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덕 동춘당
| 지정번호 | 보물 제209호 (1963년 1월 21일 지정) |
| 소재지 | 대전광역시 대덕구 동춘당로 80 |
| 제작시기 | 조선 |
| 소유자 | 송영진 |
동춘당(同春堂)은 조선 효종 때 대사헌, 이조판서, 병조판서를 지낸 동춘당 송준길(1606년 ~ 1672년)이 48세가 되던 해(1653년)에 지은 별당(別堂)으로 대전광역시 송촌동 동춘당 공원 내에 자리잡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보물 제209호로 지정되어 있다.
늘 봄과 같다는 뜻의 동춘당(同春堂)은 그의 호를 따서 이름을 붙인 것으로 이곳에 걸린 현판은 송준길이 돌아가신 6년 후 1678년(숙종 4년)에 우암 송시열이 쓴 것이다. 건물은 송준길의 아버지 송이창이 세운 것을 송준길이 48세인 1653년(효종 4년)에 헌 목재를 그대로 써서 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지금의 위치로 옮겨 다시 지었다.
목차 |
[편집] 양식
동춘당은 조선시대 별당 건축의 한 유형으로 볼 수 있는데, 구조는 비교적 간소하고 규모도 크지 않다.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평면으로는 총 6칸 중 오른쪽 4칸은 대청마루이고 왼쪽 2칸은 온돌방이다. 대청의 앞면, 옆면, 뒷면에는 쪽마루를 내었고 들어열개문을 달아 문을 모두 들어 열면 내부 공간과 외부 공간의 차별없이 자연과의 조화를 이룬다. 또한 대청과 온돌방 사이의 문도 들어 열 수 있게 하여 필요시에는 대청과 온돌방의 구분없이 별당채 전체를 하나의 큰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건물의 받침은 4각형의 키가 높은 돌을 사용했는데, 조선 후기의 주택건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양식이다. 머름·중방·창호의 구성이 단아하며,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을 이루고 우암 송시열(1607년 ~ 1689년)이 쓴 ‘同春堂’ 현판이 걸려 있다.
동춘당은 굴뚝을 따로 세워 달지 않은 것이 특징인데, 왼쪽 온돌방 아래 초석과 같은 높이로 연기 구멍을 뚫어 놓아 유학자의 은둔적 사고를 잘 표현하고 있다. 즉, 따뜻한 온돌방에서 편히 쉬는 것도 부덕하게 여겼기 때문에 굴뚝을 보이지 않게 함으로써 유학적 덕목을 유지하려 했던 것이다.
[편집] 동춘당 공원
현재 동춘당 공원은 약 1만 7천평으로 송촌택지개발사업과 관련하여 동춘당 일대를 공원화 한 곳으로 공원 후편에 운동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산림환경과 동춘당앞 일대에 너른 마당과 연못을 조성하여 인근 아파트 주민의 휴식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편집] 동춘당 문화제
매년 4월에 개최되는 동춘당문화제에서는 동춘당유학학술세미나, 숭모제례, 휘호대회, 한시백일장, 투호놀이, 그네뛰기의 행사를 가져 동춘당 송준길의 학풍과 인격을 기리고, 주민화합과 일체감을 조성하고 있다.
[편집] 사진
[편집] 바깥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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