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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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평부원군 기자헌(德平府院君 奇自獻, 1562년 ~ 1624년)은 조선시대 중기, 후기의 문신, 정치인이다. 사과(司果) 기응세(奇應世)의 아들로, 선조의 백형 하원군의 사위이다. 초명은 기자정으로 자는 사정(士靖), 호는 만전(晩全), 본관은 행주(幸州)이다.

1590년(선조 23년) 과거 급제 후 호조참판, 사헌부대사헌, 의정부우의정과 좌의정을 거쳐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영의정, 영중추부사에 이르렀다. 동인 강경파, 대북 온건파 문신이다. 처음 당색은 동인이었으나 정철의 처벌을 놓고 당이 나뉠 때는 강경론을 지지하여 북인(北人)이 되었고, 북인이 다시 대북과 소북으로 나뉠 때는 대북(大北)에 가담했다. 대북 소속이었음에도 당론과는 생각을 달리하여 인목대비 폐모론에 반대하여 불이익을 받았으나 인조 반정 때 반정에 불응했다 하여 수감된 뒤 이괄의 난에 협조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전격 처형당하였다.

생애

초기 활동

1582년 성균관에 입학하여 유생이 되고 동인으로 생활하다 1589년(선조 27) 정여립의 옥사 때 2천 여 명의 동인 인사를 숙청한 위관 송강 정철에게 반감을 갖고, 정철의 처벌 문제를 놓고 당이 나뉠 때는 강경론을 지지하여 이산해, 우성전 등과 북인이 되었다.

정치 활동

광해군 즉위를 지지

1590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정언을 거쳐 1597년 호조참판으로 진하사에 임명되어 명나라에 다녀오고 1600년 부제학에 승진되었다.

1604년 사헌부대사헌에 발탁되고 거듭 승진해 우의정좌의정으로 승진했으며 이때 소북유영경 등이 영창대군[1]을 앞세워 광해군의 즉위를 저지하려 하자 그는 광해군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선조가 광해군을 폐하고 영창대군을 세자로 삼으려 하자 이를 끝까지 반대하여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게 했다.

광해군 시절

광해군 때 집권 대북에 속해 있었으나 1611년 대북파의 전횡이 지나치다고 하여 사직했다가 중추부판사에 전임되었다.

1614년 영의정이 되었고 1617년 폐모론이 일어나자 그 불가함을 극간으로 알리다가 문외출송되었다. 1620년 광해군의 특지로 덕평부원군(德平府院君)에 봉해지고 중추부영사가 되었으나 사절했다. 인목대비의 폐위 때 당론과 달리 적극 반대한 죄로, 관직을 삭탈당하고 함경북도 길주로 유배되었다. 이 때문에 인조반정이 성공한 이후 대북이면서도 살아남았다.

1623년 인조반정을 모의할 때 김유이귀 등이 의사로 타진해 오자 신하로서 왕을 폐할 수 없다하여 거절하였다. 그의 이러한 면모는 1506년 중종반정 당시 박원종의 거사 제안을 거절했다가 수각교에서 격살당한 충신 신수근의 경우와 유사하다.

인조 반정과 사형

1623년 인조반정이 성공하자 남인 이원익 등의 추천으로 부름을 받았으나, 그는 폐주 광해군을 모셨던 사람으로서 옛 주인을 배신할 수 없다며 사양하고 물러났다. 그러나 인조는 그가 다른 마음을 먹고 있다고 의심하고 혐의를 입증할 만한 물증 없이 그를 의금부 감옥에 가두었다.

인조가 구신(舊臣)을 부를 때 응하지 않은 혐의로 옥에 갇혀 있던 중 이괄의 난이 일어나 한성이 점령될 위기에 처하자 이괄과 내통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집권 서인에 의해 48명의 정치범과 함께 능지처참되었다. 이때 일족들 역시 모두 사형에 처해졌다. 이후에 이원익, 이귀 등의 상소로 신원, 복구되었다.

기타

그의 사촌 형제 기익헌(奇益獻)이 이괄의 난 때 이괄에게 협력하였으므로 그의 가족에게도 화가 미쳤다.

가족관계

  • 증조부 : 기준(奇遵)
  • 증조모 : 윤금손의 딸
    • 할아버지 : 기대항(奇大恒)
      • 아버지 : 기응세(奇應世)
      • 어머니 : 임백령의 딸
    • 장조부 : 덕흥대원군
    • 장조모 : 하동부대부인 정씨
      • 장인 : 하원군
      • 장모 : 남양군부인 홍씨
        • 부인 : 부부인 전주 이씨 이희령(府夫人 全州李氏 李稀齡, 1563년 - ?년) - 선조의 형 하원군의 장녀
          • 장남 : 기준격(奇俊格, 1594년 - 1624년)
          • 차남 : 기순격(奇順格)
          • 삼남 : 기신격(奇愼格)
          • 사남 : 기민격(奇敏格)
          • 장녀 : 이지선(李志宣)에게 출가.
        • 동생: 기윤헌(奇允獻, ? - 1624년, 형 기자헌 등과 함께 살해당함)
          • 조카 : 기수실(奇秀實)
        • 동생: 기통헌(奇通獻)

주석

  1. 영창대군은 선조의 유일한 적자였다.

연관 항목

참고 문헌

  • 선조실록
  • 광해군일기
  • 인조실록
  • 대동야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