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헌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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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성헌황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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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헌황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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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태후 | |
| 재위 | 1735년 ~ 1777년 |
| 전임자 | 효경헌황후 |
| 후임자 | 효현순황후 |
| 시호 | 효성자선강혜돈화성휘인목경천광성헌황후(孝聖慈宣康惠敦和誠徽仁穆敬天光聖憲皇后) |
| 배우자 | 옹정제 |
| 자녀 | 슬하 1남 |
| 출생 | 1692년 |
| 사망 | 1777년 (84-85세) |
효성헌황후 뉴호록씨(孝聖憲皇后 鈕祜祿氏, 강희(康熙) 31년 (1692년) ~ 건륭(乾隆) 42년(1777년))는 청나라 옹정제의 계후이자 건륭제의 생모이다. 시호는 효성자선강혜돈화성휘인목경천광성헌황후(孝聖慈宣康惠敦和誠徽仁穆敬天光聖憲皇后)이다.
[편집] 생애
종4품 계급의 무직경관 전의 능주[1](典儀 凌柱)의 딸로, 옹정제가 옹친왕(雍親王)이던 시절에 첩으로 들어와, 그 이름을 격격(格格, 왕부의 공주나 첩에게 내리는 호칭)이라 했다. 1711년(강희 50년) 8월에 자신의 유일한 소생이자 옹정제의 넷째 아들 홍력(弘曆)을 출산하였으니, 이가 곧 훗날의 건륭제이다. 옹정 연간 초기에 희비(熹妃)에 봉해졌으며, 1730년(옹정 8년)에 희귀비(熹貴妃)로 진봉되었다. 이후 아들 건륭제가 황위에 올라 황태후에 책봉되어, 그 존호를 숭경황태후(崇慶皇太后)라 하였다. 아버지이자 건륭제의 외조부 능주 역시 일등승은공(一等承恩公)으로 그 작위가 올라갔다. 또한 거처도 황태후의 처소인 자녕궁(慈寧宮)으로 옮겼다. 건륭제는 어머니를 매우 존경하여 남순에 항상 동행하였고, 건륭제는 어머니가 연로하여 여행을 할 수 없게 되자 남순을 중지하였다. 1777년(건륭 42년) 정월에 86세를 일기로 붕어하여, 옹정제의 태릉(泰陵)에 안장되었고, 건륭제는 자신의 생모인 뉴호록씨를 간절히 기리는 마음으로 효성헌황후(孝聖憲皇后)로 추봉하였다.
[편집] 자녀
- 애신각라 홍력(愛新覺羅 弘曆) - 옹정제의 제4황자, 훗날의 고종 건륭순황제(高宗 乾隆純皇帝)
[편집] 주석
- ↑ 왕이나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큰 집안의 법식 또는 의식절차를 도맡아 진행하는 판임 관직(判任館職)이다.
| 전 임 효경헌황후 |
청나라의 황후 사후 시호 |
후 임 효현순황후 |
| 전 임 효공인황후 |
청나라의 황태후 1735년 ~ 1777년 |
후 임 효화예황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