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겐의 난
| 호겐의 난 | |||
호겐·헤이지의 난 합전도 병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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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짜 | 1156년 7월 28일 ~ 8월 16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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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소 | 교토 | ||
| 결과 | 고시라카와 천황 세력의 승리 | ||
| 교전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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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휘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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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겐의 난(일본어:
고시라카와 천황이 즉위할 무렵에 귀족, 무가 등이 천황 지지세력과 스토쿠 상황 지지세력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7월에 천황파가 선제 공격하자, 상황파도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응전하였다. 일진일퇴의 치열한 접전 끝에 천황파의 승리로 끝나고 스토쿠 상황은 유배되었으며, 상황파 주요 인물들은 사가 천황의 치세 이후 347년 만에 최초로 처형되었다.
목차 |
원인[편집]
당시 일본은 천황과 상황 간의 대립이 심했다. 당시 천황은 고시라카와 천황이었고, 상황은 스토쿠 상황이었다. 스토쿠 천황이 천황 자리에 있었을 때는 잠잠했었지만 스토쿠 천황이 상황이 되면서도 권력을 놓지 않자, 고시라카와 천황의 분노는 폭발하고 말았다. 천황 가문이 권력다툼으로 서로 분열되자 최고 전통 귀족이며 셋칸 지위를 독점해 오던 후지와라 가문도 천황, 상황 지지파로 갈라지게 되었다. 후지와라 가문은 원래 셋칸(攝關) 자리와 가문 계승 문제를 두고 형제가 다투다가 덴노 가의 싸움을 계기로 완전히 두 패로 갈라섰다. 덴노 가문은 덴노 가문대로, 후지와라 가문은 후지와라 가문대로 '현실의 힘' 인 부시계급에게 서로 지원을 요청했고 부시 가문의 양대세력인 미나모토(源) 가문, 다이라(平) 가문에 손을 뻗었다. 이 와중에 부시 가문인 겐지(源氏) 가문도 헤이지(平氏) 가문도 분열되어 일본의 지배계층은 완전히 두 갈래로 갈라지고 말았다.
경과[편집]
1156년 7월 천황파가 선제공격하자, 상황파도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응전하였다. 헤이지, 겐지 가문은 두 패로 갈라져 치열한 전투를 벌여 결국 천황파가 승리를 거두었다.
결과[편집]
스토쿠 상황은 유배되고, 그를 도와 전쟁에 참여했던 패전 부시들은 모조리 처형되고 말았다. 참전한 것은 오직 부시계급이었던 만큼 전쟁에 져 전사한 것도 전쟁에 이겨 최고의 공신이 된 가문도 겐지와 헤이지 가문이었다.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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