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엽 (193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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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엽(金東燁)
출생1938년 10월 26일(1938-10-26)
일제 강점기 황해도 봉산군 사리원읍
(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황해북도 사리원시)
사망1997년 4월 10일(1997-04-10)(58세)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촌동
성별남성
국적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별칭빨간 장갑의 마술사
학력성균관대학교 졸업
직업야구 선수, 야구 감독
병역대한민국 해군 병장

김동엽(金東燁, 1938년 10월 26일 ~ 1997년 4월 10일)은 전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이자 대한민국야구 감독이다.

황해도 사리원에서 태어나 한국 전쟁부산으로 월남했다. 부산토성초등학교 시절부터 야구를 시작하여 해군을 거쳐 조흥은행에서 1968년까지 선수로 활동했다. 선수 생활을 마친 후 심판으로 활동하다가 1971년부터 건국대학교, 실업 팀 롯데(현 롯데 자이언츠의 전신) 등의 감독을 맡아서 특유의 카리스마 넘치는 강압적인 지도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1977년 실업 야구 롯데 감독 시절 부산에서 서울까지 선수들을 구보로 뛰게 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이후 방송계에서 입담을 과시하여 《홈런출발》등의 라디오 진행자를 맡기도 했고, 각종 어린이 대상 프로와 연예 프로에도 자주 얼굴을 비춰 국민적 인지도가 꽤 높은 야구인이었다.

1982년 KBO 리그가 출범할 때 해태 타이거즈의 초대 감독으로 부임했지만 성적 부진과 코치진과의 불화로 인해 조창수 코치에게 대행직을 넘기고 시즌 시작 한 달 만에 총감독으로 일선에서 물러났다.[1] 이후 1983년MBC 청룡의 감독으로 복귀했으나, 친정 팀 해태에 한국시리즈에서 1무 4패로 맥없이 패하여 다시 경질되었다. 1986년 또 다시 MBC 청룡의 감독에 복귀했으나 별 다른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1년 만에 경질되었다. 당시 MBC 청룡 구단 측은 선진 야구를 체득하기 위해 영입한 일본인 미즈타니 히사노부 코치에게 투수 운용에 대한 전권을 주었는데, 김동엽 감독과 사이가 극히 나빠 팀 성적에 오히려 악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빨간 장갑의 마술사'라고도 불린 그는 다혈질에 카리스마가 넘치는 감독이었다. 그리고 관중들에게 볼거리를 보여 주기 위해 심판에게 의도적으로 거친 항의를 하는 척하였다. 다만 아마추어 시절의 강압적인 지도가 프로와는 잘 맞지 않는 면이 있어 선수나 코치와 마찰이 잦았다.

감독에서 물러난 뒤에는 SBS에서 야구 해설가로도 활동하다가, 야구 선수들의 병역 문제를 언급한 설화 때문에 중도 하차하였다. 이후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가정 불화로 부인과 별거하던 중, 1997년 4월 10일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촌동의 독신자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사인은 난로의 불완전 연소에 의한 가스 중독으로 밝혀졌다. 저서로는 자전적 에피소드를 모은《그래 잘라라 잘라》가 있다.

출신학교

CF

출처

  1. 호남 야구 100년사, 남도일보 2005년 7월 12일자 기사
제1대 해태 타이거즈 감독
1982
후임
조창수 (감독 대행)
전임
유백만 (감독 대행)
제3대 MBC 청룡 감독
1983.5-시즌 종료
후임
어우홍
전임
어우홍
제5대 MBC 청룡 감독
1985.6-1987.7
후임
유백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