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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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전

홍수전(洪秀全, 1814년 1월 1일 ~ 1864년 6월 1일)은 청나라의 종교가로서 태평천국(太平天國)의 창시자이다. 광둥 성 출신의 객가이다. 청나라내에서 기독교를 기초로 하는 종교국가인 태평천국을 세워 청조에 반기를 들어 투쟁했다. 이것이 태평천국의 난이다.

[편집] 생애

가난한 농가 출신의 홍수전은 과거에 응시하며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로부터 계시가 내려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동생이라고 믿게 된다. 이후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어 풍운산과 함께 상제회를 만들어 포교활동을 하였다.

종교 형식을 취한 상제회는 점점 세력을 넓혔으며, 교주 홍수전은 지방 유력자에 맞먹는 권력을 행사하게 된다. 마침내 1851년이 되어 홍수전은 '태평천국'을 건국하고 스스로 천왕(天王)의 자리에 올랐다. 자신을 따르던 주요 간부들을 왕으로 세우고(동왕 양수청, 서왕 소조귀, 남왕 풍운산, 북왕 위창휘, 익왕 석달개) 정식 국가 체계를 갖추었다.

초창기에는 청나라 군에 쫓겨다니던 홍수전은 마침내 1853년 난징을 점령하고 장강 이남에 자신의 세력을 떨친다. 홍수전의 토지제도와 청조에 대한 반대 때문에 초기 태평천국은 당시 중국 민중들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태평천국은 실패했지만, 장강 이남으로 북벌군을 파견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잦은 내부의 권력다툼 끝에 홍수전의 실질적인 세력은 크게 감소하게 된다. 게다가 양수청은 '천부 하범'(여호와의 혼이 육신에 내림), 소조귀는 '천형 하범'(예수의 혼이 육신에 내림)이라 하여, 홍수전을 능멸하였다. 석달개를 제외한 4명의 왕은 서로 더 많은 권력을 위해 싸웠으며, 이러한 상황은 홍수전이 석달개를 불러들여 네 명의 왕 중 마지막으로 권력을 휘두른 북왕 위창휘의 잔당을 제거할 때(1856년)까지 계속되었다.

이후 홍수전은 친형제인 홍인발홍인달을 왕으로 세워 자신의 통치권을 강화하였다. 석달개는 홍수전 측근들과의 권력다툼에 실망하여 난징에서 물러나 쓰촨 성 지방에 근거를 잡았다.

1862년 청나라증국번을 필두로 하는 태평천국 토벌군을 파견하고, 영국계 외인 부대도 이에 호응하였다. 태평천국의 서부를 지키던 석달개는 1863년 청군의 공격에 의해 청두에서 책형으로 죽었고, 1864년 6월 1일, 홍수전도 토벌군에게 패할 것을 예감하고 난징에서 자살한다. 이후 7월 19일 난징의 완전한 함락으로 태평천국은 막을 내린다.

전 임
없음
제1대 태평천국 천왕
1851년 - 1864년
후 임
 홍천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