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상학 (아리스토텔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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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상학》(形而上學, 고대 그리스어: τὰ μετὰ τὰ φυσικά)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저술한 철학서이다.

로도스의 안드로니코스기원전 1세기 후반 로마에서 편집 간행한 전전(全典)에서 <자연학(Physics)>의 뒤(Meta)에 놓인 위치로 해서 <자연학의 뒤의 서(Meta-Physics)>라고 불리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은 후세의 형이상학에서 의미하는 내용의 것을 '프로테 필로소피아(Prote Philosophia)'(제1의 철학) 또는 '테올로기케(Theologike)'(신학)라 하여, 존재 내지 실체란 무엇인가를 해명하는 일을 중심 과제로 하였다.

구성[편집]

14권으로 된 본서는 그 과제를 다룬 논문의 집성(集成)이며, 처음부터 체계적 순서를 따라 써내려간 것은 아니었다. 각권 내용의 불일치에 주목하여 거기에 플라토니즘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독자적 철학에의 사상적인 발전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이에겔의 연구(1923) 이래, 각각의 논문 집필 시기에 대해서 사상 발전사적으로 추정하려는 시도가 오늘날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대체로 몇몇 논문군(群)으로 분류된다.

내용[편집]

1권은 아소스 체재 중의 철학사적 고찰, 이어서 3권은 철학 난문집, 나아가서 4권·6권이 계속되어 제1 철학의 대상인 존재로서의 존재와 존재의 다의성(多義性), 제1 철학은 보편학(普遍學)이냐 또는 신학(神學)이냐가 문제된다. 7권·8권·9권은 학두기의 실체론, 10권은 1과 다(多)의 문제, 12권은 8장을 제외하고는 초기의 신학론, 13권과 14권은 수(數)와 이데아 내지 이데아 수의 관계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13권 1-9장이 그 뒤를 받아 같은 주제가 거론된다. 아리스토텔레스 가문에는 조부대대로 의가의 경험적·실증적인 정신의 혈통이 흘러 그것이 동력이 되어 자연학, 특히 생물학 영역에서 큰일을 하게 했다.

한편 플라톤의 수제자로서 이데아론의 영향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플라토니즘의 정신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두 정신의 견제 가운데서 존재 내지 실체의 포착 방법에서도 그의 사색은 말하자면 양극 사이를 항상 크게 동요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때문에 형이상학의 내용 규정에 있어서도 플라톤 주의로부터 실증 경험주의로 직선적으로 사상이 발전하였다고 단언할 수도 없다. 이데아론을 엄격하게 비판하면서 그의 독자적인 존재론이 형성돼 오기는 하지만 신학적인 면이 완전히 불식(拂拭)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경험 형이상학이라고나 칭할 수 있는 것은 1권에서도 엿보인다. "모든 인간은 나면서부터 알고자 한다. 그 증거로서 감각의 애호가 간취된다. 그 뜻은 결국 감각은 그 효용을 빼고 생각하더라도 이미 감각하는 것만으로써도 애호되기 때문이므로"라고 말한다. 이 생래적(生來的)인 지식욕이 감각에서 기억으로, 기억에서 경험으로, 나아가 기술과 학문으로 발전되는 양상을 발생적으로 포착하여 "경험자보다도 기술자 편이, 또한 직공보다는 동량(棟樑)의 편이, 그리하여 제작적인 지(知)보다도 관조적·이론적인 지의 편이 한층 더 많은 지혜를 가진다"고 설파한다. 최고의 지혜는 오로지 인식시키기 위하여 인식한다고 하는 특권을 가지며, 무릇 모든 제1 원인을 대상으로 하는 학(學), 모든 학의 왕자, 최고선을 알며 그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는 유일하고 자유로운 학, 가장 신적(神的)이어서 외경될 만한 것이다. 왜냐하면 신은 모든 것에 있어서 원인의 하나이며 어떤 종류의 원리(始動因)라고 생각되며, 또 이와 같은 학은 신만이 소유할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제1 원리 원인의 학, 즉 제1 철학은 동시에 신학이기도 하다.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이 정리한 4원인(質料, 始動, 形相, 目的)론에서부터 그 이전의 학설은 모두 불충분한 것으로 밀어버렸고, 특히 스승인 플라톤의 이데아(形相)론은 이재성(離在性)·초월성으로 인하여 감각물의 존재와 해명에 아무런 소용이 되지 못한다고 거부한다. 더욱이 이 이데아의 감각물로의 내재화(內在化)가 그의 생애의 과제였다고 할 수 있다. 12권의 신학에서 목적론적으로 포착된 자연의 생성과 운동의 원인인 신을 부동(不動)의 동자(動者)로서 사유(思惟)의 사유, 자기 사유라고 역설했으며, 종장을 "많은 통치자는 바람직하지 못하며 하나의 통치자야말로 바람직하다"고 결론을 맺으면서 만년에 당시의 천문학적 산정(算定)에 의한 천체 운동의 수에 맞추어 다수의 부동의 동자를 도입한 8장이 병존(倂存)하는 것은 그의 제1 철학의 복잡성을 생각하게 한다. 이데아의 내재화 노력은 존재를 실체로 좁히고 감각물을 실체로 보아 그 본질을 아토몬 에이도스(最低의 種)에 있어서 정의하려고 한 7권과, 더욱이 그러한 실체를 가능성(質料)과 현실성(形相)의 결합으로서 동적으로 포착하려고 한 8권에 선명하여, 자연의 개별적 구체성과 동성(動性) 속에 이데아로서 파고들려 하는 날카로우면서도 집요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사색에 경탄할 만한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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