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클레멘스 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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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멘스 6세
전임자베네딕토 12세
후임자인노첸시오 6세

교황 클레멘스 6세(라틴어: Clemens PP. VI, 이탈리아어: Papa Clemente VI)는 제198대 교황(재위: 1342년 5월 7일 ~ 1352년 12월 6일)이다. 세속명은 피에르 로제(프랑스어: Pierre Roger)이다.

생애

1291년 프랑스의 코레주 출신으로 일찍이 베네딕토회에 입회하여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페캉과 셰즈디외의 아바스가 되었다. 1328년 아라스의 주교, 1329년에 상의 대주교, 1330년 루앙의 대주교, 1338년 추기경이 되었고 학식과 언변, 좋은 품성과 외교적 수완이 뛰어나 프랑스의 필리프 6세교황 요한 22세의 인정을 받았다. 교황 베네딕토 12세의 후임자로 선출되어 1342년 5월 19일 아비뇽에서 대관식을 거행하였다.

재위 중 교회는 현저하게 중앙집권화되었다. 교황은 1344년 칙서를 발표하여 모든 교회와 공직자들의 성직록은 교황청의 성직록에 속한다고 지시하였다. 주교들이 여기에 반대하였으나 아무 일도 없었고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3세1345년 외국인들이 관리하는 모든 성직록을 탈취함으로써 그 칙서에 보복하였다. 필리프 6세도 에드워드 3세의 방법을 취하자 클레멘스 6세는 추기경들과 교횡청의 직원들 및 교황의 가족에게 속한 성직록은 예외로 하였다. 아라곤 왕국에서는 성직록은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교회 관할권과 죽은 주교들의 영지 점유로 인해 약간의 갈등이 있었다. 정치 무대에 있어서 마요르카 왕국은 클레멘스 6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왕국으로 통일되었다. 클레멘스 6세는 극단적인 프란체스코회를 반대하였다. 그는 1348년 아비뇽을 여왕 지오반나로부터 사들이고 프랑스인 추기경들을 대거 임명하였으며 낭비와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여 좋은 평판을 얻지 못하였다.

외교적인 수완에 뛰어난 클레멘스 6세도 백년전쟁을 종식시키지는 못하였다. 이와 비슷하게 로마에서는 콜라 디 리엔초가 교황령의 민중들을 선동하여 혁명을 일으켜 스스로 호민관(護民官)이 되어 공화제를 실시하자 교황의 실망이 컸다.

전임
베네딕토 12세
제198대 교황
1342년 5월 7일 ~ 1352년 12월 6일
후임
인노첸시오 6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