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하르트 슈뢰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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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하르트 슈뢰더
Gerhard Schröder
독일제7대 총리
임기 1998년 10월 27일~2005년 11월 22일
대통령 로만 헤어초크 (1998-1999)
요하네스 라우 (1999-2004)
호르스트 쾰러 (2004-2005)
전임: 헬무트 콜(제6대)
후임: 앙겔라 메르켈(제8대)

신상정보
출생일 1944년 4월 7일(1944-04-07)(79세)
출생지 독일의 기 독일 모젠베르크 군
정당 독일 사회민주당
배우자 도리스 슈뢰더 쾨프
종교 독일 개신교회

게르하르트 프리츠 쿠르트 슈뢰더(Gerhard Fritz Kurt Schröder, 1944년 4월 7일 -)는 독일정치인이다. 제7대 독일연방공화국총리(통일 독일제국부터는 제33대)로, 역사상 가장 개혁(진보)적일 것으로 추측되었으나, 사실상 신중도 노선을 걸으면서 독일의 전통적 사회민주적 복지체계의 근간을 흔들었던 사민당·녹색당 연정을 이끌었다.

생애

니더작센 주의 모젠베르크에서 태어났다. 14세 때 학교를 중퇴하고 17세부터 견습생으로 일하면서 야간학교를 다녔다. 대입자격시험을 통과해 괴팅겐 대학교에서 법학 학위를 받았으며 1976년 변호사 자격증을 따내고 하노버에서 변호사 개업을 시작하였다. 과격한 마르크스주의자를 거쳐 독일 중도좌파의 희망으로 떠오른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1963년 독일 사회민주당(SPD)에 입당한 후, 전통적 좌파이념에 몰두했으며, 정열적인 활동력과 정연한 논리, 탁월한 언변으로 78년에는 사민당 청년조직인 '젊은 사회주의자'의 의장을 맡았다. 1980년 연방하원 의원, 1986년 니더작센주의회 SPD 원내의장, 1990년 주총리를 거치면서 이념적 편향에서 탈피해 SPD내 온건파의 지도자로 성장했다. 1998년 총선에서 현직 총리 헬무트 콜을 꺾고 총리가 되었다. 선거운동 기간 '새로운 중도노선', '좌파 속의 우파' 등을 외쳐 '제3의 길'을 역설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2002년에서도 재선에 성공한다.

업적

총리가 된 후, 독일에 넘처가는 실업률을 줄이고, 에너지 제품의 원자력 사용을 한정시키며 구 동독 지역의 생활 수준을 높이는 데 힘을 기울였다. 또한 유럽에서 독일의 역할을 다시 밝히고, 러시아와의 강한 관계를 개선시켰다.

슈뢰더 정부는 외국인 부모에게 태어난 어린이들을 이중 국적을 취하고 성인이 될 무렵에 그들이 원하는 국적을 선택하도록 시민권에 독일인의 법률을 자유화하였다. 또한 코소보아프가니스탄에 독일 군인들을 배치하였다.

2002년에 재선되었으나, 경제가 악화되면서 2005년 선거에서 기독교 민주당에게 패하여 물러났다. 적-녹 연정 시기에 기존의 복지제도를 대체하며 들어선 실업부조(Hartz IV) 제도나 민영화정책, 해고를 더 자유롭게 하는 신자유주의적 고용정책 등은 실업자 대신 워킹 푸어를 양산한다는 비판을 받았으며, 확장적인 국방정책에 대한 비판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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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헬무트 콜
독일연방공화국 총리
1998년 ~ 2005년
후임
앙겔라 메르켈
전임
토니 블레어
G8 의장
1999년
후임
오부치 게이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