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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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원
金桂元
출생1923년 6월 28일(1923-06-28)(100세)
일제강점기의 기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주군
성별남성
국적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학력미국 육군참모대학교 졸업
직업군인, 정치가, 외교관
소속대통령 비서실장
종교개신교
배우자서봉선
자녀
친척김계일(아우)
김계삼(아우)
김계정(아우)
김계원
출생지 경상북도 영주군
복무 대한민국 육군
복무기간 1946년 ~ 1969년
근무 육군본부
최종계급 대한민국 육군 대장
지휘 육군참모총장
주요 참전 한국 전쟁
서훈

김계원(金桂元, 1923년 6월 28일 ~ )은 대한민국군인, 정치가, 외교관이다. 경상북도 영주 출생이며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1946년 군사영어학교 1기로 육군 소위 임관하였으며, 1969년 육군 대장으로 예편하였다. 육군참모총장중앙정보부장을 맡았다. 그 후 국회의원 출마를 거부하고 주자유중화민국 대사를 지냈고(1971년 2월~ 1978년 11월) [1][2] 1978년에는 대통령 비서실장이 되었는데 그 직위에서 재직하던 중 1979년 10.26 사건에 관련되어 육군 보안사령부로 끌려가서 고문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군법회의재판에 회부되어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중요임무종사미수죄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무기징역형으로 형량이 감형되었고, 1982년 5월 형집행정지로 석방된 후 1988년 특별사면복권되었다. 이후 정치에서 손을 뗐다.

가족 관계

학력

기타

12.12 이후 김계원고등군법회의에서 내란의 죄 대신 단순살인죄가 적용되어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그는 88년 말 예비역 대장 계급이 복권되는 등 완전한 복권이 이뤄졌으나 연금지급신청서류 제출을 1988년 7월 14일에 하게 됨으로써, '국가에 대한 재산권 행사기간(5년)'의 시효를 넘겼다. 때문에 연금은 이후 한푼도 지급받지 못했다.[3]

김계원을 연기한 배우들

주석

  1. “駐中國 金桂元씨”. 매일경제신문. 1면. 정부는 9일하오 국무회의에서 공석중인 자유중국주재대사에 金桂元(전중앙정보부장)씨를, ...임명하기로 의결했다. 
  2. 외교통상부. 《한국 외교 60년》 (PDF). 523쪽. 
  3. 정병진, 《실록 청와대 궁정동 총소리》 (한국일보사, 1992) 269페이지
전임
김용배
제18대 육군참모총장
1966년 9월 2일 ~ 1969년 8월 31일
후임
서종철
전임
김형욱
제5대 중앙정보부장
1969년 10월 21일 ~ 1970년 12월 20일
후임
이후락
전임
김신
제7대 주 중화민국 대사
1971년 3월 ~ 1978년 11월
후임
옥만호
전임
김정렴
제5대 대통령비서실장
1978년 12월 22일 ~ 1979년 10월 30일
후임
최광수
(6대 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