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바오로 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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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 4세
전임자마르첼로 2세
후임자비오 4세

교황 바오로 4세(라틴어: Paulus PP. IV, 이탈리아어: Papa Paolo IV)는 제223대 교황(재위: 1555년 5월 23일 ~ 1559년 8월 18일)이다. 본명은 조반니 피에트로 카라파(이탈리아어: Giovanni Pietro Carafa)이다. 기독교 역사에서 반종교 개혁 시기의 교황 가운데 가장 무서운 정치를 펼쳤다. 중세기적 신정정치를 강요하려고 시도하였다가 비참하게 실패하고 만다.

생애

1476년 6월 28일, 이탈리아 나폴리의 카라파 가문 출신으로 산탄젤로아스칼라에서 출생하였다. 교육은 주로 삼촌인 올리비에로 카라파 추기경에게 받았다. 그는 인문학에 대단히 뛰어났으므로 에라스무스도 젊은 그와 교류하면서 히브리어그리스어로 된 성서라틴어로 번역하는 데 조수로 쓰기도 하였다.

1555년 교황 마르첼로 2세가 선종하자 교황으로 선출되어 바오로 4세로 명명하였다.

바오로 4세는 개혁가로서 학식 있고 유능한 인재들을 대거 추기경으로 발탁하여 교회 쇄신에 힘썼다. 성직 매매와 족벌주의를 근절하려고 노력하였고 주교들이 자기 교구 안에서만 지내도록 지시하였으며 로마에서 유랑하는 수도자들을 체포하도록 명령하였다. 또한 외국 세력, 특히 에스파냐 세력을 이탈리아에서 몰아내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당시 유럽에서 개신교의 교세가 점점 더 확장되어가자 로마 가톨릭 자체 내의 정화 운동을 더욱 강도 높게 수행해 나갔다. 그는 사람이든 사물이든 교회를 저해하는 어떠한 것도 용납할 수 없다는 칙령을 발표하고, 종교 재판을 강화시켜 전임 교황들보다 더 엄하게 다루었다. 금서 목록을 강화하였으나 이단북유럽에 확산되고 있었고 어떤 지역에서는 정치적인 이유와 맞물려 이단이 환영받기도 하였다. 성급하고 남을 쉽게 믿었던 바오로 4세는 모든 비난, 심지어 가장 터무니없는 비난에까지 기꺼이 믿어버렸다. 이단 혐의를 받은 자는 무조건 교회의 적으로 선언되었다. 형벌은 무조건 사형이었다. 특히 이단으로 선고된 자들은 대개 화형에 처해졌다. 그것도 부족하여 교회의 모든 기혼 가수들을 몰아내고 독신주의를 강화하는 조치를 내렸다. 이를 통해 그는 검사성성(현재의 신앙교리성)을 통해 이탈리아 안에 있는 개신교를 근절시키고, 결과적으로는 교황이 다시금 신앙의 궁극적인 권위자임을 내세워지기를 바랐다.

바오로 4세는 중세기적 사고 방식으로 교황직을 수행하려 했으나 16세기의 정치적인 상황은 그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559년 8월 18일, 바오로 4세가 선종하자 로마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 바오로 4세의 동상을 파괴하고 종교 재판의 심장부인 검사성성 청사에 테러를 일으키는 소요가 일어났다.

전임
마르첼로 2세
제223대 교황
1555년 5월 23일 - 1559년 8월 18일
후임
비오 4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