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26 퍼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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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26 퍼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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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2차 대전 당시 M26퍼싱
종류 중(重)전차
개발국가 미국
배치년도 1945년 ~ 1960년대
역사
개발년도 1944년
생산기간 1945년
사용국가 US flag 48 stars.svg 미국
사용된 전쟁 제2차 세계 대전, 한국전쟁
생산 대수 2,600대
일반 제원
승무원 5명 (지휘관, 사수, 장전수, 운전수, 부운전수)
길이 8.65m
높이 2.78m
2.62m
중량 41.9톤
공격력
주무장 90mm M3포 1문 90발
부무장 7.62mm M1919 기관총 2정
기동력
엔진 포드 GAF 6002B 8기통 수냉가솔린
현가장치 수직현가장치 (VVSS)
방어력
전면 장갑 145mm
측면 장갑 91mm
상부 장갑 34mm

M26 퍼싱은 미국이 1940~50년대 화력을 증강하기위해 운용하였던 전차다. 이름은 원래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유럽에 파견된 미군을 지휘한 존 퍼싱 장군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설계[편집]

미국은 제2차 세계 대전M4 셔먼을 주력 전차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튀니지 전투, 이탈리아 전역에서 독일의 신형 중전차인 타이거 전차를 전면에서 상대할 수 없다고 판단되었다. M4 셔먼은 주목적은 보병지원이었고, 중전차는 가볍고 강력한 화력을 지닌 M10, M18 같은 구축전차를 사용하였다. 그래서 당시 미국 중전차의 모델은 주로 보병지원 전차 밖에 없었다. 당시 프로토 타입인 90mm 대전차포를 탑재한 T26, 장갑강화형인 T26E1을 1944 년 5월에는 총40량이 완성되었으나 대량생산을 못하고있었다.

당시 타이거 전차의 위험을 알고있었던 데봐즈 중장은 유럽 반공 작전 개시까지 “장갑도 화력에서도 경쟁할 수 있는 중전 T26E1를 양산, M4 전차 5량에 대해 1량을 배치해야 된다”고 주장을 하고있었다. 1944년 프랑스에서는 M4 셔먼 승무원 사망률이 32%나 되었고, 타이거 전차나 적의 대전차 무기에 의한 M4 셔먼의 손실이 심각한 수준이었다.

2차대전에서 투입[편집]

유럽[편집]

1944년 12월 독일의 마지막 역습인 벌지 전투킹 타이거전차가 출연해 M4 셔먼 전차들을 줄줄이 격파해 나갔다. 전차병들 사이에서 타이거 전차 공포증이 만연하였다. 결국 1945년 1월 앤트워프 항구에 M26이 전선에 투입되었다. 미군은 전선에서 많지는 않지만 오랜 전쟁으로 약화된 독일의 타이거 전차판터 전차를 격파하였다. 1945년 3월 6일 퀄른에서는 M26 퍼싱이 여러대의 판터 전차타이거 전차를 격파시켰으나 쾰른 북쪽의 닐(Niehl)에서 매복해 있던 나스호른의 88mm(L/71)포를 맞고 격파되기도 했다.

오키나와 전투[편집]

한편 오키나와에서는 M4 셔먼의 손실이 커지자 1945년 5월부터 M26퍼싱을 투입해 사용하려고 했으나 5월 31일에 본토에서 수송선에 적제하여서 8월 4일까지 배에서 못내려서 실전기록은 없고 유일하게 모습을 보인것은 9월 7일에 류쿠제도의 일본군 항복식때 도열된 수준이었다고 한다.

한국전쟁에서 투입[편집]

부산에 상륙한 M26 퍼싱

한국전쟁이 시작되자 처음 미군은 일본 주둔 미군이 사용하고 있었던 경전차인M24 채피를 투입하였으나, 북한군의 강력한 T-34/85에 의해 줄줄이 격파되었다. 이에 미군은 자국 병기창에 있는 M26A1을 급히 한국으로 투입하였다. 1950년 7월 부산에 도착한 M26A1은 급히 낙동강 전선에 투입되었다. 당시 M26A1는 북한군의 T-34/85보다 성능이 뛰어나서 미군의 공격에 앞장을 섰다. 하지만 1950년 12월 중공군의 육탄공격으로 인해 미해병 1사단과 보병2사단의 M26A1들은 괴멸적 타격을 입었다. M26A1의 진짜 적수는 한국전쟁 중엽에 들어서 소련의 원조를 받은 중공군이 중전차인 IS-3라고 할 수 있다. 한국전쟁 이후 M26은 더이상 사용되지 않았고, 대신 신형 전차인 M46 패튼을 사용하게 되었다.

참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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