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H.O.T에서 넘어옴)
이동: 둘러보기, 검색
H.O.T.
기본 정보
국가 대한민국 대한민국
장르 댄스 팝
힙합
소속사 대한민국 SM엔터테인먼트
웹사이트 공식 웹사이트
구성원
문희준
장우혁
토니안
강타
이재원
대표곡 (활동곡)
전사의 후예(폭력시대) 1996년
캔디(Candy) 1996년
늑대와 양 1997년
행복 1997년
We Are the future 1997년
열맞춰!(Line Up!) 1998년
빛(Hope) 1998년
우리들의 맹세 1998년
아이야!(I Yah!) 1999년
투지(鬪志)(Git It Up) 1999년
환희(It's Been Raining Since You Left Me) 1999년
Outside Castle 2000년
그래 그렇게(We Can Do It) 2000년
For 연가(姸歌)(A Song For Lady) 2000년

H.O.T.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활동했던 대한민국의 남성 5인조 보이 댄스 그룹이다. 이후에 등장한 젝스키스, S.E.S., god, 핑클, 신화 등과 함께 한국 아이돌그룹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H.O.T.는 "High-five Of Teenagers". 곧 "십대들의 승리"를 의미한다. 대표곡으로는 데뷔곡인 〈전사의 후예〉를 포함해, 〈캔디〉, 〈늑대와 양〉, 〈행복〉, 〈we are the Future〉, 〈열맞춰!〉, 〈빛〉, 〈아이야!〉, 〈투지〉, 〈환희〉, 〈Outside Castle〉, 〈for 연가〉, 〈그래 그렇게〉 등이 있다.

역사[편집]

데뷔 전[편집]

H.O.T.는 한동안 가수와 MC로 활약했던 SM 기획(현SM 엔터테인먼트) 대표 이수만이 현진영과 한동준, 유영진에 이어 탄생시킨 가수 그룹이다. 그들의 노래는 랩, 백스트리트 보이스식의 발라드, 댄스, 그리고 1999년에 시도했던 오케스트라를 가미한 록까지 그 장르의 폭이 넓었다. 5명의 고교생인 강타, 문희준, 이재원, 토니안, 장우혁을 기획사에서 철저한 계획에 맞춰 준비시켰다.[1]

그룹에 참여하게 된 첫 번째 멤버는 롯데월드 매표소 근처에서 방황하고 있던 안칠현(강타)이었다. 회사 매니저가 그의 춤과 노래실력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아 멤버가 될 것을 제의했다. 두 번째는 회사 자체 오디션을 통해 뽑히게 된 문희준이었다. 문희준은 그의 친한 동생 이재원을 오디션에 참가시켰고, 이재원 역시 오디션을 통과했다. 이후 네 번째로 참여하게 된 멤버는 장우혁이다. 서울에서 열린 댄스컨테스트에서 1등을 한 그에게 멤버 제의가 들어왔고, 그가 승락함으로써 계약이 체결되었다. 마지막으로, 토니안과 그의 가까운 친구 앤디가 미국에서 이수만 대표에게 발굴되었는데, 앤디의 부모님이 갑자기 승락을 철회하면서, 앤디는 H.O.T.에 참여하지 못하고 신화에 속하게 되었다.

데뷔[편집]

이렇게 준비 끝에 1996년 1집 앨범 《We Hate All Kinds Of Violence》을 발표하고 문화방송의 프로그램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로 첫 데뷔했다. 이에 대해 H.O.T. 멤버였던 강타문화방송의 프로그램 황금어장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당시 목요일이 녹화였고 토요일에 방송했는데, 방영 이후 수백 명의 팬이 따라다녔다.”라고 회고했다.

1집 앨범 발표와 TV 첫출연 이후 H.O.T는 〈전사의 후예 (폭력시대)〉와 〈Candy〉가 히트하면서 엄청난 인기를 얻으면서 동시에 스타덤에 오르면서 10대의 우상이 되기 시작했다.

연예계 활동[편집]

콘서트와 상품적 가치[편집]

그들은 서울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콘서트를 하였다.[2][3] 또한 2001년 2월 그들의 마지막 콘서트 티켓 예매 때에는 예매 시작 10분 만에 5만여 표가 전부 매진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실제로 H.O.T. 공연이 열리는 날이면 주변 교통이 순식간에 마비되는 일들이 많았으며, 그들의 마지막 콘서트가 열렸던 2001년 2월 27일에는 서울 지하철이 자정까지 연장 운행했으며, 선착순으로 좌석 배정이 되었던 이 콘서트에서 열정적인 팬들은 콘서트 시작 며칠 전부터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주경기장 앞에서 단체로 노숙하기도 했다.

그들은 가수로서뿐만 아니라 하나의 상표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실제로 음료수, 스티커, 책, 향수, 인형, 팬티, 심지어는 DNA목걸이 등 거의 모든 상품에 그들의 캐릭터를 이용해 부가가치를 올리는 데 성공하였다.[4](한불화장품의 “H.O.T. with perfume”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스타의 이름을 빌린 향수 제품 출시가 이어진 현상이 하나의 예[출처 필요]). 이를 두고 “가수를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라고 지적하는 안티들의 비판도 있었다.[출처 필요]

참고로 2000년 1월 H.O.T.의 베이징 공연 때 “한국 대중문화붐”을 뜻하는 “한류(韓流)”라는 명칭을 중국 언론이 처음 사용하였다.[5] 1997년 CCTV 채널1에서 방영된 드라마 《사랑은 뭐길래》 이후 일어난 한류 열풍은 H.O.T., 클론 등 가수의 인기까지 더해져 더욱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으며, 특히 H.O.T의 베이징 공연은 중국 청소년 사이에 “H.O.T.패션 무조건 따라하기” 풍조를 가져왔을 만큼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켰다.[6] 그들은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국외의 관심을 넓히는 데 일조했는데,[7] 특히 그들의 노래에 담긴 메시지는 중국 청소년에게 큰 문화적 충격을 주었다. 현실에 대한 불만과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 특히 청소년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가사 내용에 중국 청소년은 크게 공감했다고 한다.[8]

뮤직비디오[편집]

H.O.T.의 뮤직비디오는 타이틀곡의 분위기에 맞게 언제나 어둡고 비장한 분위기가 주를 이루었다. 그들에게 대상의 영예를 안겨준 〈빛〉의 뮤직비디오에서 그들은 직접 연기를 했으며, 마지막 히트곡인 〈For 연가〉에서는 드라마 《가을동화》의 장면들을 사용했다. 이때부터 드라마 클립이 사용된 뮤직비디오가 제작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우리들의 맹세〉 뮤직비디오에서 애니메이션을 최초로 차용하여 천계영의 작품으로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기도 했다(대한민국에 전례가 없었던 전량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이다.).[9]

영화[편집]

4번째 앨범 발매 후, 그들은 영화 《평화의 시대(Age of Peace)》에 주연으로 출연했다.[10][11] 이 영화는 한일 합작으로 제작되었고, 영화가 개봉함과 동시에 배경음악과 H.O.T.의 주제곡이 담긴 사운드트랙 앨범이 발매되었다. 그들의 앨범 홍보와 더불어 일본에서 영화 시사회를 가졌다. 영화 속에서 다섯 멤버의 모든 것은 컴퓨터로 제작되었으며, 영화를 위한 사운드트랙의 일부를 멤버들이 작사, 작곡했다.

그 해 1999년, 그들은 KMTV에서 대상을 수상했으며, MBC에서 단독 쇼프로그램(Log in H.O.T.)이 제작, 방송되기도 했다.[모호한 표현]

그룹 해체 및 솔로 활동[편집]

5.13 그룹 해체 이후[편집]

2001년 5월 강타와 문희준은 SM 엔터테인먼트와 재계약을 맺었으나, 장우혁을 비롯한 이재원, 토니안이 소속사를 옮기면서[12] 멤버들의 SM 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 만료가 임박한 시점에서 인세 문제를 비롯한 여러 사안이 한꺼번에 터져나오며[13][14] 해체설이 나돌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며[15], 인세 문제 등의 각종 루머가 원인이라 짐작되지만, 해체의 정확한 이유는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15] 분명한 것은 당시 문희준, 강타 등 SM에 남게된 멤버와 토니안, 이재원, 장우혁 등 SM을 떠나게 된 멤버의 해체 사유와 SM회사에 대한 말이 각각 다르다는 사실이다.

H.O.T.가 5집까지 활동하리란 것은 암묵적으로 예정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소속사의 대표이사인 이수만은 모 여성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사실을 언급했다 ‘문희준·강타 솔로설’로 파문을 일으킨 사건 역시 그의 계획 중 일부라고 주장한다. 강타,문희준을 제외한 장우혁,토니안,이재원 세 멤버는 SM에서 일방적인 해체통보를 받았다.[출처 필요]

솔로 활동[편집]

팀 해산 이후, 강타와 문희준은 SM 엔터테인먼트와 재계약을 선언하며 솔로 앨범을 발표해 꽤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다. 강타는 주로 소울과 R&B를 중심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고, 문희준은 처음에는 강타와 비슷한 R&B로 출발했으나, 1집 앨범 중반 이후에는 록음악에 도전하며 4개의 정규 앨범을 발매하며 경력을 쌓아나갔다. 문희준은 그의 아이돌 스타 이미지에 가려 싱글 활동 초 날카로운 비판과 악성 루머에 시달렸으나, 제대 후 꾸준한 활동으로 다시금 인기를 얻고있다.

SM 엔터테인먼트에서 나온 장우혁, 토니안, 이재원은 프로젝트 그룹 jtL을 결성했으나, 한동안 전 기획사의 보이콧에 시달리며, 공중파·케이블 음악 방송에 한동안 출연하지 못했으며,[16][16][17] 그 해 2001년 통산 음반 판매량 2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가요 시상식에 참가조차 못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세 장의 정규 앨범과 콘서트 앨범을 내며 성공적인 활동을 했다. 또 2003 MTV ASIA AWARD 에 한국 대표로 참석해 ‘한국 최고 인기 아티스트상’을 받기도 했다(2002년에는 강타가 수상[18]).

jtL 이후 세 명은 각각 솔로 앨범을 내어, 모든 멤버가 개별 활동을 하게 된다. 장우혁은 그가 이끄는 댄스 아카데미 “Newest”를 설립하고 운영했는데,[19] 이 역시 SM 엔터테인먼트의 직간접적 보이콧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근황[편집]

현재 리더였던 문희준은 2005년 SM 엔터테인먼트를 떠나 PS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해 4집 앨범을 발매했고, 고별 콘서트 이후 군에 입대한 후 2007년 11월 제대해 SidusHQ로 소속사를 옮기고 스페셜 앨범을 발매해 〈Obsession〉이라는 곡으로 바쁜 활동 중이다.

장우혁은 2집 앨범 활동 후 2007년 4월 입대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공익 근무 요원으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2009년 12월 소집 해제 하였다.

토니안은 TN 엔터테인먼트와 스쿨룩스, 샤인에니스를 경영하고 있는 CEO이자 가수 활동을 병행하고 있으며, 최근 가수 에반의 앨범을 제작하고, 싱글 《우두커니》를 발매했다. 그리고 2008년 그도 군에 입대하여 국방부 소속 군인 위문단으로 활동하였으며, 2010년 9월 제대하였다.

범중화권에서 폭넓은 인기를 얻고 있는 강타는 2008년, 5년 만에 한국에서 앨범 《Eternity-永遠》을 발매하고, 동명의 콘서트를 가진 후 4월 현역 입대 후 2010년 2월 제대하였다.[20]

그룹의 막내인 이재원은 2006년 12월 솔로 데뷔 이후 2번째 콘서트를 했으며, 정규 2집 앨범을 준비하던 중 2008년 12월 19일, 술에 취해 항거불능상태인 가수 지망생 A을 여관에서 성폭행했다는 혐의로 구속되었다. 이재원은 구속 3시간 만에 합의를 보고 석방조치 됐다. 이후 공식적인 활동을 자제하다가 2009년 5월 6일 현역으로 군에 입대하여 2011년 3월 7일 제대하였다.

이로써 멤버들은 전원 제대하거나 소집해제 하였다.

노예계약 의혹[편집]

당시 상황을 두고 SM의 한 고위 관계자는 경쟁사의 계략에 의해 멤버들을 빼앗긴 경우라고 해명을 했지만, 멤버들이 음반 1장당 받는 인세 값이 1인당 20원이었단 사실이 알려지면서 계약조건에 대한 부당함이 여실히 드러난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구성원[편집]

이름 소개
문희준
  • 이름 : 문희준 (Moon Hee-Joon, 文熙俊)
  • 생년월일 : 1978년 3월 14일(1978-03-14) (36세)
  • 출생지 : 대한민국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학력 : 경기대학교 대학원 다중매체영상학과 (석사)
  • 포지션 : 리더, 리드보컬, 리드댄서
  • 종교 : 불교
  • 특이사항 :
    • 독특한 장신구를 착용하던 H.O.T.의 문희준은 4번째 앨범에서 마치 프레디 크루거(Freddy Krueger)의 스타일과 흡사한 날카로운 집게발 장갑을 착용했다.
    • H.O.T.의 5번째 앨범 자켓에서는 진홍색 머리를 했다.
    • 토니안이 지어준 기즈모란 별명이 있다.
장우혁
  • 이름 : 장우혁 (Jang Woo-Hyeok, 張佑赫)
  • 생년월일 : 1978년 5월 8일(1978-05-08) (35세)
  • 출생지 : 대한민국 대한민국 경상북도 구미시
  • 학력 : 세종대학교 대학원 체육학과 (석사)
  • 포지션 : 메인래퍼, 메인댄서
  • 특이사항 :
    • 문희준과 함께 H.O.T.에서 안무를 담당하였다.
    • 대부분 거칠고 강한 랩을 주로 맡았는데, 그의 랩 스타일은 대부분의 노래에서 〈아이야〉에서와 같이 날카롭게 소리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그는〈환희〉와 같은 곡에서는 재원과 비슷하게 속삭이듯 랩을 하기도 했다.
토니안
  • 본명 : 안승호 (Ahn Seung-Ho, 安勝浩)
  • 생년월일 : 1978년 6월 7일(1978-06-07) (35세)
  • 출생지 : 대한민국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학력 :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무대연출학전공 (석사)
  • 포지션 : 서브보컬, 서브래퍼
  • 특이사항 :
    • 본명인 안승호라는 이름보다 영어 이름이자 예명인 토니안(Tony An)을 더 많이 사용하였다.
    • 귀가 커 원숭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 대부분의 영어 랩을 하였으며, 몇몇 곡에서는 보컬의 역할을 했다.
강타
  • 본명 : 안칠현 (Ahn Chil-Hyeon, 安七炫)
  • 생년월일 : 1979년 11월 29일(1979-11-29) (34세)
  • 출생지 : 대한민국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학력 :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공연영상학과 (석사)
  • 포지션 : 메인보컬
이재원
  • 이름 : 이재원(Lee Jae-Won, 李在元)
  • 생년월일 : 1980년 4월 5일(1980-04-05) (34세)
  • 출생지 : 대한민국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학력 : 상명대학교 디지털미디어대학원 컴퓨터음악과 (석사)
  • 포지션 : 리드래퍼

CF[편집]

디스코그래피[편집]

정규 음반[편집]

비정규 음반[편집]

  • 2000년 - 평화의 시대 OST 《Age of Peace OST; OP.T(OPeration Takeover)》

콘서트 음반[편집]

  • 1999년 - Greatest H.O.T. Hits-Song Collection Live Album
  • 2000년 - 99 Live In Seoul
  • 2001년 - H.O.T. Forever - 2001 Live Concert In Seoul Olympic Stadium

활동곡[편집]

  • 1996년 - 전사의 후예(폭력시대)
  • 1996년 - Candy
  • 1997년 - 늑대와 양
  • 1997년 - 행복
  • 1997년 - We Are the future
  • 1998년 - 열맞춰!(Line Up!)
  • 1998년 - 빛(Hope)
  • 1999년 - 아이야!(I Yah!)
  • 1999년 - 투지(鬪志)(Git It Up)
  • 1999년 - 환희(It's Been Raining Since You Left Me)
  • 2000년 - Outside Castle
  • 2000년 - 그래 그렇게(We Can Do It)
  • 2000년 - For 연가(姸歌)(A Song For Lady)

수상 경력[편집]

연도 수상 내역
1996년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2008년

가요 프로그램 1위[편집]

연도 수상 내역
1996년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H.O.T.멤버들이 설립한 회사와 스튜디오[편집]

  • PS스튜디오: 문희준
  • PS엔터테인먼트 : 문희준
  • TN엔터테인먼트 : 토니안
  • 스쿨룩스 : 토니안
  • 스쿨스토어 : 토니안
  • 티아이스토리 : 이재원
  • 뉴웨스트 아카데미 : 장우혁
  • KT 스튜디오 : 강타
  • SM엔터테인먼트 : 강타 (이사)

팬덤[편집]

H.O.T.의 팬클럽하얀천사(White Angels)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공식 유료 팬클럽인 Club H.O.T.의 팬 컬러가 흰색이었기 때문이다. H.O.T.는 당시 최초의 팬 컬러를 소유한 첫 번째 그룹이었으며,[출처 필요] 그 후 다른 한국 가수도 이러한 유행을 따르게 되었고, 현재까지 이 경향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다음카페 회원 17만8천 명, 팬카페 최초 10만 돌파, 비공식 집계 25만여 명이다.[21]

그들의 팬들은 가요계에서도 특히 열정적이기로 유명한데, 2001년 해체 위기 당시 소속사 SM기획 사무실 앞에서 그룹 해체를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며 집단적으로 항의하기도 했으며[15][22], H.O.T.의 공연이 있는 날이면, 학생들이 여러 이유를 핑계로 조퇴해 공연장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교육청에서 각 학교에 조퇴 금지령을 내릴 정도였다. 또 멤버의 생일이 있는 날이면, 팬클럽 자체에서 큰 체육관이나 학교 운동장 등을 빌려 멤버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도 했다.[23][24][25]

H.O.T.의 음반이 발매되는 날이면 팬들은 조금이라도 일찍 그들의 앨범을 듣기 위해 음반가게 앞에 줄을 서서 앨범을 구매하곤 했고, 온라인 티케팅이 없었던 당시 H.O.T. 콘서트 표를 예매하기 위해 새벽부터 은행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26]

H.O.T.의 해체 후에도, 팬들은 그들의 상징인 흰 풍선을 여전히 그들을 응원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다. 아직까지 남아 있는 그들의 열성적인 팬들은 그룹이 해체된 지 9년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멤버가 가까운 미래에 다시 H.O.T.의 이름으로 뭉치기를 바라고 있다.[출처 필요]

H.O.T.의 데뷔 10주년이었던 지난 2006년 9월 7일, 팬들은 H.O.T. 팬연합 주최로 자체적으로 데뷔 10주년 기념파티를 가졌다.[출처 필요]

H.O.T.가 가지는 의의[편집]

작사 작곡과 춤[편집]

많은 대중에게 그들이 단순히 “10대 청소년을 겨냥한 아이돌 그룹”으로 기억되는 것과는 달리, H.O.T. 멤버들은 그들의 앨범을 제작하는 데 작사와 작곡, 편곡을 통해 앨범의 많은 부분에 직접 참여했다.[출처 필요] 세 번째 앨범 《Resurrection: 부활》의 발매로부터, 그들은 작곡, 작사를 시작했고(강타 3곡, 문희준 3곡, 장우혁 1곡, 토니안 1곡, 이재원 1곡), 그들의 마지막 두 앨범인 《아이야!》와 《They Are nothing Different with Us》에서는 앨범 전곡의 작사, 작곡은 물론 편곡, 프로듀싱까지도 직접 해내는 놀라운 음악적 발전을 보였다는 점에서 H.O.T.는 단순한 기획사의 꼭두각시가 아닌 “아이돌은 제비가 될 수 없다.”라는 대중의 선입견을 깨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멤버였던 문희준과 장우혁은, 그들의 노래에 어울리는 안무를 직접 만들었으며, 그들의 뮤직비디오에 현란한 솔로 댄스를 선보일 만큼 춤 실력에 조예가 깊었다(2집 《WE ARE THE FUTURE》 활동 당시).[출처 필요]

10대 청소년으로 구성된 아이돌 그룹으로서, H.O.T.는 그 당시 10대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고, 문제가 되었던 여러 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노래를 발표하여 그 당시 10대의 많은 공감을 얻어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출처 필요] 이를테면 가수들이 군입대를 미루는 것,또는 면제받는 것, 자살, 낙태, 외설, 범죄, 마약 등이다.[출처 필요]

이는 다른 아이돌 그룹들 젝스키스, 동방신기를 제외한 아이돌에게 가지고 있지 않던 H.O.T. 고유의 특징이었다.[출처 필요]

인기 비결[편집]

이들의 인기 비결은 비단 춤 잘추고 노래 잘하는 아이돌 스타 그룹과는 확실히 차별화된 전략으로 출발한 데에 있다. 처음에는 그저 잘생긴 외모, 개성 있는 멤버의 개인별 인기로 시작했을는지 몰라도 이들의 팀웍은 그 어떤 팀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확실하며, 멤버 개개인 역시 한자리에 머무르려고 하지 않았다.[출처 필요]

비록 5집 활동 후기의 강타의 교통사고 사건 등 약간의 흠이 있었지만, 그들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10대의 아이콘이었고, 대중적인 음악과 코디로서 10대의 눈과 귀를 오랫동안 사로잡았었다. 그들에 대한 혹평은 꽤나 많지만, 그들이 한국 대중음악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출처 필요]

논란[편집]

표절[편집]

1집 표지 사진이 표절 논란에 휘말렸으며, 곧이어 타이틀곡 〈전사의 후예〉가 사이프레스힐의 “i ain`t goin` out like that”의 표절이라는 논란에 휩싸이면서 어쩔 수 없이 후속곡 〈캔디〉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

2집 〈행복〉 역시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 표절이 아니라 샘플링이라는 식으로 해명을 하긴 했으나, 앨범 어디에도 샘플링을 했다는 내용과 어떤 샘플을 이용했는지에 관한 설명이 없었기 때문에 표절과 다름이 없는 것이었다.

3집 〈열맞춰〉는 RATM의 〈killing in the name〉과 표절 논란이 있었고[27], RATM 측은 H.O.T.를 표절로 고소하겠다는 말까지 했었으며, 법정 싸움이 이득이 없다는 판단하에 이를 취소한 뒤에도 자신들의 공연에 이 사건을 희화하하는 퍼포먼스를 여러 번 한 바 있다.

또 4집 〈코리안 프라이드〉는 DJ Quik의 〈Speed〉와 표절 논란이 있기도 하였다.[28]

당시 기준도 그렇고 현재 기준도 그렇고, 명확히 표절이라고 정의내릴 수는 없다.[출처 필요] 당시 기준은 8마디 이상 같으면 표절인데, 이 말을 뒤집으면 7마디가 같고 1마디만 조금 달라도 표절이 아니라는 뜻이 되며, H.O.T.는 표절 논란 외에도 짜깁기로 더 많은 비난을 받았다. 어쨌든 한국에 공식적으로 표절로 인정받은 노래는 건국 이래로 단 한 곡도 없다.[출처 필요] 표절곡으로 널리 알려진 룰라의 〈천상유애〉나 김민종의 〈귀천도애〉 역시 표절시비가 일자 뮤지션 스스로 표절 시비에 대한 사죄의 이유로 활동을 중단하거나 사과를 한 것이지, 공식적으로 표절로 단정지어진 곡은 아니다.[출처 필요]

현재의 표절 기준은 과거의 8마디조차 없어져서 외국의 원작자가 고소를 해서 한국의 법정에서 표절 판결을 받는 방법밖에 없지만, 현실적으로 여기까지 온 바는 단 한 번도 없다.[출처 필요] 오히려 외국의 원작자가 한국에서 이미지가 안 좋아질 염려가 있고, 배상금도 많이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고소를 실제로 한 적은 한 번도 없다.[출처 필요]

영화 《평화의 시대》[편집]

마이네트 코리아와 일본의 시로구미가 공동으로 제작하였고, 감독은 일본영화아카데미 1기생 출신인 재일동포 로렌스 리(이원석)가 맡았다. 시로구미가 애니메이션을 이용한 특수효과를, 마이네트 코리아가 기획 및 연출을 책임졌다.{{출처 [29]}} 줄거리는 2200년 지구대표 H.O.T. 5인이 우주정복의 야욕에 맞서 외계인과 싸우며 거대한 우주선 모양의 그라운드를 질주하는 축구팀을 그린 것으로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공상과학장르다.{{출처[30]}}1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포털 사이트 네이버와 다음의 관객 평가에서 《클레멘타인》,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 《긴급조치 19호》 등과 함께 역대 인기가수 혹은 외국배우를 주연으로 대중의 호기심은 끌었으나 흥행에 참패한 영화들의 혹평과 나란히 회자되고 있으며,{{출처[31]}}실험적 단편 가족오락 입체영화로 감독을 맡았던 로렌스 리는 이 작품 후 은퇴했다고 하나, 이는 웹상에서 이후의 기록을 찾을 수 없어 사실여부를 가늠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70억이라 알려진(혹은 총 투입비 120억) 제작비에 비해서 지나치게 출연진의 인지도에만 의존한 단순하고 개연성이 떨어지는 전개에 비판을 받았으며, 2000년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으나 배우로서 신인인 H.O.T.에게 10억이라는 파격적 출연료를 지급한 것과 28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영화관람료가 조절되지 않아 비싸다는 지적도 역시 구설수에 올랐다. [출처 필요]

일화[편집]

그들의 인기만큼이나 그들을 둘러싼 해프닝도 많았는데, 실례로 1998년 12월 31일에는 H.O.T. 팬클럽 회원과 젝스키스 팬클럽 회원 간에 시비가 붙어 편싸움을 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32] 그들은 젝스키스와 같은 라이벌 그룹과 경쟁하며 성장했으나, 실제로는 우정이 돈독한 동료들이였다.[출처 필요] NRG가 김환성의 요절 후 네 번째 앨범을 발매했을 때, 강타는 타이틀곡 〈비(悲)〉를 작곡해 주었다.[출처 필요]

같이 보기[편집]

참고[편집]

  1. '스타★리포트' 아이돌 그룹, 어떻게 만들어지나②, 《스타뉴스》, 2008년 8월 2일 작성.
  2. '콘서트' H.O.T 빗속공연 5만여팬 열광, 《한국일보》, 2001년 2월 28일 작성.
  3. "H.O.T." 5만 팬 아우성…27일 공연 밤샘 대기-버스 6대 상경, 《동아닷컴》, 2001년 2월 27일 작성.
  4. '대중음악' H.O.T 기념우표 3만부 한정판매, 《동아닷컴》, 2000년 11월 12일 작성.
  5. '화제' 2001 (2) 올해의 트렌드 .. 韓流, 《한국경제》, 2001년 12월 25일 작성.
  6. '천자칼럼' 韓流 열풍, 《한국경제》, 2001년 8월 7일 작성.
  7. '좌담회' 韓流열풍을 말한다, 《한국일보》, 2001년 9월 2일 작성.
  8. '사회' 한류, 대륙 뒤흔든 '문화충격' - 《한국일보》, 2001년 9월 4일 작성.
  9. 만화가의 변신은 무죄, 《씨네 21》, 1998년 11월 24일 작성.
  10. H.O.T의 <평화의 시대>, 극장가 돌풍 예고, 《Film 2.0》, 2000년 7월 13일 작성.
  11. H.O.T 영화 예매 매진 행렬, 《Film 2.0》, 2000년 7월 10일 작성.
  12. '프리즘' 댄스그룹 H.O.T 는 각자의 솔로활동의 길을 걷는다. 장우혁등 3인 소속사 옮겨, 《한국경제》, 2001년 5월 13일 작성.
  13. '머니 토크' 가수 '인세' 몇십원~몇천원대 천차만별, 《한국일보》, 2002년 1월 23일 작성.
  14. '성난 H.O.T' 인세-계약조건 불만폭발, 《한국일보》, 2001년 2월 23일 작성.
  15. H.O.T 해체되나, 다시 뭉치나?, 《머니투데이》, 2001년 3월 2일 작성.
  16. MC교체, "토니안, 왜 빠졌나?", 《뉴시스》, 2004년 11월 26일 작성.
  17. jtL 마침내 안방 상륙, 《소년한국일보》, 2002년 1월 18일 작성.
  18. "음악단신" '강타 한국인기 가수 선정' 외, 《동아닷컴》, 2002년 2월 4일 작성.
  19. H.O.T 전멤버 장우혁 사업가 변신, 《소년한국일보》, 2001년 8월 25일 작성.
  20. 강타 “신병교육대 조교하고 싶다” 군복무 사진 최초공개, 《뉴스엔》, 2008년 4월 12일 작성.
  21. 각분야 연예인 최고 기록은?, 《세계일보》, 2007년 11얼 6일 작성.
  22. '가요' H.O.T 팬클럽-SM기획 '정면충돌', 《한국일보》, 2001년 3월 14일 작성.
  23. H.O.T. 멤버 생일축하에 소녀팬 3000여명 몰려, 《동아닷컴》, 2001년 3월 15일 작성.
  24. '가요' H.O.T 장우혁 생일파티 6,000명 운집, 《한국일보》, 2001년 5월 7일자.
  25. 토니안 체육관 생일 1만명 몰려, 《한국일보》, 2001년 6월 6일 작성.
  26. "정재우의 락뮤직" 男가수와 군입대, 《스포츠서울》, 2005년 10월 20일 작성.
  27. [사이버 핫라인] RATM 홈페이지에 H.O.T 표절 논란
  28. H.O.T 4집 '코리안 프라이드' 표절 논쟁
  29. 한국 영상영화진흥위원회
  30.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5&aid=0000010484
  31. http://www.movist.com
  32. '일그러진 팬덤' 간미연부터 김연아까지.. 역대 피해사례, 《이데일리》, 2007년 7월 31일 작성.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