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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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채색 필사본(모사본), 158x168cm.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는 1402년(태종 2년) 조선에서 제작된 세계 지도이다. 지도 이름은 역대 나라의 수도를 표기한 지도라는 뜻이다. 김사형 및 이무, 이휘 등이 제작하고 권근이 발문을 썼다. 원본은 현재 전하지 않으며 일본에 필사본 2점이 보관되어 있다. 6백년 전에 이미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까지 아우른 세계지도를 작성했다는 데에서 이 지도의 가치는 매우 높다. 강리도라 줄여 부르기도 한다. 그 당시 아메리카 대륙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지도에는 없었고, 오스트레일리아 대륙도 없다.

제작 과정[편집]

태종 2년(1402년) 5월에 문신 이회가 자신이 직접 그린 조선팔도도(朝鮮八道圖)를 태종에게 바쳤고, 이로부터 석 달 뒤 의정부좌정승 김사형, 우정승 이무, 검상(檢詳) 이회 등이 주도하여 제작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완성되었다. 지도 제작 당시 참찬이었던 권근이 지도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과 제작 동기를 밝힌 발문을 지었는데, 다음과 같다.

천하는 지극히 넓다. 내중국에서 외사해까지 몇 천ㆍ만 리나 되는지 알 수 없다. 이를 줄여서 폭 몇 자의 지도로 만들자면 그게 상세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지도로 만들면 모두 소략해져버린다. 다만 오문(吳門) 이택민의 《성교광피도(聲敎廣被圖)》는 매우 상세하고, 역대 제왕의 연혁은 천태승(天台僧) 청준(淸濬)의 《혼일강리도》에 실려 있다. 건문(建文) 4년 여름에 좌정승 상락(上洛) 김공(김사형)과 우정승 단양 이공(이무)이 섭리(燮理)의 여가에 이 지도를 참조하여 연구하고, 검상 이회에게 명하여 자세히 교정하도록 하여 한 장의 지도를 만들게 하였다. 요수 동쪽과 본국의 강역은 이택민의 지도에도 많이 생략되어 있다. 지금 특별히 우리 나라의 지도를 증광하고 일본을 첨부해 새로운 지도를 만들었다. 정연하고 보기에도 좋아 집을 나가지 않아도 천하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지도를 보고 지역의 멀고 가까움을 아는 것은 다스림에도 하나의 보탬이 되는 법. 두 공(公)께서 이 지도를 존중하는 까닭은 그 규모와 국량이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근은 재주 없는 몸으로 참찬을 맡아 두 공의 뒤를 따랐는데, 이 지도의 완성을 기쁘게 바라보게 되니 몹시 다행스럽다. 내가 평소에 방책을 강구해보고자 했는데 뜻을 맛보게 되었고, 또한 훗날 자택에 거주하면서 와유(臥遊)하게 될 뜻을 이루게 됨을 기뻐한다. 따라서 이 지도의 밑에 써서 말한다. 시년(是年) 가을 8월에 양촌 권근이 기록하노라.

발문에서 권근은 김사형과 이무가 기획하고 이회가 실무를 맡았다고 설명했는데, 여기서 중국의 《혼일강리도》에 일본의 지도를 추가하여 제작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1398년경 명(明)에서 제작한 《대명혼일도》와 유사한 모습을 띠고 있는데, 이 《대명혼일도》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는지 어땠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전에 이미 이회가 그린 조선팔도도가 있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이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제작하는 데에 실제 주역은 이회였다고 할 수 있다. 이회 자신이 이미 앞서 조선팔도도를 제작한 경험이 있는 만큼 중국과 비례하는 조선의 지도를 그리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권근이 지도 제작에 참조했다고 한 《성교광피도》는 이슬람 계통의 세계지도로 추정되는데, 실제로 드문드문 아랍어 지명이 보이고 아랍 계통의 지구의를 따라 바다는 녹색, 하천은 청색으로 표기되어 있다. 지도에는 중국 역대 왕국의 수도가 표기되어 있다. 시대의 지명을 반영하고 있으나 기본적인 지리 정보는 원(元) 시대에 중국을 거쳐 유입된 아라비아 계통의 지도로부터 얻은 것으로 보인다.[1][2] 하지만 아라비아 계통의 지도가, 땅은 둥글다는 지구설에 기초해 원형으로 제작된 것과는 달리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동양의 전통적인 천원지방(天圓地方) 관념에 토대를 두고 사각형으로 제작되었다.

보존본의 역사[편집]

강리도의 원본은 현재 한국에는 없고 일본에서 2종을 보관하고 있다. 정확한 기록이 없어 단정할 수는 없으나 원본은 임진왜란 중에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 것으로 보이는데,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政)가 이 지도를 일본으로 가져가 자신의 개인사찰인 혼묘지에 보관하였고 후일 교토의 류코쿠(龍谷) 대학에서 이를 기증받아 보관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다른 한 종은 에도 시대 혼코지(本光寺)에서 이를 복사한 것으로 텐리 대학에서 보관 중이다.

현재 규장각에 소장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류코쿠 대학 도서관에 소장된 원본을 모사한 것이다. 1968년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교수였던 고(故) 이찬 교수가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필사본을 발견했을 때, 이 교수는 이와 똑같은 형태의 리플리카를 제작해보고자 했지만 당시 류코쿠 대학측에서는 이 지도의 사진 촬영조차도 허가하지 않고 있었다. 이 교수는 아는 인맥을 총동원한 끝에 간신히 류코쿠 대학측에서 보관하고 있던 거의 완전한 실물 사진을 입수하는 데 성공했고, 이 사진을 초상화 전문가에게 보여주어 초상화를 모사하듯 지도를 필사하도록 요청했다. 그렇게 형체가 완성된 지도 위 빽빽하게 적힌 글씨들은 서예가의 도움을 받아 지명 하나하나를 옥편에서 찾아가며 확인 가능한 글씨들을 지도 위로 옮겼다. 그리고 마침내 15년만인 1983년에 모사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완성될 수 있었다.

참고 문헌[편집]

  • 신병주, 「규장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들」2007, 책과 함께
  • 미야 노리코(宮紀子)저, 김유영(金曘泳)역「조선이 그린 세계지도(부제: 몽골 제국의 유산과 동아시아)」, 2010, 소와당

같이 읽기[편집]

주석[편집]

  1. 김성배 기자 '신간' 조선 최초 세계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는 왜 제작됐나 내일신문 2010년 10월 22일
  2. 강승철 기자 '지도 이야기' <1> 혼일강리역대국지도 부산일보 2009년 12월 28일

참고[편집]

  • 미야 노리코(宮紀子) [15] (2010년 10월). 김유영(金曘泳): 《조선이 그린 세계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153*225 cm, 일본 교토의 류코쿠 대학 도서관: 소와당, 400쪽. ISBN-10 : 8993820236 ,ISBN-13 : 9788993820232. 10일에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