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S. 루이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찾기
Broom icon.svg 이 문서는 위키백과의 편집 지침에 맞춰 다듬어야 합니다.
더 좋은 문서가 되도록 문서 수정을 도와주세요. 내용에 대한 의견이 있으시다면 토론 문서에서 나누어 주세요.

클라이브 스테이플스 루이스(Clive Staples Lewis, 1898년 11월 29일 - 1963년 11월 22일), 혹은 C. S. 루이스영국소설가이자 성공회(Church of England)의 평신도이다. 또한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철학르네상스 문학을 가르쳤다.

북아일랜드벨파스트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까운 친구에게는 잭(Jack)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부모의 사망을 계기로 무신론자가 되기도 했지만, 로마 가톨릭 신자인 톨킨과 다른 친구들의 영향으로 30세 때인 1929년 성공회 신앙을 받아들여 성공회 홀리 트리니티 교회에서 평생 신앙생활하였다.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문학철학 동아리인 잉클링스의 멤버였으며, 《반지의 제왕》의 저자인 톨킨과 우정을 유지했다. 그는 성공회, 개신교, 로마 가톨릭기독교 교파를 초월한 기독교의 교리를 설명한 기독교 변증과 소설, 특히 나니아 연대기로 유명하다.

C. S. 루이스
출생 1898년 11월 29일
영국 영국 북아일랜드
사망 1963년 11월 22일
국적 영국 영국 북아일랜드 북아일랜드
종교 성공회

목차

[편집] 약력

[편집] 어린 시절

루이스는 1898년 11월 29일 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태어났다. 루이스의 아버지 알버트 제임스 루이스(1863 - 1929)는 사무 변호사였고, 루이스의 할아버지 리차드는 19세기 중반에 웨일즈에서 아일랜드로 이사했다. 루이스의 어머니 플로런스 오구스타 루이스 니 해밀턴(1862 - 1908)은 아일랜드 성공회(Church of Ireland)사제의 딸이었다. 루이스는 한 명의 형이 있었고, 워렌 해밀턴 루이스이다. 루이스가 4살 때 그의 잭시(Jacksie)가 차에 치어 죽었는데, 그 때부터 루이스는 자기 이름을 잭시라고 했고 나중에는 잭(Jack)으로 알려졌다. 그 후 루이스는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잭이라고 불렸다. 루이스가 7살 때 루이스의 가족은 벨파스트 동부 스트랜타운에 있는 '리틀 레아'로 이사했다.

루이스는 처음에는 개인 가정 교사에게 교육을 받았고, 어머니가 암으로 죽기 직전인 1908년에 윈야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루이스의 형은 3년 먼저 그 학교에 등록해서 다니고 있었다. 그 학교는 얼마후 학생 수가 감소하여 폐교되었고, 로버트 카프론 교장은 정신병원으로 보내졌다. 《예기치 못한 기쁨》에서 그 학교는 ”벨센”(Belsen, 나치의 수용소)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그 당시 윈야드 학교의 분위기로 인해 루이스가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다는 작가 알랜 제이콥스의 견해가 있다. 윈야드 학교가 폐교된 후, 루이스는 집에서부터 1마일 거리에 있는 캠벨 칼리지에 입학했다. 그러나 루이스는 호흡기 질환 때문에 몇달 뒤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요양원 마을 워스터쉐어 맬번으로 갔다. 그곳에서 루이스는 체르보그 하우스 학교를 다녔다. 체르보그 하우스 학교는 루이스의 자서전에 '차트레스'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1913년 9월에 루이스는 맬번 칼리지에 입학하여 다음 해 6월까지 다녔다. 이 기간동안 15살 루이스는 어린시절의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무신론자가 되었으며, 신화와 초자연적인 마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루이스는 맬번 칼리지를 떠난 후, 루이스 아버지의 옛 스승이면서 러건 칼리지의 학장인 윌리엄 커크패트릭에게 배웠다.

소년 루이스는 사람을 닮은 동물을 매우 좋아했고, 베아트릭스 포터 이야기에 빠지기도 했으며, 때로는 자신이 직접 동물 이야기를 상상해서 글로 쓰기도 하였다. 루이스는 형 워니와 함께 동물들이 다스리는 '복센 세계'를 창작하기도 했다. 루이스는 독서를 매우 좋아하였다. 루이스의 아버지 집에는 많은 책들이 있었는데, 루이스가 읽지 않은 책 한권 찾기는 풀밭에서 바늘을 찾는 것만큼 어렵다고 하였다.

루이스가 십대 소년일 때, '노던니스(Northernness)'라는 스칸디나비아 고전 문학의 시나 전설에 크게 감명을 받았다. 이러한 전설에 대한 관심이 커져서, 루이스는 '기쁨(joy)'이라고까지 표현하였다. 루이스는 자연에 대한 애정도 컸다. 루이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은 곧 북쪽(the North) 이야기였고, 북쪽 이야기는 곧 자연의 아름다움이었다. 십대 때 쓴 글은 복센 이야기로부터 멀어졌고, 북유럽 신화나 자연 세상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담은 서사시나 오페라 같은 다른 형식으로 쓰기 시작했다. 루이스는 커크패트릭에게 배우면서 그리스 문학과 신화에 점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논쟁과 추론 능력을 발달시킬 수 있었다.

[편집] 1차 세계대전

1916년 옥스퍼드 대학교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장학금을 받은 다음 해, 루이스는 1차 세계대전에 영국군으로 자원입대하였고, 서머셋 보병 연대 서드 배탈리온에서 장교로 복역하였다. 루이스의 19번째 생일날 프랑스의 섬므 밸리의 최전선에 나가 참호전을 겪었다.

1918년 4월 15일, 루이스는 독일 전투에서 부상을 당하여 쉬는 동안 아일랜드의 고향을 그리워하며 우울증을 겪었다. 그 후 10월에 복귀하여 영국 앤도버로 발령을 받았다.

벨파스트에 있는 C.S. 루이스의 동상

[편집] 결혼, 그리고 사별

1952년 9월 루이스는 조이 데이빗먼(Joy Davidman)이라는 여성을 처음으로 만난다. 그녀는 젊은 시절에는 무신론자이자 마르크스주의자였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조이는 미국의 소설가인 빌 그레셤(Bill Gresham)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였다. 시인이었던 조이의 결혼 생활은 이미 파경을 걷고 있었고, 부부는 잠정 별거에 합의한 상태였다. 두 사람의 교류가 시작된 것은 1950년에 조이가 루이스에게 편지를 쓰면서부터이다. 1946년경 조이는 미국 공산당원으로 활동한 마르크스주의자에서 그리스도인으로 회심을 하는데 루이스의 책이 영향을 미쳤다. 그녀의 편지는 명민함과 섬세함이 돋보이는 지적인 것이어서, 루이스의 눈에 금방 들어왔다. 두 사람의 만남은 지적 교류의 차원이었다. 조이는 1953년에 두 아들과 함께 미국에서 영국으로 이주한다. 조이가 이혼을 한 것은 이듬해인 1954년의 일이었다. 단순한 우정을 넘어 본격적인 만남이 시작된 것은 이 무렵의 일로 알려져 있다.

1956년 영국 정부가 조이의 비자를 더 이상 연장해 주지 않자 루이스는 그녀에게 영국 시민권을 얻게 해주기 위해 혼인 신고를 하기로 했다. 쉰 살이 넘도록 독신으로 살아온 루이스를 곁에서 지켜 본 친구들 가운데는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루이스는 혼인 신고가 조이를 돕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1956년 10월 조이가 골수암 판정을 받게 되자 루이스는 깊은 충격에 빠진다. 루이스의 어머니 또한 그가 어렸을 때 암으로 사망했다. 루이스의 문학적인 표현을 빌자면, 죽음의 신이 연적이 된 상황에서 조이에 대한 루이스의 사랑은 급속히 깊어졌다. 두 사람은 1957년 3월 조이의 병실에서 성공회(Anglican) 혼인예식에 맞게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조이의 죽음은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 결혼식 이후 한때 호전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1959년 가을에 골수암이 재발했다. 조이 데이빗먼 루이스는 이듬해인 1960년 7월 세상을 떠난다.

[편집] 한국 출판계에서의 위치

C. S. 루이스는 대한민국 기독교 출판계에서도 인기 있는 작가이다. 그 실례로《순전한 기독교》(원제:단순한 그리스도교,The Mere Christianity)등의 일부 저작들이 영국 C. S. 루이스 협회와 정식 저작권 계약을 맺은 홍성사에서 출판하고 있는데, 이는 전 홍성사 편집장 옥명호 씨가 대학생 시절 우연히 성 바오로서원[1]에서 읽은 C. S. 루이스의 작품에 심취했기 때문이다. 또한 2006년 4월호 《기독교사상》에 《순전한 기독교》를 번역한 이종태 목사(장로교), C. S. 루이스 팬인 옥명호 전 홍성사 편집장 등이 C. S. 루이스의 신학과 삶에 대해서 쓴 글이 실리기도 하였다.

[편집] 지은 책

[편집] 나니아 연대기

  1. 사자와 마녀와 옷장 (1950년)
  2. 캐스피언 왕자 (1951년)
  3. 새벽 출정호의 항해 (1952년)
  4. 은 의자 (1953년)
  5. 말과 소년 (1954년)
  6. 마법사의 조카 (1955년)
  7. 최후의 대결 (1956년)
  • 한국에서는 시공사의 어린이 출판부서인 시공주니어에서 번역 출판했으며, 규장 등 기독교계 출판사들이 관련서적을 출판하기도 했다.

[편집] 기타 소설

  • The Pilgrim's Regress (1933년)
  • Out of the Silent Planet (1938년)
  • 스크루테이프의 편지(The Screwtape Letters,1942년,홍성사)
  • Perelandra (1943년)
  • The Great Divorce (1945년)
  • That Hideous Strength (1946년)
  • Till We Have Faces (1956년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 2007, 홍성사)
  • Letters to Malcolm: Chiefly on Prayer (1963년)

[편집] 비소설

[편집] 주석

  1. 성 바오로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천주교서적 전문서점이다. 천주교 명동성당앞에 있다.

[편집] 바깥 고리

개인 도구
이름공간

변수
행위
둘러보기
인쇄/내보내기
도구모음
다른 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