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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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에이치오티)
기본 정보
국가 대한민국
장르 댄스, 힙합,
활동시기 1996년 9월 ~ 2001년
웹사이트 공식 웹사이트
구성원
문희준 (리더, 보컬)
장우혁 (랩)
토니안 (보컬,랩)
강타 (메인보컬)
이재원 (랩)

H.O.T.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활동했던 대한민국의 남성 5인조 보이 댄스 그룹이다. 이후에 등장한 젝스키스, S.E.S., 핑클, 신화 등과 함께 한국 아이돌그룹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한국의 많은 가수 그룹처럼, 그들의 그룹명도 영문 두문자로 이루어져 있다(H.O.T. 이후 많은 가수들이 이 경향을 따르는 것이 유행이 됨). H.O.T.는 "High-five Of Teenagers". 곧 "십대들의 승리"를 의미한다. 대표곡으로는 데뷔곡인 〈전사의 후예〉를 포함해, 〈캔디〉, 〈늑대와 양〉, 〈행복〉, 〈we are the Future〉, 〈열맞춰!〉, 〈빛〉, 〈아이야!〉, 〈투지〉, 〈환희〉, 〈Outside Castle〉, 〈for 연가〉, 〈그래 그렇게〉 등이 있다.

목차

[편집] 역사

[편집] 그룹을 결성하기까지

H.O.T.는 한동안 가수와 MC로 활약했던 sm 기획(현Sm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대표에 의해 현진영과 한동준,유영진에 이어 탄생한 가수이다. 그들의 노래는 랩, 백스트리트 보이스식의 발라드, 댄스, 그리고 99년에 시도했던 오케스트라를 가미한 록까지 그 장르의 폭이 넓었다. 5명의 고교생 - 강타, 문희준, 이재원, 토니안, 장우혁 - 으로 기획사의 철저한 계획에 의해 준비되었다. [1]

그룹에 참여하게 된 첫번째 멤버는 롯데월드 매표소 근처에서 방황하고 있던 안칠현(강타)이었다. 회사 매니저가 그의 춤과 노래실력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아 멤버가 될 것을 제의했다. 두번째는 회사 자체 오디션을 통해 뽑히게 된 문희준이었다. 희준은 그의 친한 동생 이재원을 오디션에 참가시켰고, 재원 역시 오디션을 통과했다. 이후 네번째로 참여하게 된 멤버는 장우혁이다. 서울에서 열린 댄스컨테스트에서 1등을 한 그에게 멤버 제의가 들어왔고, 그가 승락함으로써 계약이 체결되었다. 마지막으로, 토니안과 그의 가까운 친구 앤디가 미국에서 이수만 대표에게 발굴되었는데, 앤디의 부모님이 갑자기 승락을 철회하면서, 앤디는 H.O.T.에 참여하지 못하고 신화에 속하게 되었다.

[편집] 콘서트와 상품적 가치

그들은 한국 가수로는 최초로 5만을 넘는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서울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콘서트를 하였다.[2][3] 또한 2001년 2월 그들의 마지막 콘서트 티켓 예매 때에는 예매시작 10분만에 5만여 표가 전부 매진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실제로 H.O.T. 공연이 열리는 날이면 주변 교통이 순식간에 마비되는 일들이 많았으며, 그들의 마지막 콘서트가 열렸던 2001년 2월 27일에는 서울 지하철이 자정까지 연장운행했으며, 선착순으로 좌석배정이 되었던 이 콘서트에서 열정적인 팬들은 콘서트 시작 며칠 전부터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주경기장 앞에서 단체로 노숙하기도 했다.

그들은 가수로서 뿐만 아니라 하나의 상표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실제로 음료수, 스티커, 책, 향수, 인형, 팬티, 심지어는 DNA목걸이 등 거의 모든 상품에 그들의 캐릭터를 이용해 부가가치를 올리는 데 성공하였다.[4](한불화장품의 'H.O.T. with perfume'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스타의 이름을 빌린 향수제품 출시가 이어진 현상이 하나의 예). 이를 두고 '가수를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이용한다'고 지적하는 안티들의 비판도 있었다.

참고로 2000년 1월 H.O.T.의 베이징 공연때 "한국 대중문화붐"을 뜻하는 "한류(韓流)"라는 명칭이 중국 언론들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다. [5] 1997년 CCTV 채널1에서 방영된 드라마 "사랑은 뭐길래"이후 일어난 한류열풍은 H.O.T., 클론 등 가수들의 인기까지 더해져 더욱 커다란 반향을 일으겼으며, 특히 H.O.T의 베이징공연은 중국 청소년들 사이에 "H.O.T.패션 무조건 따라하기" 풍조를 가져왔을 만큼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6]그들은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국외의 관심을 넓히는 데 일조했는데, [7] 특히 그들의 노래에 담긴 메시지는 중국 청소년들에게 큰 문화적 충격을 주었다. 현실에 대한 불만과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 특히 청소년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가사내용에 중국 청소년들은 크게 공감했다.[8]

[편집] 해프닝

따라서 그들의 인기만큼이나 그들을 둘러싼 해프닝도 많았는데, 실례로 1998년 12월 31일에는 H.O.T. 팬클럽 회원과 젝스키스 팬클럽 회원들간에 시비가 붙어 편싸움을 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9] 그들은 젝스키스와 같은 라이벌 그룹과 경쟁하며 성장했으나 실제로는 우정이 돈독한 동료들이였다. NRG가 김환성의 죽음 후 네번째 앨범을 발매했을 때, 강타는 타이틀곡 〈비(悲)〉를 작곡해주었다.

[편집] 뮤직비디오

H.O.T.의 뮤직비디오는 타이틀곡의 분위기에 맞게 언제나 어둡고 비장한 분위기가 주를 이루었다. 그들에게 대상의 영예를 안겨준 〈빛〉의 뮤직비디오에서 그들은 직접 연기를 했으며, 마지막 히트곡인 〈For 연가〉에서는 드라마 <가을동화>의 장면들을 사용했다. 이때부터 드라마 클립이 사용된 뮤직비디오가 제작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우리들의 맹세〉 뮤직비디오에서 애니메이션을 최초로 차용하여 천계영 작품으로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기도 했다.(대한민국에 전례가 없었던 전량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이다.) [10]

[편집] 영화

4번째 앨범 발매 후, 그들은 영화 《평화의 시대-Age of Peace》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11] [12] 이 영화는 한/일 합작으로 제작되었고, 영화가 개봉함과 동시에 배경음악과 H.O.T.의 주제곡이 담긴 사운드트랙 앨범이 발매되었다. 그들의 앨범 홍보와 더불어 일본에서 영화 시사회를 가졌다. 영화 속에서 다섯멤버의 모든것은 컴퓨터로 제작되었으며, 영화를 위한 사운드트랙의 일부를 멤버들이 작사,작곡했다. 그 해 1999년, 그들은 KMTV에서 대상을 수상했으며, MBC에서 단독 쇼프로그램(Log in H.O.T.)이 제작, 방송되기도 했다.

[편집] H.O.T.가 가지는 의의

[편집] 작사 작곡과 춤

많은 대중들에게 그들이 단순히 '10대 청소년들을 겨냥한 아이돌그룹'으로 기억되는것과는 달리, H.O.T. 멤버들은 그들의 앨범을 제작하는 데 작사와 작곡, 편곡을 통해 앨범의 많은 부분에 직접 참여했다. 세번째 앨범 《Resurrection: 부활》의 발매로부터, 그들은 대부분의 가사를 직접 쓰기 시작했고, 그들의 마지막 두 앨범인 《아이야!》와 《They Are nothing Different with Us》에서는 앨범 전곡의 작사, 작곡은 물론 편곡,프로듀싱까지도 직접 해내는 놀라운 음악적 발전을 보였다는 점에서 H.O.T.는 단순한 기획사의 꼭두각시가 아닌 '아이돌은 제비가 될 수 없다'라는 대중의 선입견을 깨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멤버였던 문희준과 장우혁은, 그들의 노래에 어울리는 안무를 직접 만들었으며, 그들의 뮤직비디오에 현란한 솔로 댄스를 선보일 만큼 춤 실력에 조예가 깊었다. (2집 'WE ARE THE FUTURE' 활동 당시) 10대 청소년으로 구성된 아이+돌 그룹으로서, H.O.T.는 그 당시 10대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고 문제가 되었던 여러 사회 문제들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노래들을 발표하여 그 당시 10대들의 많은 공감을 얻어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이를테면 가수들이 군입대를 미루는 것,또는 면제받는 것, 자살, 낙태, 외설, 범죄, 마약 등) 이는 다른 아이돌 그룹들 젝스키스, 동방신기를 제외한 아이돌에게 가지고 있지 않던 H.O.T. 고유의 특징이었다.

[편집] 인기 비결

이들의 인기 비결은 비단 춤잘추고 노래 잘하는 아이돌 스타 그룹과는 확실히 차별화된 전략으로 출발한 데에 있다. 처음에는 그저 불쌍한 외모, 개성 없는 멤버들의 개인별 인기로 시작했을 지 몰라도 이들의 팀웍은 그 어떤 팀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확실하며 멤버들 개개인 역시 한자리에 머무르려고 하지 않았다. 비록 5집활동 후기의 강타의 교통사고 사건 등 약간의 흠이 있었지만 그들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10대의 아이콘이었고, 대중적인 음악과 코디로서 10대의 눈과 귀를 오랫동안 사로잡았었다. 그들에 대한 혹평은 꽤나 많지만, 그들이 한국대중음악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편집] 표절

1집 표지사진이 표절논란에 휘말렸으며, 곧이어 타이틀곡 "전사의 후예"가 사이프레스힐의 "i ain`t goin` out like that"의 표절이라는 논란에 휩싸이면서 어쩔 수 없이 후속곡 "캔디"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 2집 "행복" 역시 표절논란에 휩싸였다. 표절이 아니라 샘플링이라는 식으로 해명을 하긴 했으나 앨범어디에도 샘플링을 했다는 내용과 어떤 샘플을 이용했는 지에 관한 설명이 없었기 때문에 표절과 다름이 없는 것이었다. 3집 "열맞춰"는 RATM의 "killing in the name"과 표절논란이 있었고[13], RATM측은 H.O.T.를 표절로 고소하겠다는 말까지 했었으며, 법정싸움이 이득이 없다는 판단하에 이를 취소한 뒤에도 자신들의 공연에 이 사건을 희화하하는 퍼포먼스를 여러 번 한 바 있다. 또 4집 "코리안 프라이드"는 DJ Quik의 "Speed" 와 표절논란이 있기도 하였다. [14]

당시 기준도 그렇고 현재 기준도 그렇고 명확히 표절이라고 정의내릴 수는 없다. 당시 기준은 8마디 이상 같으면 표절인데, 이말을 뒤집으면 7마디가 같고 1마디만 조금 달라도 표절이 아니라는 뜻이 되며, H.O.T.는 표절논란 외에도 짜집기로 더 많은 비난을 받았다. 어쨌든 한국에 공식적으로 표절로 인정받은 노래는 건국이래로 단 한곡도 없다. 표절곡으로 널리알려진 룰라의 "천상유애"나 김민종의 "귀천도애" 역시 표절시비가 일자 뮤지션 스스로 표절시비에 대한 사죄의 이유로 활동을 중단하거나 사과를 한 것이지, 공식적으로 표절로 단정지어진 곡은 아니다. 현재의 표절기준은 과거의 8마디조차 없어져서 원작자가 고소를 해서 한국의 법정에서 표절판결을 받는 방법밖에 없지만, 현실적으로 여기까지 온 바는 단 한번도 없다. 오히려 원작자가 한국에서 이미지가 안좋아질 염려가 있고, 배상금도 많이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고소를 실제로 한 적은 한번도 없다.

[편집] 도덕성 시비

표절논란 이외에도 과연 자작곡이라고 주장하는 곡들이 (표절이든 아니든) 자작을 하긴 했는지에 관해서도 논란이 많다. 먼저 본격적으로 자작을 시작했다고 알려진 4집 아이야의 경우 당시 씨랜드화재사건을 추모하는 내용이라고 밝힌바 있다. 씨랜드화재사건은 6월30일에 일어났고 이것이 사회적으로 문제가된 것은 그사건이 있고 수일이 지난 뒤 부터다. 4집이 발매된 날은 9월 15일이다. 그렇다면 앨범의 주제를 잡고, 앨범에 수록된 곡들을 작곡하고 앨범녹음등 을 하는데 까지 최대기한으로 잡아도 2달 반만에 끝마쳤다는 말인데, 상식적인 선에서 이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가지고 그런목적으로 제작된 앨범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당시이슈가 된 사건을 의도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이나, 혹은 앨범을 성의없게 만들었다거나, 표절이나 짜집기라는 비난을 받게 되었다.

1집의 전사의 후예는 학교폭력을 비판한 곡이라고 하지만, 알려진 바에 따르면 H.O.T. 멤버들의 학창시절은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알려져있다. (강타와 가수 이지훈이 친구가 된 이야기가 있다. 이지훈이 강타의 고등학교에 패싸움을 하러 갔는데 먼저 선빵을 얻어맞고 코피흘리던 이지훈을 강타가 봐주면서 둘이 친하게 됐다고 이지훈이 토크쇼에 나와 밝힌바 있다.)소위 껄렁하거나 불량스러웠다는 말이 많다. 과연 그들이 때린 쪽에 가까웠을까? 아니면 맞은 쪽에 가까웠을까? 애초에 사회비판가사를 남이 써준다는 것에 대한 비난도 많았지만 때린 쪽이 이런식의 노래를 불렀다는 것에 대한 비판도 많았다. 더욱이 토니안의 경우 미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고 알려져있는데 과연 한국의 학교폭력에 대해서 뭘알고 뭘 이해하고 저노래를 불렀을까에 대한 비난도 많다.

[편집] 립싱크

H.O.T. 는 대부분의 활동기간동안 라이브를 거의 하지 않았다. 심지어 본인들의 콘서트에서도 립싱크를 하는 모습을 자주보여주었고, 논란이 되었던 "마이클잭슨과 친구들" 내한공연 당시 심지어 가수가 아닌 영화배우 스티븐시걸도 본인이 기타를 치면서 라이브로 노래를 불렀음에도 H.O.T. 와 S.E.S만이 공연에서 유이하게 립싱크를 하였고, 이것은 국제적으로 비난을 받았다.

[편집] 영화 "평화의 시대"

네이버와 다음의 관객평가에서 "클레멘타인",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 "긴급조치19호" 등과 함께 역대 평점 최하위를 다투고 있으며, 감독을 맡았던 로렌스 리는 이영화 감독을 맡은 후 은퇴했다. 70억이라는 제작비에 비해서 형편없는 CG그래픽, 단순하고 어이없는 각본으로 비판을 받았으며, 인기가수라곤 하나 배우로서 신인인 H.O.T. 에게 10억이나 되는 출연료를 지급한 것 역시 비판을 받았다. 28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에 비해서 영화관람료가 너무 비싸다는 지적도 받았다.

[편집] 그룹 해체와 솔로활동

[편집] 그룹의 해체

2001년 5월 강타와 문희준은 SM 엔터테인먼트와 재계약을 맺었으나 장우혁, 이재원, 토니안이 소속사를 옮기면서[15] 당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H.O.T.는 사실상 해체되었다. 멤버들의 SM 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만료가 임박한 시점에서 인세문제를 비롯한 여러 사안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오며[16][17] 해체설이 나돌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며[18], 인세 문제등의 각종 루머들이 원인이라 짐작되지만 해체의 정확한 이유는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18]분명한 것은 해체당시 문희준, 강타 등 SM에 남게된 멤버들과 토니안, 이재원, 장우혁 등 SM을 떠나게 된 멤버들의 해체사유와 SM회사에 대한 말이 각각 다르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곧 한쪽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실 H.O.T.가 5집까지 활동하리란 것은 암묵적으로 예정된 일이었다. H.O.T. 멤버들 개개인의 선택에 대해서는 언급할 수 없으나 적어도 이수만의 생각은 확실히 그러했고, 모 여성지와의 인터뷰에서 흘렸다가 일파만파로 퍼져나간 문희준 강타 솔로설 역시 그의 계획 중 일부일 뿐이었던 것이다. 비교적 인지도가 낮고 타멤버 대비 재량이 부족해 보였던 토니안을 내보내고 문희준과 강타, 장우혁, 이재원을 남기려던 이수만의 계획은 장우혁과 이재원의 탈퇴 선언으로 틀어지고 말았다.

[편집] 솔로 활동

팀 해산 이후, 강타와 문희준은 SM 엔터테인먼트와 재계약을 선언하며 솔로앨범을 발표해 꽤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다. 강타는 주로 소울과 R&B를 중심으로 음악활동을 시작했고, 문희준은 처음에는 강타와 비슷한 R&B로 출발했으나, 1집앨범 중반 이후에는 록음악에 도전하며 4개의 정규앨범을 발매하며 경력을 쌓아나갔다. 희준은 그의 아이돌 스타 이미지에 가려 싱글 활동 초 날카로운 비판과 악성 루머에 시달렸으나 재대 후 꾸준한 활동으로 다시금 인기를 얻고잇다..

SM 엔터테인먼트에서 나온 장우혁, 토니안, 이재원은 프로젝트 그룹 jtL을 결성했으나 한동안 전 기획사의 보이콧에 시달리며 공중파, 케이블 음악방송에 한동안 출연하지 못했으며, [19][20] [19] 그 해 2001년 통산 음반판매량 2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가요시상식에 참가조차 못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세 장의 정규앨범과 콘서트앨범을 내며 성공적인 활동을 했다. 또 2003 MTV ASIA AWARD 에 한국대표로 참석해 '한국 최고 인기 아티스트상'을 받기도 했다.(2002년에는 강타가 수상[21]) jtL 이후 세 명은 각각 솔로 앨범을 내어, 모든 멤버가 개별 활동을 하게 된다. 장우혁은 그가 이끄는 댄스 아카데미 "Newest"를 설립하고 운영했는데, [22] 이 역시 SM 엔터테인먼트의 직간접적 보이콧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편집] 근황

현재 리더였던 문희준은 2005년 SM 엔터테인먼트을 떠나 PS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해 4집앨범을 발매했고, 고별콘서트 이후 군에 입대한 후 2007년 11월 제대해 SidusHQ로 소속사를 옮기고 스페셜 앨범을 발매해 〈Obsession〉이라는 곡으로 바쁜 활동 중이다. 장우혁은 2집앨범 활동 후 2007년 4월 입대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공익근무요원으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다. 토니안은 TN 엔터테인먼트와 스쿨룩스, 샤인에니스를 경영하고 있는 CEO이자 가수활동을 병행하고 있으며 최근 가수 에반의 앨범을 제작하고, 싱글 《우두커니》를 발매했다.그리고 2008년 그도 군에 입대하여 국방부 소속 군인위문단에 소속 되어있다. 범 중화권에서 폭넓은 인기를 얻고 있는 강타는 2008년 5년만에 한국에서 앨범《Eternity-永遠》을 발매하고 동명의 콘서트를 가진 후 4월 현역 입대했다. [23] 강타는 2년 후 전역한 뒤 가수로 컴백할 계획이며 한국과 중국에서 후배 양성에도 힘을 쏟을 예정이다. 그룹의 막내인 이재원은 2006년 12월 솔로 데뷔이후 2번째 콘서트를 했으며 정규 2집앨범을 준비하던 중 2008년 12월 19일 가수 지망생을 준강간한 혐의로 구속되었으나 합의 후 풀려났다. 이후 공식적인 활동을 자제하다가 2009년 5월 6일 현역으로 군에 입대하였다.

[편집] 멤버

  • 안칠현(安七炫) : 래퍼, 리드 보컬

1979년 10월 10일(음력)생. 동국대학교 연극영상학과 졸업. 예명은 강타.

  • 문희준(文熙俊) : 리더, 래퍼, 보컬

1978년 3월 14일생, 서울예대 방송연예학과 졸업, 독특한 장신구를 착용하던 H.O.T.의 문희준은 4번째 앨범에서 마치 프레디 크루거(Freddy Krueger)의 스타일과 흡사한 날카로운 집게발 장갑을 착용했다. H.O.T.의 5번째 앨범 자켓에서는 진홍색 머리를 했다. 토니안이 지어준 기즈모란 별명이 있다.

  • 안승호(安勝浩) : 래퍼, 메인 보컬

1978년 6월 7일생, 동국대 연극영상 학과 졸업. 그는 본명인 안승호라는 이름보다 영어 이름이자 예명인 토니안(Tony An)을 더 많이 사용하였다. 귀가 커 원숭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는 대부분의 영어 랩을 하였으며, 몇몇 곡에서는 메인 보컬의 역할을 했다.

  • 장우혁(張佑赫) : 리드 래퍼 ,서브보컬

1978년 5월 8일생, 백제예전 졸업. 문희준과 함께 H.O.T.에서 안무를 담당하였다. 장우혁은 대부분 거칠고 강한 랩을 주로 맡았는데, 그의 랩 스타일은 대부분의 노래에서 〈아이야〉에서와 같이 날카롭게 소리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그는 〈환희(It's Been Raining Since You Let Me)〉같은 곡에서는 재원과 비슷하게 속삭이듯 랩을 하기도 했다.

  • 이재원(李在元) : 래퍼, 서브 보컬

1980년 4월 5일생, 경기대 연극영상 학과 졸업. 재원은 멤버들 중 나이가 가장 어리다. 그는 데뷔 당시 중학생이었는데, 중학생이 가수로 데뷔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재원은 그룹에서 보컬과 랩을 동시에 맡았으나 그의 역할은 대부분 랩이었다.

[편집] 디스코그래피

[편집] 정규 음반

  • 1996년 - All Kinds of Violence
  • 1997년 - Wolf and Sheep:늑대와 양
  • 1998년 - Resurrection: 부활
  • 1999년 - Iyah!: 아이야!
  • 2000년 - They Are Nothing Different with Us

[편집] 비정규 음반

  • 2000년 - Age of Peace OST; OP.T(OPeration Takeover)

[편집] 콘서트 음반

  • 1999년 - Greatest H.O.T. Hits-Song Collection Live Album
  • 2000년 - 99 Live In Seoul
  • 2001년 - H.O.T. Forever - 2001 Live Concert In Seoul Olympic Stadium

[편집] 활동곡

  • 1996년 - 전사의 후예 (갱스터 풍의 곡으로 학교 폭력의 피해를 고발한 노래, 표절시비에 휘말림)
  • 1996년 - 캔디 (역시 표절시비가 있었음)
  • 1997년 - 늑대와 양 ('늑대 빌어먹을 짐승같은 놈들'이라는 가사가 심의에 걸려 '빌어먹을' '놈들'이 방송시 삭제됨)
  • 1997년 - 행복 (표절시비가 있었음)
  • 1997년 - We Are the future(1998년 MTV VMA 최고 해외 뮤직비디오 수상)
  • 1998년 - 열맞춰! (Rage Against the Machine의 Killing in the name 표절시비가 있었으며 RATM측은 H.O.T. 가 표절을 했다고 하여 고소를 하려고 했으나 포기하였다. 이후 자신들의 공연에서 H.O.T.를 조롱, 희화화 하는 모습을 자주보여주었다.)
  • 1998년 - 빛
  • 1999년 - 아이야! (도덕성 논란과 표절시비)
  • 1999년 - 투지
  • 1999년 - 환희
  • 2000년 - Outside Castle/A Castle Outsider (표절시비가 있었음)
  • 2000년 - 그래 그렇게

[편집] 수상 경력

  • 1996년 -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 골든디스크 부문 SKC 신인상
  • 1996년 - KMTV 가요대전 - 인기가수상, 시청자상
  • 1996년 - SBS 10대 가수 가요대전 신인가수상
  • 1997년 - 서울 가요대상 올해의 최고 가요 대상
  • 1997년 -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 골든디스크상 대상
  • 1997년 - KMTV 가요대전 대상
  • 1997년 - KBS 가요대상 올해의 가수상
  • 1997년 - SBS 가요대전 대상
  • 1997년 - MBC 가요제전 가수상
  • 1998년 -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 골든디스크 부문 본상
  • 1998년 - KMTV 가요대전 대상
  • 1998년 - 한국경제소비자대상 음반부문
  • 1998년 - 제 9회 서울가요대상 대상
  • 1998년 - SBS 가요대전 대상
  • 1998년 - KBS 가요대상 대상
  • 1998년 - MBC 가요제전 대상
  • 1999년 -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대상
  • 1999년 - MTV VMA 'Korean Viewers Choice' 부문
  • 1999년 - M.net 영상음악대상 시청자 최고 인기상
  • 1999년 - M.net 영상음악대상 그룹부문 최우수 뮤직비디오상
  • 1999년 - KOREA BEST DRESSER - 남자 가수 부문
  • 1999년 - KMTV 가요대전 ARS 인기상, 네티즌최고인기상, 최우수곡상, 최우수 댄스 가수상
  • 1999년 - 문화관광부장관 표창 선행연예인(대표 : 문희준)
  • 1999년 - 제 10회 서울가요대상 본상
  • 1999년 -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 골든디스크상 본상
  • 1999년 - MBC 가요대전 본상
  • 2000년 - M.net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최고인기상
  • 2000년 - KMTV 가요대상 본상, 네티즌 인기상
  • 2000년 - MBC 10대 가수상 30대 미만이 뽑은 인기가수상
  • 2008년 - Mnet KM 뮤직페스티벌 10주년 Remember 1999상

[편집] H.O.T.멤버들이 설립한 회사와 스튜디오

  • PS Studio: 문희준
  • PS Entertainment: 문희준
  • Tn Entertainment: 토니안
  • Skoolooks: 토니안
  • Shinenihs: 토니안
  • T.I. Story: 이재원
  • Newest Academy: 장우혁
  • Kt Studio: 강타
  • Sm Entertainment : 강타(주주로 참여)

[편집] 팬덤

H.O.T.의 팬클럽은 하얀천사(White Angels)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공식 유료 팬클럽인 Club H.O.T.의 팬 컬러가 흰색이었기 때문이다. H.O.T.는 당시 최초의 팬 컬러를 소유한 첫번째 그룹이었으며, 그 후 다른 한국 가수들도 이러한 유행을 따르게 되었고 현재까지 이 경향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다음카페회원 17만8천 명, 팬카페 최초 10만 돌파, 비공식 집계 25만여 명[24]

그들의 팬들은 가요계에서도 특히 열정적이기로 유명한데, 2001년 해체위기 당시 소속사 SM기획 사무실 앞에서 그룹 해체를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며 집단적으로 항의하기도 했으며[18][25], H.O.T.의 공연이 있는 날이면 학생들이 여러 이유를 핑계로 조퇴해 공연장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교육청에서 각 학교에 조퇴금지령을 내릴 정도였다. 또 멤버의 생일이 있는 날이면 팬클럽 자체에서 큰 체육관이나 학교 운동장등을 빌려 멤버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도 했다. [26] [27] [28]

H.O.T.의 음반이 발매되는 날이면 팬들은 조금이라도 일찍 그들의 앨범을 듣기 위해 음반가게 앞에 줄을 서서 앨범을 구매하곤 했고, 온라인 티켓팅이 없었던 당시 H.O.T. 콘서트 표를 예매하기 위해 새벽부터 은행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29] [30]

H.O.T.의 팬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당시에 매우 좋지 못했다. 소위"빠순이"로 불리기도 했으며, 당시의 라이벌이던 젝스키스 팬들과의 난투극을 비롯하여 팬사이트들을 향한 사이버테러, 조금이라도 H.O.T.에 대해서 안좋은 게시물을 쓴 사람이 있다면 집단항의메일을 보내거나 홈페이지 해킹을 시도하기도 했었으며, 간미연죽이기 사건등 가수에 대한 직접적인 테러사건도 많았다. 당시 유행하던 포토뮤직등의 잡지 뒤에는 H.O.T.팬들의 타가수 비난글이 주를 이루었었다. 이런 시각을 조금이라고 고치기 위해서 공연 후 공연장의 쓰레기를 줍거나, H.O.T.팬클럽의 이름으로 여러번 기부하는 등의 방법으로[31] 팬 활동 영역을 넓혀나가기도 했었지만 극소수에 불과했으며 여론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당시 언론매체에서도 그런 시각이 잘 나타나 있다. [32] [9] 또한 PC통신과 인터넷에는 Anti H.O.T. 웹사이트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Anti H.O.T.는 대한민국 최초의 연예인 안티 사이트로 알려져있다.

H.O.T.의 해체 후에도, 팬들은 그들의 상징인 흰 풍선을 여전히 그들을 응원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그들의 열성적인 팬들은 그룹이 해체된 지 6년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멤버들이 가까운 미래에 다시 H.O.T.의 이름으로 뭉치기를 바라고있다.

H.O.T.의 데뷔 10주년이었던 지난 2006년 9월 7일, 팬들은 H.O.T.팬연합 주최로 자체적으로 데뷔 10주년 기념파티를 가졌다.

[편집] 같이 보기

[편집] 주석

  1. '스타★리포트' 아이돌 그룹, 어떻게 만들어지나②, 《스타뉴스》, 2008년 8월 2일 작성.
  2. '콘서트' H.O.T 빗속공연 5만여팬 열광, 《한국일보》, 2001년 2월 28일 작성.
  3. "H.O.T." 5만 팬 아우성…27일 공연 밤샘 대기-버스 6대 상경, 《동아닷컴》, 2001년 2월 27일 작성.
  4. '대중음악' H.O.T 기념우표 3만부 한정판매, 《동아닷컴》, 2000년 11월 12일 작성.
  5. '화제' 2001 (2) 올해의 트렌드 .. 韓流, 《한국경제》, 2001년 12월 25일 작성.
  6. '천자칼럼' 韓流 열풍, 《한국경제》, 2001년 8월 7일 작성.
  7. '좌담회' 韓流열풍을 말한다, 《한국일보》, 2001년 9월 2일 작성.
  8. '사회' 한류, 대륙 뒤흔든 '문화충격' - 《한국일보》, 2001년 9월 4일 작성.
  9. '일그러진 팬덤' 간미연부터 김연아까지.. 역대 피해사례, 《이데일리》, 2007년 7월 31일 작성.
  10. 만화가의 변신은 무죄, 《씨네 21》, 1998년 11월 24일 작성.
  11. H.O.T의 <평화의 시대>, 극장가 돌풍 예고, 《Film 2.0》, 2000년 7월 13일 작성.
  12. H.O.T 영화 예매 매진 행렬, 《Film 2.0》, 2000년 7월 10일 작성
  13. [사이버 핫라인RATM 홈페이지에 H.O.T 표절 논란 ]
  14. H.O.T 4집 '코리안 프라이드' 표절 논쟁
  15. '프리즘' 댄스그룹 H.O.T 해체됐다 .. 장우혁등 3인 소속사 옮겨, 《한국경제》, 2001년 5월 13일 작성.
  16. '머니 토크' 가수'인세' 몇십원~몇천원대 천차만별, 《한국일보》, 2002년 1월 23일 작성.
  17. '성난 H.O.T' 인세-계약조건 불만폭발, 《한국일보》, 2001년 2월 23일 작성.
  18. H.O.T 해체되나, 다시 뭉치나?, 《머니투데이》, 2001년 3월 2일 작성.
  19. MC교체, "토니안, 왜 빠졌나?", 《뉴시스》, 2004년 11월 26일 작성.
  20. jtL 마침내 안방 상륙, 《소년한국일보》, 2002년 1월 18일 작성.
  21. "음악단신" '강타 한국인기 가수 선정' 외, 《동아닷컴》, 2002년 2월 4일 작성.
  22. H.O.T 전멤버 장우혁 사업가 변신, 《소년한국일보》, 2001년 8월 25일 작성.
  23. 강타 “신병교육대 조교하고 싶다” 군복무 사진 최초공개, 《뉴스엔》, 2008년 4월 12일 작성.
  24. 각분야 연예인 최고 기록은?, 《세계일보》, 2007년 11얼 6일 작성.
  25. '가요' H.O.T 팬클럽-SM기획 '정면충돌', 《한국일보》, 2001년 3월 14일 작섬.
  26. H.O.T. 멤버 생일축하에 소녀팬 3000여명 몰려, 《동아닷컴》, 2001년 3월 15일 작성.
  27. '가요' H.O.T 장우혁 생일파티 6,000명 운집, 《한국일보》, 2001년 5월 7일
  28. 토니안 체육관 생일 1만명 몰려, 《한국일보》, 2001년 6월 6일 작성.
  29. http://media.daum.net/culture/art/view.html?cateid=1021&newsid=20051112090006633&cp=chosun[깨진 고리]
  30. "정재우의 락뮤직" 男가수와 군입대, 《스포츠서울》, 2005년 10월 20일 작성.
  31. '팬덤을 넘어서' "팬들이여, 그들에게 매를 들어라", 《한국일보》, 2001년 1월 14일 작성.
  32. 'TV줌인' 팬 사랑도 도에 지나치면…, 《동아닷컴》, 2001년 3월 28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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