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석주
나석주 羅錫疇 | |
별명 | 일명(一名)은 마중달(馬仲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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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조선 황해도 재령군 |
사망지 | 일제 강점기 경성부 |
본관 | 나주(羅州) |
부모 | 나병헌(부), 김해 김씨 부인(모) |
배우자 | 수원 백씨 부인 |
자녀 | 슬하 2남 2녀 |
친척 | 나효수(손자), 나효복(손자) |
복무 | 대한독립군 |
복무기간 | 1917년 ~ 1926년 |
최종계급 | 대한독립군 소령 |
서훈 |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
나석주(羅錫疇, 1892년 ~ 1926년 12월 28일)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다.
생애
황해도 재령 출생이다. 국내에서 부호들을 상대로 반강제적으로 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집하여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송금하고, 평산의 경찰 주재소를 습격하여 경찰관과 면장을 살해한 뒤 중국으로 피신했다.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한 후 중국에서 하북성 한단에 있는 중국 한단 군관학교 육군 제1군사강습소의 군관단을 졸업해 한동안 중국군 장교로 중국 군대에서 복무한 경력이 있었다. 그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김구(당시 경무국장)의 경호관, 의열단에 가입하였고, 1926년 의열단의 고문이기도 했던 김구, 김창숙 등과 논의한 뒤 동양척식주식회사 등 일제의 식민지 수탈 기관의 파괴를 목적으로 중국인으로 위장한 채 국내에 밀파되었다. 그해 12월 28일 조선식산은행,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투척하고 일본 경찰과 대치하던 중에 가지고 있던 총으로 자결을 시도하다 총상을 입고 일경에 의해 병원으로 후송되어 고등계 미와 경부에게 심문을 받던 중 자신이 나석주임을 밝히고 사망했다.[1] 진남포에서 살던 나석주의 장남 나응섭은 잠적한 뒤 중국으로 망명했으나, 일경에 체포되어 다시 진남포로 압송되었다.[2][3]
사후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명동의 동양척식주식회사 자리(현 외환은행 본점)에 동상이 건립되어 있다.[4]
학력
가족 관계
- 부친 : 나병헌(羅秉獻)
- 모친 : 김해 김씨(金海 金氏)
- 아들 : 나응섭(羅應爕 ~ 일명 백운학)
- 손자 : 나효수(羅孝壽)
- 손자 : 나효복(羅孝福) - 행방불명
- 아들: 나응선(羅應善 ? ~ 1951)
- 딸: ? - 평양으로 출가
- 딸 : 나응서(羅應瑞, 1918)
평가
나석주는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졌다가 역시 일경과 대치 끝에 자결한 김상옥과 함께, 1920년대의 무장 투쟁 즉, 의열단식 항일 운동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나석주를 연기한 배우들
TV 드라마
각주
- ↑ 「경성 자살 클럽」 전봉관 저 살림
- ↑ 나석주의 장남 진남포에서 잠적 1927년 6월 18일 동아일보
- ↑ 나응섭압송 재녕경찰서로 1927년 7월 3일 동아일보
- ↑ 서영훈 (2004년 5월 31일). “[나의 이력서/서영훈] <49> 김상옥 나석주열사 기념사업”. 한국일보. 2008년 6월 2일에 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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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고리
-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이 달의 독립 운동가 상세자료 - 나석주, 1992년
- 나라사랑 광장 - 나석주
- 전봉관 (2008년 4월 1일). “[전봉관의 옛날 잡지를 보러가다 34] 나석주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탄 투척 사건”. 신동아. 544~561면. 2008년 4월 18일에 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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