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빅토르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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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3세
전임자그레고리오 7세
후임자우르바노 2세

교황 빅토르 3세(라틴어: Victor PP. III, 이탈리아어: Papa Vittore III)는 제158대 교황(재위: 1086년 5월 28일 - 1087년 9월 16일)이다. 세속명은 다우페리우스(Dauferius)이다.

생애

1027년 이탈리아 베네벤토의 유력 가문 롬바르드에서 출생하였다. 가문의 뜻을 거스르고 수도자가 되기를 원해 1047년 살레르노 근처 라카바 수도원에 입회하였으나 가족들의 반대로 베베벤토의 성 소피아 수도원에 가서 데시데리우스(Desiderius)라는 수도명을 받고 몬테카시노에서 수도 생활을 하던 중 1058년 4월 19일 로렌의 프레데리크를 이어 아바스가 되었다.

1082년 하인리히 4세 황제를 지지하여 교황 그레고리오 7세의 진노를 샀으나 그레고리오 7세가 1084년 로마를 떠나 몬테카시노에 피신하자 도와주었고 그레고리오 7세의 선종 때에도 그 자리에 있었다. 약 1년간 교황좌가 공석이었을 때 교황으로 선출되어 유화적이었던 교황 빅토르 2세를 본받아 빅토르 3세로 명명하였다.

그러나 로마 시민들의 반발로 몬테카시노로 되돌아갔다. 1087년 3월 카푸아에서 소집된 교회회의에서 인정을 받아 그 해 5월 9일 로마로 입성하였다. 그 해 8월 베네벤토에서 교회회의를 소집하여 대립 교황과 리옹의 대주교 위그를 파문하였다. 평신도 서임 문제에 있어서 빅토르 3세는 전임 교황의 정책을 이어받았다. 빅토르 3세가 제창한 십자군아프리카의 사라센인들과 싸워 튀니지의 메히디아를 점령하였다.

빅토르 3세는 중병에 걸려 몬테카시노로 돌아가 선종하였다. 1887년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복자로 시복되었다.

전임
그레고리오 7세
제158대 교황
1086년 5월 28일 - 1087년 9월 16일
후임
우르바노 2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