아울러 성공회를 비롯하여 잉글랜드 감리교, 침례교, 스코틀랜드 장로교 등이 함께 들어오게 되었다. 정권을 장악한 백인은 흑인 원주민을 자신들과 차별을 두기 위하여 인종격리 정책(아파르트헤이트)을 이용하였으며, 교회조차도 백인의 흑인 지배원리에 종교적으로 힘을 실어 주는 잘못을 범하기도 했다. 그 실례로 남아공 개혁교회는 인종차별을 정당화한 잘못을 이단적인 행위 곧 기독교의 교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라고 선언하였다.

현재 남아공의 기독교 교단 대부분은 정체 혹은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는 반면 계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교단은 남아공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독립교단이다. 서양 열강의 식민정책과 아울러 함께 들어온 기독교가 남아공 전지역에 걸쳐 쉽게 정착은 하였으나, 식민정책이 끝이 나면서 반기독교 정서와 정책으로 무슬림 지역으로 변하거나, 전통 종교와 혼합된 이른바 혼합주의(Syncretism) 기독교의 형태로 바뀌고 있다.

문화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다종교 사회이고 피부색에 따라 여러 집단으로 나뉘어 있다. 아프리카인(人)과 영국인 모두 어느 한쪽으로 섞이는 것을 원하지 않아 전통의 흑인 문화는 크고 작은 여러 집단으로 형성되어 있다. 전통 흑인 문화는 도시가 아닌 지역에 여전히 많이 남아 있으며, 남성의 힘과 정신을 하나의 신으로 여기고 일부다처의 문화가 허용된다. 또한 부와 제물의 상징으로 양을 키우는 것도 문화의 한 형태이다.

스포츠

버스 퍼레이드를 하는 스프링복스, 2007 럭비 월드컵
그레엠 스미스, 남아공 크리켓 국가대표의 주장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영연방의 일원으로 럭비, 축구, 크리켓 같은 영국식 스포츠가 인기를 끈다. 올림픽에서는 1904년 세인트루이스 올림픽 때부터 참가하기 시작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백인만 참가하며 우승하기 마련이었다. 1964년부터 아파르트헤이트 문제로 7개의 대회 참가가 금지되었으며, 아파르트헤이트 정책 폐지 이후에야 참가가 허용되었다. 럭비 월드컵에서는 1995년2007년, 그리고 2019년 결승에서 영국을 꺾고 우승하였다. 월드컵 축구 대회에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부터 출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0년 6월 12일부터 7월 11일까지 아래의 도시와 경기장에서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개최하였다.

그러나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멕시코와 대등한 경기 끝에 1-1로 비겨 16강 진출을 성사시키려는 듯했으나 이어 벌어진 우루과이와의 경기에서 디에고 포를란에게만 2골을 허용한 끝에 0-3 대패를 당한데 이어 프랑스와의 경기는 2-1로 이겨 1승1무1패 승점 4점으로 멕시코와 승점이 같았으나 골 득실에서 밀려 조별 예선에서 탈락하는 불명예를 당했다.

세계 유산

남아공화국 내에는 유네스코세계유산 목록에 등록된 문화유산이 4건, 자연유산이 3개, 복합유산이 1개가 있다.

교통

철도를 비롯하여 자전거의 교통이 특히 도시지역에서 활발하며, 특히 철도는 호화열차 블루트레인으로 유명하다.

고속도로가 잘 건설 되어 있는 편이며, 대부분의 도로는 통행료가 없다. 영국, 일본 등과 같이 좌측통행이며 차량 역시 우핸들로 대한민국과는 반대이다.

행정 구역

수도인 프리토리아(Pretoria)는 내륙 고원에 위치한 도시로 연방 정부가 있다. 그리고 가장 오래 된 항구 도시인 케이프타운(Cape Town)은 교통의 중심지이며, 연방 의회가 있는 곳이다.

입법 수도는 케이프타운, 사법 수도는 블룸폰테인, 행정 수도가 프리토리아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행정구역은 9개 주로 이루어져 있다. 주 밑에 다시 수십개의 Local Municipality와 Metropolitan Municipality가 있고 그아래 City와 Town이 존재한다. Metropolitan Municipality는 8개가 있는데 요하네스버그를 중심으로 하는 City of Johannesburg Metropolitan Municipality, 케이프타운을 중심으로 하는 City of Cape Town Metropolitan Municipality, 더반을 중심으로 하는 eThekwini Metropolitan Municipality, 저미스턴(요하네스버그 서부,프리토리아 남부)을 중심으로하는 Ekurhuleni Metropolitan Municipality, 프리토리아를 중심으로하는 City of Tshwane Metropolitan Municipality, 포트엘리자베스를 중심으로하는 Nelson Mandela Bay Metropolitan Municipality, 이스트런던을 중심으로하는 Buffalo City Metropolitan Municipality, 블룸폰테인을 중심으로하는 Mangaung Metropolitan Municipality 순으로 인구가 많다.

번호 주도 면적(km²) 인구
1 웨스턴케이프 주 케이프타운 129,370 5,278,585
2 노던케이프 주 킴벌리 116,320 3,271,948
3 이스턴케이프 주 비쇼 169,580 6,527,747
4 콰줄루나탈 주 피터마리츠버그 92,100 10,259,230
5 프리스테이트 주 블룸폰테인 129,480 2,773,059
6 노스웨스트 주 마피켕 116,320 3,271,948
7 가우텡 주 요하네스버그 17,010 10,451,713
8 음푸말랑가 주 음봄벨라 79,490 3,643,435
9 림포포 주 폴로콰네 123,900 5,238,286
합계 1,219,080 48,502,063

대외 관계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한국 전쟁 때 UN군의 일원으로 참전하여 대한민국을 지원하였으며, 이후에도 친서방과 반공을 대외 정책의 기조로 삼았으므로, 대한민국의 입장을 적극 지지하였다. 그러나 이 나라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따른 국제적 여론으로 정식 수교가 무기한 보류되다가, 인종차별 정책이 폐지된 후 1992년 12월 1일 뒤늦게 수교하게 되었다. 수교 후 우호적인 관계가 유지되고 있어,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1995년 방한하여 큰 환영을 받았으며, 아프리카에서 가장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는 나라의 하나가 되었다. 한편, 한국 전쟁 때의 적이었던 북측과는 1998년 수교하였다. 2002년 월드컵 때는 남아공이 한국에, 2010년 월드컵 때는 한국이 남아공에 대표팀을 파견하였는데, 두 나라 모두 해당대회에서 B조에 편성되었다. 대구에서 열린 2011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도 참가하였다. 남아공은 한국에 영어강사로 취업할 때의 자격조건인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나라’ 7개 중의 하나이다.

논란

인종차별의 고착화와 인종차별 저항운동

백인 전용이라는 아파르트헤이트 시대의 간판
넬슨 만델라

아파르트헤이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 차별 정책을 가리키는 말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국내의 비(非)백인에 대하여 버스열차, 호텔이나 식당의 이용 등 일상생활의 여러 면에서 차별 정책을 실시하여 왔다.

1945년 이후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라고 불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은 종교적 그리고 법적으로 정당화되었다. 우선 백인 신도가 대부분인 네덜란드 개혁교회(DRC, Dutch Reformed Church)에서는 성서를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를 통한 인종차별을 정당화했는데, 이를테면 바벨탑 사건을 해석할 때 바벨탑을 쌓은 인간들이 야훼의 징벌로 흩어졌으니, 인종분리정책으로 흑인, 아시아계 등의 유색인종을 차별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기게 했던 사례가 있다. 교회 안에서도 정의(Justice)와 평등의 실천은 ‘민감한’, ‘미묘한’ 등의 단어를 통해 회피할 정도로 백인 기독교 신자는 그들이 만들어낸 인종차별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

제도적으로도 1961년 헌법 개정, 20여 개에 달하는 인종차별 법안 제정과 개정이 행해졌는데, 하나같이 흑인을 열등한 인종으로 간주하여 차별을 정당화하는 악법이었다. 이에 대해 흑인은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폭력 항쟁으로 백인의 부당한 지배와 차별에 저항했는데, 1961년 샤프빌 항쟁, 1976년 소웨토 항쟁, 1986년 인민 항쟁이 이에 해당한다. 이에 대해 백인은 흑인 항쟁의 배후에 공산주의가 있다는 공산주의자 딱지 씌우기, 경찰과 정보기관의 탄압과 종족간 분쟁 유도로 흑인의 항쟁을 잔악하고 교활하게 탄압했다.

남아공 기독교계의 인종차별 반대 투쟁

남아공을 지배하온 주류 백인사회가 네덜란드 개혁교회(Dutch Reformed Church)와 프랑스 위그노에서 출발한 개신교도들인 점을 보면 남아공 기독교계가 인종차별에 저항했다는 것은 일반론으로 받아들일 수 없으나 다음과 같은 주장도 있다. 1949년 비주류 소수 백인 성직자들이 주도한 남아프리카 교회협의회(SACC, South Africa Council of Churches) 회의에서는 ‘다인종 사회에서의 그리스도인’이라는 주제로 모든 사람은 평등하며, 교육, 직업, 선거의 기회와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남아공 교회의 인종차별 저항은 1980년대 가장 활발해졌는데, 흑인 성직자인 데스몬드 투투 성공회 주교(남아공 성공회 케이프타운 전 교구장), 백인 신학자 베이어스 노디아(Beyers Naudé), 알렌 보삭(Allan Boesak), 신학자 프랭크 치카네(현재 음베키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저항 운동을 주도하였으며, 《카이로스 문서》(Kairos Document)[주 2] , 《다마스커스 가는 길》(Road to Damascus)[주 3] 이라는 신앙고백으로 인종차별 저항조직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정계나 노동조합에서 일하는 기독교인도 인종차별 반대투쟁에 참여했으며, 진보신학자들은 대한민국민중신학처럼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해석한 남아프리카 흑인신학을 통해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의식을 보였다.

인종차별 폐지와 과거사의 청산

로벤 섬의 감옥 건물

인종차별 폐지의 배경

흑인교회의 저항을 받은 백인 지배층은 1990년 인종차별 정책을 폐지하고, 넬슨 만델라를 비롯한 흑인지도자를 석방해야 했는데, 이는 아파르트헤이트 즉 인종차별 정책이 부당하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흑인과의 협상을 통해 경제적 기득권도 계속 유지하고, 백인의 차별과 폭력에 대한 흑인의 보복을 피하려는 계산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흑인은 여러 차례에 걸친 무장항쟁을 통해 자신들을 탄압하는 백인에게 저항하였다.

과거사 청산

진실과 화해 위원회

1994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역사 최초로 흑백 연합 정부(흑인의 아프리카 민족회의와 백인의 국민당 연합)가 수립되었으며, ANC(Africa National Congress, 아프리카 민족회의)가 독자적으로 세운 귀국 망명자 위원회와 “ANC 회원이 자행한 ANC 죄수 및 구금자에 대한 만행 및 인권침해 조사위원회”에서 영향을 받은 진실과 화해 위원회(TRC) 설립이 있었다. 진실과 화해 위원회는 성공회 대주교데스몬드 투투 대주교가 의장으로 활동했으며, 가해자가 자신의 잘못을 정직하게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민사상 책임을 면제해 주는 방식으로 과거사 청산을 실시하였다. 이는 가해자의 심리적인 부담감을 덜어줌으로써 진상을 정확히 규명하려는 목적에 따른 것이었다.

진상 조사로 밝혀진 사실

그 결과 인종차별 시대에 경찰과 방위군이 국가가 위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인권이 무시되어도 된다는 국가주의 논리로 ANC 활동가, 흑인인권을 옹호하는 사람 등을 고문하거나 살해했으며, 시체는 소각하거나 암매장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또한 인종차별이라는 사회구조적인 죄의 수혜자인 백인 의사농부 등이 상처가 남지 않는 고문 방법을 알려주거나 자신의 농장을 고문 장소로 제공했으며, 경찰이나 방위군이 흑인을 ANC에 잠입시켜서 내부 분열을 조장하면 보수적인 언론흑인끼리 치고받고 싸운다며 악의적인 보도를 함으로써 인종차별을 정당화했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9]

Freedom day(자유의 날)
자유를 누리며 민주적이고 평등한 선거권을 가진 날을 기념함.

남아공의 ‘자유의 날’은 최초로 민주적인 선거가 실시된 1994년 4월 27일을 기념하는 국경일이다. 1994년, 그 날은 인종에 상관없이 모든 18세 이상의 성인들이 투표한 최초의 날이자 남아공이 46년 동안의 공식적인 억압과 차별로부터 해방된 날이기도 하다. 오늘날 남아공에서는 '자유의 날'을 다양한 방식으로 축하하며 기념하지만, 이날 속에는 많은 아픔이 숨어있다. ‘자유의 날’이 된 배경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아파르트헤이트’이다. 아파르트헤이트란 분리, 격리를 뜻하는 말로 1950년 남아공의 백인 정부가 만든 극단적인 인종차별정책을 말한다.

각주

내용주
  1. 이는 앙골라 등지의 내전에 소련이 개입함에 따라, 이를 견제할 필요가 있었던 미국이 반공주의를 견지한 남아프리카의 백인 정권의 핵개발을 묵인함으로써 가능했다는 의혹이 있다.
  2. 카이로스는 하나님의 구원사적인 시간을 일컫는 헬라어 신학 용어이다. 신학적으로 야훼께서 모세를 통해 출애굽 역사를 이루신 시간이나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신 시간, 앞으로 하나님 나라 도래를 통해 종말론적인 구원을 이루실 시간이 카이로스이다. 그외 헬라어로 “시간”을 일컫는 용어로 “크로노스”가 있는데, 이는 달력으로 알 수 있는 시간을 일컫는다.
  3. 신학적으로 다마스커스바울(사울)이 예수를 만나, 그리스도 교인이 된 장소를 일컫는다. 따라서 기독교에서 다마스커스는 시리아의 지명이 아닌 삶의 방향을 그리스도께 맞추는 회심을 일컫는다.
참조주
  1. 에티오피아 정교회 25.4%
    개신교 48.1%
  2. "남아공 새 대통령에 모틀란테"
  3. “South Africa's weather and climate”. South Africa gateway. 2017년 12월 01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 November 2017에 확인함. 
  4. CIA World Factbook
  5. Census 2011 Census in brief, Statistics South Africa, 2012, 23–25쪽
  6. Documents - Constitution - Republic of South Africa Constitution Act 110 of 1983
  7. "Tongues under threat", 이코노미스트, 2011년 1월 22일, 58쪽
  8. “Constitution of the Republic of South Africa, 1996 - Chapter 1: Founding Provisions”. 《www.gov.za》. 2017년 6월 1일에 확인함. 
  9. 《용서없이 미래없다.》/데스먼드 투투 지음/홍종락 옮김/홍성사.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