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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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S.
(Sea, Eugene, Shoo)
기본 정보
국가 대한민국 대한민국
출신 지역 대한민국 대한민국,
일본 일본,
미국 미국
장르 , 댄스, R&B
활동 시기 1997년 ~ 2002년
소속사 SM 엔터테인먼트
웹사이트 S.E.S. 공식사이트
이전 구성원
바다
유진
< 대표곡 >
I'm Your Girl 1997년
Oh, My Love 1998년
Dreams Come True
너를 사랑해 1999년
Love
Twilight Zone
샤랄라
감싸 안으며 2000년
Be Natural 2001년
꿈을 모아서
U 2002년
Just a Feeling(Remix.Ver)
달리기
S.ll.S.

S.E.S.(에스이에스: Sea, Eugene, Shoo의 약자, 1997년 11월 ~ 2002년 12월)는 대한민국의 3인조 여성 아이돌 여성 그룹이다. 꽤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걸그룹의 모델로 기억되는 S.E.S.는 '이미지만 아니라 음악까지 인정할 수 있는 최초의 아이돌'[1] 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섹시함을 강조하지 않고도 성숙함을 이끌어낸 〈Love〉와 재즈적인 사운드를 바탕으로 멤버들의 파트를 불규칙하게 전개, 팝 안에 재즈를 품은 〈Be Natural〉은 걸그룹 노래의 레전드[2] 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후 몇 세대의 아이돌을 거치는 동안 대한민국 가요계에는 수많은 걸 그룹이 탄생했지만 그 모든 출발점에는 S.E.S.가 있다. 이들은 훗날 등장한 걸 그룹들이 나아가는 방향의 모델이 되었다. 멤버들의 성장과 더불어 음악도 함께 성숙해지는 모습으로 대중들의 기대를 충족시킨 S.E.S.는 대한민국 걸 그룹 시대의 화려한 시작을 알렸다.[3]

이전 구성원[편집]

이름 소개
바다
유진
  • 본명 : 김유진 (Kim Yu-Jin)
  • 생년월일 : 1981년 3월 3일(1981-03-03) (34세)
  • 출생지 : 미국 미국 워싱턴
  • 학력 :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중퇴
  • 포지션 : 서브보컬
  • 종교 : 개신교
  • 본명 : 유수영 (Yoo Soo-Young)
    (일본명: 쿠니미츠 슈 Kunimitsu Shoo, 일본어: 邦光 洙 (くにみつ しゆ))
  • 생년월일 : 1981년 10월 23일(1981-10-23) (33세)
  • 출생지 : 일본 일본 가나가와 현 요코하마 시
  • 학력 : 켄트외국인학교
  • 포지션 : 서브보컬
  • 종교 : 불교

한국 활동[편집]

결성 배경[편집]

현재의 걸그룹 판도와는 전혀 딴판이나,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의 걸그룹 시장은 사실상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위시한 남성 가수들의 인기가 압도적인데 반해, 여자 가수가 히트곡을 내는 일 자체가 그리 많지 않았고, 박미경이나 강수지, 하수빈, 김완선 등 일부 여성 솔로가수가 커리어를 유지하거나, 룰라투투 등 혼성 그룹의 멤버 정도가 주목을 받는 수준이었다. 특히 1990년대 초반까지는 여성 그룹의 존재 자체가 드물었고, 나왔다고 해도 우정의 무대에나 얼굴 몇번 비추고 반짝 인기를 누리다 사라져갔을 뿐 국민적인 인기를 끌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당시 여성 그룹, 특히 여성 아이돌 그룹 쪽의 시장은 대한민국 음반 기획자들이나 레코드사들에겐 미지의 땅과도 같았다. 영국의 스파이스 걸스, 일본의 스피드, 미국의 TLC와 같은 그룹들이 수백 수천만장을 팔아치우며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며 많은 제작사들이 의욕적으로 여성 그룹을 기획하고 도전했지만, 결과는 모두 실패로 끝났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레이블 반도음반에서 내놓았던 걸그룹 애플, 일본식 아이돌을 표방하며 해외 진출까지 시도했던 4인조 SOS, 한국의 TLC를 꿈꿨던 에코, 삼성뮤직의 후원아래 홍콩에서 데뷔했던 이뉴, 여성들의 대변자를 자처했던 베이비복스 등 많은 그룹들이 등장했으나 만족스러운 성과를 낸 팀은 단 한팀도 없었다. 당시만 해도 '걸그룹' 혹은 '아이돌' 팬덤 문화가 무르익지 않았던 시기였고, 남성·대형 가수 위주의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던 시장 상황은 여성 그룹이 가져갈 수 있는 파이 자체를 크게 제한해 버린 셈이었다.

그러던 중 서태지와 아이들로 촉발된 팬덤문화의 탄생과 이를 바탕으로 한 H.O.T.의 폭발적인 성공은 아이돌 시장을 확장시키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특히 그동안 성공한 적이 없는 소녀 아이돌에 대한 기대를 잠재적으로 심는 역할까지 담당했고, 표면적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이제는 소녀 아이돌이 나올 때라는 공감대가 은연중에 생겼다. 누구도 개척하지 못한 척박한 영역이었음에도 이건 나오면 무조건 뜬다는 분위기가 나오기 전부터 형성이 됐고, 실제로 뜰 수밖에 없게끔 만들어진 존재가 나왔는데 그게 바로 S.E.S.였다. 그리고 이는 이후 촉발된 걸그룹 전성시대의 태동이었다.

결성 과정[편집]

당시 현진영유영진을 발굴하고 H.O.T.를 데뷔시키며 선견지명을 과시했던 SM의 이수만은 여성 아이돌 그룹 시장의 잠재성을 인식하고 1996년 가을 무렵부터 걸그룹 프로젝트를 기획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SM은 서두르지 않았다. 앞선 수많은 여성 그룹들의 선례를 보면서, 여학생 팬들이 확보되어있는 남자 그룹들과는 달리 맨몸으로 부닥쳐야 하는 여성 그룹은 조금이라도 어설프게 보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던 것이다. 여성 그룹을 기획하면서 2년동안 자그마치 1만명이 넘는 소녀들을 오디션했다는 사실이 SM의 신중했던 준비과정을 말해준다. 오랜 오디션 끝에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3명의 소녀들이 선발되었다. 안양 예고 출신의 최성희와 미국 괌에서 살다 온 김유진, 재일교포 출신 유수영. 가창력과 외모, 춤실력은 물론이고 출신이나 나이, 외국어 구사 능력까지 고려된 결과였다. 애초부터 S.E.S.는 한국과 중국, 일본을 아우르는 범아시아적 여성 그룹을 목표로 기획되었기 때문에 한국어권, 영어권, 일본어권뿐만 아니라 중국어권에서 자란 소녀를 포함한 4인조 그룹으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중국어권 여학생이 개인적인 사정을 이유로 계약을 포기하면서 최종적으로 3인 체제로 출범하게 된다. 세 사람에겐 각각 바다, 유진, 라는 이름이 주어졌고, 각자의 이름 앞자를 따서 S.E.S.라는 팀명이 정해졌다.

바다는 안양예고 재학 시절 교내 축제무대에 선 것을 계기로 이수만에 의해 발탁되었다.[4] 원래 바다는 뮤지컬 배우를 꿈꿨으나 아버지의 병환으로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대학 진학이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데, 이수만이 대학 학비 전액을 지원해 주면서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가수 준비를 하게 됐다.[5] 당시 바다는 SM 오디션에서 장혜진의 〈내게로〉를 불러 합격했는데, 이러한 인연으로 자신의 솔로 3집 앨범 《Made In Sea》에 〈내게로〉를 리메이크해서 싣기도 했다.[6] 참고로 바다는 데뷔 전 김건모, 신승훈을 배출한 덕윤산업의 오디션을 봤으나 계약까지 성사되지는 않고 가수 홍경민과 함께 관리 대상으로 낙점받았다고 한다.[7]

유진H.O.T.의 영상집 촬영 때문에 괌에 갔던 캐스팅 디렉터 눈에 띄어 발탁되었다. 당시 유진을 본 H.O.T. 매니저가 시내 관광을 할 계획인데 통역 부탁한다는 이유로 유진의 연락처를 받아갔는데, 이후 집에 가는 유진을 발견한 이수만이 유진의 연락처를 받아가면서 이중으로 캐스팅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8] 당시 캐스팅 디렉터였던 김수현은 개인적으로 관리하던 이효리성유리를 S.E.S.에 넣으려고 했으나 한국(바다), 일본(), 미국(유진) 3개국 출신 컨셉이 낫다는 SM의 의견에 따라 불발되었다.[9]

god손호영, 데니안과 함께 혼성 그룹을 준비있다가 잠실 롯데월드 지하상가에서 길거리 캐스팅이 되면서[10] 둘을 남겨두고 먼저 가수로 데뷔하게 된다.[11] 가 오디션에서 부른 곡은 김건모의 〈아름다운 이별〉이라고.

이후 온몸에 피멍자국이 생기고[12] 속옷을 짜면 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13] 트레이닝을 받고, 자다 깼을 때 노래를 중간부터 틀어도 바로 춤추고 노래할 수 있을 만큼 연습을 한 후에야 1997년 11월 〈I'm Your Girl〉로 데뷔하게 된다.

  • 데뷔 전 연습생 시절 S.E.S. 멤버들이 자체적으로 부르던 그룹명은 멜로즈였다. 이러한 이유로 바다의 백업댄서팀 이름도 멜로즈.
  • 당시 S.E.S. 후보였던 연습생은 총 8명으로, 바다가 먼저 리드 보컬로 정해지고 나서 유진가 서브 보컬로 정해졌다. S.E.S.의 라이벌 그룹이었던 핑클이효리도 그 중 한 명.
  • S.E.S. 멤버가 될 뻔했던 중국어권 소녀는 5인조 여성그룹 티티마 출신의 소이.[14]
  • 연습생 시절 힘든 연습량을 감당하지 못한 가 잠적한 일이 있었는데, 온몸에 멍이 들 정도로 고된 연습을 하는 것을 알게 된 의 부모님이 반대를 하게 되면서 연습실을 못나가기도 했다.[12]

1집 I'm Your Girl (1997)[편집]

1997년 11월 28일, SBS '충전! 100% 쇼'를 통해 데뷔한 S.E.S.는 당시 유로팝 중심으로 돌아갔던 댄스 음악 시장에 뛰어난 멜로디와 함께 댄서블하고 힙합적인 리듬을 부각시킨 요소들을 결합시킨 곡을 선보임으로써 정체가 불분명했던 남성 팬덤을 응집시키는데 성공한다. 당시 갑작스레 몰아닥친 IMF 한파에도 불구하고 앨범 발매 첫 주 김건모에 이어 3위를 기록, 발매 10여 일만에 15만장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여자 가수도 인기가 구매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위축될 대로 위축된 소비자들의 심리를 고려하면 평상시의 30만장에 필적할 히트였다. 당시만 해도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지 못하면 국가부도사태에 빠질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S.E.S.가 데뷔하고 난 지 채 일주일도 안 돼서 김영삼 정부는 국제통화기금 측의 요구 조건을 수락하는 대가로 IMF의 구제금융을 구사일생으로 얻어낼 수가 있었다.

S.E.S.의 데뷔곡인 〈I'm Your Girl〉은 뜨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로, 흠잡을데 없이 괜찮은 노래다. 여성그룹 시대의 서막을 열어젖히려는 듯 서서히 밝아지는 사운드와 함께 S.E.S.를 소개하는 그룹 신화의 랩이 섞이는 감각적인 도입부는 S.E.S.라는 대형 그룹의 등장을 알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We open of the new chapters, Here we come, here come.."의 랩 가사는 S.E.S.가 이루어낸 엄청난 성공을 알고 있는 지금 더 의미심장하게 와닿는 부분이다. 부드러운 리듬 편곡과 발랄한 멜로디, 멤버들의 풋풋하고 맑은 목소리는 더할 나위없이 달착지근하다. 이 곡은 S.E.S.가 만들어낸 수많은 '명곡'들 중에서도 가장 공들여서 만들어진 곡에 속한다. 인트로, 각 절의 배치와 후렴구, 코러스, 랩, 브리지와 애드립에 이르기까지 이 곡의 모든 부분은 놀랄 정도로 정교하고 완벽하게 통제돼 있다. 이것은 멤버들의 보컬 분담과 음역, 호흡, 사운드의 흐름, 심지어 곡의 재생 시간까지 철저하게 분석하고 계산한 결과이다. 작곡가 유영진의 재능과 더불어, 이 곡의 작업에 SM의 모든 역량이 대대적으로 투자되었음을 짐작하는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I'm Your Girl〉의 비트 자체는 힙합이다. 따라서 안무로 표현하면 동작이 끊어지는 맛이 있어서 소녀다움을 제대로 살리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m Your Girl〉은 누구에게나 마냥 사랑스럽고 살랑거리는 이미지로 상징될 수 있는 건 마약 같은 도입부와 세련된 훅 그리고 뛰어난 곡 해석 능력 덕분이다. 멜로디의 간결함과 완성도가 높으며 군더더기 없는 편곡과 코러스, 정돈된 캐릭터와 안무는 삼위일체 여성 그룹의 교본으로 후대에 전해졌다. 클로즈업된 눈동자에 비친 원형의 형광등 조명. 찹쌀떡처럼 노출 오버되어 강조된 톤은 한동안 아이돌 뮤비의 정석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기준이 된다는 것은 중요하다. 다이아몬드 원석이 깎는 대로 빛을 발하는 것처럼, 이때의 S.E.S.는 후배 여성 그룹들에게 공통적인 영감을 주었고,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노래가 바로 〈I'm Your Girl〉이다. 이 곡의 깜찍함만을 빌리려고 도전했다가 어설픔만 드러내는 후배 그룹들의 무대를 종종 보면서 S.E.S.가 얼마나 기념비적인 출발이었는가를 새삼 깨닫곤 한다.

이장우의 2집 수록곡인 '널 만난 후로'를 리메이크한 후속곡 'Oh, My Love'는 , 비교적 평범한 노래였던 원곡에 SM 특유의 힙합적인 느낌과 S.E.S.의 예쁘장한 화음이 더해져, 보다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곡으로 바뀌었다. 예쁜 가사와 상큼한 멜로디, S.E.S.의 아기자기한 속삭임이 조화를 이루는 곡으로, 원래 남자 가수의 노래였다는게 짐작이 가지 않을 정도로 여성스럽고 나긋나긋한 느낌을 주는 곡이기도 하다. 'I'm your girl'의 압도적인 존재감 때문에 조금 빛이 바라는 것 같기도 한 곡이지만, 이 노래가 있었기에 S.E.S.의 요정같은 세련되고 산뜻한 이미지가 후속곡에서도 계속 유지될 수 있었다.

S.E.S.의 성공은 가요계의 지형 자체를 바꾸는 것이었다. 그동안 잠재하고 있었던 전국의 10대 소년들과 군인 등의 남자 팬들이 어엿한 구매층으로 떠올랐고, 60만장이라는 높은 판매고로 그들의 구매력은 입증되었다. 남자 팬들은 S.E.S.의 등장으로 여성 가수를 좋아한다는 즐거움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고, 여가수들은 S.E.S.]]의 대박에 힘입어 약진을 거듭해 남자 가수들을 능가하는 세력으로 성장했다. 핑클을 비롯해 이들의 아류로 출발한 미소녀 그룹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앨범을 내며 가요계에 뛰어들었음은 물론이다. 이전에도 S.E.S.와 같은 형태의 그룹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모범적인 기준을 제시한 건 아니었다. 이전의 걸그룹들이 최대 수요인 젊은 남성층에게 어필하기 어려운 컨셉, 예를 들어 사회비판이나 실력을 전면에 내세운 미국식 등을 내세운 것과 달리, S.E.S.는 이들에게 소구하기 쉬운 순수하고 청순한 컨셉으로 준비되었으며, 곡 자체도 누구나 무리없이 들을 수 있는 세련된 스타일의 팝 댄스곡이었다. 검증되지 않은 시장에서 가급적이면 많은 대중에게 접근하기 위해 취했던 접근방식이며 동시에 당시 시장에서 검증된 유일무이한 여성 아이돌 '강수지'의 뒤를 잇는 안전한 전략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여기에 더해 추가적으로 당시로서는 강도높은 댄스를 준비했다는 것은 특이할 만한 점이다.

성공이라는 단어보다 평정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기존의 여자 가수들을 싹쓸어버리면서 가요계에 확고부동한 위치에 자리한 S.E.S.는 이후 S.E.S.는 발랄한 컨셉의 후속곡〈Oh, My Love〉로 인기를 이어나갔고, 활동 막바지에 〈데자뷰〉, 〈완전한 이유〉, 〈넌센스〉로 구성된 메들리 활동을 선보인 후 본격적으로 일본 시장에 진출하게 된다. 이장우의 2집 수록곡인 '널 만난 후로'를 리메이크한 〈Oh, My Love〉는 , 비교적 평범한 노래였던 원곡에 SM 특유의 힙합적인 느낌과 S.E.S.의 예쁘장한 화음이 더해져, 보다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곡으로 바뀌었다. 예쁜 가사와 상큼한 멜로디, S.E.S.의 아기자기한 속삭임이 조화를 이루는 곡으로, 원래 남자 가수의 노래였다는게 짐작이 가지 않을 정도로 여성스럽고 나긋나긋한 느낌을 주는 곡이기도 하다. 'I'm your girl'의 압도적인 존재감 때문에 조금 빛이 바라는 것 같기도 한 곡이지만, 이 노래가 있었기에 S.E.S.의 요정같은 세련되고 산뜻한 이미지가 후속곡에서도 계속 유지될 수 있었다.

  • I'm Your Girl〉의 랩은 남성 그룹 신화의 멤버 에릭앤디가 맡았고, 안무는 남성 그룹 H.O.T.의 멤버 문희준이 담당했다.
  • 데뷔 앨범이 6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리며 여성 및 신인가수로는 유일하게 당해 연간 음반판매량 10위 안에 랭크되었다.[15]
  • 중국, 대만 등지에서 판매된 것까지 포함하여 아시아 전역에서 10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는 비공식 기록이 있다.
  • 〈Oh, My Love〉는 015B 객원가수 출신 가수 이장우 2집에 수록된〈널 만난 이후〉를 리메이크한 곡으로, 앨범 발매 당시 리메이크 사실이 알려지지 않아 표절시비가 이는 해프닝이 있었다.[16]
  • 일명 무인도 버전이라 불리는 〈Oh, My Love〉의 첫 번째 뮤직 비디오가 1998년 3월 말부터 방송을 타기 시작했으나, 방송에는 적합하지 않은 퀄리티라는 이유로 일주일 정도 만에 자취를 감추고 새 버전으로 재촬영을 하게 된다.
  • 세 번째 후속곡으로〈넌센스〉와〈완전한 이유〉가 경합을 벌였으나 다양한 모습을 보이자는 의견에 따라 메들리 형식으로 선보이게 됐다.
  • 신승훈에 이어 한국가수로서는 2번째로 미국 빌보드 지에 소개되어 '새로운 아시아 스타'라고 평가받았다.[17]
  • 1998년 5월 31일, 세종대학교 대양홀에서 열린 공식 팬클럽 '친구' 창단식을 마지막으로 공식적인 방송활동을 마무리한다. 당시 팬클럽 회계 보고서에 따르면 1기 팬클럽 가입자수는 2,263명으로 추산된다.
  • m.net 《가요베스트27》에서 선정한 '1998 가요 베스트 100'에서 〈I'm Your Girl〉이 2위, 〈Oh, My Love〉가 38위를 차지했다.

2집 Sea & Eugene & Shoo (1998)[편집]

1998년은 S.E.S.를 필두로 한 여성 댄스그룹 붐의 본격적인 시발점이 된 해였다. 각종 차트를 휩쓸면서 화려하게 등장했던 S.E.S.의 데뷔에 이어 숙명의 라이벌 핑클이 여러 곡의 히트 싱글을 터뜨리며 강자로 부상했고, 한중일 합작그룹 써클이 출범했으며 베이비복스가 두 번째 앨범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뒤이어 쿠키나 EL같은 여러 후발주자들도 서둘러 앨범을 발매하고 가요계에 뛰어들었다.

2집 앨범 타이틀 곡 〈Dreams Come True〉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외국곡을 차용한 유로 댄스팝으로, 1집에 비해 한층 파워풀해진 안무와 비음 섞인 목소리 등 국내 정서와는 다른 이질적인 곡 분위기 때문에 거부감을 갖는 팬들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런 점들이 신선하게 느껴져 대히트를 하게 된다. S.E.S는 당시 라이벌 구도에 있던 핑클과 차별성을 두기 위해 신비스럽고 세련된 이미지를 강조하여 요정 이미지를 구축하기 시작한다. 당시 일본에서도 막 데뷔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일주일 단위로 양국을 오가며 활동을 병행하게 되는데, 막 활동을 발표한 S.E.S. 입장에서는 치명적인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앨범 판매량은 호조를 보여 일주일 만에 33만 장을 기록하며 월간 1위를 차지한다.

이후 후속곡으로 선보인 스쿨룩 컨셉의 〈너를 사랑해〉가 대중적으로 큰 히트를 거두면서 걸그룹의 선두주자로 자리를 굳히는 데 성공했다. S.E.S. 이미지에 딱 들어맞는 소녀 스타일의 스쿨룩 컨셉이 호평을 받으면서 활동 2주 만에 공중파 음악방송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빠른 속도로 인기몰이를 하게 된다. 가수의 이미지와 컨셉이 딱 들어맞을 때 어떤 파급력이 생기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 활동 2주 만에 공중파 음악방송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빠른 속도로 인기몰이를 했으나, 일본과 대만 활동을 병행하게 되면서 방송 출연을 하지 않을 경우 1위 후보에서 제외되는 등 가요 프로그램의 순위에서 피해를 보는 상황이 발생했다. 당시 활동 1주일 만에 1위 후보에 올랐던 S.E.S.가 갑자기 후보에서 제외되자 순위 선정에 의문을 품은 팬들이 강하게 항의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에 인기가요 측에서 방송에 출연하지 않는 가수는 1위 후보에서 제외한다는 방침을 공식적으로 시인하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활동 막바지에는 슈가 만성 위염으로 쓰러지면서 굿바이 무대도 가지지 못한 채 급하게 활동을 마무리하게 된다. 당시 S.E.S.는 일본과 대만을 오가며 가히 살인적인 스케쥴을 소화하고 있었는데, 귀국하자마자 출연한 뮤직뱅크 방송이 끝나고 슈가 실신해서 병원에 실려가는 바람에 의도치 않게 2집 마지막 방송 활동이 돼버렸다. 리허설 때도 실신해서 대기실에서 응급조치를 받으며 누워있었다고 한다. 슈는 1집 때부터 만성위염으로 고생을 많이 했는데 아플 당시에는 독한 약을 하루에 6번씩 먹으면서 버텼다고 한다. 나중에 이것과 관련해 라이벌 그룹 팬들이 악성루머를 퍼트리는 바람에 여자 아이돌로는 치명적인 내용의 기사가 보도되기도 했다.

  • 1집 앨범 판매량의 영향으로 2집 앨범 선주문 52만장을 기록했다.[18]
  • 신나라 판매 챠트에서 9주 연속 1위를 기록했다.
  • 원래 11월 1일에 컴백이 예정되어 있었으나[19]〈Dreams Come True〉과 〈Etenal Love〉등 4곡을 재녹음하게 되면서 발매가 미루어졌다.[20]
  • 〈너를 사랑해〉는 1집에 수록될 예정이었으나 2집 타이틀로 했으면 좋겠다는 이수만의 의견에 따라 2집에 수록되었다.
  • 1998년〈한국 사이버 방송연예대상〉설문조사에서 김희선, 송윤아에 이어 S.E.S.가 '올해의 미스 네티즌' 3위에 선정됐다. 이는 KBS 2TV의《연예가 중계》가 광장커뮤니케이션에 의뢰해 1998년 12월 약 한 달간 전국의 PC통신 사용자 6,631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이다.[21]
  • KBS 국제방송이 방송의 날을 맞아 1999년 8월 한달간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국내외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결과, '네티즌의 선택, 한국 가요 베스트 10' 인기투표에서 S.E.S.의 Dreams Come True가 3,950표로 가장 좋아하는 곡 1위로 뽑혔다. 더불어 90년대 한국 가요계 장르 흐름을 선도한 50곡 후보 가운데서도 1위를 기록. 2위와 3위에는 서태지와 아이들과 신승훈이 각각 올랐다.

3집 Love (1999)[편집]

3집 타이틀곡 〈Love〉는 한국적 멜로디 위주의 전략을 내세운 다른 걸그룹과는 다르게 파격적인 염색과 비비드 장식으로 화려함을 더한 이국적인 컨셉으로 고급스런 접근을 시도했고, 〈Love〉라는 곡으로 음악적인 퀄리티에 있어서 만큼은 타 여성 댄스 그룹들의 수준을 저만치 따돌려 놓기에 이른다. S.E.S.는 등장했을 때부터 처음이라고는 믿기 힘든 완성도를 지닌 그룹이었고 결과야 어찌됐든 해외 활동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경험을 거의 유일하게 쌓고 있었던 만큼 그에 걸맞는 포지션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원산지가 해외인 <Dreams Come True〉에서는 이질적인 요소도 함께 부담해야 됐지만 자체적으로 공수한 <Love>는 한 치 부족함이 없는 높아진 위상 그 자체였다.

그동안 S.E.S.하면 천박하거나 성적인 코드를 발산하지 않으면서도 예쁘다는 느낌을 꾸준히 주었으며 거기에 적절히 외국 느낌이 나는 세련됨으로 앞서가는 그룹의 전형을 만들어 내었지만 그것은 전부 <Dreams Come True〉까지 보여주 듯 어린 요정이라는 아이돌 가수의 틀 안에서 구현된 것들이었다. 하지만 〈Love〉는 어렵지 않게 그녀들을 아이돌이라는 한계에서 탈출하게끔 해주었다. 아름다운 멜로디와 아름다운 노랫말, S.E.S.라는 그룹의 이미지와 아주 적절히 맞아 떨어졌을 뿐더러 아이돌 댄스라는 한정된 디렉토리 안에서 '음악만으로도 승부를 할 수 있는' 여성 댄스 그룹의 존재로 한 발 더 나아가게 된다.

노래 제목처럼 S.E.S.가 'Love'에서 노래하는 사랑이라는 화두는 어리기만 했던 그때와는 분명히 다른 감정으로 노래된다. 'I'm your girl'처럼 너무 철없이 들뜨지도 않고 그렇다고 'Dreams come true'처럼 환상으로만 둘러쌓여져 있지도 않은채 조금씩 생활안에 편안함으로 묻어나는 사랑의 현실적 감각을 미디움 템포안에서 캐쥬얼한 발라드로 표현해 내며 기존 10대 팬들의 호응과 20대 팬들의 또 다른 발견을 이끌어 낸다. 마치 게임에서 하나의 미션을 컴플리트하면 몇 분의 시간이 더 주어지는 것처럼 S.E.S.는 3집의 성공으로 20대에도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 받기에 이른다. 그러니까 1, 2집이 S.E.S.의 전기라고 한다면 3집으로 인해 S.E.S.의 후기 활동의 막을 올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그녀들은 아이돌 댄스 그룹에서 더 나아가 여성 보컬 그룹이라는 수식어도 민망하지 않은 유일한 그룹이 된다. 같은 소속사의 H.O.T.가 사회비판 컨셉을 이어가며 팬덤을 충실히 이끌던 것과 마찬가지로, S.E.S. 역시 특유의 고급스런 컨셉을 유지하며 대중성 위주의 접근을 취하던 핑클과 서서히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다.

  • 3집은 앨범 발매 3일만에 55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넘는 등 여전한 인기를 과시했으나 활동에 있어서는 악재로 가득한 시기였다. 보수적인 성향의 KBS는 머리색을 문제삼아 '노랗게 염색한 머리 색깔이 시청자에게 혐오감을 주고 청소년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이유로 방송 출연을 금지시켰고, SBS는 특정가수가 자사의 음악 방송 《인기가요》을 통해 컴백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S.E.S.의 방송출연을 금지시키면서 공중파에서는 MBC만 출연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원래 MBC 《음악캠프》에서 컴백한 다음날 SBS 《인기가요》에 출연할 예정이었지만, 방송 당일 《인기가요》 측에서 '하루 걸러 방송하는 것은 무리'라며 출연 취소를 통보하였고, 이에 반발한 SM이 소속가수 전부를 SBS에서 철수시키는 것으로 맞대응을 하게 되면서 갈등이 심화됐다. SM은 S.E.S.를 포함한 소속가수 전부를 SBS에 출연시키지 않기로 결정하고, MBC로 넘어가 H.O.T.를 주축으로 한 《Log in H.O.T.》라는 파일럿 프로그램을 《SBS 인기가요》와 같은 방송시간대에 내보내는 초강수를 둔다. 하지만 《Log in H.O.T.》가 기대 이하의 시청률을 올리게 되면서 결국 SM이 먼저 SBS 쪽에 굽히고 들어가게 되었고, 이로써 새해부터 S.E.S.를 포함한 SM 소속 가수들은 SBS에 출연할 수 있게 된다.
  • CD 버전에는 노래와 더불어 토크 트랙이 수록되어 있다.
  • 8번 트랙에 수록된 〈Blue Sky〉의 영어 내레이션 가사가 일본 록밴드 엑스 재팬의 가사를 표절한 사건이 있었으나, 일본 측과 정식으로 내레이션에 대한 사용허가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 80만장에 가까운 판매고를 올리며 공식적으로 한국 여가수 최고 판매량을 기록하게 된다.
  • 2000년 3월 19일,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A Sweet Kiss from the World of Dreams》 이름으로 첫 단독 콘서트를 열어 1만 석이 넘는 좌석을 매진시켰다.

4집 A Letter From Greenland (2000)[편집]

일본 활동으로 오랜 공백을 가진 끝에 1년 2개월 만에 발표한 앨범으로, 전반적으로 짜임새 있는 구성과 완성도 높은 음악으로 아이돌 가수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평단과 대중의 지지를 동시에 이끌어내며 가수로서 한 단계 성장하는 발판이 된 앨범이다. 이는 당시의 시점에서 뽑아낼 수 있는 아이돌 팝의 최고점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수준이다. 특히 일본 활동을 통해 멤버들의 실력 및 안목이 한층 향상된 상황에 소속사의 전폭적인 지지가 결합된 수작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S.E.S. 아니면 다른 누가 부를 수 있을까 싶은, S.E.S.가 쌓아올린 고급스러운 화성과 스타일에 대한 자부심이 드러나는 'Be natural'을 시작으로 MISIA의 곡에 비해 떨어지긴 하지만 J-pop의 에센티얼을 왜곡없이 펼쳐보이는 '감싸 안으며', 내 친구 바다의 이별 이야기를 살짝 훔쳐 듣는 것처럼 그녀의 감정이 100% 묻어나오는 앨범 최고의 트랙 'Story'에 이르기까지 이 앨범은 한국 가요계에서 위치하고 있는 S.E.S.라는 그룹의 저력을 들려주었다.

당시 재외국민 선발학생 부정입학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면서 연예인 특례입학 문제도 함께 불거져 나왔는데, 유진가 졸업한 한국켄트외국인학교가 학력인가를 받지 못한 학교로 밝혀지면서 유진의 대학입학문제가 구설에 오르게 된다. 발단은 부정입학 수사를 하던 와중 '이같은 방법을 통해 부정입학한 연예인이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면서부터였다. 당시 유진는 재외국인 전형이 아닌 각각 음악과 외국어 특기생으로 입학을 한 케이스였지만 정작 문제는 두 사람이 졸업한 외국인학교가 학교로 인정이 되지 않으므로 고졸학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2001학년도 수시모집에서 특기자전형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에 합격한 신화앤디가 입학이 취소되었다.

파문이 진정될 때까지 컴백을 무기한 연기하자는 의견까지 나오는 등 소속사 내부적으로도 활동 여부를 놓고 논란이 많았으나, 활동을 중단한 채 시간을 벌기보다는 오히려 능동적으로 활동하면서 이번 파문의 문제점을 부각시키는 게 낫다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컴백을 강행하게 된다. 당시 SM 엔터테인먼트이수만은 "이들이 부정입학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비쳐지는 게 무척 안타깝다. 대학 입시과정에서 서류가 미비됐다면 검정고시 합격증을 제출하라든지 분명하게 짚어줘야지, 멀쩡히 대학을 다니고 있거나 합격을 시켜놓고 뒤늦게 이를 취소한다는 건 어린 학생들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라며 서류를 철저히 확인하고 처리하지못한 대학측과 이를 제대로 감사하지 못한 교육부의 '직무유기'라고 주장했다.[22]

당시 시끄러웠던 대학입학문제에도 불구하고 S.E.S.가 쓰러지지 않을 수 있던건 S.E.S.의 앨범이 팬들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대중에게도 '음악'으로 공감할 수 있는 요소를 갖췄기 때문이었다. 3집까지만 해도 팬들에게만 인정받던 아이돌 가수에 불과했지만 4집에서 아이돌이라는 말만으로 정의내릴 수 없는 어떤 한계를 넘어섰고, 그것은 한국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아이돌의 대중성과 보컬그룹에 대한 음악적 인정을 획득하는 그룹의 이미지를 갖게 해줬다. 활동 전부터 순탄치 않은 시작이었지만 앨범 발매 1주일 만에 50만장을 돌파하고,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게릴라 콘서트에서 11,745명의 관객 동원으로 최고 기록을 갱신하는 등 호조를 보이게 된다. 일본에서 쌓은 실력을 바탕으로 여러 무대를 라이브로 소화하고, 타 아이돌 그룹 앨범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정통 재즈 스타일의 곡 〈Be Natural〉을 과감하게 후속곡으로 선보이는 등 음악적으로 진지하게 어필하려는 모습을 보이면서 S.E.S.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서서히 바뀌어갔다.

  • 원래 11월 중순에 앨범을 발매하고 컴백할 예정이었으나 앨범 작업이 모두 끝난 이후 바다의 목에 염증이 생기면서 앨범 발매가 한 달 반 정도 미루어졌다.
  • 이로 인해 유진고려대학교 측으로부터 입학 취소를 당해 퇴교 통보를 받았으나, 이후 고려대를 상대로 낸 입학허가 취소 무효확인 청구소송에서 승소하여 재입학하게 된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K외국인학교의 대학 입학 학력이 인정되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학 측이 신입생 선발 과정에서 자격을 제대로 살피지 않았고, 원고가 이미 2학기를 이수했으며 입학 취소에 따른 불이익이 큰 점 등을 고려할 때 대학의 조치는 헌법상 보장된 교육 받을 권리 등에 부합하지 않아 부당하다”고 밝혔다.[23] 이에 고려대 측은 유진의 퇴교 조치가 성급한 결정이었음을 인정하였고, "재외국민 특례입학 사건이 불거질 당시 여론의 `압력'에 떠밀려 학교측이 유진 씨의 입학을 취소했던 측면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24]
  • 타이틀 곡 〈감싸 안으며〉는 S.E.S.의 일본 데뷔곡 〈めぐりあう世界〉를 써준 시마노 사토시의 곡으로, 일본 R&B의 선두주자 MISIA의 히트곡을 번안한 곡이다.〈감싸안으며〉는 공중파와 케이블을 통틀어 SBS를 제외한 7개 방송사 전 음악 프로그램 왕중왕(3주 1위)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 당시 S.E.S.는 SBS인기가요》에서 왕중왕까지 마지막 1위 만을 남겨두고 있었는데, 지난주까지 2주 연속 1위를 한데다 사전집계 조사에서 3천여포인트나 앞서 있었기 때문에 별 이변이 없는 한 1위를 할 것이라 예상했으나 포지션의 〈I Love You〉에 밀려 2위를 하게 된다. 이에 소속사였던 SM 엔터테인먼트는 《인기가요》 순위 선정의 공정성에 이의를 제기하며 소속 가수들을 《인기가요》에 출연시키지 않겠다고 발표하였다.

4.5집 Surprise (2001)[편집]

일본에서 활동했던 곡을 모아 새롭게 편곡하고 한국어로 번안하여 발표한 앨범. 국내가수 중 거의 유일하게 단발성이 아닌 지속적인 해외 활동 경험이 있던 그룹이었기에 발표할 수 있었던 앨범으로, 그간의 일본 활동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발표한 앨범이기도 하다. 앨범이 간이 화보집 형식으로 구성돼 있는 것도 특이한 점.

  • 애초에 싱글 타이틀곡이 전부 수록될 것으로 알려졌으나 결과적으로 일본 정규 1집 수록곡 위주로 구성되었다.
  • S.E.S. 멤버 전원이 전곡 가사 작업에 참여하였고 바다가 앨범 디렉팅을 맡았다.
  • 일본 7번째 싱글 타이틀 곡 〈Lovin' You〉는 녹음까지 해놓은 상태였으나 저작권 문제 때문에 수록되지 못했다.
  • 일본 1번째 싱글 타이틀 곡 〈메구리 아우 세카이〉는 보너스 트랙으로 인터넷 상에서 제공되었다.
  • 당시 영상집 발간이 계획되어 있었으나 계속된 연기로 판매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출시되지 못했다.

5집 Choose My Life-U (2002)[편집]

2002년 2월 발매된 S.E.S의 정규 5집 앨범으로, 타이틀곡은 〈U〉, 후속곡은 〈Just a Feeling〉으로 약 4개월간 활동하였다. 일본에서도 AVEX에 의해 라이센스로 발매되었으며, 이 일본 라이센스 음반에 〈U〉의 일본어 버전이 수록되어 있는 점도 주목할 점이다. 그룹 해체를 약 1년 앞두어 발매된 이 시기의 방송활동은, 이후 Remix 앨범과 스페셜 앨범 《Friend》의 활동이 없었던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S.E.S의 마지막 방송 활동 앨범이었던 셈.

  • 앨범 발매 전, 소속사에서 밝힌 공식 선주문량은 30만장이다.

리믹스 싱글 S.E.S Remixed (2002)[편집]

스페셜 앨범 FRIEND (2002)[편집]

2002년 12월 발매된 S.E.S의 사실상 마지막 앨범으로, 정규 앨범이 아닌 스페셜 앨범의 성격이 강하다. 뮤직비디오 촬영/배포를 제외하면 앨범 발매 이후 방송 활동 등은 전혀 없었으며, 해체 전 발매 자체에 더 큰 의의를 가지고 있는 앨범이라 할 수 있다.

해외 활동[편집]

SM 엔터테인먼트의 해외진출이 본격화된 것은 1997년 H.O.T.의 중국 진출부터다. 당시 중국은 공산국가의 잔재가 남아 있었기 때문에 남자의 경우 입출국을 할 때 군대 문제로 매번 여권을 반납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고[25], 일본은 복수여권이 나오기 전이라 남자 연예인의 활동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26] SM은 군대 문제 등이 얽혀있는 남자보다 상대적으로 여자가 해외 활동을 하기에 더 수월하다는 판단을 하게 됐고[26] 이에 따라 다국적 멤버로 구성된 S.E.S.를 기획하여 본격적인 해외 진출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일본 진출[편집]

1998년 2월, 데뷔 100일이 지난 시점에 SM은 S.E.S.의 일본 진출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일본의 연예 기획사 스카이 플래닝과 계약금 2,500만 엔에 2년간 총수입의 70%를 받는 조건을 전속 계약을 맺은 것이다. 애초에 S.E.S.는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두고 결성되었고, 특히 일본시장을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해 탄생한 그룹이었다. 괌에서 살다온 유진이나 일본 태생의 슈를 멤버에 포함시킨 것은 물론이고 당초 그룹의 멤버로 예정돼 있었다는 소녀가 중국어 능통자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들의 해외 진출 역시 예상할 수 있는 수순이었다. 처음 S.E.S.가 일본 진출을 선언했을 때, S.E.S.에 대한 우리나라 언론이나 팬들의 기대는 대단한 것이었다. 당시 S.E.S.는 한국인들이 보기에는 일본 스타일의 그룹이었기 때문이다. 미모에 춤실력, 가창력 3박자를 갖추었음은 물론이고, 일본어가 가능한 슈가 있으니 의사 소통에도 문제가 없었다.

이들은 S.E.S.가 등장과 동시에 우리나라의 모든 가요차트를 싹쓸이했던것처럼, 일본에서도 사람들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으며 차트를 석권할 것이라고 믿었다. 오리콘차트 1위나 백만장은 당연한 것이고, 스피드MAX가 이들의 라이벌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S.E.S.가 일본에 처음 싱글을 내놨을 때, 연일 일본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며 앞다퉈서 보도했던 우리나라 언론의 호들갑이나, 오리콘 차트 3등해서 X-Japan을 이겼다느니 하는 소문을 매번 퍼뜨렸던 팬들의 반응들이 S.E.S.에 대한 대단했던 기대감을 말해준다.

시장 상황[편집]

S.E.S.가 일본에 진출했을 당시의 일본 걸그룹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였고, 우리나라와는 달리 오래 전부터 여성 그룹이 팝 밴드의 일반적인 형태였던 일본 가요계에서, 걸그룹은 너무나도 흔한 구성이었다. 스피드, MAX, D&D 등 TV를 틀기만 하면 언제든지 2~5인조로 이뤄진 여자 아이돌들이 이미 음반시장을 장악한 상태였다. 또한 스피드, MAX는 라이브 실력으로 호평을 받고 있었기에 실력만으로는 S.E.S.가 인기를 끌기 힘든 상황이었다. 또한, S.E.S.는 외국인으로서 갖는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힙합 스타일의 곡을 부르길 원했지만, '한국에선 그런 것이 먹혔는지 모르지만 일본에선 어림도 없다'는 Sony 측의 반대로 일본식 댄스곡을 부르게 된다.[27]

언어 문제[편집]

언어 쪽의 문제도 절대 해결됐다고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슈가 유창한 일본어를 구사한다고 해도, S.E.S.는 그것만으론 결코 만족스러운 활동을 할 수 없었다. 다들 알고 있다시피 S.E.S.의 리드보컬은 슈가 아니라 바다였으며, 슈가 아무리 일어에 능숙해도 노래의 대부분을 책임지고 하이라이트를 맡아야 하는 바다가 가사 전달을 제대로 해낼 수 없으면 노래의 호소력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바다의 미숙한 발음은 S.E.S.의 일본 활동 당시에 일본인들에게 많이 지적받았던 부분이다. S.E.S.의 일본 노래를 일본사는 친구에게 들려줬는데 노래 가사가 어떤 내용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식의 이야기가 팬클럽 게시판에까지 올라올 정도였으니, 바다의 일본어 발음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대충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또한 당시 한국과 달리 철저히 예능 프로그램 위주로 돌아가던 일본 아이돌 시장에서 언어 장벽은 치명적인 벽이 될 수 밖에 없었으며, S.E.S.는 그런 점에서 철저하게 불리한 상황이었다. 매번 쇼프로에 출연할 때마다 슈 혼자서 토크를 진행하고, 유진과 바다는 거의 말이 없는 상황이 이어졌으며, 일어가 가능한 슈 역시 말재주나 유머 감각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당시 '한국에서 온 가창력있는 걸그룹'으로 컨셉을 잡아 대형 프로모션 위주의 활동을 했다면 상황은 달랐을 수도 있으나, 그건 그것대로 후술할 '기획사'의 역량 문제와 얽혀있었다.

기획사 선정 문제[편집]

S.E.S.의 일본 진출에 대해 얘기할 때, SM은 중대한 두 가지 실수를 범했다고 평가받곤 한다. 첫 번째 실수는 S.E.S.의 일본 내 매니지먼트를 담당하는 기획사로 스카이플래닝을 선택한 것이다. 원래 S.E.S.의 일본 계약은 일본 여성 4인조 그룹 SPEED의 프로듀서로 잘 알려진 이지치 히로마사 쪽에서 먼저 관심을 두고 있었다. S.E.S.의 일본 계약 건으로 이지치 히로마사가 극비 방한까지 했다고 알려졌으나 결국 히로마사 측과 절충하던 액수의 1/3도 안 되는 계약금을 받고 스카이 플래닝과 계약을 맺은 것이다.[28]

우리나라 신문들은 일본 연예업계 5위권 내의 거대 기획사와 계약했다며 흥분된 어조의 기사를 실었지만, 애초에 스카이플래닝은 연기자, 모델 중심의 회사였지 가수를 전문적으로 매니지먼트하는 회사가 아니었다. 이건 예능 전문 기획사에서 영화배우를 데뷔시키는 것과 비슷한 것으로 업종도 다르고 접근 방식도 다르기 때문에 실패할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겉보기에는 스카이 플래닝이 규모가 크고 활동이 활발하다 보니 국내에는 거대하고 능력 있는 기획사로 비쳤던 모양이지만, 앨범 기획이나 컨셉, 홍보 등 S.E.S.의 일본 활동 전반에 걸쳐 스카이 플래닝의 기획력 부재가 여실히 드러나게 된다.

세계 2위 규모인 일본 음반 시장에서 홍보는 절대적인 변수이며, 단순히 음반 발매만으로 곡을 효과적으로 홍보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가수 매니지먼트에 익숙하지 않았던 스카이플래닝에 몸담았던 S.E.S.가 그런 홍보에서 불리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데뷔곡 'めぐりあう世界(메구리 아우 세카이)'는 NTV의 '빙글빙글 나인T나인' 엔딩· 테마로 두달간 사용됐다고 하는데, 각종 인기 애니메이션과 드라마, CF, 영화, 게임 등등의 삽입곡들이 순위를 휩쓰는 일본에서 이정도의 홍보는 힘이 될 만한 대형 타이업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레이블 선정 문제[편집]

SM의 두번째 실수는 VAP이라는 레코드 회사와 음반 배급 계약을 맺은 것이다. 원래 S.E.S.는 일본 Sony와 음반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었지만 전속기간이 짧아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계약이 무산되고 만다.[29] Sony 측에서는 S.E.S.와 7년의 계약기간을 요구했지만 SM과 S.E.S.의 계약기간이 5년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요구조건을 들어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SM소니가 아닌 다른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할 것이라고 큰소리쳤지만, 결국 일본 NTV 및 요미우리 신문 계열의 신생 음반사 VAP과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30] VAP은 음반보다는 애니메이션과 드라마 영상 소프트 제작 이미지가 강한 회사로, 오리콘 싱글차트 93위 진입이 최고 기록이었을 정도로[30] 저조한 실적을 올리고 있던 회사였다. 더욱이 여성 아이돌 가수의 성공 실적이 전무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S.E.S.를 효과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없었다.[31]

한국 음악계에서는 기획사가 거의 모든 지원을 하고 음반사는 말 그대로 음반의 유통만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본 음악계에서는 음반사가 음반을 직접 홍보하고 방송 프로모션 일정도 조정하는 등 음반사의 역할이 매우 크다. 한국에서야 중소규모 음반사를 통해 음반을 발매해도 크게 지장이 없지만, 일본에 진출하면서 VAP과 같은 소규모 음반사를 파트너로 선정한 것은 매우 큰 실수가 아닐 수 없었다.

활동 결과[편집]

S.E.S.는 일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기는 했지만 기대한 만큼의 성과물을 거두지는 못했다. 대중이 인정해주는 금메달을 목에 걸고 귀국하진 못했지만 결코 단발로 계획된 진출이 아니었고 누구보다 깊숙이 파고들어 다음 주자인 보아의 성공을 이끄는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그리고 S.E.S.는 S.E.S.대로 일본에서의 실적과는 상관없이 아주 근사한 행보를 이어간다.

S.E.S.는 한국에서는 정상급이었지만 일본에서는 수많은 걸그룹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국내에서 S.E.S.는 세련된 음악과 신비로운 요정 이미지로 대중적 인기를 끌었지만 일본에서는 현지의 여느 걸그룹들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었다. S.E.S.의 일본 내 마케팅 포지션 및 파트너의 역량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S.E.S.의 일본 소속사였던 스카이 플래닝이 일본 시장에 S.E.S.를 맞추기 위해 그저 그런 수준의 걸그룹으로 S.E.S.의 개성과 특징을 평균화한 탓이었다. 즉, S.E.S. 특유의 몽환적이고 이국적인 분위기가 흔한 일본풍으로 개조된 부작용이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S.E.S.의 일본 내 활동을 위한 계약에는 치밀한 검토가 부족했던 탓에 S.E.S.의 활발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SM으로 들어오는 수입은 보잘 것 없었다. 이수만이 S.E.S.를 일본에 진출시켜서 누리는 혜택이라고는 현지의 시장상황에 대한 정보를 한국 내 경쟁업체들보다 먼저 취득할 수 있다는 정도뿐이었다. 이후 SM은 다른 팀들을 차후에 일본으로 진출시킬 때는 S.E.S.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고, S.E.S.가 일본에서 활동하는 내내 부딪치게 된 언어상의 한계를 직접 목도하면서 SM이 일본에 내놓을 다음 가수에게는 데뷔하기 전에 유창한 일본어 실력을 갖춰놓도록 하겠다고 단단히 결심하게 된다.

활동 경력[편집]

  • 1998년 08월 28일, 도쿄 롯폰기에 위치한 에이벡스 소유의 클럽 벨파레에서 데뷔 싱글 발매 쇼케이스를 가졌다. 악천후 속에서도 음악 프로듀서, 매스컴 관계자, 음반 도매상, 일반 관객 등 1천명이 넘는 인원이 모여들어 성황을 이루었다.[32] 선주문만 100만장이라는 식의 기사가 국내에 보도되었으나 실질적인 주문량은 10만장 정도로 추정된다.
  • 1998년 10월 21일 발매된 데뷔 싱글 〈めぐりあう世界〉가 발매 첫주 오리콘 주간차트에서 37위를 기록, 계은숙, 김연자 등 엔카 가수를 제외한 일본에 진출한 한국 가수 중 역대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다.[33] 또한, 그 주 발매된 신인 가수들의 싱글 중에서 유일하게 차트에 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 めぐりあう世界〉는 싱글발매 첫주에 일본 타워 레코드(시부야 점) 싱글판매 주간차트 3위를 기록했다.[34]
  • 한국 가수가 일본에서 5만장을 돌파한 것은 서태지에 이어 2번째이다.[35]
  • 2번째 싱글〈夢をかさねて〉는 일본 NTV 계열의 음악 차트 프로그램 《CD GROOVE XX》에서 2주간 1위를 기록했다.
  • 일본 내에서 기대 이상의 호응을 얻으며 레이블 홍보에 크게 기여한 점을 높이 사 VAP 레코드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36]
  • 도쿄 FM 라디오국 중 하나인 Bay FM의 《Precious harmony》의 레귤러로 발탁되어[37] 1999년 04월부터 일본 계약이 끝날 때까지 약 1년 반 동안 〈Artist paradise〉라는 코너를 진행하게 된다. 매주 토요일마다 10분 정도 출연하여 간단한 토크와 음악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9월부터는 인기에 힘입어 금요일로 시간을 옮겨 30분 동안 방송하게 된다.
  • 후지 TV의 신설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코이보이 코이걸(戀ボ-ル 戀ガ-ル)》의 정식 레귤러로서 1999년 5월부터 약 반 년간 출연했다.
  • 5번째 싱글〈Sign of Love〉가 제78회 전국고교축구 선수권대회 이미지송으로 선정됐다.
  • KBS 국제방송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한국 가수 3위에 뽑혔다.[38]
  • 2000년 5월, S.E.S.의 일본 공식팬클럽 HANA가 결성되었다.
  • 일본 2집 앨범 《Be Ever Wonderful》이 San Jose 키노쿠니야 미쯔와점(레코드점)의 2000년 상반기 앨범 매상에서 14위를 기록했다.
  • 후지 TV가 기획한 뮤지컬 《동아비련》에 가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되어 일본 6인조 그룹 V6의 멤버 요시코 이노하라와 함께 무대에 섰다. 는 일본 남성과 비극적인 사랑을 하다가 죽은 뒤 다시 태어나 옛 연인과 재회하는 한국 여성역을 맡았다.[39] 《동아비련》은 일본 도쿄와 오사카에서 초연된 이후 6개 도시에서 앙코르 공연을 가지는 등 총 11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작품이다.[40]

대만[편집]

한국 앨범에 있는 곡을 모아 발매한 셀렉션 앨범 《I'm Your Girl》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S.E.S의 음반이 발매되기 시작한다. '우주최강미소녀군단'이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달고 나온 한국 셀렉션 앨범과 일본 1집 앨범 《REACH OUT》이 연달아 2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면서 아시아 대표 걸그룹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 셀렉션 앨범 수록곡 중〈Dreams Come True〉가 Voice of Taipei에서 1위를 기록했다.
  • 1999년 국내에서 발간된 영상집 2천권이 대만으로 건너가자마자 매진사례를 기록했다.[41]
  • 그다지 활발하지 않던 활동에도 불구하고 1999년 5월 21일 카오셩에서 열린 대만 공식 팬클럽 창단식에는 5천 명에 가까운 인파가 몰려들었다.
  • 일본 1집 앨범 《REACH OUT》은 대만 삼립 텔레비전 HITS CHART(동양권 부문)에서 11주간 1위를 기록하면서 1999년 연간 차트 1위를 기록했다.
  • 한국 3집 앨범 《Love》는 대만 삼립 텔레비전 HITS CHART(동양권 부문)에서 14주 1위를 기록, 1999년 연간 차트 9위, 2000년 연간 차트 8위를 기록하며 2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 한국 4집 앨범은 더블 플래티넘(10만장 이상), 한국 4.5집은 178,653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 2001년 8월, 대만 남부 카오슝에서 MTV 채널이 개최한 서머 서밋 콘서트에 한국 가수로서 유일하게 초청됐다.[42]

그외[편집]

  • 미국의 래퍼슨 사를 비롯한 네오비전, 존 미디어 등 3개의 프로덕션으로부터 미국 진출 제의를 받았으나[43] 미국 팝계의 높은 벽(인종차별, 음악적 문화적 차이 등)을 허물기에 부족한 점이 많다고 판단해 진출 제의를 거절했다.[44]

해체[편집]

2002년 12월, S.E.S.와 SM 엔터테인먼트의 전속 계약이 끝나게 되면서 공식적인 해체를 하게 된다. 당시 SM은 유진과 바다가 SM 엔터테인먼트와의 재계약을 포기했기 때문에 SES는 더 이상 활동을 하지 못한다는 것처럼 여론몰이를 했지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부분은 회사와 두 멤버간의 재계약 불발로 인해 팀이 깨지는 것이 아니라 멤버 셋 모두가 S.E.S. 라는 팀을 마무리하고 개인적인 미래를 준비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미 그룹의 인기 사이클은 정점을 지났고 멤버 셋 모두가 10대를 지나 20대 중반이 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출발점이 필요했다.

  • 2002년 12월 19일, SM 엔터테인먼트에서 '유진이 SM을 떠나 독자적인 활동을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45] 고 발표함으로써 S.E.S.의 해체가 공식화되었다. SM 엔터테인먼트유진이 재계약을 거부했기 때문에 팀이 해체된다는 식으로 유진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행태를 보였는데, 이후 인터뷰에서 바다는 '세 멤버의 동의로 이루어진 해체'라는 점을 강조하였고, 일본활동을 마감하고 국내 활동을 준비할 당시부터 SM 잔류 여부와 상관없이 각자의 길을 걷기로 이미 합의를 끝낸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 S.E.S.의 해체 여파로 SM 엔터테인먼트의 주가는 당일 6.25% 급락했다.[46] 이에 SM은 '그동안 S.E.S.의 음반 판매가 부진했기 때문에 소속사에서 많은 투자를 해오지 않았고 올해 활동이 다소 부진했기 때문에 협상결렬이 전체 매출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47] 이라며 진실을 호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2002년 당시, S.E.S.는 가수 보아에 이어 SM 엔터테인먼트 내에서 두 번째로 높은 음반 판매고를 올렸다.
  • 바다는 MP엔터테인먼트와 20억 계약설이 있었으나 양측의 입장차이로 계약이 무산되면서[48] 웅진코웨이개발 산하 웅진 미디어와 5억원에 전속계약을 체결한다.[49] 유진은 S.E.S. 데뷔 당시 SM 엔터테인먼트에서 매니지먼트를 맡았던 정해익과 4억원에 계약을 맺었고,[50] SM 엔터테인먼트와 재계약을 맺게 된다.
  • 바다는 정상에 있을때 해체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일이고 그것이 S.E.S.라는 이름을 멋지게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 KBS 2TV 《러빙유》출연 당시, 유진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데뷔할 때부터 각자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왔다. S.E.S.로 영원히 활동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없이 끌려가는 그룹이 되기는 싫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51] 이후 유진은 'S.E.S.라는 그룹이미지가 있었기에 혼자 활동을 할 수 없었고, 각자 꿈을 이루기 위해 서로의 길을 가기로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고 해체 이유를 밝혔다.[52]

해체 이후[편집]

  • 2005년 11월, S.E.S.는 해체 3년 만에 처음으로 함께 무대에 올라 Mnet Music Video Festival PD 선정 특별상을 수상하고 축하 무대를 가졌다.[53] 이후 S.E.S.는 KBS 2TV 버라이어티 쇼 《해피 선데이》의 〈불후의 명곡〉, MBC 버라이어티 쇼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 , KBS 2TV 연예정보 프로그램《연예가 중계》등의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했다.
  • 2005년 12월 메사 팝콘홀에서 열린 S.E.S. 데뷔 8주년 기념 팬미팅에 이어, 2007년 12월 S.E.S. 데뷔 10주년을 맞아 국내외 팬 800여명과 함께 건국대학교에서 팬미팅을 가졌다.[54] 이 날 S.E.S.는 밴드 연주에 맞춰 S.E.S. 시절의 히트곡을 불렀고, 참석한 모든 팬들에게 팬 사인회 및 직접 제작한 흰색 면 티셔츠를 선물로 나눠주었다.[55] 팬미팅에 앞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바다는 '각자 활동하자고 세 사람이 헤어진 거지 해체는 아니다. 아직도 S.E.S.는 유효하며 언제든 다시 뭉칠 가능성이 있다'[56] 고 밝히기도 했다. 당시 데뷔 10주년 기념 앨범을 기획하여 발표하려 했으나 각자 소속사 간 이견으로 막판에 무산되는 일이 있었다.[57]
  • 바다의 3집 앨범 타이틀 곡 〈Find the Way〉뮤직 비디오에 유진가 참여했고, 2006년 2월에 열린 바다 3집 쇼케이스 현장에도 참석하여 함께 무대 위에 올랐다.
  • 2006년 7월, 바다의 첫 단독 콘서트에서 앙코르 공연 직후 유진가 함께 엔딩 무대에 올랐고,[58] 2009년 12월 바다의 두 번째 콘서트에서 유진가 깜짝 등장하여 〈I'm Your Girl〉외 2곡을 함께 불렀다.[59]
  • 2009년 8월, MBC 음악 프로그램 《쇼! 음악중심》무대에 유진이 깜짝 등장해 바다와 함께〈MAD〉안무를 선보였다.[60] 바다에게도 함께 무대에 설 것을 부탁했으나 당시 가 임신 초기라 무대에 서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61]
  • 2010년 1월 발매된 의 솔로 싱글에는 해체 이후 최초로 S.E.S. 세 멤버가 모두 참여한 곡 〈With Me〉가 수록되었다.[62] 2009년 발매된 바다의 4집 앨범에는 바다와 유진이 함께 부른 듀엣곡 〈... 나요〉가 수록되었다.
  • 2010월 4월, 의 결혼식에 바다유진이 참석하여 들러리 및 축가를 불렀다. 바다유진의 웨딩 촬영에도 함께 했다.
  • S.E.S.는 데뷔 10주년 기념 팬미팅에서 "만약 멤버간의 불화가 있거나, 사이가 소원했다면 그 점이 가장 힘들었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같이 있었고 서로 너무 사이가 좋아 위로가 됐다"며 우정을 과시하기도 했다.[63]
  • 2014년 11월 8일 MBC 주말 방송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바다가 S.E.S 멤버간의 진한 우정을 과시했다. 또한, S.E.S가 새로운 앨범을 내기 위해 슈, 유진과 함께 암암리에(?) 곡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 2014년 12월 27일 MBC 주말 방송 프로그램 무한도전 토토가에서 S.E.S의 무대가 있었다. 유진은 임신문제로 참여하지 못했으며, 객원맴버로 소녀시대의 서현이 참여했다.

기타[편집]

  • 방송의 날 50주년 기념으로 KBS홍진경의 가요광장》에서 104명의 가수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 S.E.S.가 총 35표를 얻어 여그룹 부문 1위를 차지했다. 뒤를 이어 핑클, 빅마마, 소녀시대, 펄시스터즈&서울시스터즈 순으로 2~5위를 차지했다.
  • 2010년, 음악 관계자를 대상으로 한겨레에서 실시한 최고의 아이돌 설문조사에서 4위에 선정됐다. 1위는 보아, 2위는 소녀시대, 3위는 빅뱅, 4위는 S.E.S., 5위는 동방신기가 차지했다. 1세대 아이돌로는 유일하게 순위권에 포함됐다.[64]
  • 2014년, 빌보드가 뽑은 역대 K-POP 걸그룹 중 하나에 S.E.S.가 선정됐다. 빌보드는 S.E.S.를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케이팝에 엄청난 충격을 준 그룹'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당시 남성 지배적이던 가요계에 태풍을 몰고 온 격'이었다며, '중독적인 비트에 따라 하기 쉬운 가사, 스쿨걸 이미지 등으로 쟁쟁한 히트 메이커들을 재치고 큰 인기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소개 순서는 순위와 관련이 없음을 본문에 밝혔다.[65]

음반[편집]

대한민국[편집]

출처 : 한국음악산업협회 [현,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

정규 앨범[편집]

분류 앨범명 발매일 판매량 유통사 비고
1집 I'm Your Girl 1997년 12월 24일 60만장(추정치) 킹레코드/신나라 레코드 1998년 한국음반협회 연간집계 9위
2집 Sea & Eugene & Shoo 1998년 11월 23일 651,331장 신나라 레코드 1998년 한국음반협회 연간집계 21위
3집 Love 1999년 10월 29일 760,475장 WaWa Entertainment 1999년 한국음반협회 연간집계 4위
4집 A Letter From Greenland 2000년 12월 23일 635,713장 IK-Pop 2000년 한국음반협회 연간집계 16위
5집 Choose My Life-U 2002년 2월 14일 406,528장 2002년 한국음반협회 연간집계 11위

비정규 앨범[편집]

분류 앨범명 발매일 판매량 유통사 비고
4.5집 Surprise 2001년 7월 11일 357,896장 IK-Pop 2001년 한국음반협회 연간집계 16위
리믹스 싱글 S.E.S. Remixed 2002년 8월 28일 약 2만장
5.5집 FRIEND 2002년 11월 21일 94,654장 2002년 한국음반협회 연간집계 66위

참여 앨범[편집]

프로젝트 앨범[편집]
앨범명 발매일 트랙 참여곡
Christmas In SMTOWN 1999년 12월 15일 M1 Jingle Bell
M9 Snow in Eyes
M10 Snow Christmas (Remix)
Winter Vacation In SMTOWN.com 2000년 12월 8일 M1 창밖을 봐요 (Waiting for White Christmas)
M3 Let It Snow
M10 Santa Caus Is Comin' to Town
수호천사 2001년 4월 M1 Ghetto Style
The Gift 2001년 10월 31일 DISC2/M2 내 발을 씻기신 예수
DISC3/M1 내 구주 예수님
Winter Vacation In SMTOWN.com - Angel Eyes 2001년 12월 4일 M1 Angel Eyes
M5 The First Noel
M12 Love Christmas
Summer Vacation In SMTOWN.com 2002년 6월 12일 M3 Summer Vacation
M4 Brand-new Weekend
M15 Just a Feeling (New Generation Remix)
2002 Winter Vacation In SMTOWN.com 2002년 12월 1일 DISC2/M3 주기도문
피처링[편집]
앨범명 발매일 트랙 참여곡
신화 2집《T.O.P.》 1999년 4월 14일 M2 Yo! (악동보고서) (Feat.바다)
1집《나쁜 남자》 2002년 5월 11일 M8 너처럼 (Feat.바다)
V6 일본 싱글 《Feel your breeze/one 2002년 6월 12일 M2 one (Japanese version) (Feat.)
M3 Let's sing a Song (Japanese version) (Feat.)
M4 one (Korean version) (Feat.)
M5 Let's sing a Song (Korean version) (Feat.)
V6 한국 싱글 《one》 2002년 6월 12일 M1 one (Korean version) (Feat.)
M2 Let's sing a Song (Korean version) (Feat.)
M3 one (English version) (Feat.)
M4 Let's sing a Song (English version) (Feat.)

VCD, 비디오[편집]

분류 앨범명 발매일 유통사
VCD,비디오
Dreams Come True 1999년 9월 18일 Sego Entertainment
VCD
SES nCD 1999년 12월 23일 Palette Music
비디오
2000 SES First Concert 2000년 6월 16일 Sego Entertainment
VCD
2000년 6월 23일

사진집[편집]

앨범명 발매일
Dreams Come True 1999년 1월 28일
With Love 2000년 1월 9일

일본[편집]

출처: 일본 오리콘 차트

싱글[편집]

분류 앨범명 발매일 오리콘
최고순위
판매량 타이업
싱글 1집 めぐりあう世界 1998년 10월 21일 37위
13,780장
NTV 「빙글빙글 나인T나인」엔딩 테마
Remix I'm your Girl 1998년 12월 10일 82위 3,090장
싱글 2집 夢をかさねて 1998년 12월 21일 83위 2,470장 후지TV 「상쾌! 히데타민」엔딩 테마
싱글 3집 (愛)という名の誇り 1999년 6월 23일 60위 8,930장 후지TV 「사랑보이 사랑걸」엔딩 테마
싱글 4집 T.O.P (Twinkling of Paradise) 1999년 10월 27일 56위 4,840장
싱글 5집 Sign of Love/Miracle 1999년 12월 8일 78위 3,280장 NTV 「제78회 전국 고교축구 토너먼트 선수권 대회」이미지송

NTV 「오쟈맘보」엔딩 테마

싱글 6집 Love ~いつまでもオンジェ·カジナ~ 2000년 4월 21일 100위 2,030장 NTV 「주간 스토리랜드」엔딩 테마
O.S.T. 海のオーロラ 2000년 7월 21일 애니메이션 「바다의 오로라」주제곡
싱글 7집 Lovin' You 2000년 8월 2일 NTV 「주간 스토리랜드」엔딩 테마

앨범[편집]

분류 앨범명 발매일 레이블 오리콘
최고순위
판매량
정규 1집 REACH OUT 1999년 3월 10일 VAP 50위 10,290장
베스트 Prime -S.E.S The Best- 2000년 3월 15일 64위 3,750장
정규 2집 Be Ever Wonderful 2000년 5월 24일 93위 2,760장
베스트 HERE & THERE - S.E.S Single Collection 2001년 3월 16일
S.E.S. BEST 2002년 7월 10일 avex
BEAUTIFUL SONGS 2003년 6월 25일

라이센스[편집]

분류 앨범명 발매일 레이블
한국 4집 A Letter From Greenland 2001년 6월 13일 avex
한국 1집 S.E.S. 1 2001년 8월 22일
한국 2집 S.E.S. 2
한국 3집 S.E.S. 3 Love
한국 5집 Choose My Life-U 2001년 5월 2일

DVD[편집]

분류 앨범명 발매일 레이블
DVD S.E.S VIDEO CLIPS 2000년 8월 23일 VAP
BRILLIANT CLIPS 2003년 6월 25일 avex

대만[편집]

한국 앨범[편집]

분류 앨범명 발매일 레이블
베스트 I'm Your Girl 1999년 2월 5일 Rock 레코드
I Love You 1999년 12월 10일
한국 3집 Love avex taiwan
Love (CD+VCD) 2000년 3월
한국 4집 來自格陵蘭的信 2001년 1월 3일
來自格陵蘭的信(來台紀念版) 2001년 7월 20일
한국 4.5집 Surprise 驚喜 2001년 7월
한국 5집 Choose My Life-U 活出自我 2002년 3월 14일
한국 5.5집 FRIEND 三人行 2002년 12월 1일

일본 앨범[편집]

분류 앨범명 발매일 레이블
싱글 1집 重逢世界 1999년 1월 26일 Rock 레코드
싱글 2집 堆積夢想 1999년 3월 11일
일본 1집 REACH OUT 1999년 4월 8일
싱글 3집 以愛名的榮耀 1999년 7월 26일
싱글 4집 閃亮的天堂 1999년 10월 27일
싱글 5집 Sign of Love/Miracle 1999년 12월 8일
일본 2집 Be Ever Wonderful 永遠美麗 2000년 6월 16일
베스트 豪華版日文單曲全紀錄 2000년 7월 5일
S.E.S Single Collection 2001년 9월 1일 Winson(HK)

수상 경력[편집]

연도 수상 내역
1998년
1999년
2000년
  • 제1회 대한민국 영상대전 - 가수부문 포토제닉상
2001년
2002년
  • 수원지검 청소년 범죄근절 공로패
  • 한일월드컵 홍보대사 위촉
  • Mnet Music Video Festival - 여성그룹부문 최고 뮤직비디오상
2005년

공중파 가요 프로그램 1위[편집]

연도 수상 내역
1998년
1999년
2000년
2001년
2002년

광고[편집]

텔레비전[편집]

  • 1998년 농심 새우깡 (기차 여행 편)
  • 1998년 대한민국 홍보 CF
  • 2000년 에뛰드(Etude) (Orange Flavor, 리얼 파우더, 시너지아이즈마스카라, 컬러 토핑 편)
  • 2000년 동아오츠카 화이브 미니 (깨끗한 피부와 친하다 편)
  • 2001년 동아오츠카 화이브 미니 (속 좋은 여자가 되자 편)
  • 2001년 일본 관광청 홍보 CF
  • 2002년 유니레버 커레스 바디워시

지면[편집]

  • 1998년 7nani (의류)
  • 1999년 롤롤 (의류)
  • 2000년 일본 JustSystem megavi
  • 2000년 LG 테크폰
  • 2002년 롯데 캐논
  • 2002년 JVIM CLUB (의류)
  • 2002년 FRJ (의류)

각주[편집]

  1. 한겨레 (2010년 9월 21일). “[100beat.com 아이돌 특집] 최고의 아이돌과 최악의 아이돌은 누구?”. 한겨레. 
  2. 강명석 (2010년 5월 24일). “유영진 10 LINE”. 10 아시아. 
  3. Mnet 레전드 100 아티스트 제작팀 (2013.09.25). “레전드 100 아티스트 - 걸그룹 시대를 연 원조요정”. 한권의책. 
  4. 이의경, 김성의 기자 (2006년 10월 27일). “연예기획 안양·계원예고 스타탄생 양대산맥”. 일간 스포츠. 
  5. 한지윤 기자 (2010년 10월 6일). “바다 “이수만이 대학등록금 전액 지원했다”고백”. 뉴스엔. 
  6. 유지영 기자 (2006년 2월 17일). ““바다가 제 노래 부르고 가수 됐대요.””. 해럴드 생생뉴스. 
  7. “놀라운 과거! SES의 바다 홍경민, 우리는 원래 한팀!!”. 스타이야기. 
  8. [‘무릎팍’ SES 유진, 이수만 직접 캐스팅했다 “스타 메이커 캐스팅 디렉터 김수현”] |url=은 스킴(http:// 등)을 포함하여야 함 (도움말). 뉴스앤. 2013년 4월 26일. 
  9. “스타 메이커 캐스팅 디렉터 김수현”. 한국일보. 
  10. 김미영 기자 (2008년 1월 21일). “유진 슈 바다 SES 데뷔과정 셋다 달랐다”. 뉴스엔. 
  11. 고경석 기자 (2009년 10월 26일). “SES 슈, 데뷔 전 '배신'에 god 데니안-손호영에게 공개사과”. 아시아 경제. 
  12. 김경민 기자 (2007년 12월 9일). “SES 유진 충격고백 “데뷔 전 슈가 잠적했었다””. 뉴스엔. 
  13. 이경호 기자 (2010년 9월 28일). “바다 "S.E.S 시절 365일 연습, 속옷 짜면 땀이 주륵". 티브이데일리. 
  14. 뉴스엔 엔터테인먼트부 (2009년 6월 25일). “티티마 소이 “원래 SES 연습생, 대학가려 탈퇴””. 뉴스엔. 
  15. 김갑식 기자 (1998년 12월 31일). “돌아본'98 가요 김현정 S.E.S 핑클…새별들'번쩍 번쩍'”. 동아일보. 
  16. “표절논쟁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주니어. 1998년 5월호. 
  17. Cho Hyun Jin (1998년 5월 16일). “The Next Sounds You'll Hear New Asian Talent”. Billboard. 
  18. 정재우 기자 (1998년 12월 3일). “'세 요정' SES 신바람…2집앨범 52만장 주문”. 스포츠 서울. 
  19. “S.E.S에 관한 문답들”. 파스텔. 1998년 11월호. 
  20. “유진의 인터뷰”. 파스텔. 1999년 1월호. 
  21. 이유현 기자 (1998년 12월 29일). “[김희선] 올해의 미스 네티즌”. 스포츠조선. 
  22. 박양수 기자 (2000년 12월 28일). “S.E.S 유진,슈 대학입학 취소 위기”. 스포츠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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