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카쿠 천황
고카쿠 천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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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제119대 천황 | |
재위 | 1780년 1월 1일 ~ 1817년 5월 7일 |
전임 | 고모모조노 천황 |
후임 | 닌코 천황 |
이름 | |
휘 | 모로히토(師仁) |
이칭 | 사치노미야(祐宮) |
묘호 | 노치노츠키노와능 (後月輪陵) |
신상정보 | |
출생일 | 1771년 9월 23일 |
사망일 | 1840년 12월 11일 |
부친 | 간인노미야 스케히토 친왕 |
모친 | 뇨고 오에 이와시로 |
배우자 | 요시코 내친왕 |
고카쿠 천황(틀:Ja-y, 광격 천황, 1771년~1817년 3월 22일)은 제119대 일본 천황이다. 그는 1780년에서 1817년까지 왕위에 있었다.
휘(諱)는 처음에는 모로히토(師仁)였고, 후에 도모히토(兼仁)로 고쳤다. 어릴적 명칭은 사치노미야(祐宮)였다.
그는 간인노미야 스케히토 친왕(閑院宮典仁親王)의 6번째 아들로 히가시야마 천황의 증손이다. 어머니는 오에 이와시로(大江磐代)이다. 안에이 8년 11월 8일(1779년 12월 15일)에 위독한 상태였던 8촌 삼종형 고모모조노 천황의 후계자가 되어 황태자로 정해졌다. (실제로는 고모모조노 천황은 이미 붕어한 상태였고, 황위가 공석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붕어를 발표하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1779년부터 1817년까지 재위하는 동안 1779년부터 1786년까지 도쿠가와 이에하루가 섭정하였고 1786년부터 1813년까지 고사쿠라마치 상왕이 섭정하였으며 1813년부터 1817년까지 도쿠가와 이에나리가 대리청정하였다.
왕실
- 황후 : 요시코 내친왕(欣子内親王) - 고모모조노 천황의 황녀
- 전시(典侍): 하무로 요리코(葉室頼子, 1773년 ~ 1846년) - 하무로 요리히로의 딸
- 전시: 가주지 다다코(勧修寺婧子) - 가주지 쓰네하야의 딸
- 전시: 다카노 오사코(高野正子)
- 제6황자: 나카노미야(猗宮)
- 아네코지 사토코(姉小路聡子)
- 제5황녀: 쓰네노미야 에이준 여왕(倫宮永潤女王)
- 제8황녀: 쓰루노미야 쇼세이 여왕(媛宮聖清女王)
- 제8황자: 가타노미야(嘉糯宮)
- 장시(掌侍): 히가시보조 가즈코(東坊城和子)
- 제5황자: 가쓰라노미야 다케히토 친왕(桂宮盛仁親王)
- 제3황녀: 레이묘신인노미야(霊妙心院宮)
- 장시: 도미노코지 데루코(富小路明子)
- 장시: 나가하시노 쓰보네(長橋局)
- 생모 미상
일생
간인노미야가의 막내 황자로서 원래 도모히토 친왕이 슈고인 사에서 사제로 들어가는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1779년 아들없이 죽어가던 고모모조노 천황이 임종시에 서둘러서 그를 양자로 채택하였다.
고카쿠는 매우 재능이 있었고 학문에 열의를 지녔으며 이와시미즈 신궁과 가모 신궁에서의 축제를 부활하여 황궁 을 둘러싼 행사를 부활하려고 열심히 일하였다. 바쿠후는 그의 아버지에게 태상천황(다이조 덴노, 太上天皇)이라는 직위를 주었다. 유전적으로 고카쿠는 현재 왕통의 창건자이다. 고카쿠는 현재 군주 아키히토의 시조이다.
이 기간동안의 황제의 주치의중의 일인 다치나나 난케이(미야가와 슌키,이와노카미)는 황제의 주치의로 임명되기전에 5년간 여행하였다. 고카구의 치세동안 황궁은 덴메이 기근(1782-1788)의 시기에 도쿠가와 막부에 구제 프로그램을 제안하여 그 권위의 약간을 다시 주장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리하여 북부의 러시아와의 협상에 대한 정보를 받았다.
- 1781년 (덴메이 1년): 새로운 연호 덴메이 (새벽을 의미)가 만들어져서 새로운 천황의 대관을 표시하였다. 이전의 시대는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안에이 11년 4월 2일 시작되었다.
- 1782년 (덴메이 2): 위대한 덴메이 기근이 시작한다.
- 1787년 (덴메이 7): 구쓰키 마사쓰나는 《서양전보(西洋錢譜)》를 출판하여, 유럽과 식민지의 통화를 소개하였다.
- 1788년 (덴메이 88): 미야코의 대화재. 도시가 불탔다. 그것은 덴메이 8년 1월 29일(양력3월 6일) 세벽 3시에 시작되었다. 그리고 3월 8일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고 11일 큰비로 진화되었다. 천황은 달아나고 황궁은 파괴되었다. 새 궁이 완성될 때까지 다른 재건이 허락되지 않았다. 이화제는 주요한 사건으로 고려되었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VOC에 따르면 사람들은 하늘의 재앙으로 고려하였다.
1817년 고카쿠는 그의 아들 닌코 천황에게 양위하였다. 고카쿠의 치세 이전 두 세기 동안 대부분의 천황은 어려서 죽었거나 양위를 강요받았다. 고카구는 1586년 오기마치 천황의 양위 이후로 40세가 지나도록 황좌에 남은 첫 천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