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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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그룹
HYUND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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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분야 금융·서비스업
창립 1947년
창립자 정주영
국가 대한민국 대한민국
본사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194 (연지동 1-7)
핵심 인물 현정은 (회장)
모기업 현대엘리베이터
자회사 현대상선, 현대로지스틱스, 현대증권, 현대아산
웹사이트 공식 홈페이지
현대그룹
개정 로마자 표기: Hyeondae Group
공식 표기: HYUNDAI Group

현대그룹(現代~)은 1950년 1월 1일 출범한 현대건설를 모태로 하여 정주영 회장이 창업한 대한민국의 거대 재벌이다. 1977년부터 2000년까지 24년 동안 국내 자산총액기준 재계서열 1위의 대규모 기업집단으로 자리잡아왔으나, 2000년 가을의 2세대 오너들 간 경영권 분쟁, 2001년 3월 창업주 정주영의 사망과 현대그룹의 대대적인 구조조정, 계열사들의 분리·해체로 인해 사업부문별 소그룹화(계열분리)를 겪으면서 규모가 상당히 축소되었다.

현재 현대그룹은 현대상선, 현대증권, 현대엘리베이터, 현대아산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대그룹 매출의 대부분은 현대상선(국내 해운업계 2위)에서 차지하고 있다.

연혁[편집]

일제 강점기~한국 전쟁[편집]

창업기[편집]

현대그룹의 모태인 현대건설은 6·25 동란기 미군 하청공사에 동원되면서 성장궤도에 진입했으며 한국전쟁 이후 복구사업을 수행하여 엄청난 부를 축적하였으며, 1960년대 중반부터는 국내 건설시장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하여 국내 건설업계로서는 최초로 해외로 진출하였다.

그룹 형성[편집]

1968년부터 현대건설은 건설업을 통해 벌어들인 자금력을 바탕으로 당시 정부 주도의 중화학공업 추진책에 힘입어 자동차 사업과 조선 사업에 뛰어들었으며 마침내 1971년 현대그룹이 정식 출범하였다.

팽창 시기[편집]

현대그룹의 사업확장이 거둔 성공은 현대 그룹에 탄탄한 자금력을 가져다 주었음은 물론, 대한민국 사회 변화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으며, 이를 기회로 삼아 이시기부터 창업주인 정주영이 본격적으로 정계 진출을 선언함으로써 기존의 현대그룹은 정세영, 이명박 등 전문 경영인이 이끄는 체제로 바뀌게 된다.

2세대 오너체제 돌입[편집]

창업주인 정주영이 정계에서 입지를 굳히는데 실패한 이후 정몽구, 정몽헌 등 2세대가 그룹을 이끄는 체제로 바뀌게 된다. 한편 이 시기 현대는 일관제철소 건립을 시도하였고 기아자동차 인수를 통한 규모의 경제실현을 이끌어냈다. 이렇게 기틀이 잡혀가는 시기 현대그룹은 국민의 정부햇볕정책과 동시에 대북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소그룹화 (계열 분리)[편집]

현대그룹은 국민의 정부의 구조조정과 빅딜 정책계획에서 현대그룹 밀어주기 정핵의 일환으로 사업부문별 전문화를 구상하였으나, 결국 사업부문별 소그룹화라는 밑그림을 그려나가게 된다. LG반도체한화에너지 인수, 한화에너지프라자 합병으로 엄청난 빚을 떠맡게 됨과 동시에 2세대 오너 간 경영권 분쟁과 더불어서 유동성위기에 직면하면서 현대계열의 모든 계열사들의 주가폭락과 현대그룹의 비리가 완전히 드러나면서 1977년부터 재벌 재계서열 1위를 지켜왔던 현대그룹이 2001년부터 삼성그룹LG그룹에게 1위, 2위 자리를 내줌과 동시에 현대그룹의 위상이 완전히 추락하였다.

현정은 회장 체제 출범[편집]

2003년 8월 정몽헌 회장의 투신자살 이후, 같은 해 9월 현정은 회장이 취임하면서 현대그룹은 여성경영인에 의해 이끌어졌다. 이 시기부터 현대그룹은 해운, 물류, 금융 등의 사업축을 구성한 기업집단으로 다시 자리잡았으며 선대 경영자들의 유지를 받들어 대북 사업을 지속해나갔다. 그러나 2008년 금강산 피격사건 이후 남북관계가 악화 조짐을 보이면서 대북 사업의 차질을 빚게 되었고, 이는 현대그룹이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하는데 부담을 주는 계기가 되었고, 때문에 현대에서는 그룹 차원에서 신성장동력의 마련이 절실히 필요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2010년에 진행한 현대그룹의 모태인 현대건설의 인수를 적극적으로 추진한 행보는 이를 자세하게 입증해주었다.

주요 계열사[편집]

바깥 고리[편집]